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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 문화교류를 위한 문화관계 맺기
‘2017-18 한영 상호교류의 해’를 정리하며문화를 통한 국가간의 국제교류에서, 공공외교(Public Diplomacy), 문화외교(Cultural Diplomacy) 그리고 국가 브랜드 홍보는 자국의 이익증대, 국가의 이미지 제고와 자국의 우호세력을 확보하는 측면에서 많이 이야기 된다. 그러나 최근 국제교류를 둘러싼 국내외 환경을 살펴보면 ‘문화 다양성’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문화’의 가치와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좀더 깊이 있고 상호 지속 가능한 국가간의 문화교류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필자는 문화관계(Cultural Relations)와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관점을 더욱더 강조하고 싶다.
먼저 문화관계는 서로 다른 문화 간의 더 큰 연결성과 깊이 있는 상호관계를 만드는 지속 가능한 행위를 말한다. 문화외교와 공공외교와 같은 국가 주도의 활동과는 구분되며 보다 더 상호적이고 초국가적이다. 또 다른 관점인 소프트파워는 조셉 나이가 고안한 개념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상대방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능력’이다. 하드 파워의 반대 개념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군사력과 경제력과 같은 강압적인 방식을 사용하는 대신, 매력을 통해 상대방의 동의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힘을 의미한다.
이 글은 영국문화원이 지난 2017년 2월부터 2018년 3월 말까지 진행한 “2017-18 한영 상호교류의 해 ‘창의적 미래’(UK/Korea 2017-18 Creative Futures)”(이하 ‘창의적 미래’)에서 영국 문화와 창조 경제를 소개하여, 양국의 문화적 경제적 부가가치 생산을 꾀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고자 한 사례를 공유하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또한 중국·호주·브라질 등 다른 나라의 영국문화원의 국가간 행사와는 달리 처음으로 영국 사람이 아닌 현지인 예술감독을 선임하였기에, 한국인 영국 측의 예술감독(Creative Director)의 관점과 영국내의 한국 프로그램이 아닌, 한국에서 개최된 영국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은 영국, 혹은 영국문화원의 관점이 아닌, 필자 개인의 관점이 라는 것을 먼저 밝힌다.
국가 간의 국제교류는 누가, 왜 하느냐에 따라서, 그 형태와 방법이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00수교행사, 00상호교류의해 등 국제문화교류 행사의 대부분 정부산하기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가간 국제교류를 본격적으로 말하기 앞서, 먼저 행사의 주최 기관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국문화원은 1934년에 설립된 로얄 차터(Royal Charter, 왕실인가)의 자선기관이자 공공기관이다. 현재 전 세계 100여개 국에 주재하며 양국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계를 정립하고 교류와 교육 및 사회분야까지 다양하게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무엇보다 영국문화원은 정부 산하기관이 아니라 공공성을 담보한 독립적인 영국의 국제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 정부로부터 총 예산의 18%를 지원받고, 나머지는 공공기관과 일반기업의 파트너십 및 스폰서십 지원금과 어학원 및 시험운영·프로젝트 수행·각종 서비스 이용에 따른 수수료 등으로 재원을 충당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영국문화원이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국가간 문화교류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비결이다.
이 독립성과 주체성을 토대로 영국문화원은 하향식이 아닌 상향식, 일회성이 아닌 3~4년에 걸쳐 체계성을 갖춘 국가간 교류행사를 만드는 것이다. 행사 기획 단계에서는 사전 시장조사, 협력 파트너, 재정 후원 스폰서 등의 철저한 리서치와 분석이 선행된다. 또한 해당 분야의 전문인력들을 확보하고, 3~4년간 사전 리서치-준비기간-실행 기간 및 평가기간과 같은 일련의 장기적·전략적 접근을 통해 프로그램을 구축할 수 있다. 프로그램의 독립성 보장도 핵심요소이다. 그러면 사전 리서치와 분석을 통한 ‘2017-18 한영상호교류의 해’의 주요한 전략적 기획 방향을 살펴보자.
첫 번째는 주제별 프로그램 구성이다. ‘창의적 미래 Creative Futures’라는 슬로건 아래, 한영 상호교류의 해는 ‘예술과 도시’ ‘예술의 다양성과 통합성’, ‘디지털 기술을 통 한 변화와 혁신’, ‘창의 교육’ 그리고 ‘창의기업가 정신’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를 제시함으로써 프로그램의 방향성과 차별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예술과 도시’는 도시에서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사회적 기능, 도시 공공 공간에서의 창의적 프로젝트 만들기, 그리고 예술가와 지역 공동체의 관계 맺기에 대한 질문이었다. 예술의 다양성과 통합성’은 ‘장애와 예술’, ‘예술과 고령화 사회’, 그리고 ‘성소수자의 인권과 젠더 문제’에 집중한 주제로서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실천에 대한 주제였다. 세 번째 ‘예술의 다양성과 통합성’과 네 번째 ‘디지털 기술을 통한 변화와 혁신’은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과 기술이 어떻게 예술과 서로를 탐구하고 협업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하는 주제였다. ‘창의교육’ 에서는 다양한 예술교육과 창의적 방법론, 예술을 통한 창의성 확장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을 제공하고자 했다. 마지막 주제어 ‘창의 기업가 정신’에서는 청년창업가에게 창의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 도록 워크숍을 제공뿐만 아니라, 한국과 영국 정부 간 창조산업 및 창의 분야 비즈니스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다양한 협력의 토대를 제공하고자 했다. 물론 모든 프로그램이 위의 항목에 해당 되는 것은 아니지만, 주제별 접근으로 분명한 관점과 기획 방향을 보여 주고, 창의적 미래에 대한 논의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심역할을 하였다고 본다.
두 번째는 기획 방향과 목적에 따른 기관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조정이었다. 즉 <시장개발 분야(Market Development)>, <지속 교류 개발을 위한 플랫폼과 네트워크 확대 분야(Increasing mobility and platform & network)>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 있는 분야를 지원하는 역량강화 분야(Capacity building for pushing the boundary)>의 세 가지 분야로 나누어, 목적에 따라 기관의 역할을 재정의 하는 것이었다. 이미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시장개발 분야>에서는 공공 주최 기관의 지나친 주도적 개입은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 공공의 간섭은 후속 시장마저 무너뜨릴 위기마저 안고 있다. 여기에서 공공의 주최 기관의 역할은 브로커링(Brokering)이나 매치 메이킹(Match Making), 혹은 정보의 분석과 제공에 집중된다. 즉 이미 형성된 시장성을 바탕으로 자연스러운 교류가 이루어 지도록 하게 하는 것이 최선의 역할이라고 보았다. <지속 교류 개발을 위한 플랫폼과 네트워크 확대 분야>에서는 교류 기반이 갖춰져 있는 한국 기관과 단체 그리고 예술가들에게 주제적 접근을 공유하고, 영국과의 중장기 협력 파트너를 연결해주고, 공동의 프로젝트를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재정·기획·홍보 측면을 지원하였다. <미래의 가능성 있는 분야를 지원하는 역량강화 분야>는 다소 실험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분야로 오랜 시간 동안 숙성이 필요한 분야였다. 초석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지식교류·인적교류·레지던시·랩(Lab)형태의 지원으로 예술가·기획자·기관들이 서로 만나서 정보를 교환하는 장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각각의 목적에 따라 들이는 시간, 재정투자, 진행 방식과 역할의 재정의가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였다.
세 번째는 거버넌스 조직과 협력 파트너십의 중요성이라고 할 수 있다. 주최는 주한영국문화원, 그리고 주요 협력 기관은 영국 문화미디어스포츠부, 주한영국대사관, 영국 국제무역부, 잉글랜드 예술위원회 등 주요 기관들과 협력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였다. 또한 한국의 협력기관으로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런던 주재 한국문화원 등이 있었다. 보통의 조직위원회와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였으나, 거버넌스가 있었기 때문에 영국문화원 프로그램의 독립적으로 지원할 수 있었다. 또한 영국문화원은 정기적으로 프로젝트 진행 사항을 분석하고, 정치 상황 변화와 재정, 홍보, 마케팅 등 주요 사항을 공유함으로써 각 협력 기관 사이에 팔 길이의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의 관점에서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사무국내에서 많은 시간을 ‘공유’를 위한 준비의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각 협력기관들에게 밀도 있는 진행 사항의 분석 및 공유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고 본다. 또한 기관 별 협력(Collaboration 혹은 Partnership)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모든 프로그램을 영국문화원의 주최가 아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잉글랜드 예술위원회 공동기금 프로젝트’로 설정하는 등 각 기관 별 주최 프로그램과 협력 기획 형태를 지향하였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주최기관과 협력기관의 크레딧(credit)을 분명히 명시하고 각 기관들이 소유권을 갖게끔 한 점이었다.
행사 전후로 물론 많은 도전과제들도 있었다. 첫 번째는 프로젝트 진행에 있어 양국의 타임라인(Time-line) 차이의 문제였다. 한국 측의 프로그램 결정에 걸리는 물리적 시간, 다년간 사업 기획의 어려움으로 인한 단기년도 사업 기획에서 오는 한계, 그리고 양국의 회기 년도 차이 등으로 인하여 특히 중장기 공동협력 기획 프로젝트에 대한 어려움이 많았다. 두 번째는 한반도내의 정치 상황 변화, 즉 국정농단 사태, 대통령 탄핵,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영국내의 브렉시트(Brexit) 등 정치적 악영향이 교류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운영조직 구조가 독립성을 가지고 있어 치명적인 영향은 적었지만, 발 빠른 대처와 정부협력 기관의 도움으로 위와 같은 문제점들을 최소화 하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불안정한 정치상황은 기금조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몇 차례 기획 프로그램을 조정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모든 프로그램이 한국의 기관·단체 그리고 예술가와의 공동협력 기획인 관계로 한국에서의 문화예술 행사가 5월과 9월, 10월에 집중될 수 밖에 없었던 문제였다. 13개월의 행사 기간 동안 특정기간에 집중된 업무량(Work Load)에 따른 인력 운영과 업무 분장, 및 홍보 마케팅의 연중 지속성이 도전과제였다.
지난 2년 7개월동안의 주한 영국문화원의 한영 상호교류의 해 예술감독으로서의 경험은 국가간 국제교류의 많은 중요한 교훈을 주었다. 첫 번째는 로컬라이제이션(Localization), 즉 지역화와 문화적 드라마트루기(Dramaturgy) 이다. 아무리 혁신적이고 우수한 작업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교류 협력 대상인 상대 파트너가 필요로 하는 관점에서 ‘교류’를 바라봐야 한다. 그러므로 교류 대상의 분야별·지역별·장르별 리서치 분석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고, 그 분석을 통한 교류 프로그램 기획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로부터 출발이 아닌 상대방으로부터 시작이 기획의 첫 단추가 되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기획 단계와 실행 단계에서 상대방의 문화적·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고 프로젝트를 해당 지역에 맞게 재구성하며,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차이’에 대해 문화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차이를 번역해 줄 수 있는 문화적 드라마투르그만이 국가간 국제교류의 독특성이나 고유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다.
두 번째는 파트너십(Partnership) 정의와 지속 가능한 협력체계 만들기라고 할 수 있다. 국가간의 교류 행사가 단기성·일회성 프로젝트를 지양하고 중장기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면, 파트너쉽의 의미는 단순히 프로젝트 공동 진행 혹은 재정 자원 확보를 넘어서, 혹은 단순히 눈앞의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장기적인의 동료로서 신뢰구축과 휴먼 네트워크 확산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건강한 조직과 거버넌스 구조이다. 즉 정부-산하구조의 하향식(Top-down) 조직 구성과 운영이 아닌, 먼저 기관의 주체성과 독립성이 분명히 보장 되어야하며, 협력 기관들과 경쟁이 아닌, 상생의 거버넌스 구조 만들기가 국가간의 국제교류에 중요한 핵심사항이 였다는 생각이 든다.
‘2017-18 한영 상호교류의 해’는 국가간의 문화 교류에 있어 진정으로 상대방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고, 깊이 있는 지속 가능한 상호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문화관계(Cultural Relations)로서 소프트 파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함께했던 문화원 내의 동료들과 한국과 영국의 협력 파트너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진정으로 감사의 인사말을 전하고 싶다.
최석규는 축제감독, 프로듀서, 리서처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영 상호교류의 해 2017-18 ‘창의적인 미래’와 안산국제거리극축제에서 예술감독, 춘천마임축제에서 부예술감독으로 일했다. 2005년에는 아시아 동시대 연극, 무용, 그리고 다원예술 작품개발을 중심으로 작업하고 있는 아시아나우 (AsiaNow)을 설립하여 한국현대 연극과 무용 국제 교류 작업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아시아 프로듀서들의 다양한 프로젝트 개발을 위해 2014년부터 시작한 협력 네트워크 Asian Producer’s Platform 의 한국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