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우연한 기회에 Seoul Maker Faire에 참여하게 되었다. Maker Faire는 직접 만든 프로젝트를 서로 공개하고 체험해 볼 수 있는 메이커들의 DIY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창의성과 다양한 재료가 만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기쁨을 선사한다는 Maker Faire에서는 다양한 분야에 이채로운 아이디어, 신기한 작품들을 스스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축제였다. 재미로 시작한 어린 학생들의 소품부터, 전문분야의 종사자들이 만들어낸 상업적 제품들까지 한눈에 감상할 수 있었던 그 행사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기술이나 작품의 우열을 뽐내기보다 작품을 왜 만들게 되었고, 어떤 기술을 사용하게 되었으며 작품을 만들면서 어떤 점이 어려웠다는 등의 제작기를 공유하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스스럼없이 나누며, 함께 즐기는 문화였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주관하는 ‘예술 해커톤’을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이런 시도가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특히, 뜨겁게 떠오르고 있는 4차 산업기술(인공지능, 빅데이터, 가상현실 등)과 문화예술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하는 놀라움과 기대감 속에 지난 7월 15일, 16일에 있었던 ‘예술 해커톤 : 스마트아트센터’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이디어 개발 중인 참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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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해커톤 피칭데이 현장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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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현재 공연장(아트센터)에 근무하고 있지만 빅데이터, 인공지능, 가상현실이라는 분야는 아직은 뭔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흐릿한 대상으로만 느껴진다. 빅데이터를 통한 관객 동향을 분석한다든가, 가상현실을 도입한 공연, 전시 등의 형태 등은 몇몇 공연이나 축제 등에서 선보이고는 있지만 아직은 익숙할 정도의 체감 단계는 아닌 듯하다. ‘예술 해커톤-스마트아트센터’는 이런 현실에서 생각을 전환하는 중요한 첫 단추가 아닐까 생각된다.
짧은 시간 내에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해커톤은 고도의 집중력과 에너지가 필요한 작업이긴 하지만 참여한 7개팀은 관객과의 소통, 유입 효과 증대, 관객 개발, 콘텐츠 구현 등의 목표를 위해 1박 2일간 성실히 임했다. 그 결과 관객과 무대환경을 구현하는 VR, 스마트 도슨트, 관람객의 시선과 기호에 맞추어 물리적으로 변화하는 전시, 소리를 인지하여 결제시스템으로 연결되는 어플리케이션 개발, 공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관객맞춤형 서비스, 공연 전 대기시간을 활용한 소통형 어플리케이션, 비콘을 기반으로 하는 챗봇 도슨트 시스템 등의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국립아시아문화원의 김병석 원장,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초연결통신연구소의 황승구 소장, 경기청년문화창작소의 강원재 예술감독, 와디즈의 최동철 부사장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으며, 2시간여의 피칭 끝에 최우상은 낭만 EAR(소리 인지 결제시스템 연결 어플리케이션 개발)에, 공동 우수상은 Magic’s LAB(관람객의 시선과 기호에 맞추어 물리적으로 변화하는 전시), 8282(비콘 기반 챗봇 도슨트 시스템)에 돌아갔다.
물론 개발자들이 선보인 내용이 현장에서 반길만한 아이템으로 성장해 나가기에는 좀 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듯 보였다. 하지만 우리 생활 속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4차 산업기술을 활용해 문화예술 시장, 그중에서도 공연장이라는 분야에 적용했다는 것이 더 큰 의미로 여겨졌다. 매번 발표에 이은 심사위원들의 진심 어린 조언과 섬세한 지적 등은 예술창업 아이템으로 개발시켜 나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좋은 밑거름이 되었으리라 본다.
모든 발표가 끝나고 시상이 있기 전에 이나미 팀을 잠시 만날 수 있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하여 관객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접속하면 다양한 이벤트와 함께 공연 관련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아이템을 선보이는 아이디어였다. 사실 비슷한 내용이 사내(경기도문화의전당) TED 모임에서도 언급되었던 부분이라 더욱 애착이 갔다. 접속방식, 기기별 호환, 저작권, 강화된 개인정보 보안에 대한 대책 등 여러 현실적인 대안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의 똘망똘망한 그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예술 해커톤 피칭데이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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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수상한 낭만EAR팀과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김선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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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관객과 만나는 접점은 바로 공연장이다. 몇 달을 준비하고 달려온 공연이 끝날 때쯤이면 우리의 할 일은 과연 어디까지일까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유행을 타듯 분위기를 갈아타는 SNS, 전혀 의외에서 터지는 홍보 효과, 기존 홍보 툴에 식상해진 관객들, 공연장에서 또 다른 무언가를 원하는 관객들까지. 이제는 무엇 하나 정답이라고 장담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관객에게 홍보하고 공연장에서 찾는 또 다른 즐거움을 주고자 애쓰고 있다.
‘예술 해커톤’이 앞으로도 문화예술 관계자들에게도 저마다의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얻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이템을 개발해 내기 위해 참여했던 팀뿐만 아니라, 그들의 발표를 듣던 관련 분야 종사자들에게도 훌륭한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아이템을 구현해 내는 기술적인 영역은 전문가들의 몫이지만 무엇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은 현장 종사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휴일 하루뿐인 일탈이었지만, 공연장이라는 공간의 의미와 그 내부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예술 해커톤’이 개발자와 관람객 모두가 저마다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결과물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로 이어지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