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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렉티브의 생태계
레온하르트 바르톨로메오, 아젱 누룰 아이니, 엠지 프링고토노루앙루파(ruangrupa)는 2000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결성된 아티스트 콜렉티브이다. 전시, 축제, 아트랩, 워크숍, 연구, 출판 등의 활동을 통해 도시와 문화적 맥락 안에서 다양한 예술적 실천을 해오고 있으며, 올해 아트선재센터와 국립현대미술관의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는 ‘국제문화교류 전문인력 양성사업’을 기획하여 지난 5월 30일, 31일에 걸쳐 인도네시아 아티스트 콜렉티브인 루앙루파와 연계하여 활동하는 인도네시아 예술가들을 초청하여 ‘예술가의 자생력과 콜렉티브의 실천’이라는 주제 아래 공개강연과 집중 워크숍을 진행했다. 인터뷰는 강연에 초청된 3인, 루앙루파가 운영하는 루루(RURU) 갤러리 큐레이터이자 리서처인 레온하르트 바르톨로메오(Leonhard Bartolomeus), 루앙루파의 매니저인 아젱 누룰 아이니 (Ajeng Nurul Aini), 그리고 작가이자 대안공간 세룸(SERRUM) 큐레이터인 엠지 프링고토노(MG. Pringgotono)와 함께 진행되었다. 이들은 여전히 루앙루파와 연계하여 일하고 있지만,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에코시스템(Ecosystem)이라는 새로운 콜렉티브로 참여했고 인터뷰 역시 이 에코시스템 콜렉티브에 의해 진행되었다.
아티스트 콜렉티브 루앙루파의 시작점과 사회적 맥락은 무엇인가요? 루앙루파는 2000년에 자카르타를 기반으로 한 6명의 젊은 작가로부터 시작했습니다. 목표는 젊은 작가들이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과 어려운 환경에 있어서 생존하는 것이었어요. 사회적 맥락에서 보자면 수하르토 (Soeharto)1) 정권 무렵이었는데, 사회적 발언과 활동을 제한하려고 했던 이 군사주의 환경이 콜렉티브를 야기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98년 32년간의 수하르토 정권이 몰락할 무렵에는 자카르타의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학생운동처럼 사람들이 더 많은 의견을 행위로 표현하고자 했어요.
이러한 자유를 위한 노력과 분열을 조장하기 위한 국가의 시도가 충돌했고 이 시점에 여러 콜렉티브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의견을 가진 다른 콜렉티브(Cemeti, Taring Padi)가 존재하긴 했지만, 1998년 이후 모든 부분에서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새로운 양상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죠. 더불어 인터넷 역시 초국가적 연결을 가능케 했다고 볼 수 있어요. 루앙루파의 설립자인 아데 다르마완(Ade Darmawan)은 네덜란드 라익스아카데미(Rijksakademie)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인터넷을 통한 국가적 교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1) 인도네시아 공화국 제2대 대통령. 1965년 쿠데타를 기도한 부대를 진압하고, 66년 행정권을 장악하였다. 68년 대통령이 되어 제1차 개발내각에서 98년 제7차 개발내각까지 권위주의적 개발체제를 구축하였다. 98년 5월 사직하였다. [21세기 정치학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
루앙루파가 설립된 지 18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변화한 것은 구조 그 자체입니다. 6명이서 시작을 했고, 2003년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으며, 정기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그에 따라 구조를 만들고 변경해왔어요. 그리고 외국 펀딩을 받으며 규모를 키워왔고요. 이후 각각의 목표를 위해 여러 분과를 만들면서 구조를 또 바꿔가고 있습니다. 루루 갤러리, 현대미술 현장과 대학생 간 네트워크(자카르타 32° C)와 큐레이터 워크숍, 작가 워크숍, 비디오 아카이브(OK. Video) 등이 활동에 따라 더 유기적이고 구조적(organized)으로 변화해 왔습니다. 2011년에 여성예술인(아젱)이 합류하게 되었고, 2012년 또 다른 콜렉티브들과 일하기 시작했으며, 기업들과 연계하면서 변모는 계속되었어요. 이윤 추구 역시 한 부분이 되면서 말이죠. 그 후에는 2015년 정부에서 빌려준 창고를 이용하게 되면서 또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15주년 때가 가장 크고 근본적인 변화의 해였던 것 같아요. 콜렉티브의 생태계를 새롭게 구성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루앙루파로 인해 인도네시아가 변한 것을 생각해본다면, 제게(엠지) 세룸이란 콜렉티브의 형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루앙루파는 다른 콜렉티브가 어떻게 지속가능한 단체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좋은 사례가 되었죠. 초기에 세룸은 콜렉티브를 어떻게 관리하고 관객에 어떻게 다가가는지 등에 대해 루앙루파로부터 많이 배웠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지식의 분배나 교육, 사업화, 사업체를 어떻게 만드는지 등에 대해 오히려 세룸으로부터 루앙루파가 배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서로 상호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죠.
세룸은 어떤 콜렉티브인가요? ‘share room’이란 뜻의 세룸은 2006년 7명의 구성원으로 시작되었고 지금은 22명까지 구성원이 늘었습니다. 이 참여자들은 대부분 자카르타 대학에서 예술 교육학을 공부했던 이들이라 세룸의 주된 관심사는 예술교육입니다. 교육 관련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콜렉티브의 프로젝트를 지원할 수 있는 상업적인 활동, 주로 아트 핸들링(전시 프리-프로덕션, 예술품 설치와 운송 등)도 해오고 있습니다.
콜렉티브는 보통 하나의 목표와 운영 아래 자발적으로 모인 예술인 단체를 의미하곤 하죠. 인도네시아에는 상당히 많은 콜렉티브가 있습니다. 왜 콜렉티브라는 단어를 쓰고 사용하고 있고 그 정의는 무엇인가요? 인도네시아의 콜렉티브가 무엇인지 우리 역시 정의하기 어렵지만, 그렇기에 쉽게 사용되고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전적인 의미가 없다는 것은 구체적인 요건이 없어도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콜렉티브는 그냥 참여자들이 서로 합의하고 모이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의 콜렉티브란 ‘다양한 지식을 가진 개인들이 목표, 가치, 꿈을 이루고 유지하기 위해서 함께 일하도록 합의를 이루는 조직 모델이자 조직 관리’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콜라보레이션은 생산의 방식, 콜렉티브는 공유 및 유통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고요. 물론 콜렉티브는 모임의 특정한 의도를 전제하죠.
개별적인 콜렉티브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즉 세룸과 루앙루파는 방향성과 정체성이 다릅니다. 세룸은 영리사업이 운영의 기반이고, 루앙루파는 후원으로 운영됩니다. 세룸의 목표는 예술 교육이고, 아트 핸들링과 전문적인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수익도 창출합니다. 루루 갤러리와 세룸의 차이를 설명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요. 2015년, 우리가 모이기 전에 루앙루파와 세룸은 각각의 갤러리와 프로그램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루앙루파는 남 자카르타, 세룸은 동 자카르타에 위치하면서 각자의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고요.
이렇듯 비슷한 기능이 있는 콜렉티브들이 이번에는 에코시스템 (Gudang Sarinah Ekosistem 줄여서 Ekosistem/Ecosystem)이란 콜렉티브로 모인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에코시스템은 2016년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3개의 콜렉티브, 루앙루파, 세룸 그리고 포룸 랜턴(Forum Lenteng)의 콜렉티브입니다. 이 에코시스템은 다른 성격의 콜렉티브의 모임으로 더 많은 활동과 접점을 만들어 지속가능성을 도전합니다. 이 지속가능성에는 재정적 지속성도 포함됩니다. 에코시스템은 각 콜렉티브의 기존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플랫폼이자 동시에 전시, 음악 페스티벌, 바자회, 출판 등의 에코시스템의 자체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에코시스템은 새로운 플랫폼이자 네트워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를 생태계라고 명명했습니다. 생태계는 모든 장소에서 각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건축, 사진, 디자인, 필름메이킹, 거리 예술 등 다양한 콜렉티브가 함께 여러 중심을 형성하는 콜렉티브의 생태계인 셈입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역할을 대체하지 않기에 생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역할이 있고 대체 불가능한, 그리고 지속 가능한 시스템입니다.
이번 강연에서 '콜렉티브 팟(collective pot)'을 언급했죠. 이 콜렉티브 팟은 각각의 콜렉티브의 재원을 한 곳에 모아서 통합적으로 공유하는 개념인가요? 여기서 자원은 유형, 무형 둘 다를 의미하기 때문에 돈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지식, 사람 등 자본이 아닌 것도 들어있습니다. 이 시스템도 우리에게 일종의 도전이자 실험이에요. 각 콜렉티브가 20~30%의 수익을 모아 공유하는 방식이지만 완벽하게 작동하진 못합니다. 각자가 가진 어려움이 다른데, 경제적인 문제로 고전하는 콜렉티브도 있고 세룸처럼 안정된 곳도 있기 때문이에요. 지금까지 이 방식이 매우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실패를 통해 저희는 배우고 수정합니다. 그리고 콜렉티브 팟은 각 콜렉티브에게 지속적인 프로그램 개발을 제안하는 기능을 하면서, 이들로 하여금 자생하는 방법을 구상하게 합니다.
콜렉티브가 인도네시아 예술 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길 기대하시나요? 아주 큰 기대보다는 시스템을 혼란, 전복시키는 과정에서 더 많은 콜렉티브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형태, 혹은 개인적으로라도 예술가를 지탱할 수 있는 생태계가 형성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이 다른 도시에도 적용되기를 기대합니다. 사실 여태 인도네시아 예술 신에 대해서 지금껏 말한 내용은 결국 자바 (Java) 섬에서 일어난 일들이에요. 에코시스템은 자바 섬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거든요. 우리가 지금까지 언급한 일들은 결국 하나의 섬에서만 일어나는 일일 뿐이죠. 그래서 우리는 콜렉티브나 교육 프로그램 등을 만들 때, 다른 섬의 예술가 친구들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그로 인해서 이들이 우리의 방식과 노하우 그리고 재원을 가져가고, 자신들의 관심과 이슈에 알맞게 변형시키기를 기대하길 바랍니다.
녹취 : 표예인
성용희는 대안공간 루프 큐레이터, 국제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 봄 조감독, 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조감독, 싱가포르 오픈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큐레이터, 2017년 광주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예술감독 등으로 일을 했고, 현재는 마쿠(MAKU)라는 아티스트콜렉티브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