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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기업을 잇는 아트 디렉터
인터뷰_이대형 현대자동차 아트 디렉터전시 기획자로 오랜 기간 활동을 하다 기업의 아트 디렉터로서 자리를 이동했습니다. 물론 〈2017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감독에 선정되어 큐레이터로서의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시죠. 전시 기획자 및 감독과 현대자동차에서의 아트 디렉터의 역할에 있어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스스로 큐레이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큐레이팅의 대상이 변했을 뿐이죠. 베니스 비엔날레는 큐레이터로서 전시의 전체 스토리를 짜는 일을 하는데 반해, 아트 디렉터로서의 큐레이팅은 큐레이터와 작가가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판과 질서를 만드는 일입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큐레이터는 작가, 작품, 전시를 큐레이팅합니다. 현대자동차 아트 디렉터로서 펼치는 활동은 프로젝트, 플랫폼의 기획 단계입니다. 특히 미술관과 파트너십을 통해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작가와 큐레이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도록 창의적인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현재 제가 하는 일입니다.
큐레이터로서의 정체성에 변화가 없더라도 기업에서의 업무 진행 방식에 따른 큐레이터의 역할의 차이는 없나요? 기업은 소수의 컬렉터가 아닌 가능한 다수에게 미술의 혜택이 가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합니다. 기업은 경영·경제를 전공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다 보니 객관적 평가에 능합니다. 성공적으로 처리된 일이라도 언제나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 개선하려 노력합니다. 혹자는 큐레이터가 기업의 마케팅 사업부에 들어가 기업에 신선한 활력을 줄 것으로 예상하지만, 오히려 제가 기업문화를 통해 많이 배웁니다. 주어진 한계상황에서 다각도로 분석하고 시장과 상황을 면밀히 검토하고 끊임없이 일의 가능성을 타진하죠. 철학은 인류 가치의 흐름을 짚어내고 가치관을 찾는 일입니다. 저는 큐레이터로서 주어진 사항에 미학적, 철학적인 내용을 보태고 있죠.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는 그동안 이불, 안규철, 김수자 등 일명 ‘허리세대 작가’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기획에도 참여하셨는지, 또한 앞으로의 프로젝트 진행 과정도 궁금합니다. 허리세대 작가에 대한 연구와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은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님의 생각입니다. 현대차는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 미술사에서 허리세대 작가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편이기에 이러한 후원은 유의미합니다. 또한, 저는 우리나라 역시 테이트모던(Tate Modern), 뉴욕현대미술관(MoMA, The Museum of Modern Art)에 버금가는 개인전 전시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연구, 출판, 세미나, 전시 커미션 측면에서 해외 유수의 미술관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 몇몇 개별 작가 후원을 넘어서 전시 플랫폼의 정립을 고민했습니다. 또한, 내년부터 중년 작가뿐 아니라 이제 막 작가의 길로 들어서는 젊은 작가를 후원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정해지지 않았으나 ‘인큐베이팅’ 전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외 미술관 후원은 한국미술계와 어떤 연관성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지 프로젝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부탁드립니다. LA카운티미술관(LACMA,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이하 라크마)의 경우 파트너십을 제안하면서 조선시대부터 현대미술까지 이어지는 ‘한국미술사 연구’를 제안했습니다. 국내에서 한국미술사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해외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라크마(LACMA)는 한국 미술 컬렉션이 있고, 그동안 이를 바탕으로 꾸준히 연구해온 기관입니다. 전 세계 석학, 세계적인 출판사와 협업하는 이 미술관에서 연구를 진행한다면 경계 없는 연구로 세계에 한국미술을 알리는데 긍정적인 기능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기업이 활용하는 예술경영의 특징이 궁금합니다. 기업에서는 21세기 문화사를 누가 지배하는가가 벨류 체인(Value Chain, 가치사슬) 꼭대기에 서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글로벌 회사라 하더라도 크게는 인류, 작게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긴 시선에서 바라봅니다. 자동차를 개발하는데 약 5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인류의 자산을 만드는 예술을 만들어가는 일이기에 적어도 10년은 후원해야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역사는 무형의 정체성입니다. 마치 깨지기 쉬운 달걀 같죠. 내부 목소리가 강하면 깨지고, 외부가 강하면 찌그러집니다. 결국 균형이 중요합니다. 미술의 ‘결과물’을 보려 하지 않는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라크마(LACMA)와 진행 중인 ‘아트&테크놀로지 랩’은 전시의 예정 시기를 정하지 않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작가나 엔지니어가 시간에 쫓긴다면 당장 진행이 가능한 쉬운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실현가능한 범주에서 상상력을 조합하는 것에 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자동차는 미술관을 건립하지 않고 다른 기관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독특한 예술경영 방식에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문화예술은 특정 계층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의지만 있다면 국경과 시간을 뛰어넘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공유의 대상입니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기업이 미술관을 소유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역사적인 연구를 잘 진행하는 기관의 프로그램 개발을 돕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기업의 예술후원, 정부주도의 미술정책, 이를 활용하는 예술가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지난 16년간 큐레이터 및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면서 이 구도의 예술경영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있나요? 최근 예술경영지원센터와 소통할 일이 많았어요. 유연한 사고, 국제 감각이 뛰어난 실무진의 역량에 굉장히 놀랐습니다. 기업의 경우 과거 아트 디렉터의 역할은 작품을 사들이는 일이 중심이었죠. 그러나 지금은 커미션, 크리에이션 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예술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기업의 생각과 수준, 스타일이 기업의 또 다른 인격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표피적으로 제품에 예술가의 작품을 덧입히는 식의 작업이 주를 이룰 때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제품의 디자인에도, 작가에게도 일종의 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과 콜라보레이션을 꿈꾸는 작가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기업은 작가들의 생각보다 훨씬 스마트합니다. 취향이 굉장히 높아요. 세계적인 작가와 트렌드에 민감하죠. 기업은 1차원적인 협업 방식이 구식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표피적이고 막연한 아트 콜라보레이션 제안은 어렵습니다. 각 기업은 예술과의 협업에 추구하는 정확한 방향이 정해져 있습니다. 작가들은 기업의 헤리티지 분석을 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는 완전 ‘컨템포러리 아트’와의 협업을 추구합니다. 아무리 유명하고 중요한 작품이라도 저희가 추구하는 방향과 다르면 협업이 어렵습니다.
중장기적인 기획을 구성하는 아트 디렉터로서 5년 혹은 10년 뒤 아트 디렉터와 미술계 전반의 비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회사 내부에 저와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후배를 양성하고 싶습니다. 제가 자리를 비우더라도 지금까지 다져온 방향이 흔한 커머셜 마케팅으로 흐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단기적으로 마케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역사적인 의미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길 수 있거든요. 미술계에 대해서는 장르를 구분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미술관, 갤러리, 기업 출신을 따지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이러한 경계 나누기에는 한계점이 있습니다. 크게 문화를 생각한다면 우물에 갇혀서는 안 됩니다. 서로 협조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큐레이터를 지망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현재 큐레이팅의 대상에는 작가, 전시, 아트페어, 옥션, 미술시장, 미술관 콘셉트 잡는 기획 등 다양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상 역시 여전히 미술에만 한정되어 있습니다. 큐레이팅은 미술 밖에 또 다른 산업까지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창의적인 활동입니다. 창문 하나로만 세상을 바라보면 협소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외부의 인사이트를 위협이라 생각하지 말고 판을 키워 나갈 고민을 해야 합니다.
임승현은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런던 코톨드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Courtauld Institute of Art, University of London)에서 미술사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3년부터 『월간미술』 기자로 재직했다.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