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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유럽 페스티벌 동행기
리뷰_유럽 페스티벌 투어일반적으로 유럽 소재 극장들은 늦어도 6월에 정규 시즌을 마감하고, 축제로 시즌 사이를 채운다. 안은미컴퍼니의 경우 대부분 극장에서 시즌 정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공연하거나, 연간 두 세 차례에 걸쳐 한 달 정도의 유럽투어를 다녀온다. 올 여름 6월부터 7월까지는 유럽의 유명 축제인 루마니아 시비우 국제 연극제(Sibiu International Theatre Festival), 체코 타넥 프라하(TANEC Praha) 그리고 스페인 바르셀로나 그렉 페스티벌(Barcelona Grec Festival)로 축제 투어를 다녀왔다.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지금까지의 유럽투어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는 춤 시리즈’를 표방한 <댄스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으로, 평범한 할머니 10명이 9명의 전문 무용수들과 함께 무대 위에서 춤을 춘다. 관객들은 초반엔 할머니들의 출연 자체가 갖는 톡특함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지만, 이내 작품 속에서 ‘춤이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등의 본질적인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당대의 이슈에 관심이 많은 유럽인들은 한국의 ‘지금, 여기 존재하는 컨템퍼러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이 작품에 열광한다. 그러다보니 이 작품은 2011년 한국에서의 초연과 2014년 프랑스 파리에서의 첫 해외공연 이후, 유럽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도 공연 요청이 들어오는 효자 공연이 되었다.
축제는 단기간에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공연예술 관계자들을 모이게 한다. 따라서 안은미컴퍼니로서도 유럽의 굵직한 여름 축제를 방문하여 다양한 프로그래머를 만날 수 있고, 나아가 한국의 현대무용 자체를 알리는데 안성맞춤인 시간이었다. 이번에 다녀온 시비우 국제연극제, 타넥 프라하, 그리고 그렉 페스티벌 축제들은 길게는 지난 3년 전부터 안은미컴퍼니를 지켜보며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를 초청하기 위해 오랫동안 공을 들였다. 기다려왔던 시간만큼 축제의 프로그래머들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특히 타넥 프라하 예술감독인 이보나 크루즈마노바(Yvonna Kreuzmannova)는 3년 전 파리에서 이 작품을 접한 후 꾸준히 우리와 교류하며 초청의 뜻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유럽의 유명축제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가 각 축제에서 관객들과 만나고 교감한 과정을 담아보았다.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지방 시비우의 ‘시비우 국제연극제’는 1993년에 시작한 25년의 역사를 가진 축제이다. 매년 꾸준히 규모를 늘려, 현재는 전 세계 70여 개국의 예술 종사자가 500여개의 행사를 70여개의 장소에서 축제를 연다. 또한 하루 평균 6만 여명의 관객이 모이는 대규모 축제이기도 하다. 시비우 자체는 인구 15만여 명으로 그리 큰 도시가 아니지만, 여름에는 도시 전체가 축제 그 자체가 되는 곳이다. 올해는 ‘열정(Passion)’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캐나다 출신 안무가 마리 쉬나르(Marie Chouinard)의 공연을 비롯해 연극·야외공연·컨퍼런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안은미컴퍼니는 시내의 한 고등학교의 체육관을 개조한 공연장에서 관객과 만났다. 3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다른 공연들에 비하면 작은 규모였지만 관객들과는 조금 더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공연의 마지막 댄스파티에 출연한 무용수와 할머니들과 함께 무대 위에서 몸을 흔들며 교감했다.
체코의 축제 ‘타넥 프라하’는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타넥 프라하는 매년 6월 열리는 국제현대무용축제로, 현대무용의 세계적 동향을 살피고 타 장르와의 협업이나 새로운 시도를 지원하는 장이다. 안은미컴퍼니는 두 번의 공연을 통해 프라하 관객과 만났다. 타넥 프라하에서는 공연뿐만 아니라 ‘움직임 워크숍’과 ‘한식 체험 워크숍’을 병행했다. ‘한식 체험 워크숍’은 현지인들과 김밥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공연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한국의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였다. 또한 ‘움직임 워크숍’은 한국무용의 기본동작을 익히며 한국의 문화예술의 기조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무용 페스티벌에서 ‘한식 체험 워크숍’으로, 그것도 김밥 만들기 행사를 진행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보다 넓은 범위에서 우리나라 문화를 체험할 수 있고, 다양한 연령대의 현지인들이 참여해 할머니들과 함께 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그만큼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그렉 페스티벌’은 바르셀로나의 여름을 책임지는 축제로, 연극·무용·음악·서커스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유럽의 주요 축제 중 하나이다. 메인 공연장인 그렉 씨어터(Grec Theatre)에서 축제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올해 42회를 맞이하는 긴 역사를 가진 곳이기도 하다. 40여 년 동안 그렉 페스티벌은 카탈루냐의 공연작품을 선보이는 현장이자 해외 작품들을 소개하는 창으로서 이 지방의 문화 선구자 역할을 했다. 안은미컴퍼니의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올해 그렉 페스티벌이 소개하는 핵심적인 해외 작품들 중 하나였다. 축제는 바르셀로나 시내 7개의 공연장에서 진행되는데, 우리 작품은 그릭 페스티벌의 주공연장인 메르카 데 레 플로르(Mercat de les Flors)에서 관객과 만났다.
지난 한 달여간 안은미컴퍼니와 동행하며, 해외 투어에서 축제 측과의 의사소통과 현지 적응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우리는 공연 진행에 필요한 모든 사항을 사전에 축제 측과 논의하여 현장에서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지만 언제나 해외 공연은 현장을 미리 방문할 수 없다는 가장 큰 위험을 안고 가며, 그 과정에서 공연을 단 며칠 앞두고 돌발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빠른 판단과 적응력으로 공연을 진행하곤 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반인들은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고 관객에게 박수를 받을 일이 거의 없다. 특히나 무대에 오른 할머니들은 한국에서 비슷한 패턴의 삶을 살아오고, 자식들 뒷바라지에 당신네들 걱정은 뒤로 미뤄두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작품을 통해 러닝타임 내내 엄마나 할머니가 아닌, 진짜 자신을 드러내고 무대 위에서 박수를 받는다. 공연 후 할머니들은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관객들을 늘 마주하게 된다. 공연의 여운을 간직한 그들은 연신 할머니들에게 환호를 보내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리며 감사 인사를 한다. 할머니들 또한 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것에 기쁨을 느끼며 서로 교감한다. 이처럼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관객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여행하고 또 무대에 오르는 10명의 할머니들에게도 큰 변화를 선사하는 작품인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 작품이 또 다른 곳의 관객과 꾸준히 만나며 한국의 현대무용과 공연예술의 현재를 공유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안은미컴퍼니는 2013년 프랑스 파리 여름축제에서 <심포카 바리> 공연을 올린 이후 유럽의 주요 극장과 프로그래머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꾸준히 초청 받고 있다. 유럽의 초청공연이나 공동 프로젝트를 지속하기 위해, 안은미컴퍼니는 2016년부터 무용 전문 프로그래머인 장 마리 샤보(Jean-Marie Chabot)를 통해 해외 실무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여름 축제투어 뿐 아니라 안은미 예술감독은 프랑스 파리 떼아트르 드 라 빌의 2018/2019 시즌 상주안무가로 활동하며 이번 시즌 <안은미의 북.한.춤>을 선보였다. 순수한 민간무용단인 안은미컴퍼니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은 열정 못지 않은 고집 덕분이다. 이번 여름 유럽투어는 그동안 안은미컴퍼니가 쏟은 땀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상은 프랑스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하고 안은미컴퍼니에서 해외투어를 비롯한 공연기획에 참여하였다. 현재는 국립극장에 근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