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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예술가, 그리고 국제교류
-지구촌(Global Village)1)이란 단어는 흥미롭다. 지구가 훤히 아는 동네처럼 작아진다는 뜻이기도 하고, 활동하는 반경이 마을에서 지구 단위로 커진다는 뜻이기도 해서다. 축지법이 빨리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아니라, 땅을 접어서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게 하는 도술인 것과 비슷하다. 과학기술, 특히 인터넷이라는 도술은 지구를 완전히 작게 만들어 버렸다. 내가 직접 뉴욕 모마(MoMA, 뉴욕현대미술관)에 가지 않더라도, 3초면 온라인으로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빨리 달리는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행기란 기술의 도움을 받아 12시간이면 뉴욕의 <별이 빛나는 밤에> 앞에 서서 셀카를 찍을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하루라는 시간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외국의 문물을 접하는 일도, 외국을 직접 찾는 일도 어려운 세상이 아니다. 국경을 넘는 사람이, 그러니까 마을을 활보하는 사람이 역병을 옮기는 숙주라는 전제가 없는 세상에선 경제적, 정치적, 안전상의 문제만 없다면 국경 넘기는 순전히 자유의지였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저녁거리를 사도, 빵집에서 빵 하나를 사도, 옷가게에서 양말 한 켤레를 사도 국경을 떠올리는 시대를 산다. 노르웨이에서 온 고등어, 미국산 밀가루와 말레이시아산 팜유가 들어 있는 빵, 방글라데시에서 만든 양말을 사고 집에 돌아와 덴마크산 철제 가구와 중국산 가정용품들에 둘러싸여 앉았다. 지구촌이란 국경 없이 지구를 마을처럼 여기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국경(다른 동네)을 생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를 둘러싼 물건들과 음식들이 얼마나 먼 거리를 움직여 도착했는지 가늠해본다. 사람인 내가 움직이는 것보다, 물건들이 대량으로 움직이는 편이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라 아마 내 주변엔 이렇게 많은 이국의 것들이 놓여 있을 것이다. 이 가구와 식재료가 왜 그렇게 먼 거리를 화석연료를 쓰고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더 싼값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질문하게 된다. 비행기와 배를 통해 불필요하게 먼 거리를 이동해 온 것들이 어떻게 국내나 지역의 생산물보다 저렴할 수 있고 가격경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가구도, 마늘도, 고등어도 자유롭게 국경을 이동하라고 만들어 둔 시스템은 자본이 넉넉한 기업에만 대부분의 혜택이 돌아가고,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수익배분의 문제와 물가 등의 영향을 받아 그 나라에 갇히게 만든다. “글로벌 경제의 최대 패자는 국경을 이동할 수 없는 노동자”2)다.
세계화를 외치는 시대에 한 국가에 고립돼, 혹은 한 봉제공장에서 고립돼 일만 해야 하는 삶은 그 노동자가 선택한 바가 아니다. 거대한 지구의 시스템이, 국가의 정책이, 한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삶 전체를 규정짓고 만다. 세계화를 내세우며 시작된 글로벌 경제가 소비 지상주의로만 치닫고 있던 때(코로나19가 터지기 이전), 예술가들은 다른 어떤 노동자보다 국경 넘기에 자유로웠다. 국경을 넘는 일이 특정 시간을 노동한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을 꾸리는 노동자들에겐 어려운 일이지만, 시간과 관계없이 특수한 생산 활동이나 아이디어로 생활을 이어가는 지적 노동자인 예술가들에겐 그저 선택의 문제로 남아 있었다. 그런 까닭에 예술가들의 국경 이동 비율은 낮은 수입에 비해 놀라울 만큼 높은 편이었다.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하는 각종 국제교류 프로그램이나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이 이동률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물론, 학위를 위한 유학을 목적으로 예비 예술가들이 더 많은 비율로 해외로 이주할 결심을 하긴 한다. 직장, 특정 국가나 특정 언어와 계약기간 등에 큰 제약을 받지 않고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예술가들은 국경 이동에 있어 상대적으로 그 어떤 노동자들보다 자유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국경을 넘는 일 자체가 위험해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예술가들은 어떤 삶의 방식을, 일의 방식을 찾아가게 될까? 전문가들부터 비전문가까지 입을 모아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인류의 역사는 이제 코로나 이전(BC, Before Corona)과 코로나 이후(AC, After Corona)로 나뉠 것이라 예견한다. 코로나 이후는 이제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작가들이 국경을 넘는 일은 국제교류를 명분으로 하는 크고 작은 전시를 통해서 주로 이뤄진다. 국제전을 위한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해외 레지던시에 참여하기도 한다. 국경을 넘으며 교류하는 이 활동들의 다음 목적지는 비엔날레나 유명 미술관의 대규모 국제 전시일 것이다. 그리고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최종 목적지는 일종의 월드스타가 되어, 국경의 구분 없이 어느 미술관에서든 갤러리에서든 ‘지원’받는 것이 아닌 ‘초대’받는 활동들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국적 작가들을 한 장소에 모으거나(국제레지던시) 작품들을 한 장소에 모으는(국제비엔날레) 일, 또는 갤러리들을 한 장소에 모으는(국제아트페어) 것처럼, 다양한 시각과 문화를 모아 오프라인에서 한눈에 보여준다는 콘셉트 자체가 유효하지 않을 시기가 오려 한다, 혹은 이미 왔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인 2018년, 미술계의 대형 국제행사들의 미래를 예감하면서 아래와 같은 글을 쓴 적이 있다.
“국내 작가들의 활동 반경을 넓히기 위해 작가와 기획자가 힘을 모아서 세계를 돌며 전시 투어를 해보자는 아이디어에 “그 비용과 효과면 VR로 만드는 게 낫다”는 대답을 듣는다. 고화질로 많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구글 아트 프로젝트도 그렇지만, 많은 미술관의 웹사이트에서 VR 관람 서비스를 제공한다. 궁금한 작품이나 전시가 있다면, 큰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살고 있거나, 살게 될 것이다. 직접 현장을 찾아 작품을 실제로 보는 것과 VR로 작품을 보는 일 중에 각자의 취향과 경제 사정, 선호도에 맞게 골라서 전시를 보게 되는 일이 보편화될 수 있다.” |
미술계 만국박람회(국제 대형 행사)가 언제까지 유효할지 지켜보고, 미래의 대안적 활동은 무엇이 될지 상상해 보고자 쓴 글이었다. 코로나 이후의 예술 방식을 논의하는 데 있어, 다시 한번 같은 글을 다른 언어로 쓰게 되는 것 같다. 지금처럼 작품을 한 장소에 모아서 보여주는 대규모 국제 행사들은 이제 필연적으로, 좀 더 빠르게 대안들을 찾아가고 있다. 온라인으로만 거래한 영국의 <프리즈 아트페어>가 성황이었다는 소식은 이 대안들이 실효를 거두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아트페어나 콘퍼런스, 비엔날레 등의 행사가 취소되거나 웹으로 옮겨졌다. 웨비나(Webinar, Web+Seminar)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다. 내가 행사 장소로 이동해 참여하는 게 아니라, 웹을 통해 행사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대학교 강의들이 비대면으로 교체되면서, 유학생들이 각자의 집에서 온라인 동영상을 학습하거나 ‘줌’ 같은 화상 온라인 채팅으로 토론하거나 수업에 참여한다. 국제교류 전시의 기획단계 회의는 진즉에 온라인 화상채팅으로 진행되던 바다. 오프라인에서 구현돼야 하는 국제교류 전시의 결과물도 결국은 온라인 구현 방식으로 바뀌지 않을까. 국제교류 기금의 인터뷰 심의를 온라인으로 하면서, 코로나로 인한 대안을 함께 준비해 발표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대부분의 오프라인 국제교류 행사들이 강제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시점에 이르러, 어떤 대안을 내놓으라면 나는 다시 2018년의 글을 자기복제할 수밖에 없다.
“오프라인에서 가능성이 엿보이는 건 오히려 특정한 동인이나 지역이 특색적으로 기능하는 행사들이다. 한국에선 작가들이 주체가 되는 예술장터인 <유니온아트페어>, 독립 서적을 발행하거나 굿즈를 제작해 파는 <언리미티드에디션>, 사진 작업을 판매하는 방식에 대해 아트페어 형식을 빌어 고민하는 <더 스크랩>이나 작가들이 작품의 대안으로 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가를 실험했던 <굿즈> 같은 행사가 꾸준히 열린다면, 대형 비엔날레 없이도 한 지역에서 아트씬이 형성되는 건 어렵지 않아 보인다. 국제비엔날레나 국제아트페어라는 타이틀보다는, 시대의 요구에 맞는 새로운 기획의 행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
국경 넘기가 더 이상 자유롭지 않은 시대에는 현재 위치한 지역이나 국가에 더 집중하고, 그 지역의 사회문화적 특성이 십분 발휘된 새로운 기획의 탄생을 기대하고 후원하며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비관적인 누군가는 코로나19의 완전 종식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백신이 보급되더라도 이제 우리의 일상은 방역을 염두에 두고 재편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미 악수를 청하는 건 매너 없는 행동이 됐고, 밀폐된 공공장소에서의 마스크 착용은 디폴트(default)가 됐다. 공용공간에서 소매로 입을 가리지 않고 기침을 하는 행동이 어떻게 인식되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이 시기를 보낸 작가들이 작품으로 어떤 반응들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에이즈의 창궐은 일정 부분 아티스트의 작업 방식과 라이프 스타일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지금도 백신은 없다. 칵테일 요법으로 목숨을 잃을 위험은 줄어들었지만, 한번 걸리면 평생 안고 가는 바이러스다. 코로나가 어떤 바이러스로 지구에 남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생활 방식을 바꾸게 해준 이 바이러스에 대해 각자의 지역에서 각자의 시각언어로 코로나와 포스트 코로나를 논하는 작품들이 쏟아질 것이다. 물론 이 작품들을 굳이 오프라인으로 볼 생각은 한참 동안 하지 않을 것 같다. 작가든 기획자든 각자 있는 지역에서 직접 발로 뛰며 더 넓은 지구를 상상하며 활동하겠지만, 온라인 속에서 도술을 부리며 지구를 작게 여기며 살아가는 시간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고 보니 결국 이 말이야말로 지구촌이란 단어가 탄생한 배경이다. 과연 지구촌은 흥미로운 단어다.
1) 지구촌이란 마셜 매클루언(Herbert Marshall Mcluhan)이 1988년 브루스 R.파워스와 함께 지은 책 『지구촌 : 21세
기 인류의 삶과 미디어의 변화(The global village: transformations in world life and media in the 21st
century)』에서 처음 사용했다. 과학기술과 통신의 발전으로 온 인류가 쉽게 왕래하고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뜻
으로 지구를 한마을(촌, 村)처럼 생각하여 쓰는 말이다.
2) “자본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게 되면 국가들은 서로 경쟁한다. 이를테면 다른 나라보다 법인세율을 낮추고 규제를 완
화하고 환경오염을 묵인하고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 식으로 자본을 유치하여 이윤 증대를 약속한다. 각국 정부가
경쟁하면 자본은 ‘바닥을 향한 경주’를 이용해 이윤을 챙긴다. 정부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한 걸음이라도 더 앞서려고 세
금과 규제를 한없이 내린다. 결국 모든 나라가 패자가 된다. 경제 운영에 필요한 세수입과 규제를 놓치기 때문이다. 최종
적으로 최대 패자는 국경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는 노동자다.” 『로컬의 미래』에서 경제학자 제프리 색스(Jeffrey
Sachs)의 말을 인용한 구절에 있는 표현이다.
이나연은 제주에서 <씨위드>라는 한영판 발행 예술잡지를 창간해 활동하고 있다. 미술전문 출판사 켈파트프레스 대표로 『뉴욕 지금 미술』, 『뉴욕 생활 예술 유람기』, 『미술 여행』 등의 단행본을 발행했다. 현대미술에 관한 전시를 기획하고,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