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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지로 예술가의 산림살이
사람과 개, 고양이가 있는 풍경을지로가 시끄럽다. 하루하루가 다르다. 힙지로가 되었고, 재개발이 진행 중이고, 투쟁 중이고, 여전히 뜨겁게 살아가고 있다. 도시에 대한 담론과 외부에서 주목을 끄는 이야기는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충분히 흘러나오고 있으니 앞서 글을 썼던 정성빈 대표와 같이 ‘사는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을지로, 산림동?
‘산림동’이라는 동네를 들어보신 적 있는가. ‘을지로’가 힙지로가 되었지만 그곳을 구성하는 동네 이름은 들어본 이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수표동, 초동, 입정동, 산림동, 인현동, 주교동 등 을지로를 중심으로 여전히 남아 있는 서울의 원도심은 오랜 시간 불려 온 이름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동네들 중 나를 받아준 곳, 내가 터를 잡을 수 있게 해준 곳은 산림동이다. ‘山(뫼 산)’에 ‘林(수풀 림)’을 쓰는 이 동네는 이름과 다르게 녹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6.25 전쟁을 겪고 전후 복구를 통해 거주지는 점차 산업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제조업에 의한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입정동을 중심으로 서서히 산림동까지 확장1)되었다. 그 후 재개발의 광풍이 불면서 뜨거웠던 산림동은 급격히 공동화되었다.
욕망의 충돌로 인한 태풍이 소멸된 후 급격히 늘어난 공실에 대한 대책을 찾기 위해 서울 중구청은 예술가들에게 작업실을 지원하는 ‘을지로디자인예술프로젝트2)’를 시행하게 되었다. ‘도심재생과’에서 진행한 재개발에 대한 책임을 ‘시장경제과 경제진흥팀(현 도심산업과)’에서 수습하고자 예술에 의지하게 된 것이다. 산업 지역에 생겨난 균열 사이로 예술이 스며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신흥 입주민 그룹, 예술가와 길냥이
예술가들이 입주하면서 동네가 많이 달라졌을까? 많이 달라졌다. 그중에서도 갑작스럽고 직접적으로 혜택을 보게 된 원주민들이 있으니 그들은 길냥이들이다. 춥고 더운 작업실에 있다 보면 밖을 오가는 고양이들이 눈에 띈다. 어떤 작가들은 녀석들에게 밥과 물을 챙겨 주기도 하고, 위험에 처한 아이를 구조하면서 이웃에서 식구가 되기도 하였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작가들의 작업실엔 반려묘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많이 부러웠다. 우리 공간 ‘산림방’에도 원주민 고양이가 있었다. 혹자는 ‘깐돌이’라 부르고 우리는 ‘예진이’라 부른 멋진 수컷 고양이는 마치 강아지 같았다. 친화력이 넘치는 녀석은 공간 공사를 할 때 내게로 와서 친구가 되어 주었고, 공동체중심미술교육의 일환으로 셔터아트를 진행할 땐 그곳 아이들과도 친구가 되어 주었다. 항상 함께해 준 소중한 친구였지만 타고난 질병은 어찌할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있던 고양이 알레르기 탓에 예진이와 한 공간에 있을 때는 으레 콧물과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예진이에겐 미안하지만 고양이들의 출입이 금지된 금냥의 공간이 되었다. 다른 작가들의 작업실을 갈 때면 ‘나만 고양이 없어’라는 마음만 가득했다.
원주민 그룹, 사장님들과 댕댕이
동네에 이주민 그룹인 예술가들의 작업실에 고양이들이 입주했다면, 원주민 그룹인 철공소 사장님들의 공장들은 어땠을까. 사장님들은 대체로 길냥이들을 환영하는 편이 아니다. 동네에서는 고양이들이 배설할 수 있는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콘크리트로 뒤덮인 공간 위로 쌓인 철가루들을 파서 배설을 하지만 다량의 분뇨는 여전히 지면에 노출되어 파리들에게 번식의 공간이 된다. 날이 따뜻해지면 배설물이 부패하면서 퍼지는 악취와 똥파리들이 가득한 골목이 되어 생업에 피해를 준다. 그 때문이었을까. 사장님들이 길냥이의 물과 먹이를 챙겨주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직접 고양이를 키우는 경우는 없다. 반면 드문드문 개들이 있다. 대부분의 산림동의 강아지들은 목줄 없이 자유를 만끽하며 동네를 다니거나 옥상에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산림동 골목의 왕은 대성빠우집네 ‘삼순이’다. 눈빛부터 순한 삼순이는 동네 사장님들을 모두 잘 따르며 손님들에게도 친절하다. 그녀는 흰 털을 가지고 있지만 빠우3)공장의 업종상 미세한 철가루와 유분이 날려 회색빛을 띄는 경우가 많다. ‘삼식’이라는 사장님 본인의 이름을 따서 ‘삼순’이라고 이름 지은 걸 보면 강아지를 향한 사장님의 애정이 얼마나 깊을지 알 것 같다.
R3028과 다문화 댕댕이
그러던 2019년 초여름. 못 보던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다. 눈썹에 흰 점이 두 개 박혀 있는 얼룩무늬 어린 강아지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목줄이 채워진 채 사장님 손에 끌려 골목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었다. 삼순이가 어미처럼 아이를 살피고 길렀다.
성문금속 사장님네 보더콜리가 옆집에서 월담한 래브라도레트리버의 새끼를 임신해 낳은 혈통 좋은 다문화 막내였던 바둑이는 입양을 원하는 점포가 있어 산림동에 찾아왔다가 몇 차례 파양을 당해 삼순이네 업둥이가 되어 있었다. 예쁜 아기가 어떻게 이 동네에 오게 되었는지를 여쭙자 사장님이 마음을 읽으셨는지 기름때 묻은 미소를 지으며 “네가 데려가서 키워라.”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바둑이를 길에서 보자마자 팀원들에게 강아지를 키우면 어떻겠냐는 의사를 물은 적이 있었다. 동의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만 물어보기도 했지만 모두 긍정적인 답을 준 터라 입양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려 했었다. 하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니 책임감이 엄습했다. “공간 정리가 되면 데려가겠다.”라는 이야기가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이에 사장님은 “얘가 좋으면 산책이라도 시켜 봐라”라는 말씀을 건네셨다. 그렇게 첫 산책을 마치고 작업실에 돌아오니 바둑이의 짐이 모두 우리 공간에 와 있었다. 동료들에게 사장님이 가져다주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 준다더니, 이렇게 바둑이의 새로운 가족이 되어버렸다. 바로 동료들과 함께 충무로에 가서 애견용품을 사 왔다. 같이 길에서 묻었던 때를 씻기고 팀의 이름을 따서 ‘삼공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혹자는 지난 4년간 힘들게 작업해서 쑨 죽을 개에게 줬다며 즐거워했다.
공장에서 문화공간으로 온 삼공이는 작업하는 작가들의 옆자리를 지키고, 공연과 전시를 함께 관람한다. 이제 모든 기획과 공간 운영이 강아지 중심으로 바뀌게 되었다. 개가 함께할 수 있는 콘서트와 전시회가 열린다. 간혹 영감을 받는지 페인트를 엎지르거나 종이를 찢어 작품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아는 게 없었다. 동네에 대해서도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꿈만 품고 시작된 산림동에서의 삶은 장님 더듬어 가듯 이루어졌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더 많이 만져보면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도심 속 분주한 산업 단지에 둘러싸여 일에 매몰된 나날을 지내오던 어제와 달리 떠돌이 강아지가 ‘삼공이’가 되어 찾아온 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때때로 중구 전역을 산책하며 여유를 만들고, 삼공이를 아끼는 이웃들이 종종 간식을 사서 방문해주신다. 강아지가 건강히 자라는 모습을 보시고 이웃들의 신임이 더 높아지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의 동거가 예상치 못한 관계를 강화시켜 서로 이웃하게 만들어 줬다. 때때로 삼공이를 산책시키는 것이 아니라 삼공이가 내게 여유를 주고 지치지 않게 살펴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참, 삼공이가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롭지 않도록 에너지 넘치는 비글 동생 ‘아리’도 입양했다. 이제 열 고양이 부럽지 않은 두 마리의 댕댕이와 살아가고 있다. 다른 작가들의 작업실에 가서 생각한다. “나만 댕댕이 있어!”
원도심 속 굽이굽이 연결된 골목은 사람이 오가는 길목이자, 물자가 오가는 유통망이자, 생명이 오가는 생태 통로이기도 하다. 그 안에 예술가는 작은 자연을 만들었다. 2017년에 조성된 공간은 어느 순간에 완성되지 않고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다.
서울의 원도심
한양은 4대 산을 모체로 설계되었기에 거대한 자연이 도시를 품고 있었다. 자연이 항상 함께했기에 인위적인 녹지 공간이 한양 내에 필요하지 않았고 산천은 모두에게 동일했다. 분리될 수 없었던 것이 분리되기 시작한 것은 고층건물이 장벽처럼 도심을 채워 나가면서부터다. 2016년 을지로에 터를 잡을 당시만 해도 을지로4가역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계단에서 계절마다 색을 달리하는 남산이 보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매끈한 유리로 뒤덮인 신축 건물만이 솟아 있다. 유리 장벽 속에 남겨진 동네들은 수백 년을 함께 해온 자연을 떠나보냈다.
우리를 키운 동네
유리 장벽을 등지고 산림동으로 접어들면 오늘도 쇠를 깎는 굉음과 튀는 불꽃이 여전하다. 골목을 걸어가는 나와 그 주변으로 혼란스럽게 퍼지는 공장의 사건들, 발아래 차이는 쇳조각, 괜히 너스레를 떨며 말을 건네는 아저씨는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청계천에 늘어선 공장과 시장이 오늘 우리에게 보릿고개가 없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처음 이곳에서 공장을 운영하기 시작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폐허 속에서 공장 문을 열고 하루하루 일을 해 나간 덕분에 지금 우리가 은박지에만 그림을 그릴 수도 있던 처지에서 벗어난 것이다.
뿌리가 조소였기 때문일 것이다. 내 눈에 이 동네가 읽히고 나니 이곳에 기념비를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에 가득했다.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던 것을 공유하고 싶었다. 모두를 위해 존재해 온 곳이 소수를 위한 개발로 사라지는 그날을 초조히 기다릴 순 없었다. 문제의식은 이만하면 충분했다. 그렇다면 어떤 형태로 기념비를 만들어야 할지를 고민할 단계였다. R3028의 ‘산림동 장인의 화원’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다시 기슭
골목에 적막이 감도는 늦은 시간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을 때, 골목 저편에서 뛰는 족제비 두 마리를 마주했다. 그때 이곳에서부터 남산이 시작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산림(山林)’이라는 오랜 마을의 명칭과, ‘목멱산(木覓山)'이라는 남산의 옛 이름을 떠올리며 사람이 많아지기 전 원시림으로 무성했을 이 땅을 상상해 보게 되었다. 그렇게 화려한 공공 조형물보다 지금은 자연과 멀어진 곳이지만, 다시 이 안으로 자연을 끌어오는 것이 지역을 위하고 기념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조경 세미나를 찾아가 듣고, 전문가들 중 협업할 수 있는 사람을 수소문하며 적합한 공간을 찾아다녔다. 공간을 찾고 보니 그곳엔 이미 몇 가지의 화분과 포도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용달업을 하시는 하 선생님이 가꾸는 포도가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고, 화분마다 시골집에서 가져온 무와 무화과를 키우고 계셨다. 옆에는 볼트집에서 키우는 나무 두 그루가 있었는데 지역 환경이 많이 안 좋아서일까 어딘지 힘겹게 생존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궁금했다. 저 나무는 무엇이며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가.
라일락이 된 라일락
사모님이 아현동에 살 때 아버님께서 집 뒷산 기슭에 라일락을 심으셨다고 한다. 봄이면 꽃이 펴 향이 아주 좋았었는데 재개발을 한다고 해서 한겨울에 다는 못 가져오고 두주를 뽑아 큰 다랑이에 옮겨 심어 놓았다고 한다. 다행히 죽진 않고 살았지만 이후 꽃도 피지 않고 잎도 예전과 다른 모양으로 난다고 한다. 이야기를 전해주시는 사모님 스스로도 이제는 라일락을 뽑아 온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워할 정도였다.
산림동이 가진 역사적 가치와 이곳의 지난 시간들을 기념하기 위해 골목 사장님들과 중구청의 관련 과들과 을지로 동사무소 직원분들까지 모두가 함께했다. 산림동이 초대한 듯 운명처럼 ‘조경하다 열음’의 윤호준 작가님과 ‘A1'의 안기수 소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화원에 들어가는 플랜터를 모두 지역의 철공소에서 만들고자 했기에 맨날 돈 못 버는 예술가라고 놀리면서도 챙겨주셨던 철공소 사장님들께 갑자기 신분 상승해 당당한 클라이언트가 되었다. 함께 철을 자르고 용접해 화원의 뼈대를 만들었다. 일을 의뢰하고 돈도 주는데 함께 작업하며 도와주는 클라이언트라니 사장님들은 매우 만족이셨다. 당시 중구청 녹지과 직원이었던 최다영 주임도 발 벗고 나서 여러 과의 행정력을 동원해 지원해줬다. 그녀가 몰고 온 인력은 거리를 청소하고 묵은 때를 벗겼다. 그렇게 여러분들의 힘이 모여 상상으로만 했던 ’장인의 화원‘이 하루하루 만들어져갔다.
2017년 10월 모든 공사가 끝나고 찾아온 2018년 봄, 제 모습을 찾은 라일락은 3년 만에 꽃이 피었다. 고양이 배설물들로 파리가 들끓고, 쓰레기만 쌓여온 골목에 오늘은 많은 생명이 서로 경합하고 공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때가 되면 꽃이 피고, 향기를 맡고 날아온 나비와 벌, 등애들이 이곳에 생명이 있음을 알린다. 점심이 지나 볕이 따뜻하게 거리를 채우면 사장님들은 라일락 그늘 아래서 때론 향기를 맡으며 다방 커피를 마신다.
낮 동안 뜨거웠던 동네엔 해가 지고 고요함이 골목을 찾으면 평소에 모습을 많이 드러내지 않던 동네의 주인들이 나타난다. 목줄 없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강아지들, 수십 마리의 고양이들, 그리고 운 좋으면 천연기념물인 담비도 볼 수 있다. 산림동 골목엔 유독 고양이가 많다. 오래된 도심 공간은 사람들에게 지난 시간과 오늘이 이어짐을 느끼게 하지만 고양이들에겐 신나는 삶의 터전이 되어 준다. 온 동네 지붕은 그들에게 캣타워가 되어 준다. 그들의 빈자리를 채우듯 땅엔 개들이 서성인다. 서울 중심, 서울 같지 않은 어느 동네에서.
1) 을지로 3가에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인 유리모아. 그곳의 장인은 산림동에서 태어나 자랐다 하니 옛 도심의 이야기를 듣고
싶으면 맛난 음식을 들고 찾아가길 추천한다.
2) 을지로디자인예술프로젝트: 을지로를 예술로 새롭게 디자인한다는 뜻과 디자이너 예술가들이 을지로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중의적인 뜻을 담고 있다. 2015년 공실개선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되었다.
공동화된 산업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주기 위해 중구청이 공실을 임대하여 예술가들에게 전대를 주는 형태로 공간
지원을 해오고 있다. 현재 ‘을지1호’부터 ‘을지5호’까지 운영 중이다. 본 사업을 통해 20여 명의 예술가들이 산림동
일대에 터를 잡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 각자의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3) 빠우: 금속이나 돌의 표면을 매끄럽게 마무리하는 기계. 또는 그런 작업(출처: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고대웅은 시각예술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이자 ‘R3028’ 대표이다. 2016년부터 을지로 산림동에 터를 잡고 ‘세상을 위한 예술’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실험하고 있다. ‘산림방’이라는 복합문화공간에서 전시, 공연, 세미나 등 지역에 기반한 예술 행사들을 기획·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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