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진에 실린 글의 내용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TEL 02-708-2293 FAX 02-708-2209 E-mail : weekly@gokams.or.kr
팬데믹과 예술정책의 미래
-
지난해 12월 31일 우한에서 이상 질환 폐렴이 보고된 후 불과 3~4개월 만에 세계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들어섰다. 최초 환자 보고 이후 100일 만에 150만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했고, 그 위세는 지금도 당당하여 4월 20일 현재 확진자 수는 235만에 달할 정도다.
심각한 것은 사회·경제적 변화다. 집단 감염병으로 인해 세계를 잇는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이 붕괴됐고, 깊은 내면적 인간관계에 기초한 공동체보다는 감염을 우려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각 개인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인류가 예수 탄생을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로 나뉘듯, 혹자는 코로나19 발생 이전과 이후로 문명이 나뉠 것이라 말한다. 코로나19가 미친 영향이 전 세계적이고, 일상생활부터 경제·산업 영역까지 매우 넓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예술의 변화 또한 만만치 않다. 폐쇄적 공간에서 사람과 사람 간 교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예술은 잠시의 대면접촉에도 감염될 수 있는 코로나19의 무서운 공격력 앞에서 맥을 못 추고 있다. 공연장과 전시장, 각종 축제의 장은 문을 닫았고, 그나마 열린 예술시설도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2m 간격을 띄우다 보니 관객의 급감을 체험하고 있다. 통계청이 조사한 ‘서비스업 조사’와 신한카드의 업종별 카드매출액 자료를 통해 추정한 바에 따르면 ‘주의 단계’가 발령된 1월 20일부터 3월 14일까지 총 피해액은 4,133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1) 한국 예총은 1월과 4월 사이 취소되었거나 연기된 문화행사 규모를 1,614건, 266억 원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서울시 내부 자료에 의하면 예술인의 수입 감소에 대한 체감도는 88.7%에 달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세계적이어서 우리보다 늦게 확진자 수가 급증하기 시작한 미국도 2,500만 달러 이상의 경제손실과 75%의 관객 감소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2) 세계가 말 그대로 팬데믹(pandemic, 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상태에 빠진 것이다.
좀 더 살펴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실제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창궐에 의해 피해를 입은 분야는 전통적인 제조업이나 상품분야보다는 서비스업인데, 이들 대부분은 밀폐된 공간에서 대면접촉을 통해 활동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를 포함하여 인간의 이동을 전제하는 여행・숙박업, 스포츠・레저, 축제・행사, 예술 등이 그 대표적 분야로 ILO에 따르면 이들 업종은 코로나 19에 의해 ‘중상’이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언급된다.
심각한 것은 이 분야에 대부분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이 종사하며, 불안정한 노동 조건 하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나 배우, 화가 등 대부분의 예술가가 이 직군에 속하고, 게임기획자, 디자이너, 2D-3D 아티스트, UI개발자 등 콘텐츠 산업에 종사하는 일군의 노동자들도 이에 속한다. 이들은 정식 고용체계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임시직이거나 계약직 등 프리랜서 형태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코로나19와 같은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첫 번째로 일자리를 상실하며 실업급여나 사회보장보험과 같은 안전망에 의존하지도 못한 채 추락한다. 감염병으로 인해 그나마도 취약하고 부족한 일자리마저 상실하고, 생계조차 보장되지 못하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이들 업종 중 ‘비대면’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업종은 그나마 다행이다. 택배 등 온라인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업종은 오히려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기회를 맛보고 있다. 그러나 대면을 전제로 한 근대적 스포츠나 예술, 축제, 행사의 경우 마땅한 대안이 없다. 어서 그저 끝나기를 기대할 뿐. 그렇기에 감염병 앞에 놓인 예술은 풍전등화다. 자신의 위기 앞에 스스로가 할 일이 거의 없다는 것, 그보다 심한 위기가 또 있을까?
어떤 사람은 감염병이 가면 얼마나 가겠느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래 분명 코로나19는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를 매개로 감염병이 보여 주는 세 가지 현상은 이 상황이 쉽게 종결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 중 하나가 코로나19의 이상한 특성이다.
대체적으로 세 유형으로 분화했다는 코로나19는 일단 ‘온도’와 별다른 관계가 없는 것 같다. 러시아나 유럽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나 브라질 같은 더운 곳에서도 발병한다. 때문에 여름이 되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더구나 이 감염병은 한꺼번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중국에서 발병한 이후, 이란과 한국, 이탈리아 북부로 번지던 것이 유럽과 북미를 거쳐 이제는 중남미와 동남아, 아프리카까지 위협하고 있다. 각 지역을 순회하며 세계를 공황상태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 감염병이 언제 끝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참고로 한국 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던 메르스는 2012년 4월 중동에서 발병해 2015년 12월에 종식되었다. 그러나 실제 한국에 영향을 미친 것은 2015년 5월 21일 첫 환자가 발생한 이후 같은 해 7월 4일 마지막 환자가 발생할 때까지인 2개월 남짓 기간이다. 그 기간에 186명이 감염됐고, 39명이 사망했다.
또 한편 주목해야 할 점은 감염병 발생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2002년 사스가 발생한 이후 2009년 신종플루에 이어 2012년 메르스, 2013년 에볼라, 2015년 지카, 2020년 코로나19 등이 발병했다. 대체적으로 보면 3~4년을 주기로 한다. 향후 발생할 감염병의 경우, 어떤 것은 지역적으로 멈추는 에피데믹(epidemic, 감염병 유행)에 그치겠지만, 어떤 것은 팬데믹으로 이어져 우리 사회를 또 공포로 몰아넣을 수 있다. 에피데믹이든 팬데믹이든 감염병은 줄곧 우리 사회를 위협할 것이며, 그 결과 우리는 감염병이 만연한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를 살게 될 것이다. 말 그대로 감염병 사회에 들어선 것이다.
분명 이번 대응은 메르스 때와 달리 빨랐다. 방역체계도 적극적이었고, ‘긴급재난지원’이나 ‘재난기본소득’ 등 감염병에 대응하는 사회적·정책적 태도 또한 주목할 만 했다. 더구나 지방정부가 나서 경쟁하듯 정책을 쏟아내고, 이를 통해 정부의 빠른 정책판단을 견인했다는 것은 향후 감염병 대응과 관련하여 주목할 부분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염병 사회가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질문하고 새롭게 살아가는 방식을 묻는 데에 대한 답을 구하는 데 있어선 아직까진 소극적이다. 대부분은 지금 닥친 현실, 즉 자영업자의 위기, 당장에 먹고 사는 것이 막막한 취약계층의 구호를 위한 것이었고, 장기적 관점에서 감염병이 일상화 된 미래에 있어 사회를 어떻게 재구성하고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에 대해선 의문을 던지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당장의 발 앞에 떨어진 불이 급했던 것이다.
예술정책 또한 마찬가지다. 메르스 때 긴급구호를 했던 경험을 축으로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등이 나서 서둘러 지원 사업을 펼쳤고, 서울문화재단을 비롯해 각 지역문화재단 또한 정부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역의 여건에 맞는 지원 사업을 편성했다. 예술이 처한 긴급한 위기적 상황에서 정부와 지자체가 보여 준 모습은 과거와는 달리 높은 점수를 줄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긴급구호를 넘어 예술이 처한 근본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란 측면에선 아직 대화조차 못하고 있다. 서울문화재단이 독특하게 “예술인이 재난을 대하는 가지가지 비법”이라는 공모사업을 시작했으나 그 또한 진지한 사회적 토론을 요구하거나 공론화 된 담론을 형성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은 먼(?) 미래를 말하기엔 발등의 현실이 다급했고,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명확히 해야 할 것은 코로나19가 예술에 가하는 사회적 질문에 대한 것이다. 코로나19는 기본적으로 감염병으로 대면에 의존하는 사회에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여기에 이미 디지털로의 전환을 시작한 인류 문명은 ‘원격사회’로 전환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꿈꾼다. 이전에야 시간과 장소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인간들이 자유로이 이동하며 좀 더 나은 장소와 공간을 찾는 방향으로 진화했지만, 코로나19 이후 이 흐름은 끊어져 이제는 각 개인을 고립된 장소나 ‘집’ 등으로 격리되도록 유도한다. 실제 대면하지 않고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회, ‘비접촉 원격사회’를 열고 있는 것이다.
예술에게 던져진 질문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기본적으로 접촉을 전제로 하고, 불특정 다수의 공간적 밀집과 상호교감을 기본으로 행해지던 예술은 앞으로 어떻게 변해야 할까 하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온라인으로 송출하고 그것을 통해 대중과 교감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근대가 만들어 놓은 장르의 벽과 현장감은 그 변화를 손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특정한 교감과 소통을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은 그 공간의 분위기와 함께 하는데서 오는 에너지와 떨림을 떨쳐내기 어렵다. 그렇기에 ‘비접촉 원격사회’로 진화하는 현실에서 예술은 근본적인 존재의 기반이 허물어짐을 보고 있다. 예술이 손쉽게 허용될 수 없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의 현실에서 예술이 극복해야 할 것은 안정감을 찾는 것이다. 각종 감염병이 만연하고, 지진 등 자연재해를 비롯한 다양한 재난·재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예술은 늘어나는 위험 앞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예술재난기금’이나 사회보장보험과 같은 ‘예술인재난보험’ 등으로 헤쳐 나갈 것을 주장한다. 예술재난기금은 평소 일정액을 적립하고 코로나 19와 같은 감염병 및 각종 재난상황에서 긴급자금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번 긴급재난지원이 기본소득 형태의 국민수당으로 전환된 만큼, 앞으로 재난에는 좀 더 다양한 형태의 지원이 요구될 것이다. 그런 만큼 예술을 축으로 한 재난기금 마련은 감염병으로부터 가장 취약한 예술영역을 보전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재난보험 또한 마찬가지다. 평소 보험금을 납입하고, 재난 상황에서 지원을 받는 것이다. 다른 분야와 달리 프리랜서나 임시직 등 취약한 비고용 노동에 종사하는 예술가는 재난 상황에서 예술종사자는 스스로를 구호할 수밖에 없다. 특히 배우나 스태프 등 현장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의 고통은 더 하다. 그렇기에 많은 예술가들이 요즘 들어 쿠팡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은 쉽게 흘릴 사항이 아니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감염병 사회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첫 번째 예술정책 전략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으로는 예술의 변화에 대해 말해야 한다. 이미 예술은 다양한 형태로 변이를 시작하고 있다. 디지털과 시민사회를 만나 예술의 생산과 소비, 관계의 영역이 달라지며 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여기에 새롭게 등장한 코로나19는 전통적인 산업주의 시대의 예술인 ‘장르 예술’을 위협하며 더 이상 밀집하거나 접촉하는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예술을 강요하고 있다. 그것은 ‘비대면 접촉예술’이다. 원격은 그 다음이다. 그렇다면 이 예술은 무엇인가? 이 예술은 어떤 형식으로 규정할 수 있으며, 무엇으로 개념화할 수 있는가? 코로나 19는 가장 근본적인 관점에서 오늘날 사회가 변해야 하는 예술의 방향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있어 예술(정책)이 취해야 할 전략은 사회적 소통과 토론을 전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코로나19에 잘 대처했던 것은 ‘신속한 선제적 방어’와 누구에게나 동등한 ‘정보의 공개’였다고 한다. 확진자가 나타나면 그 동선을 공유했고, 각종 증상과 병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했다. 그 결과 모든 국민은 전문가가 되었고, 스스로의 위기감에 맞춰 방역체계를 쌓았다. 그 결과 감염병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고 전 세계가 모델로 받아들이는 방역국가가 되었다.
예술 또한 마찬가지다. 변화가 크다면 당장의 위기에 대응하는 만큼, 미래 변화에 대해서도 논해야 한다. 서로 감염병에 대응하는 방식을 말하며,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그것으로부터 또 어떤 예술을 창출해 갈지 말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 감염병으로부터 메르스가 준 경험을 넘어 예술의 변화에 대한 집단학습과 경험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의 변화는 코로나19가 심각한 만큼 심각하다. 이 감염병은 늘 새롭게 다가올 것이며 그 때마다 인류의 생활에 그리고 예술에 더 깊은 치명타를 가할 것이다. 그 순간마다 인류가 새롭게 자신을 변형하며 위기를 극복해 왔듯, 예술 또한 새로운 변형을 통해 변해나갈 것이다. 그 변화로부터 새로운 예술을 창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코로나19 시대에 예술과 예술정책이 나가야 할 길이다.
1)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코로나19 관련 예술분야 변화와 정책 대응방안 제안, 2020.03.26.
2) American for the Arts 홈페이지(허은영, 국가별 문화예술 분야 코로나 19 대응 현황 및 현장
요구사항,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0.3.27.
라도삼은 2001년부터 서울연구원에서 문화와 예술정책을 연구해 오고 있다. 2005년 ‘문화도시 서울’을 계획한 데 이어 2016년 ‘문화시민도시 서울’과 ‘서울예술인플랜’을 계획한 바 있다. 2010년부터는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에서 겸임교수로 ‘문화도시정책론’을 강의해 오고 있으며,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을 지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