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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연대, 우리 살롱해요
.사람들이 모이는 살롱(salon)문화가 대유행이다. 내게 살롱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 건 바로 『퇴사준비생의 도쿄』라는 책이다. 제목이 먼저 눈길을 끌었는데, 도쿄 여러 가게들의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담은 내용이 흥미로웠다. 주목할 만한 것은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그 후의 일이다. 출판 전에 이 글들은 ‘퍼블리’라는 지식콘텐츠 구독 사이트에서 유료로 발행되고 있었고, 유료콘텐츠 중에는 저자인 트래블코드 멤버들과 만나는 ‘살롱’ 프로그램도 있었다. 나는 리포트 구매와 살롱 참여를 통해 그들과 소셜미디어로 연결되었다. 책이 나온 후, 책에 소개된 가게를 투어하는 2박3일 인사이트 여행이 진행되었는데, 놓치면 후회하겠다 싶어 참여하게 되었다. 도쿄 여행의 시작은 디지털 리포트 구매였지만,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살롱’이 결정적이었다. 아마 리포트만 구매했다면, 콘텐츠의 임팩트가 약했을 거다. 느슨한 연결은 콘텐츠의 체감도를 높이고 책 구매와 여행 프로그램 참여로 이어졌다.
디지털 리포트, 살롱, 소셜, 책, 여행. 이들은 콘텐츠를 판매하는 과정이 남달랐다. 책을 매개로 독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통해 느슨한 연결로 이어진 그들의 팬을 만들고 있었다. 인사이트 여행에 참여하며 그곳의 풍경과 이야기를 소셜미디어에 수시로 올렸다. 그러다 문득 이 여행 자체를 ‘리뷰’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페이스북에 이 생각을 포스팅하자 100여 개의 좋아요 20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에 바로 모일 장소를 섭외해 도쿄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나의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 앞에서 리뷰 했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같은 내용의 모임을 일곱 번을 더 열어야 했다. 여러 번 진행하다보니 다른 이의 경험을 듣는 자리를 따로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이야기 부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3년째 세계 최대 뮤직페스티벌 ‘투모로우랜드 페스티벌(Tomorrow land festival)’에 다녀온 분, 30일 안식휴가를 통해 덴마크 자유학교에 다녀온 분, 실리콘밸리 명상컨퍼런스 ‘위즈덤 2.0’에 6년째 다녀온 분(이 분은 지금 2020년 <위즈덤2.0 코리아> 호스트가 되었다), 달리기 선수가 아님에도 달리기를 배우러 케냐에 다녀온 분, 양말을 너무 좋아해 동네를 돌며 100켤레가 넘는 양말을 이웃집에 선물한 분(인스타그램에서 ‘백분의 일’을 검색해 보라), 매년 아이와 함께 한 달 외국살이를 도전하는 분(이 글을 쓰는 지금, 그는 아이와 함께 발리에 있다)을 초대해 그들의 경험을 나누었다.
도쿄 여행 리뷰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경험공유살롱 - 리뷰빙자리뷰(이하 리빙리)’다. 이 행사는 이름에 드러나듯 ‘살롱’ 방식으로 진행이 된다. 참여자끼리, 혹은 참여자와 리뷰어가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다(강제하지는 않는다. 기회의 다리를 만들고, 건너는 건 각자의 몫이다). 퇴사준비생의 도쿄 ‘살롱’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이 스며든 거다. 그야말로 느슨한 영향이다.
리빙리는 3개의 언덕을 통해 살롱의 풍미를 의도한다. 첫째, 참가신청을 댓글로 받고 있는데, 이 단계에서 참여자들은 자기소개와 참가 이유를 밝힌다. 리뷰어와 참여자들 모두 누가 참여하는지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둘째, 해당 리빙리를 진행하면서 또 각자 소개를 한다. 누가 왜 왔는지를 서로 공유하는 과정에서 집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리뷰어 역시 한 번 더 참여자들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어 마음이 더욱 단단해진다. 셋째, 어떤 느낌이었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를 댓글 리뷰로 남기게 한다. 리뷰어가 댓글 리뷰에 다시 응답하기도 한다.
이 언덕을 꾸준히 넘다보니 재미있는 일들이 쏠쏠하게 이어졌다. 무엇보다 강연 행사를 진행했을 때와는 다르게 소셜미디어 기반의 친구들이 많아졌다. 참여자가 리뷰어를 추천하기도 하고, 참여자로 왔다가 다음 리뷰어가 된 분도 있었다. 리뷰어와 참여자 간의 소소한 만남이 이어지고, 참여자가 또 다른 프로그램(사이드 프로젝트)을 시작하기도 했다. ‘여행 감독’이란 독특한 경험을 리뷰한 분은 리빙리 멤버들을 대상으로 ‘아침가리 계곡트레킹’ 프로그램을 제안해 실행하기도 하셨다. 최근 54번째 살롱을 진행한 리빙리는 2년간 60여명의 리뷰어와 1,000명이 넘는 참가자, 그리고 400여개의 리뷰를 쌓았다.
살롱은 이렇듯 일방적인 관계보다는 서로가 느슨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판이 만들어진다.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이들이 살롱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음을 체감하는데, 그만큼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온·오프라인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페이스북에서 인기를 끈 ‘열정에 기름붓기’는 망원동에 ‘크리에이터 클럽’을 운영 중인데, 최근 강남점을 오픈했다. 연극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만들어진 ‘문토’는 현재 수십개의 살롱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독서 클럽의 대명사 ‘트레바리’는 최소비용 19만원의 유료 멤버십을 운영하는데 6,000명이 넘는 멤버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여가 큐레이션 플랫폼인 ‘프립’도 소셜클럽을 시작해 독서뿐만 아니라 영화, 등산, 와인, 코칭 등 다양한 클럽을 선보이고 있다. 넷플릭스(Netflix) 콘텐츠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커뮤니티 ‘넷플연가’, 유튜브 콘텐츠에 기반한 ‘유튜브코드’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어떤 테마를 매개로 참여자를 모으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공간을 중심으로 살롱을 진행하는 곳들도 많아지고 있다. 동네서점이 대표적이다. 대형서점과 경쟁하며, 그들만의 생존 방식 중 하나가 살롱이다. 책을 매개로 저자와의 만남, 책 읽기, 글쓰기 등 다양한 커뮤니티(프로그램)를 만들고 있다. 종이잡지클럽, 가가77, 여행책방사이에, 책방사춘기, 살롱드북 등 동네책방은 이제 책만 파는 게 아닌 관계를 비즈니스로 만들고 있다. 이렇게 살롱이 유행인 이유는 무엇일까?
주 52시간 근무제가 법적 효력을 갖게 되면서, 당연했던 야근이 희귀해지고, 직장인들의 빡빡했던 저녁 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워라밸(워크앤라이프밸런스)’이란 단어가 직장인의 마음을 흔들며 ‘라이프’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도 한몫 했다. 뿐만 아니다. 도시의 주거 형태 중 ‘1인 가구’의 비중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소셜미디어로 서로 촘촘히 이어져 있으나 외로운 마음은 여전하고, 이것이 ‘관계의 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오랫동안 중요시되었던 학연, 지연, 혈연처럼 무겁게 밀착해야 하는 관계에는 마음을 두고 싶지 않다. 다만 취향이 비슷한 일들과 ‘안전하고 쿨하게’ 연결되고 싶은 욕망이 있을 뿐이다. 살롱 비즈니스는 바로 이러한 지점을 파고들었다.
살롱문화는 ‘프립’이나 ‘문토’처럼 그 자체가 비즈니스지만,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는 ‘계기’로도 작용을 한다. 팬을 만드는 활동에 살롱이 적격이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책 『퇴사준비생의 도쿄』가 출간을 앞두고 살롱 프로그램을 먼저 진행한 것도 그 예다.
최근 코엑스에서는 2020년 4월에 진행하는 축제형 컨퍼런스 ‘360 서울, 2020’을 앞두고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와디즈를 통해 기획자를 모집했다. 이른바 ‘커뮤니티 멤버’라 부르는 36명의 기획자를 모집해 5개월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 역시 기획자를 느슨하게 연결하는 살롱이다. 또, 올해 3월 진행 예정인 체험형 컨퍼런스 ‘위즈덤 2.0 코리아’ 역시 크라우드 펀딩으로 ‘씨드멤버’ 200명을 모았다. 표현은 달라도, 공통의 관심사를 지지하고,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들을 한데 묶어내는 작업 방식은 ‘살롱’을 만드는 과정과 유사하다.
대중 매체를 통한 광고가 제 힘을 잃어 가고 있는 시대에, 콘텐츠를 전달하고 콘텐츠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을 어떻게 찾고 그들과 연대할 것이냐를 살롱 프로그램을 통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오래전부터 쌓인 문제를 대체할 순 없어도, 새로운 답을 찾기 위한 중요한 건널목은 충분히 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는 모든 이들의 화두이다. 어쩌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팬이다. 느슨하게 이어진 팬을 만들기 위해 문화예술 기획자와 마케터들이 살롱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생각보다 많다.
백영선은 카카오에서 브런치(brunch) 마케팅과 스토리펀딩 PD, 카카오임팩트 매니저로 활동했다. 퇴사 후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 겸임교수로, ‘프립’에서 임팩트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콘텐츠 커뮤니티 기획사를 표방하는 플라잉웨일의 대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