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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자의 눈으로 보는 문화기획자
.“부모님도 제가 뭘 하는지 정확히 모르셔요.”
문화기획자들의 오래된 농담이다.
문화기획자가 설명하기 어려운 직업인 이유는 라이증후군이나 섬유근육통처럼 대다수의 사람이 모르는 미지의 혹은 무지의 대상이기 때문이 아니다. 반대로 감기나 몸살처럼 모두가 알지만 범위가 넓고, 경계가 모호해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힘든 대상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문화) 정책을 구상하는 사람, (공연장 같은) 건축물의 운영 방향을 결정하는 사람, 예술가들의 교류와 협업을 돕는 사람,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의사 결정을 돕는 사람, 축제를 만드는 사람, 파티를 디자인하는 사람도 문화기획자라고 불린다.
문화기획자는 프로듀서라고도, 총감독이라고도, 커뮤니티아티스트라고도, 공무원이라고도, 건축가라고도 불린다. 심지어 승려라고 불리는(사찰 음식 축제와 템플스테이를 기획하는) 문화기획자들도 있다. 차은택, 손혜원, 이효리도 문화기획자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문화기획자가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도 어렵다. 조금 더 양보하더라도 문화기획자적인 측면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많은 문화기획자들이 있고, 더 많은 문화기획자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한 끊임없이 파생(?) 문화기획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왜 그럴까? 아마도 모든 것이 문화고 모든 이가 문화를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백제인의 음주도, 노량진 고시생의 주거도 문화다. 경제인들의 골프 회동도, 청년들의 아르바이트도 문화다. 이러한 개별 문화에 대해서는 누구나가 호불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총합으로서의 문화는 (거의) 모두가 좋아한다. (강준혁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예술적인 도시에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있을 수 있겠지만, 문화적인 도시에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비문화적인 도시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또한 ‘문화’라는 단어는 어디에 붙여 놓아도 말이 되며, 대부분의 경우 폼도 더 나 보인다. 그래서 다문화, 생활문화, 생태문화, 청년문화 등 새로운 00문화들이 생겨나고 구호로 사용된다. 복합문화공간은 날마다 늘어난다.(이제는 단일 문화공간이 더 문화적으로 보일 지경이다.) 그러한 새로운 구호와 공간을 자신들의 문제와 연결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은 점점 커지고, 다시 또 새로운 문화기획자들이 생겨난다. 그래서 문화기획자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설명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져 간다. ‘기획자의 길’ 같은 오래된 이야기들은 점점 더 많은 곳에서 원래의 의도와 다르게 이야기된다.
하지만 나는 문화기획자를 정의하기 어려운 이유가 이렇게 범위가 넓고, 경계가 모호하고,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큰 이유는 단어(문화기획) 자체의, 또는 두 단어의 결합(문화+기획)이 가지고 있는 모순을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문화는 기획될 수 없다. 물론 공연도 문화고 축제도 문화니까, 그러한 문화를 기획할 수 있다. 하지만 총합으로서의 문화는 기획할 수 없다. 문화를 이루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최초의 문화기획자들은 그 총합으로서의 문화를 기획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삶도, 국가도 누군가 기획하던 시대였으니까···. 때문에 민족의 문화를, 국가의 문화를 고민하고 기획하려는 욕심(?)이 어느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세상은 변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국가와 민족의 문화보다 자신의, 개인의 문화가 중요해졌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시대에 여전히 문화기획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물론 이제는 모두가 같은 소명을 가지고 같은 강령을 따라 행동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제2의 차은택이 되지 않으려면 각자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설명하기 위해 고민할 필요는 더 커졌다고 생각한다.
내가 최근 몇 년간 본 것 중 가장 문화기획적이라고 생각했던 장면은 서촌의 한 김밥집에 붙어 있는 여덟 글자였다.
보통 저 위치에는 "우리 김밥은 국내산 햅쌀과 오늘 아침에 짠 참기름과 유기농 시금치와 일본의 장인이 만든 단무지로 만들었다"라는 식의 구구절절한 설명이 붙어 있고, 사람들은 읽지 않는다. 대개 사람들은 빠른 시간 내에, 저렴한 가격으로, 최소한의 균형을 갖춘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자 김밥을 먹는다. 따라서 가격을 확인하고, 자리가 있는지 확인하고, 최소한의 위생 상태를 살펴보고 김밥집의 문을 연다. 또는 그러한 조건을 갖추었음을 이미 확인한 어떤 천국에 간다.
그런데 이 여덟 글자를 확인하고 주인을 마주한 사람은 전혀 다른 상황에 던져진다. 갑자기 그 가게 주인의 혼사에 관여하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점심은 문제가 아니게 된다. 빨리, 싸게 끼니를 때우려던 일에 찌든 차가운 직장인은, 아직 결혼 못한 동생을 생각하는 따뜻한 오빠/언니가 되며 전혀 다른 점심을 경험하게 된다. 이후 다른 식당에 가도 주인을 마주하는 표정이 아마 조금은 변화할 것이다.
나는 문화기획이 이렇게 ‘일상에 작은 사건을 디자인해서 새로운 경험과 선택을 가능하게 만드는 일, 그래서 세상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지금 나의 정의이고 앞으로 계속 변할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보면 나는 문화기획자가 예술가와 컨설턴트의 중간 어디쯤 위치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집에서 그림만 그리기에는 오지랖이 넓고, 클라이언트의 목적만 달성하기에는 자기 욕심이 큰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그 사람들은 일상적인 사건과 이벤트적인 사건 사이 어디쯤에서 그 변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문화기획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아래의 그림 어딘가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나는 저 빨간 원 정도의 위치에 저 정도의 크기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감히) 까마득한 선배 문화기획자분들이 저 그림 위 어디에 어떠한 크기로 존재하는지 상상해 본다.
며칠 전 집에 놀러온 친구의 딸이 "아저씨는 뭐하는 사람이세요?"라고 물었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부끄러웠다.
나는 문화기획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그 오래된 농담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WHO’S NEXT? |
독립기획자 류성효님을 추천합니다. 옆에서 지켜보면서 ‘일을 정말 독립운동하듯 하신다.’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면 정말 예산에 상관없이 일을 합니다. 또한, 거의 모든 일을 혼자 직접 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열 개 가까운 프로젝트를 책임지며 정치와 영업에 매진하시느라, 최종보고회 직전에야 실무자들에게 각본을 전달받아 무대에 서시는 기획자분들도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독립운동하듯 일하는 독립기획자 류성효님을 더욱 존경합니다. 공연, 전시, 축제 기획부터 다양한 공간과 지역의 연구 및 컨설팅을 진행해온 류성효님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 궁금합니다. -주성진 |
(주)메타기획컨설팅에서 8년간 배우고 일하며 조직을 덜 고상하게 변화시키고자 노력하였음. 이후 6년간 독립하여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스스로의 명칭을 고민하다가, 용역으로 가득한 프로필을 보며 <문화용역 주성진>으로 사업자를 등록함. 최근에는 다수의 문화기획 교육과정에 관여하며 멘토를 사칭하고 청년들에게 문화기획을 배우는 일에 집중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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