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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연결고리를 찾아 날아간 극단 성북동비둘기
인터뷰_극단 성북동비둘기 김현탁 연출에든버러가 21세기로 건너 온 고대의 마녀에게 열광했다. 극단 성북동비둘기가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선보인 연극 '메디아 온 미디어'는 그리스 비극 '메데이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젊은 공주와 바람이 난 이아손, 이에 아들을 죽여 복수하는 메디아를 각각 멜로, 액션, 토크 프로그램 등 9개의 TV프로그램으로 재구성했다.
지난 4일부터 28일까지 열린, 세계 최고 연극 축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메디아 온 미디어'는 평론가들을 선점하기 위해 축제보다 이틀 앞서, 2일 막을 올렸다. 개막 첫 날 영국 최고 권위의 연극평론가 린 가드너가 예고 없이 극장을 찾았다. 관람 후 그는 "내가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을 사랑하는 이유는 '메디아 온 미디어' 같은 작품이 있기 때문"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이후 연극전문지 브로드웨이 베이비와 리스트가 "프린지 정신인 경계를 부순 작품", "미디어가 지배하는 현대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했다"고 연이어 호평했다. '메디아 온 미디어'는 가디언이 선정한 '2017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추천작 27작품' 중 하나로 선정 됐는데 이 중 연극은 단 여덟 작품에 불과해 그 의미가 남다르다. 지난 15일 대학로에서 에든버러에서 돌아온 김현탁 연출을 만났다. 축하의 말을 전하자 그는 지친 표정으로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에든버러에서의 놀라운 성과에 기쁨에 젖어 있을 줄 알았는데 힘들다니요? 이번이 첫 참가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생각과는 너무 다른 곳이라 초반에는 당황스러웠고 후반에는 어떻게 대처할지를 몰라 정말 힘들었습니다.
어떤 기대를 가지고 계셨나요? 프린지의 현실은 어떻게 달랐나요 에든버러 프린지에서는 작품성으로만 승부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프린지가 결국 비슷한 작품들이 모여 팔리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전쟁터입니다. 너무 많은 작품이 짧은 시간 안에 밀집되다보니 홍보가 참 어려웠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다른 상업극들이 하듯 길거리에서 홍보공연을 하자니 작품성이 떨어지는 걸 스스로 용납할 수 없더라고요. 또, 아무래도 관광객들이 주를 이루다보니 신나는 넌버벌이나 코믹류의 작품이 유리 하더군요. 나라가 인지도가 약하면 약할수록 똑같은 홍보를 해도 관계자들의 반응이 좋아도 실질적으로 객석을 채우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실제 객석 점유율이 높지 않았나요? 개막 첫날 평론가 린 가드너의 방문에 극장이 떠들썩했어요. 옆 극단에서 ‘너희 이제 정말 좋은 결과 있을’거라 했죠. 이후에도 좋은 반응이 이어졌지만 객석 점유율은 70%수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좋은 평을 받은 저희 극단조차 적자를 면치 못했습니다. 다른 극단들은 더 힘들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떤 점이 제일 힘들었나요? 돈 보다도 ‘정보’가 정말 아쉬웠어요. 사실 에든버러의 수많은 극장들이 극장마다 고유의 특징을 가지고 있더군요. 어떤 극장은 평론가들이 놓치지 않고 들리는 곳이고 어떤 곳은 대대로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극장이고요. 그런 정보 없이 무작정 갔으니 힘들 수밖에요. 이런 유명 극장들은 대관이 어려우니 사전작업도 필수였겠죠. 무엇보다 평론가들이나 언론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또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 후속 네트워크를 어떻게 다져야 할지를 알지 못하니 행운이 찾아왔을 때 옆을 보기 급급했습니다. 다른 극단들은 어떻게 하는지 살피다가, 정작 저희에게 찾아 온 좋은 기회를 놓친 것 같아 너무 아쉽습니다. 무엇보다 한두 번 두드리는 걸론 부족합니다.
여러 번 두드려야 된다는 말씀이면, 참가 횟수가 중요하다는 건가요? 우리랑 비슷한 평가를 받은 옆 극단과 저희의 결말은 완전 달랐어요. 이미 여러 번 온 팀인 만큼 좋은 평가를 좋은 결과로 이어가는 방법을 알더라고요. 평론가들도 이미 여러 번 본 팀이니 보다 호의적이었어요. 하지만 우리 팀은 처음이니 그 과정이 남들보다 배로 어려웠어요. 네트워크도 없고 좋은 평가를 받은 후 이걸 어떻게 이어나가지 못했어요. 또 평론가들의 태도도 ‘좋은데 몇 개 더 보여줘 봐’ 식이구요. 유의미한 성과를 내려면 적어도 두 세 번은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애초 2~3년 프로젝트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해외 관계자들로부터 연락은 없었나요? 영국 극장 관계자들과 네덜란드 프로모터 공연도 보러오고 했지만 아직까지는 이메일로 서로 안부를 묻는 정도입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오가지 않고 있어요. 우리 작품을 굉장히 낯설어했고 그래서 좋아하면서도 실험적이라 선뜻 사겠다고 나서지는 않았어요. 좀 실망스러웠어요. 프린지 정신이 많이 바랬구나란 생각도 들더군요.
말씀하시는 프린지 정신이란 무엇입니까? 기성의 안일함을 깨는 것. 비유하자면 인터네셔널이 예쁘게 상차림 된 요리라면 프린지는 파닥파닥 살아있는 고기라고나 할까요. 헌데 프린지의 작품들은 다양했지만 살아있다는 느낌은 덜했어요. 유쾌했지만 깊이는 전반적으로 얕았습니다.
그럼에도 가디언에 선정 된 건 대단한 일입니다 넌버벌이 주로 주목을 받아왔는데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연극이 호평 받은 건 이례적인 일인데요. '메디아 온 미디아'의 어떤 지점이 통한 걸까요? ‘새롭고 재미있다’는 평이 주를 이뤘어요. 거기에 ‘이건 뭘까?’란 물음표가 붙었죠.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 같습니다. 연극인데, 대중문화의 어법을 쓰니 낯설면서도 재미있어 한 것 같다.또, 메디아가 당한 배신, 친족살해는 사실 우리 대중문화에서는 너무 자주 노출되는 이야기잖아요. 그걸 대중문화 틀에 담아 다시 보여줌으로써 일상화 된 폭력과 비극을 관객 스스로 깨닫게 하는 작품이죠. 대중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은 전 세계가 공감하는 주제고, 또 이를 대중문화의 다양한 어법으로 풍자해 형식적으로 새로우면서도 재미도 갖춘 작품이었다고 자부합니다.
에든버러에서의 한국 연극의 위상은 어떤가요? 아직은 부족합니다. 넌버벌과 같은 공연은 굉장한 성과를 거뒀더군요. 현지에서도 많이 알고 인기도 좋습니다. 반면, 순수 연극은 여전히 빈약합니다.
이번이 첫 도전이었는데, 기회가 된다면 에든버러에 또 가시겠어요? 이번에 문체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를 통해 항공료와 숙박비 그리고 처음으로 홍보 관련해서도 지원이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좋은 성과를 거뒀다는 우리 극단조차 적자를 면치 못했어요. 무엇보다 세계로의 가능성을 보았지만 거기까지 가는데 거리 역시 만만치 않다는 것도 동시에 깨달았어요. 상처가 많은 항해였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떠나야 할 것인가, 아니면 배를 새로 만들거나 혹은 보수 작업을 해야 하나를 지금도 고민 중입니다.
에든버러로 가는 후속 극단들에게 조언을 준다면? 공공 지원이 정말 필수란 생각이 듭니다. 단체가 1년간 준비해도 갔다 와서 엄청난 적자를 끌어안게 됩니다. 엄청난 돈이 드는 만큼 엄정한 선별도 중요합니다. 공연 전쟁터란 말처럼 엔간해서는 관심받기가 힘든 곳이에요. 정부에서 지원할 때는 물론 극단 스스로도 엄격한 눈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대학로 역시 극장들이 모여 있고 여러 연극 축제가 열립니다. 에든버러와 대학로가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전문가와 관객사이에 ‘믿음의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린 가드너는 가디언지에 오랫동안 연재를 해온 리뷰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선택이라면 신뢰합니다. 그가 우리 작품을 주목하면 대중들도 저희를 주목하죠. 그런데 한국은 그 통로가 없기 때문에 관객 위주로 여론이 흘러갑니다. 그러니 다양해지기만 하고 깊이는 계속 떨어져만 가죠. 전문가와 대중과의 연결고리를 다시 회복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그래야 한국 연극계서도 새로운 아이디어의 작품이 나오고 연극의 ‘완성도’를 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고, 대학 때부터 문학 중에서도 희곡을 가장 좋아했다. 매일경제 입사 후 정치부를 거쳐 2016년 문화부에 안착해 연극과 뮤지컬 분야를 맡아 공연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 때는 읽는 걸 더 좋아했지만 1년 여간 본 수많은 공연덕분에 보는 재미도 깨우쳐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