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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경영의 이중적 정체성
[신년인터뷰 : 예술경영의 미래를 논하다 ②] 이승엽_(재)세종문화회관 사장2018년을 맞아 웹진[예술경영]은 ‘예술경영의 미래를 논하다’를 주제로 문화예술의 변혁기 속에서 앞으로 ‘예술경영’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각계각층 예술경영인의 생각을 묻고자 한다.
지난 1월 11일, 영하 13도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 (재)세종문화회관(이하 세종) 이승엽 사장을 만났다. 1시간여의 인터뷰에서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경영이 가진 속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균형감을 느낄 수 있다.
30여년 가까이 예술경영 현장과 강단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데, 사람과 조직을 이끄는 예술경영 철학은 무엇인가?
1987년에 예술의전당에 입사했으니, 예술분야에서 일한지 올해로 30년이 넘었다. 나만의 철학을 한마디로 말하긴 어렵지만, “일종의 동료 의식(동업자 의식)을 바탕으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자”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약 600명의 세종문화회관 스태프 중에 지금 나는 ‘사장’의 역할을 맡은 한명의 스태프일 뿐이다. 사장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 된다. 물론, 가치지향적인 리더십도 중요하고 필요할 때가 있지만, 소위 ‘나를 따르라’는 식은 내 방식이 아니다. 나의 가치관을 강요하거나 앞세우는 방식은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다.
1990년대에 ‘예술경영’이란 개념이 도입되고 30년이 지났다. 그때의 예술경영과 현재의 예술경영은 어떤 포지션에 있으며 앞으로 예술경영이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1960년대 말 서구에서 확립된 ‘예술경영’은 1980년대 후반 즈음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 서구와는 약 20년 정도 시간 차이가 나지만, 사실상 큰 차이가 있진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 예술경영은 30년 정도 지나면서 변화하고 있는데, 이것은 ‘예술경영’ 자체가 변화한 것 보다는 근본적으로 ‘예술 판의 변화’ 때문에 생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서구의 100년에 해당하는 변화를 우리는 30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상상할 수도 없이 빠르게 ‘팽창’, ‘확대’, ‘폭발’하는 것을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변화의 대표적인 것이 ‘직군의 전문화, 세분화’이다. 이전에는 한명이 모든 일을 다 했지만 점차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전문적인 직군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문화예술교육사’ 등이 그러하고, ‘캐스팅 디렉터’가 공연예술부문에서도 필요할 수 있다.
과거 30년이 양적 팽창의 시기였다면, 현재는 급격한 성장 후의 안정기 내지는 적응의 시기, 질적 변화의 시기로 접어들었다고 본다. 초창기에는 예술경영이란 분야 자체가 생소했다면, 지금은 전반적인 인식이 확산되었다. 때문에, 예술경영의 입장에서 보자면 문화예술분야 종사자들에 대한 처우개선 등 질적인 변화를 도모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예술경영인이라 하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선, 예술경영이라는 카테고리는 매우 넓은데, 공연예술로 보자면 기획자가 하나의 작품을 두고 기획, 홍보, 사업정산까지 전반적인 영역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지만, 프리랜서가 아닌 이상 한 단체·기관에 소속된 한명의 구성원이다. 한 작품의 창작부터 실연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다양한 영역에 대한 정체성은 이미 명확하다. 다만 세분화‧전문화되면서 각자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이다. 예를 들면 연극에 안무가 필요할 때 ‘안무가’라는 직군이 자리 잡은 것과 같다.
반면에 예술경영은 이를 다루는 분야도 폭넓을 뿐만 아니라 직군에 따라 난이도나 재량권의 편차가 다른 분야에 비해 훨씬 크다고 본다. 예술경영인이라 하면 예술기관·시설 등의 CEO의 역할을 하는 예술경영인부터 실제 작품 기획, 재원조성, 관객개발, 공연장 운영 등의 업무를 하는 실무담당자까지를 포괄한다. 지난 30년의 세월 동안 예술경영이 도입되고 확산되기까지 그 안의 직군과 역할을 구분하는 체계가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경영은 이중의 정체성을 갖는다고 말하곤 한다. 예술경영인으로서의 정체성 뿐 아니라 작품이나 프로젝트의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이 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경영을 ‘간학문’이라고 하고 ‘창’으로 비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예술경영 그 자체로 존재한다기보다 소통과 관계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예술경영이 예술 판의 변화에 따라 생겨난 것이라면, 예술경영이 어떻게 바뀔 것으로 생각하는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예술경영은 예술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예술은 사회전반에 걸쳐 영향을 받는다. 즉, 예술경영은 사회의 변화 속에서 움직여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의 ‘예술 판의 변화’로는 팽창, 세분화, 부익부빈익빈 등으로 짚어볼 수 있다. 예술경영에도 정확히 적용되는 것들이다. 어떤 글에서 ‘연출이 20세기적 직분이라면 예술경영은 21세기적 직분’이라고 한 적이 있다. 이 말은 그 직분이 생긴 시간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역할의 비중의 추이도 전제한 것이다. 일 자체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직분으로서의 예술경영이 등장한 것은 20세기 후반이고 예술생태계에서 역할을 점점 확대해왔다. 그렇게 30년이 지난 것이다. 우리 사회의 변화 속도로 보면 30년이 결코 짧지 않다. 예술경영은 더 이상 낯설고 새로운 직분이 아니다. 존재감을 확보하는 것과 동시에 부채감도 가져야한다고 본다. 예술경영이 예술생태계에서 맡는 역할은 점점 중요해질 것이므로.
극장이 현재 1,200개 정도로 많아졌는데, 그 이유가 극장을 세우면서 ‘세이의 법칙(Say's law,-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논리가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런 논리가 잘 맞지 않는 시대인 것 같기도 하다.
극장 수의 증가는 정부가 주도하여 정책적으로 하드웨어 측면의 문화예술 기반시설을 확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지방자치제도 실시와 더불어 문화예술에 대한 공감대 확산의 주장이 맞물려 각 지역마다 공연시설 마련을 지자체가 선도하게 되었고, 극장크기와 수용성을 감안하면 공공극장이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기반마련 측면에서 공연장으로 대표되는 하드웨어의 구축을 선행한 결과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의 견해가 모두 존재하지만, 이미 각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로 진입한 이상 기존의 구성을 조율하며 함께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이다. 지금은 극장의 수 증가속도가 현격히 둔화된 만큼 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져야할 시점이다. 우리를 포함한 공공극장이 스스로의 역할에 대해 더 고민하고 실행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예술경영’을 잘 할 수 있을까?
이전에 예술경영인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하나는 ‘소명형’으로, 예술의 가치를 다른 어떤 것보다 우위에 두고 이에 대한 사명감이 동기부여가 되는 헌신적인 유형이다. 또 하나는 ‘직업형’으로 문화예술분야의 한 영역으로써 예술경영을 직업적으로 선택해 그 일을 충실하게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물론 사람마다 두 유형이 서로 혼재해 있긴 하다. 대체로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경영인들은 소명의식으로 일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예를 들자면 고(故) 강준혁 선생은 대표적인 소명파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분은 예술을 통해 우리 사회와 사람들의 삶의 품격이 높아지길 바라며 일하셨다. 주어진 일이 본인의 소명의식과 맞지 않는다면 의지에 맞게 바꾸어나갈 분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주어진 미션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을 우선으로 여긴다. 그러니까 ‘직업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멋모르고 선택했지만 내가 맡은 일에 책임을 다 하기 위해 지금도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있다. (웃음)
공연예술 소비시장 확대를 위해 관객개발의 측면에서 어떤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가?
관객개발은 재원조성과 더불어 예술경영의 영원한 숙제와 같다. 마치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붙어 있으면서도 자세히 보면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다. 관객개발의 목적은 운영 주체가 누군지에 따라 다르다. 국공립극장이나 공공예술단체는 국민의 문화 향유권 확대의 공익적 목적을 추구하는 반면, 민간 공연기획사들에게 관객개발의 목적은 지속적인 관객유치를 통한 수익 창출이다. 관객개발은 서로 다른 각 주체의 목적과 방향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 바탕 위에서 각 주체들이 역할을 하면 될 것이다. 정책 주체들도 그 전제에서 정책을 펼쳐야 한다.
올해 공연예술계의 이슈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변화 또는 변화의 준비’라고 할 수 있겠다. 세종 웹진 <스토리175>의 칼럼에 게재했던 ‘예술정책 지형의 색다른 시간 구간, 2000년, 2010년 그리고 새 정부의 태동1)이란 글과 연관이 있다. 당시 글에서 2000년과 2010년은 정권 교체 후 3년 차에 해당되는 해이자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고 난 후로, 예술정책의 변화 양상이 두드러진 해였다. 지금의 정책적 요소들이 그 때의 변화로 이루어졌다. 2000년에 예술의 전당이 특별법인이 되고, 국립단체들이 독립했으며, 무대예술인제도‧안전진단제도‧콘텐츠 관련 법률이 그때 만들어졌다. 성과는 2000년에 드러났지만 그를 위한 ‘내‧외부의 힘과 반응’의 기반은 그 이전에 있었던 것이다. 2010년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으로 치자면 2019년이 그런 해가 될 것 같다. 올해는 본격적 변화의 열상을 피우기 위한 사전작업과 과정의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작년 세종문화회관의 매거진 <문화공간>을 중단하고 시대변화에 맞춰 웹진에 집중하겠다고 이야기 한 바 있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 1기 이사이시자, 웹진<예술경영>의 1기 편집위원으로서 현재 웹진<예술경영>에 대해 조언한다면?
현재 세종 역시 <스토리175>라는 이름으로 웹진을 격주 발행했으나, 올해부터는 매주 발행할 계획이다. 권력이 정보에서 나오는 시대라는 말도 있는 듯이, 정보를 다루는 매체로서 정보소비자인 문화예술계 독자들의 특성을 고려해 가능한 자주 발행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있다. 현대를 사는 독자들의 스피드를 감안하면 격주는 다소 길다. 콘텐츠의 질도 중요하지만, 충분치 않더라도 가능한 자주, 다양한 정보를 서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웹진<예술경영>은 10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정통성을 부여받았고, 이 때문에 내외부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도 유일무이한 예술경영 전문매체로 지속되길 바란다.
새해를 맞아 웹진 <예술경영> 독자들이기도 한 예술경영 후배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덜 지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은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로 가득 차 있다. 예술경영 현장이 딱 그렇다. 매우 힘들지만 그나마 시도라도 해볼 수 있는 대상은 나 자신이나 내가 하는 일이다. 그로부터 출발하면 좋겠다.
1) 세종문화회관 웹진 STORY175 칼럼 참조(http://story175.sejongpac.or.kr/CAST175/32/199.do)
주요 약력
現 세종문화회관 사장
前 제7대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
前 2010, 2011 하이서울페스티벌 예술감독
前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예술경영학과 교수
예술의전당 공연장운영부장
프랑스 브루고뉴대학 문화정책과 예술행정 고급전문학위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불어불문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