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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로 생활문화를 만드는 방법
-과천러닝크루는 과천에서 나고 자라 중학교를 같이 다녔던 5명의 동창이 2017년부터 동네를 달리며 시작되었다. 그저 좋아하는 취미 생활인 달리기를 동네에서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었던 게 시작이었다. 하루는 함께 달리던 친구 중 하나가 말했다. 퇴근하고 모여서 친구들과 함께 동네를 달리는 이 시간이 요즘 삶의 낙이며, 행복이라고 말이다. 그때, 그 행복을 더 많은 지역 주민들과 나눠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2018년 ‘과천시마을공동체지원사업’을 통해 동네를 지켰고, 2019년 ‘경기청년공동체지원사업’을 통해 지역을 만끽했다. 지역을 수호한다는 것은 커다란 것이 아니었다. 저녁이면 시민들이 홀로 걷기 어두운 거리를 달리며 안전을 지켰고, 고장 난 가로등은 없는지, 유실된 도로는 없는지 확인하며 달렸다. 다른 러닝 동아리들이 더 좋은 개인 기록을 위해 훈련을 한다면, 우리는 서로가 넘어지지 않는 안전한 달리기를 즐겼다.
나아가 매달 테마가 있는 러닝을 기획했다. 과천시정보과학도서관에 있는 천문대에서 별을 보고 나서 달리는 ‘별 볼 일 있는 런’, 달리고 나서 과천 온온사에서 한옥 요가를 즐기는 ‘한옥런’, 더운 여름밤 달리고 나서 관악산 계곡에 뛰어드는 ‘계곡런’ 등이 대표적이다. 지역에 있는 문화시설, 유적지뿐만 아니라 자연환경을 즐길 수 있는 활동이었다. 시민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고, 2년간의 활동을 통해 현재는 카톡방에 100여 명의 달리기를 좋아하는 지역민들이 모이게 되었다.
4년째, 목요일 저녁 8시 서울대공원에서 모여 달리기를 하는 크루원들에게 과천러닝크루의 가장 큰 자랑거리가 무엇인지 물으면 대답이 한결같다. 같은 동네에 함께 취미를 공유할 이웃이 생겼다는 점을 커다란 장점으로 꼽는다.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함께하고 지지해주는 이웃들과 매주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서로 눈을 맞추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문화인지 몰랐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웃들은 러닝크루 안에서 또 새로운 활동을 계획하고 느슨한 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를 함께 보기도 하고, 주말 아침 자전거를 타러 가기도 하며, 작은 텃밭을 분양받아 씨를 뿌리기도 했다. 달리기로 시작한 작은 생활이 공동체 문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과천러닝크루 일원들이 갖고 있는 한 가지 공통점은 ‘달리기’라는 취미를 가졌다는 것이다. 이 소소한 공통점은 새로운 이웃을 만나게 할 기회를 제공하였고, 생활 속의 크고 작은 활동을 함께할 기회를 주었다. 청년들끼리만 모이거나, 중년들끼리만 모이는 것이 아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다양한 성별과 연령대의 주민들이 만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문화가 형성되는 모습을 목격하고, 2020년 경기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생활문화플랫폼 사업에 지원할 용기를 얻었다. ‘달리기’라는 것이 단순히 더 나은 달리기 ‘기록’을 생각하는 운동 종목이 아니라, 시민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할 핵심 가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019년 마라톤 대회가 있던 어느 주말 이른 아침이었다. 개인 기록 단축에 혈안이 되어 있는 다른 마라토너들과 달리 과천러닝크루원들의 표정은 한결 편안했다. 물론, 개인 목표가 있는 분들은 사뭇 진지한 자세로 경기에 임하지만, 우리 공동의 목표는 일반적인 러닝 팀과는 조금 다르다. 달리기에 크게 관심이 없던 개인들이 지역 주민들과 매주 함께 달리다가,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대회에 참여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달리는 이유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나 기록 쟁취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인연을 만나고, 혼자라면 하지 않았을 몸과 마음의 스트레칭을 이어나가기 위함이다. 그러다 보니 비장함마저 감도는 마라톤 대회마저 우리에겐 색다른 장소에서 달리는 하루일뿐이다. 이처럼 과천러닝크루에게 ‘러닝’이란 엄청나게 중요성을 띤 활동이라기보다 지루한 일상 속에서 나를 꺼내주는 이웃을 만나는 매개 활동이다.
과천러닝크루가 생각하는 생활문화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먼저, 생활 속에서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이어야 한다. 달리기와 같이 신체 활동일 수도 있고, 우리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음악, 미술 활동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문화’라고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활동 또한 생활문화가 될 수 있다. 어렵지 않게 정기적으로 내가 하고 싶어서 할 수 있는 긍정적인 활동이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내가 거주하거나 생활하는 곳과 가까운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어야 한다. 그래야 앞서 말한 자발적인 활동이 보다 정기적으로 빈번하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곳에서 스스로 발굴한 생활문화는 나와 우리가 존재하는 지역에서 활성화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혼자 하는 활동이 아닌 가족과 친구를 넘어 이웃들과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이어야 한다. 나와 가족, 그리고 나를 아는 지인들과만 함께하는 폐쇄적인 활동이라면 ‘생활문화’라는 단어보다 그 ‘집단’의 고유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에 이끌려 오는 것이 아니라 추구하는 활동에 동의하는 지역민들이 함께할 수 있게 오픈된 것이라면 ‘생활문화’로 성장할 수 있다.
그리하여 과천러닝크루가 꿈꾸는 앞으로의 생활문화란, 지역 내에서 이웃들과 함께 자발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많은 지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새로운 ‘생활문화’를 발견하는 내일이 되기를 기대한다.
과천러닝크루가 2017년 처음 달릴 때, 2020년 여름날 이런 글을 쓰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와 우리가 좋아하는 활동을 꾸준히 하다 보니 4년 차 팀이 되었고, 100여 명의 크루원들과 30여 명의 정회원, 9명의 운영진이 생겼다. 나와 우리의 생활 속에서 문화를 창출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생활문화’ 영역에 입문하게 되었다.
2020년은 전 세계적인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쉽지 않은 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파구를 찾아나가면서 우리 모두가 안전하게 즐기는 러닝을 이어가 보고자 한다. 악화된 상황으로 모든 게 멈췄지만, 우리는 여전히 각자 거리를 달리고 온라인에서 소통하고 있다. 전처럼 같은 장소에서 모여 매주 정기적으로 달리지는 못하지만, 서로 다른 자리에서의 공동의 달리기를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매달 진행하려던 테마가 있는 러닝(테마런)은 다수의 시민들이 모여 함께할 수는 없지만 야외에서 소규모 인원들과 안전하게 해내고 있다. 계획대로 진행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반대로 더 끈끈한 추억을 만드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2020년은 ‘플랫폼’이라는 단어를 오프라인에서 실현시키기 어려운 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똑한 방법으로 시민들과 지역 고유의 ‘생활문화’를 발전시키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
과천러닝크루에서 함께 뛰는 분들은 ‘생활문화’ 분야에서 엄청난 포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이 즐기는 활동을 백 살까지 건강하게 내 이웃들과 이어나가는 것이 꿈이자 목표이다. 앞으로의 생활문화 팀들이 각자의 색깔을 가지고, 저마다의 목표로 활동해나가기를 바란다. 과천러닝크루의 달리기가 지역의 문화를 넘어, 생활문화로 성장하고 있듯 말이다.
방수영은 2014년부터 동네 친구들과 어르신 자서전 제작 봉사 활동인 ‘이분의일프로젝트’를 기획·진행해 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2018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하였고, 현재 2019년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인증된 자서전 전문출판사 (주)이분의일코리아를 이끌고 있다. 2017년부터 동네 친구들과 달리면서 ‘과천러닝크루’ 활동을 기획해 현재까지 과천 이곳저곳을 달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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