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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과 협업을 위한 1%의 윤활유
김재익_아트렉처 오퍼레이터
대학에서 경제학과 심리학을, 대학원에서 영상예술 석사를 전공하면서 해외에서도 활동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회사에서 근무하시면서 작가 생활과 플랫폼 사이트 운영도 하고 있으신데,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하셨는지 간단히 소개 부탁드릴게요.
전공의 선택과 변화에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기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학문과 더불어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공부에서 얻는 지식은 삶의 도구가 아닌, 일종의 삶을 이끌고 바라보는 자세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창작에 대한 관심은 일찍이 있었지만 호주나 영국에서 문화예술의 다양성을 체감하고, 미술관·박물관을 자주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관찰을 좋아해서 무엇이든 이것저것 살펴보는 것을 즐겨하는데 여기에 회사를 다니며, 학교에서 공부하며, 동시에 밥도 먹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때로는 여유롭게 산책하는 일련의 일상이 동력이 되어 작업을 지금까지 지속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창작 활동은 다큐멘터리·영화로 시작해 미디어·전시 등 순수예술 활동으로 이어졌어요. ‘다양성’과 ‘협업’을 중요시하며 창작 활동을 진행하고 있고 현재는 아트렉처라는 시각예술 기반 플랫폼 사이트를 운영 중입니다.
아트렉처는 2018년 초에 생겨난 사이트인데, 어떤 곳인지 설명해주세요. 저를 포함한 열댓 명의 예술가 모임이 있어요. 서로 온·오프라인으로 교류하면서 공부하고 서로의 작품에 대해 의견도 주고받으면서 협업도 해나가는 모임입니다. 활동을 해나가면서 아쉬웠던 점이나 필요하다 싶은 점들에 제 경험을 녹여 사이트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트렉처는 데이터 기반의 시각예술 아카이빙 서비스이자 모임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어요.
아트렉처라는 이름은 비즈니스적인 요소를 고려했습니다. ‘시각예술 플랫폼’을 표현하기에 가장 보편적이면서 직관적인 단어를 선택하려고 했고, 처음부터 해외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영어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영한 이름의 상표권도 등록했어요. 현재 50-60여명의 작가와 그들의 작품이 아카이빙 되어 있는데 초반이다 보니 제가 직접 섭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규모를 키워나가는 중이고 안정적인 재원조성이 이루어지면 서버 운영 외에도 사이트 운영이나 콘텐츠의 수급을 위해 운영진도 늘려 나갈 예정입니다.
다른 시각예술 정보 플랫폼, 판매 사이트와의 차별성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추상적 표현이지만 ‘동료의식’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예술가들이 본인 포트폴리오나 작업 과정의 공개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이 플랫폼을 통해 많은 작가들이 작업에 필요한 기술적 요소를 나누거나 공감대를 형성하는 장을 만들어 네트워크가 점점 촘촘해지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어요. 플랫폼 내에서 국내외 유저(예술가)들 간에 네트워크가 이루어지고, 보다 지속적인 교류를 위해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넘어 오프라인 공간으로의 확장이 가능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개인의 작업 혹은 협업을 통한 프로젝트들이 발생하고, 그 결과물이 작품 판매와 펀딩으로 이어지고 또 다른 새 작업을 위한 기반마련이 되는 순환구조를 갖추려 합니다.
지속적인 작업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자본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작가들의 지속적인 창작·생산을 위하여 이러한 유기적인 프로세스에 유통구조를 넣었다고 보면 되고, 더불어 꼭 작가들만의 공간만이 아닌 나 자신과 삶을 표현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한 공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초창기에 있는 아트렉처를 위해 어떤 부분에 가장 집중하고 계신가요? 인적네트워크를 확대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들을 콘텐츠로 풀어보는 것, 보다 많은 예술가들이 이 플랫폼에 들어오도록 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추상적일 수 있지만, 이해와 존중 그리고 타인으로 하여금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나를 알아가기 위한 네트워킹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트렉처와 유사한 사이트들을 보면 수익률 배분 외에도 소속된 예술가들에게 엄격한 운영기준을 요구하는 듯합니다. 아직도 만들어나가는 단계이지만 아트렉처는 작가의 자유를 최우선하고 그들이 자생적인 유통구조를 열어나갈 수 있도록 구속력은 최소화하고자 합니다.
실은 저 역시 여러 기관의 지원사업을 통해 작업을 지속해왔지만 모든 예술가들에게 지원 혜택이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고, 그럼에도 지원을 받아야만 지속적인 예술 활동이 가능하다는 현실에는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공감할 것입니다. 이 플랫폼이 작가들과 기관,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참여와 협력으로 이루어져 각각의 콘텐츠별로 자본이 순환·유통되어 모두가 지원금에 대한 부담 없이, 자생적인 작업 환경을 마련하는 데 단 1%라도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아트렉처를 만들기는 했지만 제가 이곳보다 먼저 인물로서 홍보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그리고 이 아트렉처라는 플랫폼 역시 최종적으로 소프트웨어(프로그램)의 완성이나 하드웨어(공간)의 마련이 아니라, 그들을 잇는 윤활유 역할, 단지 그것에만 충실할 수 있길 바랍니다.
어떤 작업들을 하셨는지, 예술가로서의 예술관, 창작에 대한 가치관이 궁금합니다. 미디어를 활용한 설치전시를 주로 합니다. 작업은 하고 싶을 때 진행하고 정기전시는 1년에 1~2번 정도 전시합니다. 개인적으로 기획보다는 작가로서의 작업이 몇 배로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혼자 하는 작업보다는 서로 커뮤니케이션하는 협업작업을 선호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작가 특유의 감성을 가진 이들은 이러한 과정들을 방해요소로 생각할 수 있고, 협업이 꼭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물로 이어진다는 보장 또한 없어요. 그런데 저는 이러한 불안요소들에서 오는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즐기는 편에 가깝습니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협업 과정상의 모든 걸 경험하고 느끼는 걸 선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기억에 남는 전시를 이야기해보자면 첫 전시는 지금은 이음센터가 된 옛 예총회관 건물에서였습니다. 리모델링 전 모습을 반영한 장소특정형 전시였는데 전시 결과물보다는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즐거웠습니다. 저는 주로 일상 속에서 지혜를 찾고, 현상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위해 특정 매체를 빌려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예를 들면 작년에 서울한강사업본부의 지원으로 <사라진 섬, 너에게로>라는 프로젝트를 들 수 있습니다. 개발 사업으로 사라진 한강의 섬에 대한 기억을 시민참여 퍼포먼스로 풀어나갔었죠.
이제는 흔한 비유이지만, 전 코카콜라 회장 더글라스 대프트가 삶을 저글링에 빗대어 말한 바 있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다양한 일들을 유지하기가 때로는 힘들지 않으신가요? 사실 그 저글링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고, 몇 개의 공을 돌려가며 성공한 경험도 없어요. 계속 던지다가 떨어뜨리고 다시 주워서 시작하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겁니다. 떨어뜨릴 때가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떨어진 공을 주워 다시 저글링을 할 수 있는 의지나 확신, 용기나 반성이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이 떨어질 때 느끼는 좌절감이 얼마나 오래가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으니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만약 계속 의지가 있다면 떨어져도 공은 계속 굴러갈 것입니다. 마치 영화필름처럼 삶의 프레임을 ‘빨리감기’ 한다고 상상해보면, 단기적으로 보면 떨어지는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그것이 계속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이니까요.
이정아는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웹진 <<예술경영>>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