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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예술 전시 큐레이터가 말하는 진짜 큐레이터의 모습
선배에게 듣는 문화예술 JOB이야기_시각예술편예술경영지원센터는 3월 7일 문화예술분야의 다양한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선배에게 듣는 문화예술 JOB이야기>를 개최하였다. 특히 공연과 시각분야의 신진인력 및 전문가들의 대담 코너와 강의를 통해 커리어패스 및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문화예술계 진입에 필요한 밀접한 정보 교류의 장을 마련하였다. 웹진<예술경영>에서는 프로그램의 강사로 참여한 민간 공연·전시 기획사 전문가를 통해 행사를 정리했다.
‘전시장에서 그림 설명해주는 사람이에요?’, ‘갤러리에 작품 거는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이제 미술계 뿐 아니라 영화, 출판 등 문화콘텐츠 영역에서도 ‘큐레이터’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지, 필자의 직업을 소개할 때면 어김없이 듣는 질문이다. 그렇게 축약하고 단순화해버리니 어쩐지 서운하지만 틀린 것도 아니니 ‘네’ 하고 만다. <선배에게 듣는 문화예술 JOB이야기> 강의 의뢰를 받고 준비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은 욕심이 났다. ‘큐레이터’라는 직업인이 아닌 ‘선배’로서, 책이나 사전에서 정의하는 큐레이터 업무가 아닌 ‘진짜 일과’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한국의 동시대 큐레이터들은 어떻게 같은 직업군으로 묶일 수 있는지 의아할 만큼 다양한 유형으로 일하고 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소속된 학예사, 독립큐레이터, 그리고 기업의 문화공간에 소속된 큐레이터도 있다. 모두 다 관람객에게 작품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전시를 기획하는 일을 하지만, 각각이 대상으로 하는 관람객 층이 다르고, 다루는 작품이 다르고, 전시를 만드는 방식 역시 다르다. 필자가 속한 KT&G 상상마당은 공연, 전시, 영화, 디자인 콘텐츠를 다루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시각예술팀원이 큐레이터 직무를 맡는다. 작가 지원프로그램(SKOPF: 한국사진가지원프로그램)과 국내외 작가 전시(다방, 20세기 거장시리즈) 시각예술교육(SAC: Sangsangmadang Art Club) 등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한다.
KT&G 상상마당은 기업이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운영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기획자 개인이 관심 있는 주제나 미술계 안의 민감한 이슈보다는 기업의 비전이나 목표에 맞추어 전시나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다. 이 모든 실행에는 기업 조직의 체계나 규칙에 맞춘 행정업무가 (때로는 과하다고 생각 될 만큼) 수반된다. 이번 <선배에게 듣는 문화예술 JOB이야기> 참가자들에게 현장감 있게 이런 실무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일주일치 스케줄러 페이지를 찍은 사진 한 장을 준비해갔었다. ‘좋은 전시’란 큐레이터 한 명의 창의적인 전시 기획 아이디어나 훌륭한 작가 선정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전시 기획서를 실제 전시장에 구현하기까지 많은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하고 협력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과, 전시를 내리는 순간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현장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짧은 강의 시간에 미처 전하지 못한 이야기는 ‘선배와의 만남’에서 나눌 수 있었다. 큐레이터 직무를 희망하는 참가자들은 ‘전공 선택’, ‘학력과 경력 중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지’, ‘어느 곳에서 일을 시작하면 좋은지’ 에 대해 많이들 고민하고 있었다.
실제 KT&G상상마당 시각예술팀 팀원들의 전공과 경력은 매우 다양하다. 경영학이나 외국어문학과, 컴퓨터공학과 등 미술관련 학과가 아닌 참석자들은 학과 전공이 미술계로 진입하는 데에 장애요소가 되지 않을지 걱정스러워했지만, 큐레이터는 다양한 주제를 자유자재로 해석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에 미술관련이 아닌 다른 전공은 오히려 풍부한 경험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채용지원서의 ‘학력’은 (특히 신입이나 3년 미만의 경력직을 채용할 때) 그 인력이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인지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주제를 연구하고 발표하는 경험을 해보았는지 판단하기 위한 요소이다.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큐레이터들은 모두 석사 이상의 학위를 소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 채용은 상대평가이다. 학부 과정만 마친 인력보다는 심도 있게 자신만의 주제로 논문을 발표한 경험이 있는 석사 학위 소지자가 더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업무 경험이다. ‘경력’이 아니라 ‘경험’을 강조하는 이유는 학교에서 습득하기 어려운 팀워크, 조직 적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파트타임 업무나 인턴 같은 경험이라도 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 단추는 중요하지만, 망설이지 않기를 당부한다. 미술관이나 갤러리, 혹은 독립큐레이터의 프로젝트 어시스턴트, 기업 문화관련 팀 인턴 등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라면 뛰어들어 보기를 권한다. 완벽한 커리어 계획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유형의 큐레이터 업무를 경험해보면 자신에게 맞는 형태의 진로 방향을 설정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더 큰 곳, 더 연봉이 높은 곳, 더 안정적인 곳을 고르다가 첫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어떤 일이든 처음은 낯설고, 어렵다. 전시장에서 작품 빠진 자리의 못자국을 메우고, 디자이너와 시설담당자와 작품운송팀 등 협력자들과 하루 종일 전화와 메일을 나누고, 예산처나 경영진을 설득하기 위한 보고서에 진을 빼면서 이게 딱 나에게 맞는 일인지 알아채기는 쉽지 않겠지만,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분명 본인에게 맞는 다음 기회가 찾아온다.
이번 후배들과의 만남은 습관처럼 출근하던 일상에 환기가 되었다. 참가자들을 향한 응원은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기도 했다. 함께 전시를 만드는 사람들과 작가, 그리고 관람객 사이에서 소신 있는 조율가가 되겠다는 다짐을 공유하며, 현장에서 만나자는 인사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김혜영은 예술경영을 전공하고, 박물관 전시 이력을 시작으로 2013년부터 KT&G상상마당 시각예술팀에서 <20세기 거장시리즈 다섯 번째_퀀틴 블레이크(2017-18)>, <현대예술기획전-예술가와 디자이너의 사다리(2016)> 등 국내외 작가 전시를 만드는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