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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도 기업도 ‘철드는’ 놀이터
김 결_문화예술 놀다 대표여기 10년째 예술과 교육이 만나는 순간을 설계하고 실현하는 단체가 있다. 4년간 ‘예술 놀이터’를 운영한 모험이자 경험을 보유한 ‘문화예술 놀다’는 자신의 삶을 책임질 줄 아는 ‘철 든’ 사람을 만드는 것이 놀이를 통한 성장의 목표라며, ‘철 다루는’ 포스코에 <철 드는 놀이터>를 제안했다. 심사위원의 날렵한 질문에 여유 있고 침착한 대응과 디테일한 피칭이 돋보였고 그 결과 기업패널 현장투표상과 포스코 기업 지정형의 두 가지 상을 차지했다. 오늘의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놀이와 쉼을 선사하는 문화예술 놀다의 김 결 대표를 만나보았다.
문화예술놀다와 김 결 대표님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2004년 세 번째 단편영화를 완성하고 시사회를 마친 직후였는데, 중학생들과 단편영화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처음으로 강사비를 받는 문화예술교육을 경험하게 되었어요. 아이들과 완성한 단편영화 자체에 대한 기억보다 아이들과 작업하는 과정에서 나눈 대화, 표정, 감정 등이 굉장히 낯설고 큰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그 다음 해 사회운동을 하던 두 선배와 ‘미디어공동체 늘봄’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미디어교육의 탈을 쓴(?) 예술교육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3년의 경험을 쌓은 후 2009년 문화예술 놀다’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문화예술 놀다’는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단체입니다. 그중에서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예술교육에 경험이 많아요. 현재 9년차이며, 6명으로 이루어져 있고 대표적인 활동 내용으로는 모험과 예술작업이 함께 하는 <더놀다 놀이터>, 여행을 통해 예술작업을 풀어보는 <길이 나에게 묻다>프로젝트, 6년간 진행한 문화예술 명예교사 프로젝트 <특별한 하루>(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발주) 등이 있어요. 문화예술교육, 공동체예술프로젝트, 문화예술 기반 공공사업 기획·운영 대행 등의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중 가장 많은 경험을 했고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은 일은 예술교육입니다. 아이들과의 만남은 제 자신이 철들게 된 가장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번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기업협력사업 공모전에 참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올해로 ‘놀이터 프로젝트’를 진행한 지 4년째가 됩니다. 300평정도 되는 ‘문화예술 놀다’ 사무실 앞마당에서 7세부터 13세까지의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모험+예술+자연’이 어우러진 놀이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수익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상태로 지속하려니 참 힘들었습니다. 지원사업을 통해 도움을 받아볼까도 생각했지만 놀이터에 대한 해석과 실행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고,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 포스코는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기업입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고, 포스코에서 생산하는 주요 산물인 제철 역시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요소였구요. 포스코1%나눔재단의 사회공헌 활동 또한 스케일이나 그 내용 면에서 매력적이었습니다.
놀이터 프로젝트에 대해 고민하다가 이 포스코1%나눔재단에 제안서를 보내볼까 싶어 연락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비슷한 기간에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기업협력사업 공모전’ 안내문을 보게 되었어요. 특정 기업을 지정해 맞춤형 협력사업을 제안하는 유형이 있었는데 마침 그 중 포스코가 있었습니다. 제안서에 대한 교육이나 컨설팅도 받아볼 수 있다는 점에 이끌려 공모전에 도전해보자고 생각해 참여했어요.
‘문화예술 놀다’의 놀이터는 어떤 곳인가요? 더놀다 놀이터가 기존의 놀이터(또는 문화예술교육)와 다른 건, 있는 것 보다는 없는 것이 더 많은 공간이라는 겁니다. ‘이미 만들어진’ 놀이기구도 없고 공간이나 상황에 대한 ‘잘 놀기 위한 설명’도 없어요. 아주 불친절한 곳이죠. 그리고 아이들의 부모님은 이 곳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따라서 ‘참견’이 없는 곳이죠. 물론 우리가 놀이지기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긴 하지만, 아이들은 우리를 같이 노는 사람으로 대해요.
사실, 놀이터라고 이야기하면 이것을 이해하는 정도가 사람들에 따라 모두 달라요. 첫 해에 더놀다에 방문한 부모님들이 자주 했던 이야기가 있어요. “아무것도 없는데 여기서 뭘 하고 놀아요? 체험학습인가요?”, “선생님들은 어떻게 놀아주나요?”, “아이들은 뭘 배우게 되죠?” 이런 물음이 참 많았죠. 스스로 경험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주려면 지시·학습·설계가 아닌 ‘날것의 경험, 그리고 건강한 실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삶과 성장을 다른 관점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우려스러워요. 선택의 폭을 좁혀 놓았고 아이든 부모든 좀 다른 선택을 하려면 의아해 하는 주변의 시선을 견뎌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 된 것이죠. <더놀다 놀이터>를 좀 색다른 형태의 키즈카페나 체험학습 정도로 여기는 분들도 계셔서 2016년부터는 사전 설명회를 통해 우리의 목표와 맞는 부모님들을 찾는 작업을 했고 3~4년 동안 꾸준하게 만나는 아이들이 꽤 많아졌어요.
실제로 제안했던 ‘Play Earth’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지역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놀이터에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들과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가져야 할 것입니다 부모를 설득해야 아이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부모님들을 아이를 성장시켜야하는 존재로만 보지 말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로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주체로 대하려고 합니다. Play Earth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생각과 태도를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더 넓은 범위의 커뮤니티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제안서 발표 시 ‘Play Earth’란 주제로 피칭하셨는데, 어떤 내용이었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Play Earth’는 포스코 업(業)의 핵심자원인 철을 매개로 다루는 복합 공간 프로젝트입니다. 우리의 <더놀다 놀이터>와 더불어 메이커스 프로젝트, 포스코 해외 현지 법인 국가를 대상으로 한 적정기술 랩(Lab), 포스코 전현직 기술장인과 이음전 예술가가 함께 하는 마이스터 프로젝트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도심의 유휴공간을 활용한, 기존의 ’놀이터 프로젝트‘의 업그레이드·확장된 버전이라고 할까요?
‘메이커스 프로젝트’는 철을 소재로 한 대장장이 프로젝트입니다. 종합제철소처럼 원료를 만들 수는 없지만 포스코에서 생산하는 순수한 철, 스테인리스 스틸 등을 가마를 활용해 풀무질을 하고 망치로 두드리는 아주 오래된 기술을 중심으로 합니다. ‘Play Earth’ 중심에 불이 있는 거죠. 거의 모든 산업의 근간인 제철산업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것과 의미가 매우 닮아있다고 생각했어요. ‘적정기술 랩’은 놀이터에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부터 play Earth가 자리한 지역에 있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적정기술이란 문화적·환경적인 면을 고려해 만들어진 기술 혹은 소외된 지역에 알맞은 착한 기술을 의미합니다. 무언가를 자기 손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어른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착한 일에 사용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아이들의 놀이터에 필요한 장치나 실험물이 적정기술 랩의 작업을 통해 완성되면 더욱 의미 있는 공간으로 꾸며질 것 같았죠. 그리고 포스포의 아시아 현지법인의 국가에 필요한 적정기술을 우리들의 실험과 노력으로 만들어 보급하는 일도 꽤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마이스터 프로젝트’는 이미 포스코에서 진행하고 있는 ‘세대를 잇는 작업 – 이음전’(금속공예 문화재를 지원하는 사업)을 좀 더 입체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지속가능한 순환구조를 만들기 위해 이음전에 참여한 작가들과 일반인 또는 포스코의 전·현직 제철장인이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보통의 사람들에게 금속공예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거나, 해당 작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참여해 학습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이음전 활동의 의미가 훨씬 돋보일 것 같았어요. 금속공예 작가들을 예술교육으로 이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구요.
도심 한복판에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즐기면서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면 어떨까하는 상상에서부터 시작했어요. 이런 장소특정형 사회공헌 활동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뚝심을 갖고 진행해야하는 일이라, 포스코와 같은 탄탄한 기업과 함께라면 가능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진행하신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문화예술에서 더 나아가 ‘문화예술교육’을 하시는 이유와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한 재미있는 일’ 이게 원동력인 것 같아요. 한국사회에서 예술교육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의미는 ‘틈’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술은 낯설지만 흥미로운 재료임과 동시에 일상이라는 틀을 깨주는 아주 좋은 요소죠. 깨어진 틈으로 새로운 공기와 생각이 들어오고, 그렇게 시작된 작은 변화가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거기에 예술교육자의 이상하고도 멋진 면면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더해질 때 예술교육의 진짜 의미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문화예술 놀다’ 혹은 김 결 대표 개인의 목표·계획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문화기획자나 예술교육자 모두 참 불안정한 직업입니다. 내용만 놓고 보면 상당히 멋진 일인데, 실상 경제적인 이유로 도전하거나 지속하기 쉽지 않은 직업이죠. 저는 이 일이 안정적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고 싶고, 실제로 그렇게 만들어가고 싶어요. 그래서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 분야에 참여하거나, 또는 이 일을 하면서 인간으로서 성숙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널리 주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