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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창업, 어디까지 왔나
예술 창업의 이슈들혁신적 스타트업을 통한 산업생태계 활성화는 미국이나 유럽을 넘어 전 세계적 추세라고 할 수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술의 급진전은 많은 분야에서 새로운 활동들을 추동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움직임이 산업적 패러다임의 전환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고용이 한계에 부딪혀 선택하는 고육지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분야를 막론하고 청년 창업에 대한 논의들을 보고 있자면 그런 인식이 더욱 커지는 것 같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의 문화예술 스타트업은 2012년 대비 2016년 80% 급증하여 그 수가 5,00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실, 문화예술 분야 창업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스타트업이 문화예술계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예술계의 구직난, 혹은 생활고 등에서 오는 압박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 분야는 장르나 개인별로 차이가 있겠으나 대개 영세하고, 안정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로 꼽히곤 한다. 하지만 이 요소들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혁신적인 사업을 위한 조건이라고 볼 수도 있다. 조직이 무거우면 변화가 어렵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기도 힘든 법. 일반 창업에서도 규모가 있는 창업보다는 소규모 창업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누군가 농담으로 현재의 스마트폰은 20년 전에 일반에 보급되었던 가장 뛰어난 PC를 능가하지만, 우리는 그 기계로 음식 사진을 찍어 자랑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많은 이들이 4차 산업혁명에서 기술에 집중하지만, 실제 인공지능이나 사물인터넷 등이 보편화된 세계가 도래하게 되면 더욱 가치를 인정받게 될 분야는 기술 혁신으로 발생한 자리를 채우게 될 콘텐츠가 될 것이다.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변화를 가져올 거라고 예견되던 3D프린터에서도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보다 기술을 구현하기 위한 디자인이었다. 미래가 기술만으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기술은 필요조건일 뿐이다. 물론, 특이점(singularity,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분기점)을 넘어선 인공지능이 언젠가 인간의 창의성과 상상력의 영역마저 잠식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지만 아직은 문화예술의 쓸모가 다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물어야 한다. 창업으로 인해 갖게 되는 기회의 요소는 무엇인가. 가장 먼저 꼽을 것은 역시 ‘먹고사는’ 문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5년 예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가들의 평균 예술 활동 수입은 연 1,255만 원으로 2명 중 1명이 예술 활동 이외의 겸업을 하고 있으며, 전업 예술인의 70%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기본적인 생활, 아니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예술 활동이 안정적이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을 놓고 볼 때, 자신의 일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경제적인 자립을 도모한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이는 사실 예술시장의 협소함을 함께 언급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는다. 문화예술계가 갖는 문제의 대부분이 사실은 시장의 협소함에서부터 비롯된다.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으니 공공지원에 더 많은 무게가 실리고 쏠림 현상이 일어난다. 이는 예술계 대학의 구조조정 문제까지 연결되어 있는 고질적인 이슈다.
두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새로운 활동의 기회 창출이다. 다시 말해 예술 활동의 파급력을 확산하는 것이다. 예술이 고독한 천재의 전유물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유통되며 사람들에게 가치들을 전파하고 확산하는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예술시장의 협소함은 대다수의 예술가에게 좌절의 상흔을 남긴다. 예술이 사회적으로 가치를 확산하고 쓰임새를 새롭게 비추어 본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이들과 예술을 나누는 방식을 고민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술의 근원에 대해 꾸준히 성찰하고 동시대 예술의 흐름에 무감각하지 않으며 새로운 가치와 방법론을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예술가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창업만이 파급력 확산의 방법은 아니다. 다만,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창업이 하나의 유력한 방편이 되어 가고 있다는 말이다. 창업이 모든 예술가들에게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어떤 예술가들에게는 창업의 유무와 상관없이 시장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활동의 반경과 폭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도 있다.
그럼, 창업과 관련한 공공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문화예술 분야의 대표적인 창업 지원 기관으로는 한국콘텐츠진흥원,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등을 꼽을 수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는 콘텐츠코리아랩, 창업발전소,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사업의 특징은 분야 간 융합을 강조하는 것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예술경영아카데미를 통해 예비 창업자와 관련 업종 종사자들에게 역량 개발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예술 해커톤으로 창업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해당 아이디어를 사업화 할 수 있도록 시제품 개발·비즈니스 모델 구축을 지원하며, 창업 아이템의 판매와 유통까지 지원 사업을 연계 추진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청년 예술가 창업 팀을 지원하는 ‘예컨대 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다. ‘예술가와 컨설턴트의 대화’를 뜻하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면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생이 한 명 이상 포함된 팀을 꾸려야 한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은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을 통해 창업 팀을 육성하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 사회적 기업은 전체 인증 사회적 기업 중 꾸준히 15% 내외를 유지하는 상황이다.
창업보육센터는 2018년 기준으로 전국 262개가 분포한다. 운영 주체로 보자면 정부·지자체나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공간부터 대학이나 민간협/단체, 연구소 등에서 운영하는 공간까지 다양하다. 이 중 16개가 디자인, 문화콘텐츠, 공예 등을 특화해서 운영 중이다. 창업 지원은 대개 자금 지원, 공간·설비 지원, 홍보마케팅 지원, 교육 지원, 네트워크 지원, 멘토링 및 컨설팅 등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창업보육센터들의 대다수가 예술 창업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대해 공공 영역에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를 갖춘 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의견과 지원 기관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교육을 별도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다. 지원 기관들의 다수가 여전히 제조업 중심의 모델에 익숙하다 보니 유형의 성과물이 빠른 속도로 산출되지 않는 문화예술 분야를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지원의 주체들이 예술 창업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지 않으면 그만큼 지원을 받는 스타트업들이 겪어야 할 시행착오의 리스트가 늘어날 것이다.
이는 네트워크나 협업의 문제로도 연결되어 실제 협업이 발생하는 조건들을 지원 기관이 잘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실제 협업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필요들이 만나야 하는데, 창업 초기의 기업들은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하기에도 벅차 협업이나 네트워킹에 시간을 나눠 쓰기 어렵다는 의견들도 있다. 사단법인 루트임팩트가 운영하는 디웰하우스(D-Well House)는 그런 점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라 하겠다. 체인지메이커들의 코리빙(co-living)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이곳에서는 자연스러운 교류와 협업이 꾸준히 진행 중이다.
창업진흥원이 발간한 『2017년 창업기업 실태조사』에서 예술/스포츠/여가 분야의 창업기업은(전체 창업기업 2,001,674개의 3.5%인 70,589개로 집계) 가장 필요로 하는 지원 정책으로 초기 금융 지원(54.4%)을 꼽았다. 일반 창업자들도 마찬가지지만 문화예술 스타트업 역시 보편적으로 재무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 재무 계획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이 역시 영세성과 직결되는 지점이어서 쉽게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 보편화되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사업 자금을 모으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크라우드펀딩의 장점은 펀딩의 과정 자체가 자신의 사업을 알리는 기회가 된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텀블벅이나 와디즈, 오마이컴퍼니 등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둘러보면 다른 창작자들이 어떤 사업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지원 사업의 모델이다. 사실 창업자 전체를 두고 볼 때 생존율은 5% 남짓이다. 문화예술 분야는 앞서 이야기한 관계자들의 이해 부족으로 특별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런데도 거의 모든 창업 지원은 1년 단위로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들어 재창업에 대한 지원이 조금씩 현실화되고 있지만, 3년 혹은 5년을 바라보는 장기 지원은 아직까지 요원하게만 보이는 실정이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고 자립하기 어려운 것은 문화예술 분야만의 이슈는 아니다. 단기 성과에 매몰되지 않는 긴 안목의 창업 지원 정책을 기대해 본다.
안태호는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한국문화정책연구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 민예총 활동가를 시작으로 웹진 ≪컬처뉴스≫ 편집장, 부천문화재단, 제주문화예술재단 팀장 등을 거쳤다. 함께 쓴 책으로 『나의 아름다운 철공소』, 『노년예술수업』 등이 있다. 스무 살 무렵 빼어난 재능들에 주눅 들어 창작에서 도망친 후, 예술 동네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문화 정책과 기획 관련 일을 해 왔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왕성한 문화 소비자가 꿈이며, 여전히 만화를 보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