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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기획이란, 미리 시간을 사는 것
NEXT 아카데미 공연예술 직무역량과정 리뷰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예경)는 올해 1월 NEXT 아카데미 공연예술 직무역량과정의 일환으로 <해외 마켓 참여하기 A to Z> 특강을 진행하였다. 공연기획과 국제교류 분야의 1~2년차 기획자를 대상으로 한 이번 교육은 현장 전문가를 통해 국제 교류를 통한 해외 마켓 참가 과정을 학습하고, 현장 커뮤니케이션과 프레젠테이션 노하우를 듣는 3개의 강의로 이루어졌다. 웹진《예술경영》에서는 프로그램의 강사로 참여한 성무량 프리랜서를 통해 행사를 정리했다.
원고 청탁이 온 시점은 봄꽃이 거의 질 무렵 이었다. 지난 1월 마친 <해외 마켓 참여하기 A to Z>의 국제교류 특강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야 해서 성가시긴 하겠지만, 그래도 선뜻 그러마 하고 승낙을 했다. 유난히 추운 날에 빼곡이 강의실을 채운 참석자들의 진지한 눈빛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강의는 사실 2017년 예경에서 발행한 『예술경영 가이드북-심플하게 해외진출』에 참여했던 터라 책의 내용을 공유하는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기도 했다. 예경 초기부터 실시해 온 다양한 아카데미 강의와 책들이 나와 있지만, 정작 실무에서 바로 쓰기에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해외마켓’이라는 대주제 아래, 마켓 리서치부터 공연단체 포트폴리오와 홍보 키트 만들기 등의 실무를 아우르는 강의에는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몰렸다.
갑작스런 한파에도 불구하고 꽉 찬 강의실에 들어서며 첫 번째 강의로 ‘공연을 어디에 소개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맡은 나는 긴장감과 함께 궁금증이 일었다. 국제교류가 왜 이렇게 기획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일까? 서울아트마켓을 시작한 이래 많은 작품들이 ‘팸스초이스(PAMS Choice)’라는 타이틀 아래 해외 진출을 해왔다. 그 외에도 국제 콜라보를 위한 ‘커넥션 사업(KAMS Connection)’ 사업이나 공연예술 해외유통을 지원하는 ‘센터스테이지코리아(Center Stage Korea)’ 등을 통해 해외진출이 이어졌고, 그만큼 국제교류 인프라도 확장되었다고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단체들은 더 넓은 세상으로 더 자주 나가고 싶은가보다.
수강생들은 1~2년차 초보자들도 있었지만 의외로 기획일을 5~6년 이상 해오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이 공통으로 직면하는 문제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지이다. 보통 더 빠르고 쉬운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가지고 컨택해야 할 타깃 3개만 찍어주세요’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이런 질문에 정답을 주고 싶지만 현실은 다르다. 소위 말하는 ‘케바케(case by case)’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물론 진출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리서치를 세밀하게 한다면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다. 예를 들어 5명으로 이루어진 현대무용의 타깃 시장과, 20명으로 이루어진 언어 중심의 연극이 진출 할 무대는 다르다. 또한 국제 교류를 통해 예술적 성취를 높이고자 하는 경우와, 유명한 해외축제에 초청받고자 하는 단체의 목표에 따라 찾아야 하는 루트도 다를 수밖에 없다.
예술적 성취든 경제적인 이유든 해외진출의 목표가 정해졌다면, 그에 맞는 타깃을 정한다. 이것은 장르나 진출 목적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범박하게 말하자면, 유럽은 아비뇽 페스티벌이나 에딘버러 페스티벌처럼 주로 축제가 자연스럽게 마켓 역할도 해왔다. 반면 캐나다, 미국, 호주, 아시아 등은 아트 마켓을 개최하여 자국 작품의 해외진출을 돕고 있다.
초보자가 국제 교류를 시작하기에는 후자의 마켓에 참가하여 정보를 교환하고 네트워크를 시작하는 것이 더 용이할 수 있다. 참가자들 목록을 점검해서 미팅을 잡고, 동시에 공식·비공식 행사에 능동적으로 참가한다. 이런 리서치 과정을 보통 1년 6개월 정도로 잡지만, 언어적 어려움이나 문화적 차이를 고려할 때 한국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2년 정도가 현실적일 것 같다. 이 정도 이상을 투자하고 기다릴 자신이 있을 때만 국제교류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런 식으로 나름의 국제교류 지도를 만들면서 지속적으로 네트워크를 하다보면 하나 둘 인맥이 쌓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개막식에서 혼자 서성이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아는 얼굴들이 늘어나고 급기야는 부스 사이에서 인사를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마켓에 명함을 내밀 정도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후의 작업은 혼자만의 것이고 그 성공률도 그리 높지는 않다. 파티에서 칵테일 잔을 앞에 두고 했던 대화들이 곧바로 초청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확인 메일을 쓰고, 스카이프로 체크하고, 새로 나온 작품의 클립을 보내기도 한다.
내가 진출해야 할 시장과 방향이 있다면 그리 험난하기만 길은 아니다. 누군가는 계속 프로그래밍을 할 것이고, 내가 팔고자 하는 작품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또 하나 명심할 점은 국내 공연예술 환경에 기반한 국제교류도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 둘은 당연히 따로 떨어져서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딛고 있는 환경에서 굳건히 설 수 있을 때, 해외 시장에도 나갈 수 있다. 흔히 말하는 국내용 작품과 해외용 작품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위와 같은 수고를 거쳐 원하던 곳에서 초청장을 받는 날이 온다. 그 이메일을 새벽에 열어보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를 들었다면, 당분간 닥쳐올 수많은 문제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 공연비는 아티스트에게 최소한의 예우를 해줄 수 있는 금액으로 책정하고, 모든 세금을 공제한 후에 받을 금액 즉 네트(NET)로 표기해 제시해야 한다. 비자와 비행기 예약은 빠를수록 좋다. 세트가 있을 경우는 규모를 최소화하고 까르네(Carnet, 세관검사 시 제출하는 무관세 통행증)를 미리 준비한다. 공연비와 횟수 등의 기본 정보가 들어간 초청장을 받자마자, 전체 재원을 확인하고 지원서를 낸다. 최악의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초청 파트너와 함께 B안을 공유하고 업데이트해야 한다.
이렇듯 기획자는 늘 앞서서 공연을 기획하고 제작, 유통한다. 미리 시간을 사는 것이다. 그 경계가 작품에 따라서 국내가 되기도 하고 해외가 되기도 한다. 그런 국제교류의 인프라가 넓고 깊을수록 한국 작품이 세계무대에서 선보일 기회는 확장될 수 있다. 국제교류를 시작하는 기획자들이 복잡한 실무에만 매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비전과 장기적인 시각으로 미래를 내다보길 바라며 리뷰를 줄인다.
성무량은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국제교류를 시작했고, 대전예술의전당에서 프로그래밍을 했다. 근래는 전문분야를 넘어 다양하게 활동 중이나, 국제교류의 확장된 영역에 관해서는 여전히 관심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