톤마이스터(Tonemeister, 소리의 장인)는 클래식 음반을 녹음할 때 레코딩 프로듀서와 사운드 엔지니어의 역할을 동시에 맡아 음반의 지휘자로 불린다. 전 세계적으로 희소한 직업으로, 톤마이스터 최진은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클래식을 들을 수 있도록 자신의 지식과 시간을 나누고 있다. 잘 들어주는 섬세한 귀와 웃음 가득한 유쾌한 입을 가진 소리 장인을 양재동의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클래식은 공기처럼 삶 속에 흐른다

“어떻게 작은 부품이 모여 기계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가 날까?” 톤마이스터 최진은 어려서부터 오디오 기계를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았다. 클래식 음악 가족의 집안이라 클래식을 줄곧 들으며 살았고 다른 건 몰라도 오디오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으셨던 부모님 덕분에, 어떤 소리가 좋은 소리인지 자연스럽게 깨달으면서 자랐다.

소리에 대한 공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중학교 때는 믹싱 콘솔로 처음 녹음을 시작했을 정도로 녹음 기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어요. 왜 음악을 전공했냐, 음향기기가 왜 좋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자주 접하다보니 좋아진 거죠. 그래서 대학 시절 호른을 전공한 후, 톤마이스터가 되어 음악과 기술을 접목한 일을 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고 생각해요.

소리 장인이 되기 위해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로 유학을 떠나 뒤셀도르프 국립 음대에서 사운드·비주얼엔지니어링을 전공했다. “우뇌와 좌뇌의 기능이 다른데 이를 수시로 왔다 갔다 해야 했다”라는 말처럼 화성, 청음, 음악사부터 전기공학, 물리, 컴퓨터프로그래밍까지 마스터해야 했다. 한 과목에서 세 번 이상 떨어지면 낙제를 하게 되니, 공부는 힘겨움의 연속이었다. 톤마이스터 공부의 밑바탕이 되어준 것이 대학 시절의 전공이었다.

이 일을 하는 데 대학 시절 클래식을 전공한 것이 어떻게 도움이 되나요? 톤마이스터는 기본적으로 클래식 음악의 베이스가 탄탄해야 합니다. 오케스트라, 체임버, 성악 등 다 알아야 해요. 엔지니어로서 음향기기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도 완벽하게 마스터하고, 프로듀서로서 연주자를 이해하고 리드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대학에서 클래식 음악, 호른을 전공하면서 기본기를 쌓았으니 톤마이스터 공부를 할 수 있었죠. 세계적인 음악가와 소통하고 방향을 이끌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입니다.

음반의 지휘자, 연주자의 기량을 꽃피우다

그가 녹음한 곡을 들으면 마치 연주장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100년이 지나서 모든 연주자가 이 땅 위에서 사라져도, 녹음된 음악은 시공간을 초월해 영원토록 남게 된다. 톤마이스터는 녹음 현장의 규모나 모양, 악기 구성, 배치 등에 맞춰 마이크를 설치하고 최상의 소리를 뽑아내야 한다.

톤마이스터로 어떤 작업들을 해왔나요? 뒤셀도르프의 콘서트홀인 톤할레에서 톤마이스터로 활동하며 유럽 메이저 무대에 발을 디디게 되었고 그 후, 구 필립스 레코딩 센터인 폴리힘니아 인터내셔널에서 활동했어요. 현재는 유럽 현지와 한국을 오가며 다양한 녹음 프로젝트 진행하고 있는데, 소프라노 조수미, 피아니스트 백건우, 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정명화 등 거장들과 작업을 같이했죠.
오케스트라의 경우 기본 30~40개의 마이크를 설치하는데, 10cm 높이의 차이에도 소리가 달라져요. 그래서 연주를 계속해서 들으면서 오케이 사인이 나올 때까지 반복해서 지시하죠. 톤마이스터는 음반의 지휘자로 불리는 만큼 녹음 시에는 지휘자도 모든 지시를 따르게 되어 있어요. 음반 녹음의 경우, 하루 6~7시간씩 며칠을 녹음해야 끝이 날 정도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에요. 이렇게 작업한 음원(테이크)이 보통 400개, 많을 때는 1,000개인데 최고의 조각을 붙이고 밸런스를 맞춰 음악이 탄생합니다.

톤마이스터로 일하면서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하루 10시간씩 집중해서 작업해야 하는 일이라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심이 필요해요. 어떤 연주가 정답이고, 연주자의 기량이 언제가 최고인지, 현재 녹음이 최상의 상태인지 누구도 알 수 없기에 예민하게 귀를 열어 놓고, 반복해서 듣고 또 듣는 수밖에 없어요. 그럴 때는 스트레스가 대단하죠.

힘든 과정 속에서도 일하면서 언제 보람과 기쁨을 느끼나요? 연주자 자신도, 자기가 낼 수 있는 최상의 소리를 모를 때가 있어요. 연주하다가 잘 안되면 울기도 해요.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소리 하나만 들으면서 함께 최상의 소리를 찾아가죠. 그러다가 딱 원하는 소리를 찾을 때가 있어요. 암흑 속에서 꽃이 만발하는 느낌, 바로 그런 걸까요? 기량이 아직 덜 여문 연주자들의 실력을 끌어올려 줬을 때, 기쁨은 실로 말할 수가 없죠.

다음 10년을 위해 지금 해야 할 일

그는 누구보다도 클래식 음악의 미래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해 왔다. 한국의 음악 산업 발전을 위해 최소 20명 이상의 능력 있는 톤마이스터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해외 최고의 톤마이스터들과 경쟁하며 쌓아 온 기술을 시간이 될 때마다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클래식 레코딩 마스터 클래스’에서 업계의 핵심 노하우를 아낌없이 나누어주고 있는 이유도 그중 하나다. 사람들이 양질의 클래식을 보다 많이 접했으면 좋겠다는 사명감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진행 중인 새로운 작업 있다면 무엇인가요? 일 년 중 세 달을 해외에서 작업하며 분주한 편인데 최근에 한 가지 숙제가 더 생겼어요. 2017년 5월 말부터 한국에서 4K UHD 방송이 세계에서 최초로 공중파 방송을 시작하게 되거든요. 여기에는 뛰어난 화질만이 아닌 몰입감이 대단한 MPEG-H 3D 사운드가 탑재될 예정이에요.
독일의 경우 이미 몇 년 전부터 음향 관련 주요 컨벤션의 주제가 ‘3D 사운드’일 정도로,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음악 산업의 판도가 바뀌어 가고 있어요. 한국은 세계에서 최초로 4K 공중파 방송을 시작할 정도로 인프라에 대한 발전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앞서 있지만, 그 표준에 맞는 음악 콘텐츠의 제작 경험은 아직 걸음마를 시작한 정도의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새로운 녹음 방식의 안정적이고 빠른 정착을 위해 MPEG-H 3D 사운드 포맷을 주도하고 있는 독일 정부 산하 프라운호퍼 인스티튜트와 함께 앞으로 1~2년을 매진할 계획입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둔 일본은 8K 방송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미 3D 사운드에 대한 준비와 경험이 꽤 축적되어 있어요. 세계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판이 짜인 기회가 온 한국에서 앞으로 나올 콘텐츠들이 세계에서 먼저 앞서가느냐, 아니면 과거와 같이 뒤따라가느냐에 대한 중요한 전환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리 장인으로서 어떤 가치를 세상과 나누고 싶으신가요? 명백한 사실은 한국의 IT기술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기술을 넘어선 본질적인 것, 무엇을 담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 나라의 문화적 능력이 중요하게 여겨지는데, 음악은 문화의 기반이 됩니다. 지금 음악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점에 있어요. 모든 것이 변하고 있죠. 저는 한국의 음악과 음악 산업이 지금 시기를 발판 삼아 더 도약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문화의 가치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빛이 나기 마련이니까요. 더불어 제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더 열심히 찾아 세상과 나누고 싶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말에 귀기울여주고 경청하는 사람이다. 기술을 넘어선 본질, 결국 사람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화가 사람의 가치를 높일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이 시대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찾고 한발 앞선 기술을 나눠주는 사람, 소리 장인은 한국 클래식의 도약을 위해서 오늘도 분주하다.

인생UP데이트

톤마이스터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아요. 이 일은 좋아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음악 전공자들이 너르게 가능성을 열어 두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녹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클래식 음악 전공자들이 레코딩 마스터 클래스에 참여한 경우, 처음에는 버벅대다가 며칠 지나면 녹음 엔지니어링 전공자의 70~80% 수준으로 기량이 올라오는 경우가 적잖이 있습니다. 듣는 귀가 있으니까요. 미술을 한 사람이 포토샵을 잘하는 것처럼, 예술을 했기 때문에 그 도구를 더 잘 다룰 수 있는 겁니다. 예술을 이해하는 감각을 가졌다는 것, 큰 장점이에요. 그 감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최진 프로필
학력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 재학 중 독일행
- 독일 Robert Schumann Musikhochschule Fachhochschule Düsseldorf, Ton und Bild 졸업

주요 경력
- Deutsche Grammophon, Decca, Warner Classics 등 메이저 음반 레이블, 백건우, 정경화, 조수미, 서울시향, 런던 심포니 등 최정상급 연주자의 레코딩 프로듀서·톤 마이스터
-2005년 그래미상 노미네이트
-2015년 Echo Klassik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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