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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경영, 예술가와 잘 소통하고 유연해야죠
인터뷰_해럴드 클라크슨(Harold Clarkson) IMG Artists 부회장한국인 첫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스타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올해 초 프랑스 파리에 있는 솔레아 매니지먼트(SOLEA MANAGEMENT)와 계약했다. 대형 에이전시 몇몇 곳이 거명됐지만, 조성진은 2005년 설립된 이 기획사를 택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주로 젊은 연주자들의 커리어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으로 알려졌다. 국내 클래식 공연 시장을 이끄는 대표적인 에이전시는 5곳 안팎. 해외 공연 계약과 스케줄 관리뿐 아니라 자사 연주자를 알리기 위한 마케팅, 자체 기획 공연 등을 예전보다 강화해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거물급 연주자와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조율 솜씨도 늘었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 클래식 음악이 산업화가 되지 않은 만큼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1월 25일(금)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예술경영지원센터 주관으로 열린 ‘2016 예술산업 미래전략 포럼’ 차 내한한 ‘아이엠지 아티스트(IMG Artists)’의 해럴드 클라크슨 부사장을 만나 클래식 음악 에이전시 활성화에 대해 물었다. IMG 아티스트는 세계 최대의 클래식 음악 에이전시다. 30여 년간 세계 클래식 스타들의 매니지먼트, 투어, 컨설팅을 맡았다.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펄만(Itzhak Perlman)·율리아 피셔(Julia Fischer),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Evgeny Kissin)·머레이 페라이어(Murray Perahia) 등 내로라하는 클래식 연주자들이 소속된 곳이다. 세계 각국 400명의 아티스트를 관리하고 있다. 한국 출신 연주자로는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장영주), 최예은 등이 있다. 45년간 문화예술 분야에서 행정가, 매니저로 일해온 클라크슨 부사장은 독일 지사를 총괄하는 동시에 글로벌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다.
앞서 몇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는 클라크슨 부사장은 “매년 놀랄 정도로 클래식 음악 시장이 성장하는 한국은 중요한 지역”이라고 언급했다. “처음 한국과 일을 시작했을 때는 서울과 수도권 위주였죠. 지금은 부산, 대구에도 중요한 파트너가 있습니다.” 2014년 말 IMG 아티스트와 계약을 맺은 최예은은 이후 연주 활동의 폭이 더 넓어졌다고 했다. 지난해 5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머스(Michael Tilson Thomas)가 이끄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브람스를 협연한 것이 예다. 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는 지난달 첫 내한공연을 했다.
그런데 IMG 아티스트가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선정하는 기준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젊은 예술가들에게 시간과 돈을 들여 투자하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그만큼 매니저별로 취향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죠. 그 매니저가 선택한 아티스트가 정말 잠재력이 있는지에 대해 회사 내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치열한 논의가 진행됩니다. 오래전부터 우리와 함께해온 사라 장은 정말 대단한 연주자이고, 최예은 역시 재능 있는 연주자입니다. 근데 해당 아티스트의 진가를 알기 위해서는 4, 5년을 기다려야 해요.”
그렇다면 IMG 아티스트가 소속 연주자들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은 무엇일까. “예전에는 아티스트와 프로모터가 직접 소통을 하지 못했어요. 에이전시를 통해야만 가능했죠. 하지만 지금은 에이전시를 거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니까 에이전시가 아티스트에게 추가적인 가치를 제공해야 해요. 객관적인 평가, 본인에게 잘 맞는 지역의 연주 기회 등이죠. 스케줄을 잘 관리해야 하는 건 당연하고 비자, 세금 관련 문제도 불편함 없게 처리해줘야죠.” 이 회사는 최근 공연, 축제 기획 등으로도 전문성을 넓혀가고 있다. 연간 약 300회 공연으로 약 2,500만 유로(약 314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새로운 방식으로 예술경영에 접근하고자 해요. 요즘에는 홍보 부분을 강화하고 있어요.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서비스 산업 전반에서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 중이죠.”
한국에는 소규모 에이전시가 많다. 보통 공연장 대관과 아티스트 일정을 관리하는 데 주력하는 곳이 상당수다. 특히 아티스트 관리, 공연기획뿐 아니라 이와 관련 행정 업무 등을 적은 인원이 나눠 분담하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지고 업무 가중에 따른 피로도를 호소하는 직원들도 상당수다. 해외기획사는 반면 재정, 기술적인 관리와 해외 진출을 위한 적극적인 계획을 능숙하게 아우르고 있다. 한국의 기획사들이 점점 치열하게 글로벌화되고 있는 클래식 음악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더구나 한국 클래식 스타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국내 클래식 음악 에이전시들의 해외 진출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작은 기획사가 아티스트 관리, 공연 기획과 관련해서 모든 걸 다 처리하려고 하는 건 부담이 크죠. 수익을 얻는데 위험도 따르고요. 작은 회사가 좋은 예술가와 함께하고 있다면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 좋아요.” 마음이 맞는 파트너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일단 상대방을 믿을 수 있어야 하죠. 비즈니스 철학도 맞아야 해요. 그렇다고 큰 회사와 일하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에요. 네트워크 등을 오히려 빼앗길 수 있죠. 미국, 유럽에는 작지만 창의적으로 일하는 회사들이 많거든요. 자금, 회계 등의 관리는 별도의 전문 회사에 맡기는 것이 좋고요.”
예술이 산업적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창작, 제작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영역의 분담과 전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클래식 음악이 순수 예술인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늘고 지속성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한국은 클래식 공연장의 대다수가 국공립이다. 클라크슨 부사장 역시 “클래식 음악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은 환영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메세나 등을 통해 기업이 클래식 음악을 지원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는데 정부지원과 함께 시너지를 냈으면 좋겠어요. 클래식 에이전시가 수익을 내는 경우는 정부의 지원, 기업의 후원, 공연 등을 통한 티켓 수입 등 세 가지 경우인데 한국뿐 아니라 세계 공통적인 문제는 이 중 하나에만 집중이 된다는 거죠. 세 가지 축의 균형을 잘 이룰 필요가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 에이전시라고 해서 수익은 뒷전일 수 없다. 예술적인 것을 만들어내는데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IMG 아티스트는 둘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조정하고 있을까. “아티스트나 공연의 질만 좋으면 좋은 비즈니스로 이어집니다. 현재 인기가 많더라도 나쁜 아티스트를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무대에 세우지는 않습니다. 단기적으로는 돈을 벌 수 있어도 결국 회사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일이거든요. 관객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죠.”
클래식 에이전시, 즉 예술경영 업무에 몸담은 이들은 이처럼 감성과 이성의 조화가 중요하다. 캐나다 국립예술센터(Natioanl Arts Centre), 국제 아티스트 매니저 연합(International Artist Managers Association, IAMA) 회장 등을 역임한 클라크슨 부사장은 여기에 소통 능력을 더했다. “일단 장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요. 클래식 음악에 대한 기초지식이 있어야 하죠. 음악에 대한 역사, 레퍼토리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죠. 그러면서 예술가와 잘 소통하고 그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요.” 이 부분이 가장 어렵다고 웃었다. “예술가들은 보통 사람들과 비교해 감성이 풍부한 분들입니다. 에이전시 관계자들이 항상 긴장해야 하는 이유죠. 본인의 자아를 한 발짝 물러나게 해야죠. 저는 그걸 못해 투어 매니저를 하고 있어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예술경영인으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국의 청년들에게 건넬 말을 청했다. “예술적인 교육을 잘 받아야 하고, 세계 클래식 음악 비즈니스 상황을 잘 파악해야 하며 취향이 좋아야 합니다. 조직을 잘 이끌어가야 하고, 시간도 잘 관리해야죠.” 클라크슨 부사장이 무엇보다 강조하는 건 유연성이었다. “클래식 음악 에이전시 종사자는 해외를 많이 다니죠. 그런데 지역마다 문화예술이 달라요. 유럽, 북미, 아시아 모두 문화적인 것에 대한 심리적인 반응이 달라요. 그러기 위해서는 유연함이 있어야 합니다. 밤낮 구별 없이 24시간 아티스트가 전화하면 받을 준비도 돼 있어야 해요. 하하.”
이재훈은 2008년 뉴시스에 입사해 사회부를 거쳐 문화부에 있다. 현재 문화부 공연 담당 기자이며, 무대에 오르는 건 뭐든지 듣고 보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