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진에 실린 글의 내용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TEL 02-708-2293 FAX 02-708-2209 E-mail : weekly@gokams.or.kr
예술과 비즈니스의 융합을 이끌어내라
인터뷰_오리알 리(Aurial Lee) Foreign Policy Design Group 아트 디렉터2015년 개관한 싱가포르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Singapore) 내 아트숍 ‘갤러리앤코(Gallery & Co)’는 개관하자마자 미술관 아트숍이 지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아트를 매개로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힙’한 분위기로 주목받았다. 2015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세계 10대 미술관 아트숍’에 갤러리앤코를 선정했다. 성공적인 아트숍의 사례로 손꼽히는 갤러리앤코의 아트 디렉터 오리알 리(Aurial Lee)를 만나, 현재 싱가포르 시각예술 MD현황과 갤러리앤코가 추구하는 브랜드 전략을 들어보았다. 갤러리앤코의 사례를 살펴보며 우리나라 시각예술 분야 머천다이징의 방안을 고민해보자.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현재 갤러리앤코에서 MD로 활동하며 브랜딩 관련 프로젝트 총괄을 맡고 있습니다. 브랜드에 대한 핵심적인 콘셉트를 잡는 것부터 디자인 결과물 확인까지 머천다이징 전 과정에 참여합니다. MD로 활동하기 전에는 레스토랑, 호텔 관련 비즈니스에서 주니어 디자이너로 활동했습니다.
갤러리앤코는 싱가포르 국립 미술관 아트숍입니다. 미술관에서 운영하는 아트숍과 달리 멀리-콘셉트를 지향하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습니다. 갤러리앤코의 운영방식이 궁금합니다. 갤러리앤코는 디자인, 호텔, 리테일을 담당하는 세 회사가 함께 세운 브랜드입니다. 미술관 기념품을 판매하는 아트숍에 그치지 않고 각 회사에서 호텔리어, 외식경영자, 디자이너, 뷰티 디렉터 등 문화 전반에 걸친 전문가가 모여 카페, 레스토랑, 서점을 운영합니다. 문화 전반에서 어떤 이미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멀티-콘셉트이지요. 자체 디자인하고 제작한 유·무형의 상품부터 최신 트렌드를 주도하는 브랜드를 섭외하고 이를 판매합니다. 예를 들어 리테일의 경우 스위스의 재활용 브랜드 프라이탁의 제품을 판매하고, 레스토랑은 Anthony Yeoh 셰프를 영입해 일본, 인도, 싱가포르 등 아시안 음식을 접목한 컨템포러리(contemporary) 디시를 선보여 메뉴에서 음식 문화의 멀티-콘셉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국립 미술관과 갤러리앤코 간 운영 관계가 궁금합니다. 다수의 미술관이 아트숍을 자체 운영합니다만, 저희는 미술관 외주업체로 입점한 형식입니다. 미술관과 클라이언트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콘텐츠 제작에 미술관이 거의 관여하지 않습니다.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미술관 일부로 갤러리앤코를 인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개인사업체로서 미술관과 별개 기관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독특한 구조이지요.
작가-미술관-갤러리앤코 간 수익구조가 궁금합니다.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갤러리앤코는 작가의 작업을 잘 살려낼 수 있는 포인트를 잡아내고 제작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전체에 관여합니다. 작가가 제작한 2차 생산물을 위탁판매하지 않습니다. 회사가 상품에 대한 모든 위험성을 안고 가기 때문에 예술가는 판매수익의 적은 퍼센티지를 가져갑니다. 미술관과의 관계에서는 장소를 렌트한 개념이므로 아트숍에 발생하는 수익은 모두 저희 몫입니다.
예술가와 함께 아트 상품 제작하는 경우 어떤 식으로 접근하나요? 기본적으로 단일 상품 제작보다는 가방-신발-옷처럼 세트 상품 개념으로 접근합니다. 보통 3명의 예술가에게 연락을 취해 저희가 원하는 대략적인 아이디어를 설명합니다. 미술관-갤러리앤코-작가가 서로의 개성이 침해되지 않는 선에서 디자인을 맞춰나갑니다. 작가는 MD를 위한 작품을 새로 만들기도 하고, 기존 작업 중에서 제시한 콘셉트에 부합하는 작품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저작권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요? 우선 미술관으로부터 아트상품 제작에 참여할만한 작가 리스트를 받습니다. 작고 작가는 저작권이 풀려있지만, 유가족이나 예술가재단으로부터 작품 사용허가는 받습니다. 간혹 작품 사용에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지만, 미술관이 유가족 및 재단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저작권에 큰 문제가 된 적은 없습니다. 생존 작가 작업을 사용할 경우 미술관에서 직접 연락을 취합니다. 최근에는 많은 작가가 머천다이징 개념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지난해에는 한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나킴(Na Kim)과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갤러리앤코와 일하고 싶은 한국 작가들은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요? 워크룸, 슬기와 민 등 한국 디자이너에 관심이 높아요. 한국 그래픽 디자이너를 꾸준히 리서치 하고 있고 몇몇은 연락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놓치는 작가들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작가들이 저희에게 적극적으로 직접 연락을 취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예술상품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니잖아요. 구체적인 제안서 양식은 없어요. 예를 들어 나킴의 경우 리서치를 통해 작업을 보고 저희가 연락을 취한 경우예요. 그와의 작업은 2015년 DBS 싱가포르 갤러리 개관전 <Siapa Nama Kamu?(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에 맞춰 국내외 작가들과 진행한 아티스트 프로젝트였습니다. 전시는 싱가포르라는 국가와 국민 개인의 연관성을 싱가포르 미술사 안에서 찾는 내용이었죠. 저희는 해외 작가의 시선으로 싱가포르를 보기를 원했어요. 이메일로 수건이나 가방을 제작하려 한다는 전제하에 “싱가포르가 당신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졌어요. 나킴은 싱가포르를 인프라스트럭처, 콘크리트 정글 이미지로 접근했습니다. 해외 아티스트였기 때문에 가능한 접근이었습니다.
외부 기관과 일한 경우도 소개해주세요. 테이트브리튼과의 협업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2016년 10월 싱가포르 국립 미술관은 테이트 브리튼과 공동 기획으로 16세기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동남아시아 미술 컬렉션을 다루는 전시 <Artist and Empire>를 개최했습니다. 국제적인 맥락에서 싱가포르의 미술을 살펴보는 기획이었죠. 저희는 전시와 연계해서 테이트브리튼 소장 동남아시아 작품을 머천다이징했습니다. 작품에 대한 카피라이트를 테이트에서 확인한 후 부채, 가방 등을 갤러리앤코 내부 디자이너가 자체 디자인했고, 전시 역시 싱가포르에서 열렸기 때문에 판매는 싱가포르 국립미술관에서만 이뤄졌습니다.
시각예술 분야 MD 전문가를 고용하는 것이 미술관 경영에 어떤 효과를 준다고 생각하나요? 머천다이징의 기본은 “어떻게 ‘생활양식’을 판매하는가?”입니다. 전문 MD가 경영하는 미술관 아트숍은 미술관이 단순한 전시공간을 넘어서 복합 문화기관으로 나아가고 하나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입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의 경험을 하나의 문화이자 라이프 스타일로 제시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아이템을 넘어 그것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이미지를 판매할 수 있어야 구매자이자 관람객의 재방문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갤러리앤코는 미술관 내부 아트숍이자 디자인숍입니다. ‘라이프 스타일’ 흐름을 선도하는 무지나 유니클로와 어떤 유사점 혹은 차이점이 있을까요? 갤러리앤코는 예술을 매개로 다양한 채널의 상품제작이 가능합니다. 미술관이라는 장소성을 무시할 수 없어요. 작가와 협업할 때 우리와 철학을 공유하는지가 중요합니다. 가치관이 맞으면 작가를 최대한 배려하고 디자인에 큰 제약을 가하려 하지 않는 것도 특징입니다. 몇 년 전 유니클로는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티셔츠 제작을 함께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뉴욕현대미술관은 좋은 모델입니다. 뉴욕현대미술관은 이름 자체로 미술관이자 디자인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죠.
최근 온라인 숍을 열었습니다. 유통판매를 확장하려는 방안으로 보입니다. 온라인 판매는 높은 수익창출 수단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프라인에서 브랜드를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나 온라인 스토어를 통해서 미술관의 편의시설에 불과하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갤러리앤코라는 브랜드 자체의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온-오프라인 판매망이 함께 진행되어야 합니다. 아직 싱가포르 국립 미술관 외에 저희가 운영하는 오프라인 상점은 없습니다. 물론 계약상 독점형태가 아니기에 싱가포르 국립 미술관 외 팝업스토어를 여는 등의 방안으로 ‘디자인 숍’으로서 판매 활로를 넓혀갈 가능성도 열려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미술관 아트숍이 아니라 디자인숍으로 인식될 수 있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시각예술 분야 MD를 꿈꾸는 미래 인력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우선 그래픽, 시각, 산업 디자인 등 디자인 관련 학과를 졸업해야겠죠. 그 후에는 속된 말로 돈과 관련한 기술 및 학력을 갖춰야 해요. 가능하다면 경영학 과정이수를 추천해요. 두 번째, 제조업체와 일해 보길 권하고 싶습니다. 제조업의 기초적인 부분을 알아야 실질적으로 작품 제작 수량 측정부터 사소한 제작과정을 알 수가 있어요. 마지막으로 대중이 좋아하는 예술적 감각이 무엇인지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디자이너의 개성과 미적 취향을 무시하고 무조건 대중을 쫓으라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결국 상품이 판매되어야 하기 때문에 소비하는 대중의 호불호를 무시할 수 없어요. 디자이너로서의 예술적 감각을 유지하면서 적절한 조율이 필요합니다. 비주얼 머천다이징(VMD)에 대한 한국과 싱가포르의 해석이 다르겠지만 궁극적으로 비주얼 머천다이징이란 소비자의 구매욕을 이끌어내도록 상품을 공간에 꾸며내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이 분야에 대한 시도는 많이 이뤄지지 않았어요. 상품과 상품을 본 공간이 연계적으로 기억될 수 있고, 그곳에서의 경험이 라이프 스타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전반적인 시각적 맥락을 잡아내는 과정을 통해 예술과 비즈니스의 융합적인 가능성을 이끌어갈 수 있을 겁니다.
임승현은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런던 코톨드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Courtauld Institute of Art, University of London)에서 미술사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3년부터 『월간미술』 기자로 재직했다. 현재는 미술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