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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과 실행을 병행하며 태도를 묻는다
춘천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 팀빌딩 과정2009년 춘천문화재단을 통해 처음으로 공공영역에, 지역문화 판에 발을 디뎠다. 공공기관이 처음이라 그랬는지, 사기업에서 일할 때처럼 미친 듯이 일했다. 예산이 있든 없든 해야 할 일이라면 일단 지르고 예산을 확보해 가는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문화예술지원사업, 창작공간 조성, 지역문화인력 양성, 지역문화아카데미, 마을공동체, 청년문화 활성화, 소소한 축제와 청년 축제, 도시재생사업, 매거진 발간, 문화예술교육, 문화다양성 사업 등 업무 영역이 점차 넓어졌으며 어느새 지역문화 기획자라는 호칭(?)까지 따라붙었다. 여기에 지역재생과 도시문화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서 원주 문화도시 사업을 거쳐 자유로운 영혼으로 세계 여러 도시들을 둘러보았다. 여행을 통해 내린 문화도시에 대한 아주 소소한 결론을 가지고 2020년 1월부터, 다시 춘천에서 전환문화도시라는 키워드에 힘을 보태고 있다.
사람이 문화를 만들고 모든 사업의 핵심은 사람에 있다고 우리의 현장은, 전문가들은 늘 말한다. 그럼에도 사람을 키우고, 그 사람들과 처음 작업을 하게 될 때면 사람들의 중함은 간혹 놓치게 되는 것 같다. 전국 곳곳에 문화재단이 생기고, 어떤 이유로든 사람을 키우는 역할이 문화재단으로 넘어간 곳이 많다. 특히 기초 단위 문화재단의 경우 지역문화 예술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그래서 문화재단에 있을 때도, 문화재단을 떠나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을 때도 문화재단 종사자들의 일하는 방식과 태도에는 늘 갈증이 있었다. 재단의 여건이 그리 자유롭지 않은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또 그들이 지역문화 기획자로 부푼 꿈을 안고 재단에 들어갔음에도 왜 그리 쉽게 시스템의 포로가 되는지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여기에는 공공기관·출연기관이 갖는 외부적 조건과 예산의 집행 구조, 문화재단의 리더십과 의사결정 구조가 갖는 내부 조건의 답답함, 실무 인력들의 선발과 교육 방식, 관행처럼 굳어진 현장과의 스킨십과 때때로 드러나는 현장에 대한 몰이해 등이 겹쳐져 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지역에서는 문화재단과 함께 일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하소연마저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시민과 현장을 만나는 사업 담당자들의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근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것은 후배 직원들의 일에 대한 태도와 역량 강화이다. 재단을 두루 경험하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 중 하나가 사업 담당자들의 성장 지체 현상이었다. 수많은 사업과 교육을 통해 시민과 워킹그룹 등 파트너들은 역량이 성장하고 단단해져 가는데, 이를 지원하는 재단의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교육과 성장의 기회가 거의 없고 생각과 관점의 변화도 적다.
재단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은 법정 필수교육과 점수로 관리하기 좋은 프로그램들로 채워져 있다. 업무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은 스스로 알아서 하든가 중앙정부로부터 전달된 지역문화정책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교육이 거의 전부이다. 일부 재단에서는 그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자체적인 워크숍과 커리큘럼을 기획해 교육을 진행하지만, 매일매일이 바쁜 재단 업무의 특성상 직원들이 교육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은 요원하다.
작년 연말 춘천이 문체부의 법정 문화도시 제2차 예비도시가 되었다. 2020년 올 한 해 동안 예비사업 등을 진행하며 문화도시 본 지정을 준비하기 위한 문화도시TF본부가 춘천문화재단에 구성되었다. 재단에서의 업무가 10년 차에 이르는 직원도 있었지만 대부분 2-3년 미만의 경력을 가진 직원들이 대부분이었다.
뭐든 초반에 기틀을 잡아야 한다. 문화재단이 어떤 곳인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또 문화도시사업에서의 역할은 무엇인지.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일을 잘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일터로서 자신의 성장과 성취감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중심을 잡는 일이 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워크숍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구성원들의 이야기부터 들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와 선한 욕망들, 그리고 자신을 지탱해 주는 힘의 원천과 꿈에 대한 이야기 등 함께 공유할 거리들이 늘어났고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갔다.
여기에 전문가들의 특강과 멘토링, 잦은 회식을 빙자한 토론 시간들을 통해 문화도시사업과 문화재단, 그리고 자신의 업무와 필요 역량에 대한 부분들이 정리되어 갔다. 이 과정에서 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로의 조직 개편도 마무리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각 지역의 문화재단은 각기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 지역적 여건과 상황에 따라 집중해야 할 우선순위도 다르다. 그렇게 때문에 각 재단들마다 직원들이 우선적으로 갖추어야 할 역량과 태도도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춘천문화재단 직원들에게는 유연성과 함께 지역의 자원과 사람을 활동으로 연결할 수 있는 기획력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기획력의 핵심은 지역을 읽어내는 눈과 사람들 간의 맥락을 찾아내 활동을 매개하는 역량이다. 시민과 협력 주체들 스스로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바탕으로 내 삶의 문제를, 지역의 문제를, 우리 사회의 문제를 문화적으로 해결하는 현장으로 나오도록.
그런 고민을 바탕으로 직원들 스스로 몇 가지 원칙들이 정리되었다.
첫째, 우리는 문화도시조성사업을 수행함에 있어 49 : 51의 원칙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문화재단이 추진하는 문화도시 사업의 기획은 잠재적으로 사업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49% 의 구조(판)만 설계하고 나머지 51%가 작동할 때 발생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며 이를 통해 춘천시민과 협력 주체들의 가능성을 확장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서 모든 기획은 사업 대상과 협의와 협력을 거치는 과정으로 설계하고, 각 주체의 참여와 그로 인한 이견, 갈등, 해소, 상생, 지속 등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들을 자연스러운 협치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서로의 역할을 만들어 가보기로 결정했다.
두 번째, 문화도시 사업을 진행하는 직원들의 역할과 태도는 ①우리의 지역 주체들이 스스로 이슈를 설계해 나가는 문화도시를 만들도록 돕는 것, ②지역사회와 소통하는 협치 구조를 바탕으로 문화도시 사업을 만들어 가기 위해 잘 듣는 것, ③함께하는 주체들의 기획과 아이디어를 존중하는 문화도시를 만들어 나가며 신뢰를 구축하는 것 등으로 정리하였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할 것이다. 우리는 이 일을 왜 하려고 하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가? 안 되는 이유가 아닌 되는 이유를 찾기 위해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학습과 토론은 계속될 것이고 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할 역할과 태도는 추가될 것이다.
올해 초 닥친 코로나19는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많은 것이 멈춰 서 버린 가운데 당초 진행할 사업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사업 담당자들 역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그럼에도 지금 현재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이든지, 우리의 사업 구조에서 진행해 보자고 이야기를 하였다.
담당자들은 이론 고민을 진전시켜 가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사람들을 만났으며, 당장 각 사업 이해관계자들의 상황을 수집했다. 그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청년 단위의 활동가,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방구석 ○○○ 지원사업’이 춘천문화재단 최초의 무정산 사업으로 진행되었다. 문화예술 사업 현장에서 도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일러스트레이터를 위한 ‘당신의 그림을 빌려주세요! 도시디자이너 지원사업’도 만들어졌으며 1년 동안 사용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당초 진행되던 예술가 창작공간 지원사업은 문화예술 단체의 창고, 연습실 등을 포함해 지원을 확대하였다. 미약하지만 전환문화도시 춘천의 전환적 상상력이 사업 담당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만나고 싶은데 만날 수 없으니 답답했다. 그 답답함 속에서 뭐라도 해보자고 던져진 질문. "온라인, 화상회의, 줌(zoom) 등 비대면 접촉을 통한 이야기라도 활발해졌으면 좋겠는데 그곳에서 동시에 100명이 모일 수 있을까?" 그 질문으로부터 7일 뒤, 100명이 모였다. 마스크를 쓰고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눈 지 7일 만에 전국에서 100명이 모였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의 안부가 궁금했다. 그 궁금함에 춘천의 공연과 축제 판의 스태프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었다.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고,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을지를 비롯한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자고 했다.
119분 동안 100명의 안부를 묻고, 1분의 안부가 모여 코로나로 멈춰진 우리의 삶을 조금 전환해 보자고 했다. 판을 만들기 위해 꼭 참여해야 할 단위가 토론을 통해 결정되었고, 그렇게 결정된 단위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역할을 만들어가며 리스크를 관리했다. 함께하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했고 문화재단 직원들은 이들의 활동을 지원했다. 7일이라는 시간 동안 그들은 그렇게 합을 맞춰 갔다.
문화재단의 리더들 또한 빠른 의사결정을 내렸고, 지자체에서도 긍정적 의견을 주었다. 그렇게 “봄의 도시 춘천이 묻습니다! 당신의 안부를”, ‘100개의 화면, 100명의 이야기 전환문화상상 라운드테이블’이 탄생했다. 서로의 절박함이 서로의 몸짓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가 결정했던 49 : 51의 의미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문화재단의 역할과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왔다. 관련 강의를 할 때면 재단에서 활동하는 후배에게 전하는 마음을 담아 ‘사업 담당자는 어떠해야 하는가?’로 끝을 내곤 한다.
1. 가장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가장 기본은 일을 잘하는 것이다.
2. 담당자가 일의 중심이다. 변방으로 밀려나지 마라.
3.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여라! 누구도 당신의 자존감을 높여주지는 않는다.
4. 스스로의 업의 가치를 세워라. 외롭고 슬플 때 당신을 잡아줄 것이다.
5. 내용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결정적일 땐 전문성이라도 있어야 한다.
6. 담당자도 판단하는 사람이다. 결재자는 당신의 판단을 돕는 사람으로 활용하라.
7. 권한 없는 책임은 필요 없다. 당당히 거부하라!
8. 끊임없이 현장과 대화하라.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9. 답을 찾았으면 포기하지 마라. 미친 실행력으로 밀어붙여라.
10. 조직에 충성을 다하되 사람이 아닌 조직의 존재 이유에 최선을, 진심을 다하라.
그리고 늘 말한다. 우리는 ‘일’을 하러 온 것이라고.
강승진은 교육기업에서 사업기획과 문화체험사업 등의 경험으로 춘천시문화재단 정책기획팀장, 원주문화재단 지역문화실장 등을 거쳐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며 자발적 백수로 잠시 살았다. 히든어셈블의 대표로 잠시 창업의 길을 걸을 뻔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다시 춘천문화재단으로 들어가 문화도시 사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