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일자리 정책의 시금석이라 할 첫 추가경정 예산안이 국회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이제는 그거라도 어서 통과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초반에는 솔직히 아쉬웠다. 그 안에 문화분야 일자리가 보이지 않아서다.
문화 분야 일자리가 추경에 같이 편성되길 바랄만큼 그렇게 시급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할 근거는 사실 모호하다. 그렇다고 꼭 문화분야가 후순위에 속해야 한다고 봐야 할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 국가의 안위(安危)나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시급했던 시절과 문화를 그 본질적 가치를 넘어 사회적 가치니 국가 경쟁력이니 까지 말하고 있는 지금은 다르다. 청년 실업이 심각한 요즘, 그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여전히 시급하다면, 젊은 예술인도 먹고살아야 할 청년이자 국민이긴 마찬가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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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활동 종사 형태 ©2015 예술인실태조사 |
예술가란 본시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인데 웬 (시간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일자리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예술가도 사람인데, 먹어야 예술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문제는 그놈의 예술이 밥 먹여주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직업이라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뉴욕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배우들도 오랜만에 만나면 서로 건네는 인사말이 ‘너 요즘 무슨 작품에 출연하니?’가 아니라 ‘무슨 아르바이트를 하니?’라 하지 않던가?
시인이나 배우, 무용가, 연주가 등 전업예술가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은 인접예술인들도 존재한다. 해마다 수만 명의 예술계 졸업생이 배출되면서 기획, 제작, 경영, 기술 등 예술과 소비자를 이어주는 매개자로 직업전환을 하는 예술전공자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모두가 다 강수진이나 조성진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게 바람직한 사회도 아닐 것이므로.
알다시피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다목적적이다. 먼저 공공분야 일자리와 정규직을 확대하여 소득을 늘려주고 늘어난 소득을 기반으로 소비를 진작시켜 성장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또 공공분야 일자리 늘리기는 대국민 공공서비스나 복지의 확대와 같은 중요한 노림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화계 일자리는 이보다 한 차원 더 높은 노림수다.
지난 2016년 11월에 열린 예술경영 취업 상담 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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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예술 분야가 고용유발계수는 높으나 비정규직, 한정된 고용기간(축제 기간 동안만 고용된다든지) 등의 문제가 많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는 예술시장의 속성인 경제적 불안전성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도 문화예술 분야의 인력양성, 경력개발, 부가상품개발, 창업 스타트업 진출 등을 지원해오기는 했으나 워낙 규모가 작아서 상징적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2000년도에 도입된 미술관이나 박물관 학예사 자격증 소지자만도 현재 6천여 명이, 몇 년 전에 새로 생긴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을 가진 이들도 무려 1만 명이나 대기하고 있는 실정이니 말이다. 예술매개자의 중요성이 커졌지만, 준비된 이들은 여전히 비정규직이거나 실업자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 ‘예술인 고용확대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공공예술분야 일자리 창출 방식을 이렇게 제안한 바 있다. 즉, 예술생태계에서 경영의 사각지대에 놓인 전국의 공공문화기반시설(문예회관, 박물관, 미술관 등)과 예술단체에 문화예술 매개자나 교육 인력만 제대로 배치해도 수천 명의 좋은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국에 230여 개가 산재해 있는(전시장도 딸린) 문예회관을 예로 들어 보자. 여기는 평균 전문인력(기획, 교육, 무대기술 등)이 턱없이 부족하고, 운영예산도 거의 없이 자주 교체되는 공무원들이 대관 위주로만 운영하는 곳이 60%가 넘는다. 그래서 공연 가동률도 평균 40% 정도밖에 안 되며, 볼만한 공연도 별로 없다는 비판을 수십 년간 들어 온 곳들이다. 이런 곳에 공연기획자, 전시기획자, 문화예술교육사, 무대기술인력을 각각 1명씩만 채용한다 해도 상당한 규모가 된다. 이런 방식을 박물관, 미술관, 시군구 도립 무용단, 합창단, 교향악단, 극단 등 예술단체까지 적용한다면 그 수는 수천 명에 이를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전문 인력이 일하게 되면 운영이 더 나아지고 가동률도 높아지게 될 것이므로 국민들의 문화향유도 확대되고, 예술가들의 일거리도 늘어날 것이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일석다조의 선순환 정책이 된다. 재원도 문화분야가 덜 드는 편이다. 이런 문화기관과 단체는 전국 행정구역마다 골고루 퍼져 있으니 지역인재 채용이나 지역균형발전에도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이보다 더 다목적적인 일자리가 또 어디 있을까?
*본 칼럼의 내용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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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용관은 현재 (사)한국예술경영연구소장이다. 중앙일보 호암아트홀(부장), 부천문화재단(전문위원), 안양아트센터(관장), 대전예술의전당(관장) 등 극장경영으로 경력의 대부분을 보냈다. 공연예술학 박사로 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장을 역임했다. 문화정책, 예술경영, 문화예술교육이 주관심사이다. 저서로 『관객을 만드는 예술경영』, 『한국의 예술소비자(공저)』, 역서로 『극장경영-공연예술 제작과 유통(공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