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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과 대중 사이의 소통의 중재자
인터뷰_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증권 관련 일을 하다가 2011년 에이컴퍼니를 설립했습니다. 커리어의 커다란 전환인데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부모님의 권유로 선택한 전공이라 대학 생활 내내 전공에 흥미가 없었습니다. 학교에 가는 대신 미술관 영화관 서점을 들락거리며 문화예술 활동에 주로 빠져 지냈어요. 졸업 후에는 대학 때 방송아카데미를 다녔던 경험을 바탕삼아 대기업 홍보팀에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다녀보니 대기업과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장을 옮겨 다니며 방황을 했어요. 2006~7년경에 야후 증권방송에서도 일했는데, 당시 미술시장에 붐이 일면서 미술작품 투자수익률에 관한 방송을 많이 하게 됐어요. 주식이나 증권보다 미술이 더 투자가치가 있다는 게 너무나 흥미로웠습니다. 그때부터 미술 유통구조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결정적 계기는 증권사 퇴사 후 뉴질랜드에 9개월여간 머물며 휴식을 취할 때 찾아왔습니다. 계속해서 전시장을 찾고 미술시장 소식을 꾸준히 찾아보는 등 당시 놀이로써 택한 일들이 모두 미술 관련 일이더라고요. 창업을 하면 이 길을 꾸준히 걸어갈 수 있겠다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에이컴퍼니를 ‘갤러리나 미술관과는 또 다른 지점에서 예술을 통한 사회적 효과를 고민하는 아트 컨설턴시’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2012년 브리즈아트페어, 2013년 미나리하우스 운영을 시작했고 그 밖에도 전시 컨설팅 업무를 병행하며 올해 수림문화재단의 수림아트센터 개관전을 기획하셨죠. 각각의 활동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브리즈아트페어와 미나리하우스는 저희가 주관하여 주최하는 두 ‘브랜드’입니다. 브리즈아트페어는 신진작가의 작품을 저렴한 가격에 일반 직장인도 구입 가능한 아트페어이고, 미나리하우스는 카페형 갤러리 겸 신진작가 게스트하우스입니다. 나머지 활동은 크게 보아 아트 컨설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휴맥스(Humax) 회사의 갤러리를 2년째 위탁운영하고 있어요. 그리고 한화생명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요. 그밖에도 여러 기업이나 기관의 의뢰를 받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예술경영을 전개하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점이 독특합니다. 얼핏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가치를 사업 구조로 설정한 동기는 무엇인가요? 실제 고용노동부에 사회적 기업으로 인가를 받은 과정도 궁금합니다. 저희의 사업 목적 자체가 미술 유통의 이해 당사자들이 다 같이 잘되자는 것이었어요. 브리즈아트페어의 목표도 작품만 팔고 끝나는 게 아니라 작가가 우리와 함께 성장하는 것입니다. 브리즈아트페어는 사전 프로그램으로 보존전문가가 진행하는 재료학 강의, 작가 네트워킹 파티, 작가 크리틱 등을 진행합니다. 작가가 전문가에게 멘토링을 받고, 동료도 만나고, 팬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서 이들의 작가 생활에 힘이 되는 기업이 되고자 합니다. 프로그램 참여에 수반되는 비용은 아트페어에서 전액 부담합니다.
저희는 ‘삼수’ 끝에 2013년 겨울에 고용노동부에서 ‘기타형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았습니다. 예술가를 지원하는 데 대한 사회적 가치를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예술가가 지원이 필요한 취약계층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이죠. 예술가들과 함께 진행한 취약계층 미술교육 프로그램, 취약계층에게 기획 전시를 무료로 개방한 건 등으로 증빙을 했습니다. 한편 SK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효과를 측정하는 독자적 프로그램 ‘SPC’를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인정을 받은 바 있습니다. 작가가 에이컴퍼니를 통해 판매한 작품 수익을 사회적 가치로 환산해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아트페어뿐 아니라 기업 및 기관과의 아트 콜라보레이션, 소상공인 점포의 아트마케팅 매칭 등에서 예술가를 ‘공개모집’합니다. 작가를 선정할 때 특별한 기준이 있으신가요? 모든 작가를 직접 만나서 인터뷰하고, 작품을 실제로 보고 선정합니다. 작품의 독창성, 완성도, 메시지를 골고루 보고요. 최종 결정은 팀원 전체가 공동으로 뽑습니다.
사업만으로 실제 운영 자금을 충당하기가 어렵지는 않은가요? 다행히 좋은 후원처가 많으신 것 같습니다. 2015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청년창업투자지주에서 사회적 기업가로 선정되어 투자를 받은 바 있습니다. 또한 전국 각 지역의 소규모 예술창작 스튜디오, 미술품 복원연구소 등과 파트너를 맺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후원 관계를 창출한 비결이 무엇일까요? 브리즈아트페어와 미나리하우스는 아직까지는 자립이 어렵습니다. 대신에 회사가 아트 컨설팅으로 수익을 내고 있기 때문에 이 수익으로 두 사업을 지원하지요. 외부 후원자의 도움도 큽니다.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이사가 브리즈아트페어를 연속 3년째 후원하고 있습니다. 미나리하우스도 KAIST 청년창업투자지주와 한국사회투자에서 후원을 받아 설립했습니다. 정식 사업계획서를 내고 심사를 받아 선정됐지만, 수년 전부터 알고 지내며 사업을 어필한 게 주효했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이었어요. SK가 주최한 한 창업경진대회에서 상을 받아서 SK 사회공헌 부문과 관계를 맺었고, 이후에 그들의 도움으로 SK에서 지원하는 KAIST MBA에 진학했습니다. 학교에서도 사업 계획을 꾸준히 알렸더니, 졸업할 때에 ‘사회적 기업가’ 중의 한 명으로 선정돼 투자를 받게 됐어요. 말씀하신 작은 파트너들과도 사업 과정에서 다양하게 인연을 맺고 평균 5년 이상 지속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또래 사회적 기업과 품앗이 후원을 많이 합니다. 예를 들면 ‘빅백’이란 기업에서는 저희의 행사 때 서포터즈들이 사용할 가방을 협찬해 주시고, 빅백의 행사 때 저희도 가서 돕는 식으로 서로 응원을 이어가지요.
올해로 에이컴퍼니 설립 6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예술경영 환경에서 체감하는 변화가 있으신가요? 여전히 국내 미술시장 규모에 대한 데이터 자체를 신뢰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게다가 요즘엔 3,000억 원대로 내려온 거로 알고 있어요(2016년 1월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2014년 기준 시장규모는 3,496억 원). 한 산업이라 하기엔 시장 규모가 너무 작아요. 일반인들이 미술품을 실제로 잘 사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미술시장을 만드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제가 거기에 일조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미술품의 유통채널이 다양해지면 미술품을 살 수 있는 사람도 늘어난다고 생각해요. 한류를 이끈 게 SM, YG 같은 기획사의 능력이듯이, 미술시장에서도 스타 기획사가 나와야 판 자체가 커질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기획사가 예술가를 효과적으로 매니지먼트하기 위해서 기획사를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기획사 간의 연대와 상호 협력도 중요할 듯합니다. 요즘 뉴스를 이야기해 보죠. 세계적 옥션하우스인 소더비(Sotheby’s)가 ‘한류스타’인 빅뱅의 탑과 홍콩에서 130억 원 규모의 현대미술 옥션(#TTTOP×Sotheby’s, 10. 3 홍콩컨벤션센터)을 개최해 화제입니다. 탑은 본인의 컬렉터 취향을 기반으로 발탁돼 게스트 큐레이터로 참여하고, 소더비는 판매 수익의 일부를 젊은 작가를 후원하는 아시아문화위원회에 기부한다고 하죠. 미술시장의 성장과 관련하여 이러한 움직임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저는 영리한 마케팅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술가는 작업을 프로페셔널하게, 기획사는 프로모션을 성공적으로 해야 하니, 긍정적인 시도라고 봐요. 물론 기본 전제는 작품의 자질이 뛰어나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연예인이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만으로 아트페어에 초대하는 것에는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브리즈아트페어에도 연예인을 초대해야 한다는 조언을 종종 듣는데, 사실 연예인이 공모를 통해 정상적인 절차로 작품이 발탁된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하지만 손님을 끌기 위해서 무조건 초대하는 것은 반대입니다. 오히려 다른 작가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예술경영 분야에서 창업을 고민하는 미래의 기업가들에게 앞서간 선배로서 조언해 주실 수 있나요? 후배들에게 조언해 줄 기회가 가끔 있는데, ‘신진작가들이 학교 과제로 만든 습작을 싸게 팔겠다’ 혹은 ‘5만원 상당의 저렴한 작품을 위주로 팔겠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아직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습작을 쉽게 판다던가, 무조건 싸게 판다는 생각은 오히려 예술과 그 예술가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는 일이라고 봐요. 예술 사업을 하려면 스스로 예술을 존중하고 가치 있게 여겨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미술시장과 대중 사이에서 소통의 중재자로서 장기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으신가요? 개인적인 목표도 알려주세요. 개인적으로는 6~70세가 되어서도 감각이 떨어지지 않는 기획자로 현장에서 일하고 싶은 꿈이 있어요. 에이컴퍼니의 장기적 목표는 브리즈아트페어와 미나리하우스를 글로벌한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브리즈아트페어는 해외작가도 참여하고 싶어 하고,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여행하려면 이때 맞춰서 와야 한다”고 기대하는 행사로 키우는 게 꿈이에요. 사실 국제적으로 유명한 아트페어가 많잖아요. 브리즈아트페어를 통해 더 많은 일반인이 신진작가의 소품이라도 사볼 수 있는 문화에 일조하고 싶어요.
한 마디 한 마디에 열정이 가득 실린 정지연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며, 개인적인 취미였던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개성 있는 사업의 아이템을 실제 구현한 그의 추진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놀이’에서 시작한 사업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놀이’로 돌려주고자 하는 그의 꿈에 응원을 보낸다.
채연은 경희대 시각 정보 디자인 학과, 영국 UCA 패션 프로모션&이미징 학과 및 소더비인스티튜트오브아트(Sotheby's Institute of Art) 컨템포러리아트 석사를 졸업했다. 현재 《아트인컬처》 기자이며, 국내외 시각예술 전문지에 한국 미술계 현장 소식을 기고하고 있다. 《Korean Art: The Power of Now》(Thames &Hudson, 2014) 출판 어시스턴트, <이병복: 3막 3장>(아르코미술관, 2013) 및 <Re-designing the East>(토탈미술관, 2013) 전시 코디네이터로도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