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일, 한남동 D.뮤지엄 4층 스튜디오에서 테이트 미술관의 보존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최윤선 씨의 특별강연이 있었다. 한국인이 외국에서 미술관련 보존 교육을 이수한 경우는 많지만, 강연자와 같이 외국의 주요 미술관에서 직접 보존 업무를 담당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100여명이 모인 이번 강연은 일반인을 비롯하여 미술관과 관련된 거의 모든 업무분야의 종사자가 고루 참석했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테이트 미술관의 보존실과 보존전문가의 역할> 해외 전문가 초청강연 (2017.8.3.)
강연은 작품과 관련하여 미술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보존가의 입장에서 소개하는 등 보존가의 역할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동안에도 이와 비슷한 강연이 있었지만 주로 소속된 기관의 자랑이나 우리보다 한 수 위 수준임을 은연중에 내비치는듯한 느낌을 받아 조금 불편함을 느낀 적도 있었다. 우리나라 보존의 현실과 비교하여 안타까움과 부러움이 같이 섞여 나타난 감정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번 강연은 다채로운 이력을 가진 강연자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진행되어 보존 업무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도 많은 부분에 공감할 수 있었다.
다양해지고 있는 요즘의 미술작품의 경향을 반영하듯 테이트 미술관의 방대한 소장품 중에서도 그동안 주 대상이었던 회화, 조각 등의 전통적인 장르 이외 작품을 예시로 삼아 청중들의 몰입도를 높일 수 있었고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보존가의 고민과 역할 등을 잘 대변해 주었다.
우리나라는 2016년 기준 등록 박물관이 826개, 미술관이 219개이며 매년 각 10개 이상씩 새롭게 개관한다고 한다. 이들 기관에 소속되어 일하고 있는 보존전문가의 숫자가 60명도 되지 않는다는 현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55명이라는 테이트 미술관 한곳에서 일하고 있는 보존전문가의 숫자가 우리나라 전체의 숫자와 비슷하다는 것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현대미술 분야로 한정하면 그 현실은 더욱 참담하다.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대미술 관련 보존전문가의 숫자는 10명도 되지 않는다.
강연 중인 테이트 미술관의 최윤선 보존 전문가
해마다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수많은 전시가 열린다. 하지만 여기에도 보존전문가가 관여할 기회는 매우 적다. 작품을 빌려주기 위해 방한한 외국 미술품 소장기관의 보존전문가들이 소통할 파트너가 없어 당황 또는 황당했다는 이야기는 이제 너무도 식상한 이야깃거리가 되어 버렸다. 현대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전시를 통해 작품을 관람객에게 소개하고 있는 많은 미술관 중 보존전문가가 상주하며 일하는 곳이 국립현대미술관과 삼성미술관 리움 단 두 곳뿐이라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한때 유행한 한 집 한 그림 걸기 운동과 같이 미술품의 대중화 붐을 일으키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여기에서도 작품을 산 이후에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아무리 사소한 물건이라도 제품에 대한 내용과 사용방법은 물론 만일 문제가 생겼을 때는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안내가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미술품의 경우에는 진위나 가격에만 관심을 가질 뿐 소장한 이후 다음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어떻게 오랫동안 소장할 수 있는지 알려주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어떤 환경에서 보관해야 가장 안정적으로 작품이 보존되는지, 정기적으로 어떤 조치를 해주어야 보다 오래 현상유지를 하는지, 사고로 문제가 생겼을 때는 누구에게 어떤 조언을 받아야 하는지 등 소장가가 알아야 할 사항들이 많다.
토론 및 질의 응답 ‘한국 미술품 보존복원의 현재와 미래’
강연회의 한 주제이기도 했던 예방보존은 예전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않았던 개념이다. 또한 내구성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새로운 시도로 제작되는 현대작품들이 오랫동안 관람객과 호흡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보존전문가의 역할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 한다. 물론 IT를 기반으로 하지만 핵심은 정보의 융합과 활용에 있다. 미술관들도 이에 호응하듯이 디지털 가이드, 디스플레이들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새로운 매개체로 소통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안으로 들어가 보면 사람은 없다. 정확하게는 작품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그 속에선 보이지 않는다. 이제 외형적인 성장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강연자가 강조한 “테이트 미술관은 작가, 큐레이터, 보존전문가가 작품에 대한 정보를 함께 연구하고 토론하며 소통합니다.” 이것이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는 미술관이 가야 할 길이 아닐까?
필자소개
허우영은 현재 삼성미술관 리움 보존연구실장이다. 호암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보존연구실에서 1993년부터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다. 한양대학교 화학과 박사로 현대미술페인트와 접착제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