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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특별한 다름을 예술하다
신종호_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사장2014년 초 대학로에 장애인문화예술센터를 건립한다는 계획 발표 이후 2015년 10월에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이 공식 설립되었다. 현장에서는 ‘이음’으로 더 많이 불리어지는데, 그 이름의 편안함과 따뜻함이 그대로 장문원의 사업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계기로 신종호 이사장님의 인터뷰 차 찾아간 사무실에서도 직원들 간의 유쾌하고 편안한 분위기도 인상적이었다. 인터뷰 말미에 언급한 임중도원(任重道遠) 글자 그대로, 한 기관을 대표하는 이사장으로서의 책임감과 비올라 연주자로서의 신종호 이사장님의 열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고, 나에게도 평소 미처 인식하지 못한 편견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장문원에서 운영하는 이음센터는 대학로 내에서 좋은 공간을 운영하고 있고, 예술경영지원센터와도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알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일반적으로 예술 정책이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고, 장애인 예술은 복지 차원에서 접근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서로 다를 뿐이지 특별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음센터의 ‘이음’도 서로가 서로를 이어주고 사람과 사람이, 마음과 마음을 이어준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이음센터가 생기기 전에는 교류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이음’이라는 뜻에 걸맞게 서로 교류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을 점차 해소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작년 한 인터뷰에서 1년 내내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활동하는 ‘이음’이 될 것을 추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애인의 날인 4월 20일을 맞은 <4월의 이음>은 어떤 행사들로 이루어졌었나요? 매월 마지막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해 많은 행사를 진행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의 날’은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서로의 특별한 다름을 인정하는 날입니다. 하지만 이번 장애인의 날 기념사에서도 이야기 했는데, 때로는 굳이 이런 특정한 날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얼마나 장애인이 소외되어 있으면 날을 정해서 기념하게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2015년 11월 장문원에 초대 이사장으로 온 이후 이듬해인 2016년부터 4월 20일마다 <4월의 이음>이란 이름으로 장애인의 날 행사를 한지 어느새 3번째입니다. 보건복지부에서 주최하는 ‘장애인의 날 기념식’도 주요한 행사지만, 장문원의 이 행사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기는 문화행사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마음이 큽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이음센터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장애인, 비장애인 시민이 함께 전시나 공연 활동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이제는 장애인 예술이 낯설지 않게 다가가고 있구나 싶어요. 장애인이 그동안 주로 혜택을 받는, 수혜자의 입장이었다면 이날만큼은 비장애인에게 예술의 즐거움을 선사하며 함께 어울리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호혜와 평등의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어요.
주요 행사로는 시각예술인 <한국의 아르브뤼> 전시와 공연예술인 장애인, 비장애인의 합동공연인 연극 <해피 브라더스>가 진행되었습니다. 전시의 경우 ‘아르브뤼(Art brut)’라는 단어가 아직은 생소할 수 있지만 정신 장애인이 그리는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형태의 작품들을 말합니다. 흔히 장애인이라고 하면 겉으로 보이는 신체적 장애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현대사회에서 공황장애나 분노장애 등 정신적 장애도 점차 많아지고 있는 실정을 행사에 담아보고자 했지요. <해피 브라더스>는 장애인 비장애인이 어우러진 연극공연이었는데 현장에서 반응이 좋았습니다. 장애인 문화예술이 비장애인의 문화예술과 똑같이 인정받고, 예술을 함께 향유하는 것이 일상화되도록 앞으로도 많은 공연기회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행사를 개최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모객이 상당히 힘들더라고요. 그렇지만 향유자, 관객들이 직접 찾아와서 호기심을 가지고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예술을 경험하는 기회를 만들고 제공하는 것이 우리 장애인 예술인, 장애인 예술기관의 역할이자 의무라는 생각입니다.
이전에는 비올라 연주자, 구리시와 서울아산의 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활동하셨습니다. 장애인 예술가로 시작해 ‘남북체육교류협회 장애인 위원장’, ‘장애인문화예술원 이사장’ 등 장애인을 위한 조직에서 활동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예술가가 되기 위해 쏟는 열정과 인내, 비용 등의 인풋(input)과, 그에 따른 경제적 대가나 사회적 인정으로 볼 수 있는 아웃풋(output)의 균형이 참 맞지 않습니다. 아마도 예술인, 예술경영인, 그리고 예술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탄생한 그 많은 예술계 종사자들은 과연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걸까요? 다른 인터뷰에서 바이올린, 비올라 연주자에서부터 예술감독까지의 내 삶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해왔지만 나 역시 여느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활동하면서 희열과 좌절, 때로는 슬럼프를 똑같이 겪었습니다. 연주자에서부터 예술감독, 그리고 기관 행정가까지 조금씩 경력을 넓히고 변화해가며 지금 이곳까지 이르게 되었어요. 예술가라는 직업 자체도 녹록치 않지만, 그 중 장애인 예술가들은 더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장문원이 생긴 것이죠. 저는 우리 기관이 장애인을 위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경영지원센터’, ‘예술인복지재단’이라고 생각하며, 다른 문화예술기관들과 어우러져 활동하며 한국의 예술발전을 함께 고민하고자 했습니다.
실은 이제 임기가 반년 정도 남은 상태인데 마치 외국 유학을 가서도 1~2년은 그 곳에 적응하면서 보내는 것처럼, 이곳에 와서도 2년이 조금 지나 본격적으로 해보려는 차에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합니다. 지금의 자리까지 와서 생각해보니 우리는 예술계의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겠더라고요. 무엇을 표현해도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것이, 뭐든지 맡겨도 다 잘해내는 게 바로 예술가 아닌가 싶습니다. 연주자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장문원의 이사장으로서, 한국 장애인 예술을 근본적인 것에서부터 바꾸어 나가고, 장애인 문화예술이라는 독특한 예술세계의 정체성을 찾아 나가고 싶습니다.
장문원의 주요 사업은 무엇인가요? 점차 기관의 예산도 사업도 규모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주요 사업은 무엇이며, 2018년에는 어떤 목표와 방향을 갖고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장문원의 주요 업무는 지원 사업, 정책연구사업, 그리고 기획 사업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 창작활성화, 문화예술 향수 지원, 문화예술교육 특성화, 국제교류 등 해야 할 일은 무궁무진하죠. 그 중 가장 궁극적인 목표라고 한다면 장애인, 비장애인 할 것 없이 모두가 각자의 삶에 행복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술가라는 직업을 가짐으로써 삶에 성취감과 확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장애인 문화예술활동 실태조사’를 통해 장애인 예술 활동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를 내려고 합니다. 그동안 장애인 예술가에 대한 조사가 없었던 것도 큰 맹점인데, 현재 실태조사를 위해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의 정의 등을 정립하기 위한 기초연구가 진행 중이고, 5월 말이면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를 토대로 향후 실태조사를 정기적으로 시행해 정책마련의 근거 자료로 활용하길 기대하고 있죠.
그리고 개인적인 바람이 하나 있습니다. 2014년 북한과 호주의 농아 축구단 친선경기 때 ‘네손가락 피아니스트’ 희야와 함께 기념 연주를 한 적이 있어요. 최근 평창올림픽과 더불어 ‘삼지연관현악단’의 활약으로 남북의 관계가 호전되었는데, 장문원의 또 다른 미션 중 하나가 장애인 예술을 통한 남북 교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앞으로 북한의 장애인 예술인, 예술단체와도 함께 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문화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내 인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해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예술 활동에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고 있는 추세인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구족화가가 그린 그림, 정신적 장애의 가진 사람의 그림에서 오는 독특함과 창의성이 있습니다. 그런 예술작품들이 보다 더 관심 받고 많이 판매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작품이 조명 받을 수 있는 전시회를 만들고, 공연을 올릴 수 있는 무대를 한번이라도 더 세우는 것이 우리 기관의 목적이자 이유가 아닐까요. 장애인들의 예술적 경험이 하나의 직업이 되어 평생 예술을 하며 생활을 영위하는 즐거움을 느끼게끔 하고 싶습니다.
장문원의 고무적인 점은 정부주도로 생긴 장애인예술원이라는 점이에요. 한국에서는 민간주도로 이러한 시설 건립이 어렵기 때문으로 볼 수 있지만, 민간 기관이 대부분인 해외에서는 이 점을 매우 부러워합니다. 외국에는 ‘언리미티드 페스티벌(Unlimited Festival)’이라는, 2012년 런던 올림픽 및 패럴림픽을 준비하며 생겨난 영국의 장애인 예술축제가 있습니다. 이 축제 기간이 되면 템즈강 주변의 모든 공연장들은 일제히 이 축제에 참여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모두가 참여하는 축제와 문화가 형성되었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취미로 예술 활동을 하거나 풀뿌리 예술을 하는 장애인 예술가들도 실력의 질적 향상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장애인이 저 정도 하면 대단한 것이다’라는 인식을 떠나 비장애인과 동등한 예술적 경지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 예술’로 관심 받는 것도 필요할 수는 있겠지만, 예술가 정신으로 무장한 피나는 노력으로 사회와 소통해야 할 때가 왔음을 느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로 동기 부여하는 시대를 꿈꿉니다. 역시 그러기 위해서는 장문원이, 그리고 저 역시 노력해야겠지요.
주요약력
-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초대 이사장
- (사)남북체육교류협회 장애인위원회 위원장
- 서울시 문화시민도시 정책위원회 위원
- 충남대학교 예술대학 겸임교수
- (사)뷰티플마인드 홍보이사
- 구리시 교향악단 단장겸 음악감독
- 베데스다(Bethesda) 현악 4중주단 창단멤버
- Cincinnati Philharmonia Orchestra 수석
- New York Gloria Chamber Orchestra 수석
- 1982~1986 University of Cincinnati, Ohio, U.S.A-Artist Diploma
- 1986~1988 City University of New York at Brooklyn(M.A-Master of Art) 취득
- 2006~2008 서울시립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졸업
주요 연주경력
- Colorado Aspen 국제 음악제 참가
- 볼티모어 피바디 대학, Ohio주립대학 초청 연주
- 일본 총리부 초청 동경 및 전국 순회 연주회
- 구리시 교향악단 유럽연주(비엔나, 짤스부르크)
이정아는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웹진 <<예술경영>>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