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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라기보다 계기로서
인터뷰_정세용 B커뮤니케이션 대표방천시장은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수성교 앞에 위치한 재래시장으로 1945년 해방 후 피난민들이 한둘씩 모여들어 조성됐다. 1960년대에는 점포 수만 1,000여 개에 달할 정도로 번창한 시장이었다. 그러나 주변으로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이 들어서게 되었고 결국 2000년대 들어 60개의 점포만이 남을 정도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즈음 저렴한 작업실을 찾던 작가들이 이곳의 공간을 임차해 입주하기 시작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각종 문화프로젝트가 진행되어 문화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또한, 대구 대봉동에서 태어난 故 김광석을 기념하는 거리가 조성되어 그 열기를 더했다. 그러나 유동인구 증가에 따른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터줏대감을 자처하던 작가들은 밀려나기 시작했고, 그곳을 상업시설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2009년 방천시장 예술프로젝트를 통해 이곳에 입주한 정세용 B커뮤니케이션갤러리 디렉터는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이다. 정세용 디렉터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최하는 <2016년 우리동네 아트페어> 사업공모에 신청하였다. 이에 B커뮤니케이션이 주최한 <방천 청년 아트페어>가 11월 24일(목)부터 27일(일)까지 방천시장 일대에서 열린다. 일대 24곳 실내외 공간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의 이모저모와 준비과정, 그리고 방천시장에서 작업하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2016 우리동네 아트페어>에 참여하게 됐어요. 올해 6월 공모에 들어간 이 사업은 ‘지역 중심의 아트페어 지원을 통해 지역 청년작가, 기획자 발굴 및 지역주민과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공모에 신청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네. 이번 공모가 있기 전인 2009년부터 이미 우리 단체는 방천시장에 입주하여 작가 작업실과 전시장, 아트마켓, 예술교육 등을 조금씩 기획하고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2014, 2015년 이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조금 더 크게, 상인들과 주민 그리고 예술가들이 동네를 중심으로 방천아트페스티벌이란 예술축제를 기획하게 되었죠. 이 행사에 제가 사무국장으로 참여했어요. 이런 경험들이 이곳에 입주한 작가에서 문화활동가로 변신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마침 우리의 취지와 가장 잘 맞는 공모가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생겨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아트페어 규모와 참여작가 선정과정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방천 청년 아트페어>엔 40명의 청년작가 그리고 19명의 기성작가가 참여합니다. 시장이니만큼 큰 장소가 없어요. 대안공간, 그리고 작업실 24곳을 섭외하여 그 장소에 어울리게 매칭했습니다. 관람객이 찾기 어려우실까 봐 맵도 만들고 시간별 전시공간 투어와 체험프로그램 등을 준비했습니다. 참여작가는 그동안 이곳을 거쳐 갔던 작가를 우선으로 했고, 이후 그들과 더 폭넓은 교류를 전제로 초대했습니다.
이번 행사에서 방천시장과 김광석거리에 포진한 카페 등지에 ‘작품을 대여’한다는 점이 눈에 띄더군요. 대여형식과 작품관리는 어떻게 이뤄졌는지 궁금합니다. 카페와 꽃집 등 주인들이 빈 공간과 어울리게 매칭된 작품을 너무 좋아하셨어요. 다만 그분들이 구매할 여력은 없었죠. 이러한 현실적인 상황과 그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냈죠. 청년작가의 작품을 일정 기간 대여하고 그 작품을 만든 작가에게 일부 수수료를 제외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죠. 일부 수수료는 방천시장에서 청년전시를 기획하는 데 쓰여 순환이 계속 유지되도록 할 예정입니다.
외국 대안공간과도 연계했다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2014년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Artist Run Space인 MARS에서 전시한 작가들을 방천에 초대하였습니다. 2015년엔 미국, 캐나다. 영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작가들을 초대하였고요. 이번에는 ‘베니스비엔날레’ 본 전시에 초대되었던 이탈리아 작가 시몬느 베르티(Simone Berti)를 초대하였습니다. 이러한 국제적 교류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문화적 움직임을 다이렉트로 세계화 시키려는 바람이 담겨있습니다. 저희가 분기별로 펴내고 있는 《[b]racket》이란 시각예술 잡지를 한글과 영문으로 발간하여 국내외 예술기관과 작가들에게 보내 외국인들이 찾아보는 잡지로 만드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지역 중심’이라는 말에서 현재 지역미술이 처한 상황을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 내용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작업이 유통되지 못하는 열악한 지역 미술시장 상황입니다. 현재 대표님 주변(대구) 미술시장의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신 지 궁금합니다. 7개 대학 1,000여 명의 전공자들이 계속 배출되고 있습니다. 대구미술관, 대구예술발전소, 대구문화예술회관, 가창창작스튜디오 등의 하드웨어와 맥향화랑, 신라갤러리, 분도갤러리, 리안갤러리 등 많은 상업화랑들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기획하고 또 유통시키고 있습니다. 미술에 관한 인프라는 꽤 구축되어 있어요. 하지만 지역의 대다수 청년작가들에게 골고루 포커스를 맞추긴 힘든 실정입니다. 그래서 작품의 유통에도 많은 한계를 경험하고 있어요.
오랫동안 방천시장에 터(B커뮤니케이션)를 마련하셨어요. 제가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의 모습은 그때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이러한 변화의 양상은 어떻게 이어졌나요? 임대료 상승, 유동인구 증가로 인한 창작활동 제한 등등 작가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폐해도 있었죠? 2009년 이곳에 입주하여 지금까지 3번 이사를 했어요. 하하. 당시 함께 입주하여 작업하던 동료 예술가들은 거의 다 떠나갔지요. 당시 절반이나 비어있는 시장에 작가들 50여 명이 함께 이곳저곳 들어가 침체되고 버려졌던 환경을 정비하고 시장상인들과 교류했습니다. 울진 바닷가에 함께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였고 김광석 벽화를 함께 기획하고 그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고생한 작가들의 노력은 유동인구 증가와 임대료 상승으로 다가왔습니다. 작가들은 치솟는 임대료를 온전히 개인사정으로 받아들여야만 했죠. 저는 이러한 현상이 대단한 행정적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고생을 마다하면서 억척스럽게 뒷바라지한 애인이 성공하고 나서 비정하게 내치는 신파극의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대구 문화계에선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었죠.
한 번의 행사로 미술시장 활성화가 단숨에 이뤄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는 행정적 지원이 뒷받침되어 제도로서 정착해야 한다고 봅니다. 현장의 일선에서 보시기에 어떤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미 지원은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동네 복합공간 지원과 싹이 나고 있는 단체를 발굴하는 사업, 그리고 영상촬영 지원은 이뤄지고 있죠, 이번 아트페어의 홍보영상도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지원해줬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이번 행사는 청년작가 지원의 색채도 품고 있습니다. 이 행사가 청년작가 지원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셔요? 또한, 행사를 진행하시면서 이후에 어떤 개선점을 가져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작품 유통보다 먼저 작가, 작품과 잠재적 작품구입자(소비자)가 만날 수 있는 장을 자주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즉 활발한 예술교류 조성이 필요하죠. 그렇게 된다면 가시적인 성과가 이뤄질 것입니다. 작품유통이나 지역을 대표하는 청년작가들이 점차 많아지겠죠. 그런 점에서 이번 지원사업의 취지를 긍정적으로 봅니다. 특히 우리 같은 지역 단체에겐 더더욱 반가운 일이죠. 다만 바로 보이는 가시적 성과에만 집착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문화토양을 탄탄히 다졌으면 합니다.
작가지원 사업이 ‘아트페어’ 형식으로 열리는 점에 대해 의문을 가진 이들도 많습니다. 이미 우후죽순처럼 많은 아트페어가 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 유통을 위해 많은 아트페어보다는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게 작가를 지원하는 제도 도입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어요. 동의합니다. 아트페어 이전에 그 지역의 작가지원이 선행되어야 하고 그것이 시행됐을 때 그 지역의 문화운동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시민들과 기업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고 그다음 아트페어가 시작되어야 ‘지속가능한’ 미술시장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황석권은 1973년 태어났다. 학부에서 불문학을,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2004년부터 미술전문지 '월간미술'에서 기자로 재직하고 있으며 다수의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