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진에 실린 글의 내용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TEL 02-708-2293 FAX 02-708-2209 E-mail : weekly@gokams.or.kr
미술계의 ‘담당자’를 위로하는 두어 가지의 조언
NEXT 아카데미 시각예술 직무역량과정 리뷰예술경영지원센터는 지난 해 12월 NEXT 아카데미 시각예술 직무역량과정의 일환으로 <국제 전시 진행하기 A to Z> 특강을 진행하였다. 전시기획과 국제교류 분야의 1~2년차 기획자를 대상으로 한 이번 교육은 현장 전문가를 통해 전시의 시작과 끝에 이르는 과정을 학습하고, 현장 커뮤니케이션과 프레젠테이션 노하우를 듣는 3회차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웹진<예술경영>에서는 프로그램의 강사로 참여한 장혜진 큐레이터를 통해 행사를 정리했다.
미술 현장에서 접하는 전시와 작품, 작가 외에 전시장 이면의 사무실에는 컴퓨터와 전화를 앞에 두고 바쁘게 움직이는 실무자들이 있다. 바로 큐레이터, 코디네이터를 비롯하여 ‘담당자’라 불리는 실무자이다. 대부분 학교 졸업 후 인턴 생활을 거쳐 프로젝트 단위 계약, 기관의 계약직 노동자로 일하는데, 따라서 이들 실무자의 업무 환경은 짧게는 몇 개월 길어야 년 단위로 계속해서 달라진다.
결과적으로 꽤 참담하다고 할 수 있는 이 노동 환경은 미술계에서 일하는 실무자로 업무 노하우를 축적하거나 자신의 특성을 반영한 업무 방식을 스스로 개발하는, 긴 호흡의 건강한 구조가 되기에는 부적절하다. 이는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도, 개인으로 구성되는 조직으로서도 대단한 손실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장에서 일을 시작하고 대략 3년 정도 기간이 지나면 본인이 소모되는 느낌을 자주 받고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하는 근본적인 고뇌에 쉽게 봉착하기 마련이다. 때로는 일에 있어서 발생하는 문제가 반복적이라 느끼지만, 그럼에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무적인 도움이나 조언을 구할 곳도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NEXT 아카데미 시각예술 직무역량과정’의 <국제 전시 진행하기 A to Z> 강의를 통해 앞서 언급한 관점을 다룸으로써 실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강의 내용은 전시의 본격적인 실행의 전 단계까지에 관한 것이었다. 구성은 다음 다섯 가지 ① 실무자가 수행할 수 있는 다양한 역할, ② 협력을 위한 팀을 구성하는 방식, ③기획, 실무, 실행의 단계별 전시(프로젝트)의 사전 준비 과정, ④ 실무자의 태도로써 언어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 ⑤ 다음을 위한 기록, 그리고 질의응답으로 이루어졌다. 이 글을 통해 다시 정리하며 실무자를 위해 의외의 당부를 아래 남기려 한다.
이전 담당자가 업무 관련 문서를 체계적으로 작성하고 종류에 따라 구분해 외장하드에 저장해 두었더라면, 우리가 실무자로 첫 업무에 들어갔을 때 뿐 아니라 업무 전반에 걸쳐 소모적인 노력은 하지 않았어도 될 것이다. 이 아카이빙 작업은 평소 업무 진행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고, 계약 종료 전 한 번의 점검을 통해 정리가 마무리되어야 한다. 아카이빙의 대상은 업무 관련 각종 문서 파일과 작가, 업체 등과 주고받은 중요 이메일의 사본이다. 파일과 폴더의 이름은 일관성이 있고, 직관적인 구성으로 누가 보더라도 따라갈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동료가 실무자로 왔을 때 업무의 시작은 이렇게 남겨진 업무 아카이브 폴더에 들어가 파일을 하나 씩 열어보며 머릿속으로 지난 업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해 보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극히 기본적인 내용이라 생각 할 수 있겠지만, 의외로, 심지어 연속적인 전시나 프로젝트의 경우에 있어서 황망할 정도로 직전 사업의 문서가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정말 많았다. 문서의 아카이빙은 업무 기간과 무관하게 단기 계약직 실무자도 평소의 실천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업무 경험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무사히 프로젝트를 열고 마칠 때의 시원하고 섭섭한 마음도 기억이 날 것이지만 동시에 업무 과오와 상관없이 담당 작가, 업체와 감정이 상했던 일도 떠오를 것이다. 전시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참여 작가나 함께 일하는 업체와의 소통 과정에서 미묘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해 언쟁이 오가거나 진행에 차질이 생길 정도의 상황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이럴 경우 상대 작가나 업체와 신뢰 관계가 무너지며 현장에서 다시 만나기 어려운 상황도 발생한다. 더욱이 국제적인 규모의 전시나 프로젝트에서는 국외 작가나 큐레이터에 지극히 한국적인 기관의 특성에 따른 업무 과정을 설명하기 더욱 난감할 때가 많다. 이에 미술 현장에서 실무자가 구분하여 사용하여야 할 언어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단순하게는 일상어로서 한국어와 영어가 있고, 이는 다시 한국어, 영어, 미술언어, 행정어로 세분화할 수 있다. 실무자의 큰 책임은 본인이나 작가의 큐레토리얼한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것으로, 그러자면 여러 대상을 두고 제안, 협상을 하며 타협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때 대상이 누구인가를 헤아리고 미술언어를 행정어로, 행정어를 미술언어로, 영어로 능숙하게 변용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과거의 불미스러운 순간들을 다시 가다듬어 생각해보면, 많은 문제의 원인이 분명 대상을 고려하지 못한 언어를 사용한 커뮤니케이션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강의를 앞두고 모든 신청자들로부터 사전 질문지를 받아 읽어보았었다. 비록 강의 후 질의응답 시간에 모두 답을 하지는 못하였으나, 그간 미술 현장에서 겪은 어려움들이기도 하여, 강의 내용과 응답을 빌어 실무자들에 조금의 도움을 드리고자 하였다. 따라서 많은 질문들이 여전히 제 머릿속에 남아있지만, 글을 마무리하며 하나의 질문을 정리하여 남기고자 한다.
질의응답의 말미에 미술 현장의 노동 환경과 조건이라는 것이 다른 분야에 비해 여전히 여러모로 뒤떨어져 있다는 것과 그러므로 실무자들이 늘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리는데 비해 임금이나 복지의 수준은 낮음을 이야기하였다. 이때 한 참여자가 “그렇다면 강사 본인은 그런 부당함을 받아들이며 일한다는 이야기입니까?”라 물었다. 이 질문은 지금 미술계에서 일하는 우리 실무자들이 모두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으며, 다음과 같이 답했다. “많은 실무자들이 그러한 부당함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일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로, 제가 맡은 역할과 책임을 통해 가능한 만큼의 변화를 고려하고 바꾸려 노력했고, 개선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으며 제 다음으로 일하는 동료는 그 자리에서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 것이라고 신뢰합니다.”
실무자가 당장의 자신의 업무 환경을 개선시키는 것은 구조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금 하는 노력은 동료를 위하는 것일 뿐 아니라 결국 자신이 속한 미술 현장의 업무 환경을 다듬어가는 결과로 돌아온다. 저는 이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예술 관련 현장, 특히 미술계에서 전시장과 책상을 쉼 없이 오가지만 외부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실무자’ 혹은 ‘담당자’라 불리는 수많은 동료들에 응원과 지지를 보내고자 한다.
장혜진은 서울을 근거로 활동하는 독립큐레이터로, 미술계의 노동자로 일하면서도 개인의 삶을 건강하게 지켜나가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다. 미술 현장에서 일하는 방식이나 조건 등 구조적인 것에 역시 관심을 두고 있으며 종종 관련한 강의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암스테르담 라익스아카데미 대화와 교류 프로그램 2017/18”을 담당하며 다국적, 동세대의 작가 8명과 함께 지금의 미술 현장과 상황에 대해 심도있게 짚어볼 기회를 가졌다. 2017년 열린 5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5)의 큐레이터, 2014년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 “귀신 간첩 할머니”의 전시팀장으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