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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하나 들고 문화의 국경을 넘다
[문화예술청년 인생 UP데이트 Ⅲ]김은하_문화기획자어려서부터 오대양 육대주에서 살아 보는 것이 꿈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찾아 국경을 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 영어, 스페인어, 불어 등 4개 국어를 구사하며 언어의 장벽도 없앴다. 어디든 트렁크 하나만 들고 떠나서 그들에게 배우고 한국의 문화도 전해주고 온 사람. 그리고 국경 밖에서 체득한 것들을 한국인들에게 문화 행사로 돌려주고 있는 김은하 문화기획자를 만났다.
남들이 보면 특이하고 특별한 삶이지만 정작 본인은 “남들처럼 큰 포부를 가지거나 성공의 비전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평가한다. 그러니 무엇이 되어야 한다가 아니라, 가서 배우겠다는 가벼움만 가지고 떠났다. 트렁크에 꼭 필요한 물건 한 개씩만 챙겨서 국경을 넘었고, 호주, 유럽, 아프리카, 남미까지 돌며 가득 채우고 돌아왔다.
처음 해외에 나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처음 해외로 나가 살아 본 곳은 대학을 졸업하고 떠난 호주였어요. 영어 공부할 어학원은 알아봤지만, 정작 살 집도 구하지 않고 공항에 도착해서 그날 머물 게스트하우스를 구했어요. 전공인 영어 공부를 더 해 본다는 심산이었지만, 무엇을 해야겠다는 특별한 계획은 없었습니다. 거기서 만난 한국인 친구의 소개로 영화 편집 아카데미를 다니며 학사 과정을 마쳤어요. 영화 편집 업무는 창작의 연속이라 감독이 아무리 영상 촬영을 잘 해 온다고 하더라도, 편집에서 내용의 질이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일이 비일비재해서 흐름을 다시 정리하고 스토리텔링을 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다양한 곳에서 살아 보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있나요? 한 곳에 머물면 그곳이 전부인지 알고 살게 되잖아요. 일주일 정도 여행을 하는 것, 관광과 6개월 이상의 삶을 살아 보는 것은 천양지차입니다. 어려서부터 오대양 육대주에서 살아 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안주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나를 교육하겠다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아요.
영어 전공이 삶과 일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어려서부터 시나 글을 쓰는 것처럼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이 좋았어요. IT회사, 극단, 축제기획국, 문화원 등 지금까지 일한 곳은 외양은 달라도, 크게 보면 사람과 소통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곳이죠. 영어를 전공했으니 외국 사람들과 소통이 원활했고,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도 유사한 어족이니 더 쉽게 배우기도 했죠.
호주 유학 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영화 관련 업무를 하려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영화계의 상황이 더 열악하고 도제식으로 가르치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물색을 하다가 방향을 바꿔서 삼성전자의 유관 벤처 회사에 들어가게 됐는데, 내비게이션이 처음 나올 때라 새로운 업무에 도전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곳에서 해외 계약 관련 업무를 맡았고 원활한 의사소통 능력은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월급을 받는 생활 중에도 트렁크를 들고 국경을 자주 넘나들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자원봉사를 했다. 케냐와 탄자니아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연필, 종이, 지우개 하나까지 모든 것을 사주면서 공부를 가르쳤다. 한국인이 낯선 곳이니 한국인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남달랐고, 그들과 생활하면서 한국의 문화도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었다. 아프리카의 붉은 태양 아래 검게 그을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취직하려고 했을 때,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회사보다는 보다 동적이고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일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공연계에 발을 디디게 됐다.
공연예술계로는 어떻게 이직을 하게 되었나요? 해외에서 돌아와서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려놨더니 클래식 공연 기획사로부터 전화를 받았어요. 해외 공연자를 섭외하고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니 외국어가 되는 사람을 찾았나 봐요. 그때 ‘지금껏 공연계로는 한 번도 취업하려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어머니가 국어 선생님이라 어려서부터 글 쓰는 것에 관심이 많았는데, 공연예술은 모든 것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니 나와 오히려 맞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극단에 들어가게 됐죠.
극단과 축제에서 어떤 업무를 맡았고 보람은 무엇이었나요? 극단과 의정부음악극축제는 모두 해외 관련 업무를 맡았어요. 극단에서는 우리 공연의 해외 진출을 돕는 일을 했으니 한국의 문화를 세계인에게 내보인다는 자부심이 있었죠. 이후 의정부음악극축제로 옮겼는데, 그곳에서는 해외프로그램 팀장으로 일했어요. 해외의 아티스트들을 발굴해서 초대하고, 그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역할을 하면서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의정부음악극축제에 있다가 다시 떠난 곳은 아직은 우리에게 낯선 남미였다. 처음에는 어떤지 알 수 없으니 여행 삼아 떠났다가 칠레 국립대학교의 문화경영 석사 과정에 입학하게 됐다.
칠레에 있으면서 칠레 대한민국대사관의 문화 관련 행사를 돕기도 했다. 또 서울에서 열린 ‘서울변방연극제’의 폐막작으로 <갈바리노>라는 칠레 작품을 들여와 소개하기도 했다.
주멕시코한국문화원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요?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국제문화교류 전문인력 양성사업(NEXT)에 선정되어 멕시코 문화원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었어요. 멕시코가 한국의 스무 배 크기일 정도로 남미는 광활한 대륙이에요. 특히 요새 한류 붐을 타고 한국 사람,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어서 주멕시코한국문화원에서 공예, K-POP 등 문화 관련 행사를 담당하고 멕시코의 페스티벌에 한국 작품을 소개하며 교두보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멕시코시티의 지하철에 한국을 주제로 50m에 이르는 대규모 사진 전시회를 개최해 경복궁, 창덕궁과 같은 고궁과 기품 있는 한옥 등 한국 문화의 정수를 시민들이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소개했죠. 한복을 입고 큐레이터 역할을 하면서 귀빈들에게 사진의 의미를 설명했어요. 그들이 설명을 듣고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질 때 좋았죠. 멕시코에서 업무가 끝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지역에서 일하고 싶다’라는 갈망이 들어 광주에 위치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의 ‘ACC월드뮤직페스티벌’의 팀장을 맡아보겠냐는 제안이 들어왔을 때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ACC월드뮤직페스티벌의 의미는 무엇이고 어떤 일을 했나요? ACC월드뮤직페스티벌은 2017년 현재 8회를 맞는 행사로 ACC가 설립되기 전부터 시작되어 ACC 사업 중 가장 오래된 프로젝트입니다. ACC가 아시아의 문화, 그 속의 다양한 문화를 알리겠다는 취지를 가지고 설립됐으니 ACC월드뮤직페스티벌은 설립 취지에 매우 적합한 행사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우리는 서구 국가들의 음악 축제에서 아시아의 음악을 얘기하고 서로의 음악을 보고 들을 수 있었어요. 이제는 우리가 주체가 되어서 음악을 교류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고 ACC월드뮤직페스티벌이 그 구심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김은하 기획자는 “아시아 음악, 우리의 음악 시장을 키워 가야 할 때라고 인식했다”라며 자신이 지금껏 응축한 역량과 열정을 담아 보여주었다. 대만월드뮤직페스티벌에서 소개된 16개 대만 소수민족의 음악을 우리 축제에 초청해 공연하고 우리 공연단도 초청받아서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지속적인 교류를 할 수 있도록 아시아의 월드 뮤직 담당자들을 초대해 컨퍼런스도 열었다.
그는 지금까지 오대양 육대주를 넘나들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문화를 체험하는 데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문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행동력과 다른 문화를 흡수하고 포용하는 능력이 우리 문화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고 있다.
복 받은 극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인생에서 뚜렷한 목표와 꿈을 찾지 못해 방황하기 마련이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어떠한 직업을 택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시간을 많이 거쳤거든요. 저의 경우, 제가 원하는 것을 당장 찾아내기보다 살면서 원치 않는 길들을 제해 가는 과정을 통해 저만의 방향을 잡아 왔습니다. 원하지 않는 일을 가지치기해서 과감히 버리는 것이, 역설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찾는 지름길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김은하 프로필
학력
- 한성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 Australia TAFE North Sydney TV&FILM Production 수료
- 칠레국립대학교 대학원 문화경영학전공 입학, 휴학 중
주요 경력
- 前 의정부예술의전당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국제교류팀장
- 前 주멕시코한국문화원 국제문화교류전문가(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문화교류 전문인력 양성사업)
- 前 (사)자라섬청소년재즈센터(가평자라섬재즈페스티벌) ACC월드뮤직페스티벌 사업팀장
- 前 국립아시아문화전당(Asia Culture Center) 전문위원
주요 활동
- 서울변방연극제 협력 PD, 칠레 연극 초청 유치(2013)
- 주칠레대한민국대사관 문화예술자문(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