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진에 실린 글의 내용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TEL 02-708-2293 FAX 02-708-2209 E-mail : weekly@gokams.or.kr
중화권의 정부주도 시장변화와 민간협력의 기회
리뷰_<변화하는 아시아 공연예술시장> 공개강연아시아 공연예술시장, 특히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 최근 중화권 공연예술시장의 현황과 변화를 살펴보고 네트워크의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국제문화교류 아카데미(NEXT) 공연예술 공개강연’ <변화하는 아시아 공연예술시장>이 지난 6월 19일(월) 콘텐츠코리아랩 10층 컨퍼런스홀에서 열렸다. 이 날 공개강연은 6월 17일(토)~18일(일) 이틀간의 주제특화과정에 이어 마련된 것으로, ‘중국, 대만, 홍콩 간 관계변화에 따른 권역 네트워크의 필요성’, ‘싱가포르 공연예술 현황과 협력’, 그리고 ‘대만 공연예술의 도전과 기회’ 등 개별 주제들로 구성되었다. 로기홍 홍콩 서구룡문화예술지구 연극디렉터, 샤론탱 싱가포르 케이크씨어터 프로듀서, 미나 슈핑 왕 대만 독립프로듀서 등 3명의 각 주제별 강연과 종합토론이 최석규 한영상호교류의해 예술감독의 진행으로 이루어졌으며, 문화예술계 현직 프로듀서들을 포함해 다양한 분야의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최석규 감독은 강연에 앞서 아시아 동시대 예술에 대한 논의와 함께 시장 구조에 대한 연구 필요성을 언급하며, 정부 주도하에 이루어졌던 국제협력이 민간에서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아트마켓의 형식을 벗어난 새로운 방식의 네트워킹은 어떻게 모색되고 있는지에 대해 함께 확인해 보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로기홍 디렉터는 먼저 서구룡문화예술지구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거의 완공단계에 이른 Xiqu Center(중국 전통오페라 극장, 필자가 알기로는 북경 중심의 경극과 달리 광둥어를 사용하는 ‘월극’ 중심)를 비롯해 연극·무용을 위한 Lyric Theatre Complex 3개관, M+ Museum, M+ Pavilion, Freespace 등 다양한 문화공간이 2030년까지 순차적으로 문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연장, 미술관, 주거공간과 상업시설 등이 40ha(40만m2)에 이르는 복합지구로 조성되는 이 대규모 프로젝트는 현재 홍콩의 가장 큰 예술시장 변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로기홍 디렉터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여 아시아 지역 관계자들의 협력과 대화가 필요하다며, 특히 중화권 네트워크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서구룡은 3년 전부터 Producers’ Network Meeting and Forum이라는 프로듀서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네트워크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개방적이고 다양한 참여를 통해 공유와 확장의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기회와 협력의 가능성을 강조한 로기홍 디렉터와는 달리 샤론탱 케이크씨어터 프로듀서는 다소 비판적으로 싱가포르 공연예술시장의 현재를 소개했다. 민간에 임대하던 공연예술시설을 싱가포르 예술위원회와 아츠하우스가 공공관리로 일원화하고, 싱가포르 정보통신미디어개발청(IMDA)이 주도하는 사전심의와 검열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제도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다인종 통합이라는 가치를 핑계로 예술작품이 국가이익에 위배되는 경우 예술위원회의 지원이 취소되기도 한다는 말에 우리의 현실이 떠올라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아츠인게이지(Arts Engage)라는 민간 네트워크가 조직되어 이러한 국가정책과 검열에 대응하고 있다고도 소개했다. 사실 싱가포르는 국가주도의 아트마켓이나 페스티벌을 통해 아시아 공연예술 유통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애써왔고, 이러한 대형 프로젝트에 가려 소규모 교류협력은 눈에 잘 띄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샤론탱 프로듀서는 다양한 개별 컴퍼니 단위의 교류, 레지던시 기반 협업 등의 가능성을 피력하며 ‘작은’ 단위의 네트워킹을 적극 제안했다.
미나왕 프로듀서는 대만의 공연예술시장에 영향을 끼치는 환경적 변화에 대해 먼저 소개했다. 정치적으로는 독립노선의 민진당 집권으로 인한 양안관계 악화를 위협요인으로, 반대급부로서 남향정책으로 인한 동남아시아와의 교류 확대를 기회로 분석했다. 현재 대만은 문화고립을 막기 위해 본토가 아닌 타 지역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예술가들의 교류활동을 적극 지원한다고도 했다. 또한, 노동정책을 개선해 여가문화를 장려하는 등 경제적 환경의 변화도 예상했다. 사회적으로는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이 인정되는 등 인권과 시민의식이 신장되고 다양성에 대한 이슈가 확대되고 있다고 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국립극장 설립이 최대 이슈다. 타이중국립극장(National Taichung Theater)이 2016년 개관하여 운영 중이고, 가오슝 지역에 가요숭국립예술센터(Wei-Wu-Ying Center for the Arts)도 건립 중이다. 이 두 개의 극장은 중앙정부 산하 공연예술센터에서 운영하며, 이 외에도 일시 중단된 상태이긴 하지만 타이베이문화예술재단 소속의 타이베이예술센터(Taipei Performing Arts Center)도 건립 중이다. 이러한 공공극장의 조성은 필수적으로 콘텐츠와 관객의 수급을 필요로 하게 되는데, 이 지점에서 네트워크의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필자는 이날 강연에서 아시아 공연예술시장의 변화가 싱가포르가 주축이 되었던 아트마켓이나 대형 이벤트 중심에서 비교적 다각화된 구조로 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만 중화권 중심의 정부주도형 대형 프로젝트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었다. 아시아 최대 프로젝트인 서구룡문화예술지구는 1998년 조성계획 발표 당시 홍콩 반환 후의 정치적 이슈, 주룽반도 권역별 경제개발을 통한 도시마케팅의 관점에서 추진되었다. 문화논리가 아닌 정치 또는 경제논리로 추진된 정책사업은 결국 ‘예술’ 프로젝트의 안정성과 지속성에 대한 우려를 안고 갈 수밖에 없다. 대만 역시 국립 또는 시립 대형 공공극장을 건립 중이다. 하드웨어 중심의 예술정책이 가지는 허수를 어떻게 메워갈 것인가가 관건이다. 우리 정부의 광주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이나 한동안 경쟁적으로 건립되어온 지역의 대형 공연장들을 생각해보자.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강연의 정보들은 유용하고 다양한 협력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했다. 대형 프로젝트들은 다양한 콘텐츠의 수요를 부르게 되고, 콘텐츠의 차별성과 우수성은 곧 네트워크와 협력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다행히도 강연자 모두가 주장하고 있었다. 네트워크의 힘은 네트워크의 개체들에 있지 않고 그 연결지점에서 발생되는 새로운 에너지에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시아 지역의 이러한 변화들이 자칫 주도권 다툼으로 흐르지 않도록 공유와 협력의 가치를 바탕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아시아의 동시대적 이슈를 발굴하고, 다양성과 지속성을 전제로, 시장 중심이 아닌 인적 중심 교류, 국가 간 교류보다는 도시·지역 간 교류, 대형 프로젝트보다는 작은 규모의 내실 있는 교류, 해외진출 경로나 관문으로서의 교류가 아닌 생태계 관점에서의 교류로 협력방식이 전환되기를 기대해 본다.
서명구는 메타기회컨설팅에서 문화기획팀장으로 공연과 축제를 기획하고, 문화프로그램 컨설팅을 했다. 2009년부터 서울문화재단에서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창작공간 조성과 운영, 예술지원 등의 일을 해오다 현재는 예술교육팀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