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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보고 귀로 듣지만 마음으로 읽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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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건 텔레비전으로 만나는 보신각 타종 소리이지만, 나는 진짜 한 해의 시작을 ‘지원사업 설명회’로부터 실감한다. 마치 마라톤 출발선에 선 주자처럼 ‘시작하고야 말았어’ 하는 각오에, 초롱초롱하게 모이는 눈동자들의 열정을 함께 더해본다. 올 한 해의 씨 뿌림을 알리고,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는 설렘과 희망이 모이는 자리로 완주에 와서 가장 먼저 시작했던 것도 이 설명회였다.
많은 지역문화재단들이 그러하듯이 한 해의 사업을 결정하기 전 수차례 공유테이블을 진행해 많은 의견을 도출한다. 그 의견들과 행정 절차, 예산 타협과 조율을 거쳐 올해 진행할 사업들이 탄생하게 된다. 어쩌다 몸을 담게 된 공공 영역의 경험은 길진 않지만, 관성적으로 일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노력과 고민들을 짧게 담아본다.
현재 몸담고 있는 곳, 완주는 작은 도시이다. 계란프라이를 먹을 때마다 완주를 떠올리는데, 전북의 중심인 전주를 둘러싼 지리적 형상이 꼭 흰자 같은 곳이다. 전주와 완주의 생활의 경계는 모호하지만 문화예술 인프라는 상대적으로 전주에 더 집중되어 있다. 규모 면에선 훨씬 작지만 서울을 둘러싼 수도권과 비슷하다. 예술인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도 자연스레 노른자에 집중되어 있다. 어떻게 해야 넓은 흰자에 솔솔 소금을 잘 뿌릴 수 있을까.
특히 창작 활동하는 예술인들은 마치 1년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의 마음으로 재단을 찾는다. 농사가 어디 농부의 노력으로만 결실을 맺던가. 때때로 햇볕과 바람, 시원하게 내리는 비, 때때론 비료도 필요하다.
완주에서 활동하는 예술인은 지난 2년간 진행된 실태조사에 따르면 500여 명 정도이다. 오롯이 완주에서만 활동하는 이들은 더 적겠지만, 모든 지역이 다 서울과 같을 순 없으니 군 단위 지역임을 감안하면 꽤 많은 숫자이다. 서울보다 인구는 적지만 넓은 면적에 흩어져 있는 예술인들과 무엇을 함께 도모하기는 참 어려웠다. 그래서 무모할 수도 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씩 점을 찍어 만나는 것을 상상해봤다. ‘1~2년 안엔 한 번 이상씩은 모두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해 보면 그 점들을 이어볼 수 있겠지’란 생각을 하며 막연한 도전을 시작했다. 그렇게 ‘완주예술오픈플랫폼’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실제론 한 사람, 한 사람 만나기보단 삼삼오오가 모였다. 지원사업이나 공모사업으로 예술인들을 만날 땐 시간과 장소, 참여자의 수 등에서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각자 다른 영역과 주기를 가진 예술인들을 한데 모으는 것도 어렵기에 찾아가는 공유테이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런 작은 테이블들은 완주 각지에 흩어져서 상반기에 30여 회가량 진행되었고, 비공식적인 테이블들은 종종 온라인에서도 진행되었다. 진짜 예술 하기 좋은 완주가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 완주에 꼭 맞는 것, 완주에서 하고 싶은 것 등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함께 고민하고, 실험해보기 위한 작은 문을 열었다.
편안하지만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각자 원하는 의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고, 때로는 많은 조건과 규정에 맞추어 하고 싶은 것을 하려다 할 수 있는 것들로 맞춰 가야 하는 현실이 허탈함과 서운함을 토로하게 하기도 했다. 우리의 몫은 예술인들의 원츠(wants)와 지역의 니즈(needs)를 연결하는 키워드를 찾는 일이었다.
실제 진행된 공유테이블에선 별스러운 이야기들이 나오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다시 확인하고, 우리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해볼 것인지에 대한 모두의 고민이 시작됐다.
공유테이블이 있기 전에도 우리는 서로 자주 만나고 싶어 했고, 완주에 어떤 이들이 있는지 궁금해 했다. 우리는 이 모임을 어떻게 느슨한 예술인 연대를 위한 네트워킹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 생각했다. 정보, 물품, 공간 등 다양한 공유를 위한 플랫폼을 구축하고 싶은데......각각의 크고 작은 마을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예술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고, 풀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긴 기간의 난상토론이 열렸다. 함께했던 이들이 지난 9월에 모여 각각의 테이블에서 진행되었던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함께 우선적으로 해 나갔으면 하는 의제들을 선정했다.
아직은 많이 미흡하고, 서투르지만 마음을 서로 열고 무언가를 함께 도모하려고 한다. 실제 재단이 예술인의 입장에서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가려 한다는 체감이 높았고, 예술인들이 ‘주민’으로서 고민하는 지점들도 인상 깊었다. 아마도 긴 호흡으로 완주는 이들과 함께 꿈틀거릴 것이다.
동화에 나오는 치르치르의 파랑새는 쫓을수록 멀리멀리 날아가 버린다. 지속가능한, 선순환하는, 새로운 예술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수많은 지역문화재단의 목표는 닿을 듯 닿지 않는다. 사실 예술생태계라는 것은 본디 있는 것인데, 꼭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마치 사라진 파랑새는 우리 주변에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에서 일을 하는 이들에게는 중요한 과제이며,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나 역시 이번 생에 내가 가진 능력으론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한편에 있지만, 지역을 마음으로 읽는 일에 함께 두 손을 보태본다.
WHO’S NEXT? |
㈜마이너스플러스백의 정성빈 대표를 추천합니다. 유휴공간을 발견하고 플러스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예술적 위트가 더해져서 인상깊었어요. 서울 100프로젝트에 이어 다양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소식을 들었는데, 공공 공간에 긍정적 변화, 자극을 주는 프로젝트는 현재시점에서 꼭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
장시형은 회화를 전공하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우리가족박물관 탐방’ 및 ‘박물관 100번가기 캠페인’을 진행하며 외규장각 의궤반환팀에서 일했다. 전주문화재단의 ‘전주 선미촌 도시재생프로젝트’와 전주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실현하는 ‘전주문화슈퍼마켓 프로젝트’ 등을 거쳐 현재는 완주문화재단 예술진흥팀장으로 일하며 농촌형 기획자인지, 도시형 기획자인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아직도 하고 있다. 한편으론 불어난 식구들과 함께 동네 잡화점 주인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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