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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톤, 실현가능한 콘텐츠가 되기까지
리뷰_예술 해커톤: 로봇과 드론2012년 영국 브리스틀(Bristol)의 워터쉐드(Watershed)에서 영국-동아시아 교류 협업 프로젝트로 시작된 ‘플레이어블 시티 스프린트(Playable City Sprint)’는 영국, 한국, 일본, 말레이시아, 호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디자이너, 개발자와 교육자가 모여 일종의 워크숍, 혹은 해커톤 형태로 진행한 프로젝트이다. 브리스틀에서 시작된 이 도시 기반 프로젝트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테크놀로지의 결합을 추구하는 실험이었다. ‘스프린트’ 이후, 이제는 독립적인 명칭이 된 ‘플레이어블 시티(Playable City)’ 프로젝트는 브라질 헤시피(Recife), 나이지리아 라고스(Lagos), 일본 도쿄(Tokyo) 등 매년 다른 도시를 순회하며 프로젝트의 가능성과 지속성을 확대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도 언젠가 ‘플레이어블 시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동아시아 작가의 일원으로 ‘플레이어블 시티 스프린트’에 참여하여 웨일스(Wales)의 카디프에서 활동하는 줄리언 사익스(Julian Sykes)와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틴 벡(Tine Bech)과 한 팀을 이루었다. 브리스틀에서 머무는 5일간, 시민참여형 게임 ‘바이크태그(BikeTAG)’의 프로토타입은 ‘스프린트’에서 완성되었다. ‘바이크태그’는 자전거 도시로 잘 알려진 브리스틀의 장소성을 바탕으로 ‘플레이(play)’와 ‘도시(city)’의 연결 지점을 찾고, 술래(tag)잡기나 숨바꼭질, 컬러 배틀, 랠리, 퀴즈, 보물찾기와 같은 놀이와 접목하여 도시를 탐험하는 어반 매핑(urban mapping) 프로젝트의 가능성으로부터 출발한다. LED와 접근 센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연동하여 다양한 형태의 게임을 만들어내는 장치이자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와 가상을 넘나드는 지역 기반 게임 프로젝트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서로 마주치는 가운데 자유롭고 유동적이며 가변적인 빛을 만들어 낸다. 아마도 이 예기치 않은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 자체가 ‘바이크태그’ 프로젝트의 적용 가능성과 다음 단계로 진행된 ‘컬러 키퍼스(Colour Keepers)’의 발전을 견인했다고 할 것이다.
이제는 해커톤이라 불리는 명칭이나 활동이 그리 낯설지 않다. 페이스북의 ‘좋아요’ 버튼이 해커톤에서 탄생한 일화 등 해커톤은 전 세계로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IT 산업 분야와 기업에서만이 아니라 미술관, 비영리 단체, 대학을 포함한 교육기관, 세계 각국의 정부와 의회, 또 NASA나 NGO와 같은 국제적인 기관에서 주최하는 각종 이벤트에 이르기까지 해커톤은 여러 형태로 조직된다. 국내에서는 아트센터 나비가 메이커스 워크숍과 결합한 다양한 해커톤을 진행해 오고 있다. 웨어러블 해커톤 ‘Nabi Wearable Hackathon: dress IT up’을 비롯하여 예술과 기술, 건축, 패션, 인공지능과 로봇 등 뉴미디어를 통섭하는 영역의 크리에이터와 아티스트가 모여 작업 공간과 과정을 공유하며 결과물을 발표해 왔다. 매번 다른 주제로 개최된 해커톤은 향후 쇼케이스나 전시 형태로 전개되는 등 지속적인 교류와 네트워크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모임들은 기술적 문제 해결 목적 외에도 창의적 교육, 사회적 활동, 예술적 교류와 소통을 위한 네트워크 이벤트로 기능한다. 해커톤은 단지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디자인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하고 광범위한 분야에서 자유롭고 유동적인 플랫폼으로 작동한다. 해커톤은 영어의 ‘핵(hack)’과 ‘마라톤(marathon)’의 합성어로, 해크 데이(Hack day), 해크페스트(Hackfest), 핵 더 시티(Hack the city), 해크 캠프(Hack camp), 메이커톤(Make-a-thon), 아트톤(Art-a-thon), 혹은 단거리 경주를 뜻하는 스프린트(Sprint) 등 유사한 의미를 지니는 이벤트와 프로젝트로 통칭되기도 한다. 해커톤이란 용어는 1999년 OpenBSD1) 개발자와 Sun2)의 마케팅팀에서 각각 독립적으로 사용하면서 점차 파생되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소프트웨어 개발자, 그래픽 디자이너,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이너, 프로젝트 매니저 등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어떤 특정한 주제와 프로젝트의 목적 아래 집중적인 협력을 추구한다. 대개 짧게는 하루(무박 전력 질주), 길게는 1~2주 가량(강도 높은 릴레이 형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랠리가 이어진다. 삼삼오오 모여 둘러앉은 작업 테이블, 그 위에는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 같은 각성 효과가 있는 음료와 피자, 초코바, 칩스 등 군것질거리가 놓여 있다. 쪽잠에 대비한 목베개와 침낭, 슬리퍼를 곁에 두고, 나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소위 모범생(nerd) 이미지의 충혈된 눈을 한 사람들이 과업 달성(task-oriented)에 집중하는 광경을 떠올리게 된다.
1) OpenBSD는 NetBSD에서 파생된 BSD 계열의 오픈 소스 운영 체제이다. BSD는 Berkerly Software Distribution의 약자로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캠퍼스(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의 CSRG(Computer Systems Research Group)에서 개발한 유닉스 운영 체제이다.
2) Sun Microsystems, Inc.: 컴퓨터, 소프트웨어, IT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 회사로 Java 프로그래밍 언어를 비롯한 Solaris 운영 체제, NFS(Network File System)를 만들었다. 2010년 이후, Oracle에 인수 합병되었다.
해커톤을 주관하는 기관이나 단체는 빡빡한 일정과 프로그램 진행 방식으로 참여자의 협력과 도전정신을 어렵게 끌어내기도 한다. 닫힌 공간에서 참여자들 간 경쟁심을 부추기는 분위기가 자동으로 형성되기도 하고 참여자 스스로 팀 내부에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도전적인 해커톤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곧 다가올 최종 발표 때문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해커톤 자체가 전혀 생산적이지 않고 흥미롭지도 않으며 게다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아이디어의 단순한 발표 현장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행사가 곧 끝나가는 것에 안도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 제시나 문제 해결이 해커톤이라는 전형적인 틀의 방식으로 설정되어 있다면 오히려 실험성과 창의성을 저해하는 결과물을 도출할 우려도 있다. 해커톤과 같은 일시적인 행사가 종료되어도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일종의 중간 점검이나 평가, 리뷰와 관리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정해진 시간 내 아이디어를 완성하고 발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대안적인 프로젝트를 밀도 있게 탐구하고 점검하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은 순간이지만, 끊임없는 테스트와 실험,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실현 가능한 창의적인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난 11월 12일(토)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국립현대미술관, 아트팹랩이 공동 주관한 ‘예술 해커톤: 로봇과 드론’의 피칭데이가 열렸다. ‘로봇과 드론’이라는 기술의 사용과 주제의 탐색 과정에서 센서 테크놀로지, 인터랙티브 라이트,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 3D 프린팅, DIY 드론, 얼굴 인식(face recognition)과 음성 인식(voice recognition) 등이 결합한 융합형 콘텐츠가 시제품과 시작품으로 탄생했다. 피칭데이에서 다시 만난 최종 8개 팀의 발표 현장에는 긴장감과 흥분이 감돌았다. 주어진 15분, 짧고도 긴 발표의 순간들이 지나간다. 때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시연 콘텐츠에 당황한 기색과 함께 그간의 노력과 열정을 다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이 스친다.
기존 공공장소 비상구의 시각 디자인 부분을 개선하고 기술적 기능을 보완한 ‘상구봇’의 ‘비상구’ 팀, 감압센서를 탑재한 웨어러블 놀이 패치 ‘Touch Touch Playing’를 선보인 ‘라이트온’, 얼굴 인식과 혈액형 감별을 통한 주문제작 개인 맞춤형 마스크 아이템을 제안한 ‘브리콜라쥬 샵’, 각종 센서를 탑재한 드론을 무대 위 공연자와 연동하여 무대 장치와 효과를 제어하는 아이디어를 발표한 ‘라미네즈’ 팀, 드론, 화약, 전통 탈춤 등이 결합한 공연 콘텐츠 아이디어를 시연한 ‘드론파이어’ 팀 등 개인 참가자, 직장인, 사업가, 외국인, 학생, 가족 구성원이 팀을 이루어 순차적으로 발표가 진행되었다. 아두이노(Arduino)로 구현된 터치와 접근 센서 기반 키네틱 인터랙티브 라이트 시작품을 선보인 ‘노다모르(Nodamor)’ 팀과 색상 정보를 데이터로 전환하여 사운드와 음악으로 표현하는 지휘봉 형태의 무선 장치를 선보인 ‘복숭아밭’ 팀이 각각 우수상을, 사용자의 음성 인식을 통해 감정에 맞는 음악을 찾아 블루투스 스피커로 들려주는 봉제 인형을 제작한 ‘구름이’팀이 최우수상을 받았다.
해커톤이 어떤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고 답을 제시하거나 경쟁을 통해 점수를 매기고 아이디어의 우열을 가리기보다는 다양한 실험과 창의적인 시도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현해 나가는 장이기를 바란다. 이번 예술 해커톤이 일회성 행사나 단순한 네트워크 모임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으로 성장해 나가는 프로젝트의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하며 그간 최선을 다한 참여자들의 노력과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Bang & Lee는 방자영과 이윤준으로 구성된 2인 컬렉티브로 뉴 미디어, 디자인,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 설치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퍼포먼스를 동반한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 설치, 키네틱 라이트, 만질 수 있는 세라믹 악기를 이용한 작업에서 가변적 스크린플레이(variable screenplay)에 의한 데이터 프로세싱과 앗상블라쥬, 비디오 모자이크 영상에 이르기까지 여러 매체를 다루고 있다. 프로젝트의 대부분은 부조리한 상황이나 모순과 관련된 주제로 역사적 자료와 허구적 속성을 통합하여 우정과 협업의 개념을 재해석한 설치로 반영된다. Bang & Lee의 작업은 독일 칼스루에 ZKM 미디어 아트 센터, 영국 브리스틀 워터쉐드, 이탈리아 로마 21세기 국립현대미술관, 백남준 아트센터, 서울시립미술관, 아트센터 나비 등에서 전시되었다. 최근 ‘예술 해커톤: 로봇과 드론’에 멘토로 참여했다. 프로젝트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