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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아티스트와 병원경영인의 슬기로운 창업 모델
성동효_브로큰브레인(BROKEN BRAIN) 대표‘브로큰브레인(BROKEN BRAIN)’. 뇌를 부순다니, 오싹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일명 ‘골 때리는 회사’로 불리는 이곳은 ‘VR퍼포먼스’, ‘VR아트’라는 다소 신선한 소재를 다루며, 전시장에서 보던 정적인 시각 미술을 관객과 호흡하는 동적인 무대로 이끌어낸 미술과 테크놀로지의 만남으로 주목받고 있다. 예술과 기술, 아티스트와 경영인의 만남으로 미술 퍼포먼스 뿐 아니라 예술 비즈니스에서도 긍정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는 성동효 대표를 만나, 브로큰브레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VR아트’라는 용어가 낯선 환경에서 사업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미술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었어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대학병원 비서실, 경영지원실 등에서 6년 반 동안 근무했습니다. 동시에 ‘이강현’이란 가명으로 전문MC로 활동했어요. 그러면서 염동균 작가를 알게 되었죠. 2016년 5월 어느 날, HDC사에서 나온 바이브라는 기계를 활용한 영상을 함께 인터넷에서 보고 한 번에 매료됐습니다. 당시에는 국내 판매가 안 되던 터라 해외에서 어렵게 기계를 구했습니다. 일단 사용해보니 투박하지만 LED와 연결할 수 있다면 환상적인 시각콘텐츠가 탄생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염동균 작가와 저는 ‘미술이 어디까지 재미있어질 수 있을까’에 관심을 두고 있었어요. 염 작가의 아티스트적 재능과 저의 경영 커리어를 의기투합하기로 했죠. 당시 염 작가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던 브로큰브레인을 법인화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VR기기를 활용한 미술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기술과 예술의 만남으로 쉽게 지원 받을 수 있으리라 예상했으나, 의외로 재정적 지원을 구하기 힘들었어요. 테크놀로지 면에서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 기술이라고 생각하고, 미술계에서는 쇼비지니스일 뿐 예술이 아니라는 생각의 경계에 있었던 것 같아요. 고가의 기계를 구한 후, 기술이 익숙해지는 서너 달 동안은 힘들었어요. 기계에 대한 정보가 적어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자문을 구했죠. 2016년 8월 코엑스에서 진행한 ‘오토데스크 유니버시티 코리아’에서 처음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예상치 못한 기술적 난관으로 하마터면 공연을 못할 뻔 했죠. 추후에 저희 공연이 국내 뿐 아니라 세계 최초의 VR드로잉 무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 VR장비를 활용한 창작물이 종종 나오지만, 구상화를 빠른 시간 안에 그리는 퍼포먼스는 찾기 힘듭니다. 많은 관객이 영상을 틀고 아티스트가 싱크를 맞추는 공연일 것이라는 오해를 합니다. 그러나 100% 라이브 무대입니다. 아티스트가 착용한 HMD(Head Mounted Display)를 관객이 쓰고 본다면 그런 오해가 없으리라는 이야기도 합니다만, 라이브로 진행되는 드로잉을 전체 관객이 동시에 HMD를 착용하여 보는 기술은 상용되지 않았어요. 한편으로 기술이 마련되더라도 아티스트가 조정하는 대로 시선이 이동하다보면 굉장히 어지럽기 때문에 사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공연을 즐기는 관객은 편안해야 해요. 감각적인 경험은 저희의 연출로 만들어 가야하고요.
이전에 병원에서 근무하셨는데, 병원경영과 예술경영 사이의 차이를 느끼시나요? 전문직과 전문 경영인을 분리한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병원과 예술사업의 공통점을 느낍니다. 의사는 전문지식과 기술을 활용해서 의술을 펼칩니다. 예술가 역시 그만의 능력으로 콘텐츠를 만듭니다. 전문가가 자신의 능력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경영인의 역할이죠. 그래야 조직이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점도 있습니다. 예술 산업은 인적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습니다. 그리고 예술은 결과물에 대한 평가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작가의 최선과 클라이언트의 만족, 관객의 반응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예술 산출물에 대한 관리가 어렵습니다. 예술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콘텐츠가 피상적인 경우가 많아요. 기술적으로나 구성면에서 수용 가능한 부분과 불가한 부분을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하죠. 그렇기 때문에 아티스트와 클라이언트가 직접 소통을 한다면 마찰이 생길 수 있습니다. 현재는 회사 규모가 커져 아트워크를 담당하는 아티스트 팀, 아티스트의 작품을 영상으로 남기고 공연 외 CF나 영상물을 제작 및 편집하는 영상미디어 팀, 그리고 경영행정운영팀 이렇게 세 팀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아직까지 첫 미팅은 주로 제가 진행합니다.
대외 커뮤니케이션과 경영 전반을 경영인이 담당한다면, 공연의 구성은 전적으로 아티스트의 몫인가요? 아티스트는 스토리를 만들고, 공연 작품이나 영상 작품을 창작합니다. 조명과 음악 타이밍도 모두 작가와 함께 맞추죠. 하지만 HMD를 쓰는 순간 작가는 앞을 전혀 볼 수 없어요. 그때부터 전체적인 컨트롤은 스태프에게 넘어갑니다. VR드로잉은 절대 혼자 할 수 없어요. 브로큰브레인 직원 전체가 함께 하는 공동 작업인 셈입니다. 작가마다 그림체는 다를 수 있지만 염동균 작가가 전체 디렉팅을 총괄하여 전체적인 톤을 맞추고 있습니다.
지난해와 올해 ‘VR아티스트 오디션’을 진행했습니다. 작가 발굴 방법과 회사와 작가의 관계설정이 궁금합니다. 현재 염동균, 피오니 두 작가가 회사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프리랜서 작가와도 일하고 있고요. 염 작가는 회사의 시작을 함께했고, 아트 팀의 총책임자이자 국내 최초 VR아티스트이죠. 정기공연이나 큰 프로젝트의 대부분은 직접 공연합니다. 피오니 작가는 댄서출신이자, 런던에서 미디어아트를 전공했던 이력을 살려서 뮤지컬 팀과 콜라보레이션한 공연을 이끌어나가고 있습니다. 오디션은 ‘VR아트’를 세상에 알리려는 의도와 작가를 발굴해 키우려는 의지로 진행하게 되었어요. 첫해는 예상외로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는 4-50대 참가자의 의지가 높았죠. 올해는 예술적 색채가 강한 지원자가 늘었어요. 저희는 이견의 여지없이 미술을 기반으로 한 회사입니다. 미술전공자나 예술적 능력이 있는 참가자를 선호합니다. 예술적 감각은 짧은 기간에 만들어질 수 없죠. 기술이나 장비는 몇 달 동안 트레이닝을 받으면 익숙해 질 수 있습니다. 피오니 작가도 저희 회사에 입사하여 VR을 처음 만져보았어요.
기술을 전혀 모르는 작가도 선발이 가능하다면, 회사가 VR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나요? 물론 내부적으로는 활동을 같이 하는 작가에게 VR장비에 대한 교육을 시행합니다. 지금까지 함께 공연한 몇몇 프리랜서 작가들에게 일련의 과정이 일종의 트레이닝이 되었으리라 생각해요. 외부적으로는 2016년 SK텔레콤과 함께한 어린이 대상 VR교육, 2017년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과 함께 성인대상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어린이는 콘텐츠에 호기심을 나타내는데 반해 성인은 툴 자체에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VR을 활용한 청소년 대상 미술창의력 교육을 기획 중이며, 현재 정부지원을 받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청소년을 위한 미술 콘텐츠 과정과 더불어 VR장비를 가르치는 전문 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성인대상 라이선스 과정의 교육시스템을 개발 중이에요. 올해 하반기 정도에 커리큘럼이 완성될 것 같습니다.
기업이나 행사에 찾아가는 공연, 교육, 강연 등을 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기공연을 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지 않은가요? VR기기는 이동이 용이하기 때문에 어디서든 활용이 가능합니다. 또한 관객이 HMD를 착용하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장소에 구애 받지 않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거점을 두는 것은 중요하지요. 최근 (주)글로벌디지털콘텐츠그룹과 업무협약을 맺고 강남관광정보센터에서 정기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매주 2회 정기공연을 진행하고 있으며, 앞으로 주1회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한 교육콘텐츠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또한 남양주, 상암 등에서도 정기적으로 VR교육이 가능한 장소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단기간에 사이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브로큰브레인만의 성공요인은 무엇일까요? 시기적인 운이 좋은 편입니다. 2016년 첫 공연 이후, 4차 산업혁명이 화두로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정부 및 기업 행사의 관심이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 등에 집중되었고 다수의 공연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희가 사용하는 VR 기계의 한국총판권을 가진 회사도 나타나 업무협약을 맺을 수도 있었죠. 내부적으로는 맞춤형 공연을 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림은 타 공연 장르에 비해 메시지 전달이 강해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따라 요소를 삽입하고 삭제하기도 용이한 편이고요. 프로젝트마다 메시지 전달을 위해 리서치를 충실히 하고, 스토리를 짜임새 있게 만들었어요. 특히 영화나 영상물 제작에 사용하는 스토리보드 작업을 공연에 도입했습니다. 또 다른 점은 ‘융합’을 폭넓게 한다는 점입니다. 댄스, 국악, 오케스트라 등과의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한 명의 VR아티스트로 부족한 공연의 스케일을 키웠습니다. 타 장르와의 융합은 서로 간의 새로운 판로를 모색할 수 있고, 관객에게는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선사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해외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저희 공연은 비언어(Non-verbal)를 지향해요. 공연을 진행해보면, 내국인보다 오히려 외국인의 호응이 높은 편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공연의 아티스트가 당연히 외국인일 것이라 예상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우리나라 예술가의 작업이 충분히 좋은 창작콘텐츠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국외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해외 문화를 선도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어요. 가능하다면 앞으로 해외법인을 설립하고 우리나라의 예술콘텐츠로 해외공연을 확대해 나가려 합니다.
임승현은 서울과 런던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월간미술》과 《아트조선》에서 기자로 근무했고, 번역가이자 컬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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