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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없어? 그럼 우리가 만들자!
필더필 창업 도전기㈜필더필(FILL THE FEEL)은 예술가의 느낌(FEEL)을 공간과 사회에 채우려는(FILL)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예술가는 대학 졸업을 기점으로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상실하는데 이는 곧 창작 활동과 경제 활동 감소, 수입원 저하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실제 예술 전공자로 살며 선후배를 포함한 많은 예술가들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정당한 급여를 받지 못하거나 활동을 포기하는 가슴 아픈 일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이 문제들은 시장(MARKET)이 없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장을 직접 만드는 기획자가 되자’는 마음으로 창업에 도전하게 되었다. 예술가에게는 재능을 유통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고, 소비자에게는 더욱 풍부한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는 ‘장(MARKET)’을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한편으로 필더필의 창업에는 빈부 격차, 정보 격차만큼 심각한 문화예술 격차를 해소하자는 취지도 함께한다. 지역에서는 누릴 수 있는 문화예술 활동도 부족하지만, 진행되는 문화 행사 또한 10년째 같은 축제이거나 타 지역과 다른 것이 없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된 후, ‘지역’의 특색을 살린 콘텐츠를 발굴하고 기획하여 제작하고자 창업을 결심하게 되었다.
필더필의 시작은 대학생 시절 하고 싶은 것을 같이하는 ‘CREW’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전시 공간이 아닌 유휴 공간에서도 충분히 전시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여기 이곳’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공사 중이던 홍합밸리 건물 1층을 3주간 임대받아 ‘비전시 공간 활성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전기조차 연결되지 않은 공간에서 30명의 예술가와 함께 전시, 플리마켓, 공연 등을 함께하는 축제가 열렸다.
참여 작가 대부분이 20대 초반이었는데, 전시 과정에서 그들에겐 무엇보다 경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동대문구청 로비에서 ‘청춘걸다’라는 이름으로 첫 전시를 올리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구청 로비라는 ‘유휴 공간’을 활용하고, 청년 작가들에게 공적인 공간을 활용한 경력을 만들어 주자는 생각이었다. 이 전시는 재전시 프로젝트 ‘재기발랄전’으로 연결되는데, 재기발랄전은 다양한 이유로 예술 활동을 그만두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분들을 위한 ‘다시 첫 전시, 재전시 프로젝트’였다.
이렇게 몇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고용노동부 주최의 ‘소셜벤처 경연대회’에 참여했다. 이 대회에서 창업아이디어 우수상(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상)을 받으며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창업 팀으로 합류하게 됐고, 시드머니를 확보하고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쌓으며 드디어 2016년 11월 주식회사로 창업하게 되었다.
이후 100만 원, 300만 원짜리 작은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청년 기업들에 부족하기 쉬운 ‘포트폴리오’, ‘레퍼런스’를 축적하는 데 주력했다. 실력과 가능성을 말이 아닌 포트폴리오로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2017년에는 요청받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들어오는 대로 모두 수행하며 성장해 나갔다.
이제 필더필은 한국관광공사 예비관광벤처 인증, 현대차 정몽구재단의 소셜벤처 H-온드림 펠로우 선정에 이어 2018년 현대모비스, 광동제약, GS칼텍스 등 국내 대기업의 CSR사업을 진행하며 문화예술을 다양한 분야에 접목하고 있다. 이제는 지자체와 정부 행사 대행을 넘어 기업의 포럼, 콘퍼런스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해 필요한 영역에 맞는 문화와 예술의 소리를 내고, 채워 나가는 중이다.
필더필의 사업 아이템은 예술가에게만 머무르지 않는다. 다양한 사회 문제를 문화로 풀어 가는 것이 주력 사업이다. 사회 문제를 경제, 정치 분야에서 해결하면 조금 더 빠를 수 있지만, 문화로 풀어 가는 것만이 사람들의 일상에 가장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우선 외부 용역을 수주해 진행하는 사업이 있다. 대부분의 지역 축제가 천편일률적으로 특색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다양한 지자체의 축제를 수주하여 지역의 특색을 살린 기획을 제안하고, 새롭게 구성하며 이 과정에서 지역의 예술가와 신진 예술가들이 함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또, 기업의 사회 공헌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표 사업으로는 한국메세나협회와 함께 진행하는 ‘GS칼텍스 취준동고동락’이 있다. 취준생 100만 명 시대, 취준생들에게 취업과 힐링 모두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이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실제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취업에 대한 스킬도 필요하지만, 문화예술을 활용하여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 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자존감 하락과 우울증 등 심리적 요인에 대한 힐링도 그에 못지않게 필요한 것 아닐까? 이 프로그램은 올해 400명의 취업 준비생들과 함께 3회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필더필은 이렇게 사회 문제를 문화예술에 접목한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산타런’과 ‘예술대장정’은 필더필의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 자체 프로젝트이다. 산타런 프로젝트는 이영학 어금니아빠 사건, 새희망씨앗연대의 기부금 횡령과 같은 문제가 일어나면서 가뜩이나 기부 문화가 폐쇄적인 우리나라에서 구세군과 사회공동모금회 등의 기부금 모금이 더욱 축소되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된 후 안타까워 시작하게 된 사업이다. 즐겁게 놀고, 뛰고, 즐기다 보면 기부가 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 위해 이색기부마라톤축제 <2017 제1회 산타런>을 시작했다. 첫 행사였음에도 800명의 유료 참가자, 3,000명의 무료 참가자와 함께 300만 원의 기부금을 모아 치료가 필요한 어린이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예술가에게 기부했다. 산타가 되어 즐겁게 달리고, 공연을 즐겼을 뿐인데, 한 명 한 명 작은 산타들의 힘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뭉클한 순간이었다. 프로젝트가 KBS 9시 뉴스, 연합뉴스, YTN 등 다양한 언론에 보도되면서 새로운 기부 문화에 일조할 수 있었다. 2018년에도 제2회 산타런을 개최하여 1,500명의 산타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통해 총 220만 원(현금, 현물 포함)의 기부를 진행하였다. 2017년부터 시작한 예술대장정은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찾아 떠나는 이색 테마 여행으로 진행하고 있다.
필더필의 멤버는 창업 멤버 3인을 포함한 총 5인으로, 팀장을 제외하고는 직급에 상관없이 PD라는 직함으로 서로를 부르고 있다. 매출 규모(전년도 10억)에 비해 인원이 적은 편이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 편인데, 그 이유는 핵심 영역에만 집중하고 그 밖의 일은 협력사를 구축해 아웃소싱하자는 내부의 전략 때문이다. 회사가 하는 비즈니스의 성공 여부가 ‘사람이 얼마나 모였느냐’에 따라 평가될 때가 있다 보니 마케팅도 필요하고, 늘 새로운 기획에 맞는 디자인을 위해서는 디자이너도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2017년에 핵심 멤버 둘에게 마케팅부를 신설하고 마케터를 채용하자고 제안했었다. 그때 동료들이 내게 주었던 답변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기획한 것은 우리가 가장 잘 안다. 기본적인 마케팅 계획과 수행은 기획자가 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인 마케팅 교육을 회사 내부에서 진행하되, 우리가 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선 전문 업체에 아웃소싱하자”라는 답변이었다. 조직 규모에 대한 욕심과 허영을 일깨워 준 반응이었다. 이후 필더필은 기획 역량, 즉 우리의 핵심 역량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앞으로도 같이하는 파트너들의 네트워크를 단단히 하고, 실력 있는 기획자들과 함께 새로운 기획에 집중하는 전략적 조직 구성으로 회사를 꾸려 나가고자 한다.
필더필은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과 ‘한국관광공사 예비관광벤처’를 지원받았다. 모두 시드머니 확보에 큰 도움이 되었고, 당시 멘토님들과는 지금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으며 여러 조언을 구하고 있다. 정부 지원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대부분의 창업가가 경험이 부족한 만큼 멘토진의 구성과 진정성이라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현대차 정몽구재단 H-온드림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았는데, 정부지원사업과는 ‘사업 연계’, ‘네트워크 연계’ 등 간접 지원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정부 지원 사업에 비해 기업의 지원에 기대하는 부분은 직접 지원 측면에서 ‘자금의 효율적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공공과 민간 사이에서 마땅히 발생하는 차이라고 생각한다. 공공의 세금을 쓰는 만큼 증빙과 정산의 과정이 정확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이는 받은 만큼의 대가(trade-off)라고 생각하는 것이 편할 것 같다. 직접 겪은 바로는, ‘기업’의 지원은 간접 지원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지원받는 기업의 상품·서비스를 최대한 활용하여 연계 성장을 유도하는 점, 기업에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는 네트워크와 마케팅을 연계하는 점이 그렇다. 당장에는 뚜렷하게 성과가 보이지 않아도 이런 부분은 장기적 측면에서 직접 지원보다 훨씬 도움이 많이 된다. 정부의 지원사업도 이런 측면이 보완되길 바란다.
창업을 준비하는 문화예술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언제든 거절당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프로젝트가 거절당한 이유는 실력이 부족해서, 지금의 시장과 맞지 않아서, 설명을 잘하지 못해서, 설득 논리가 부족해서, 보이지 않는 이해관계 등 다양하다. 이는 원인을 찾아 해결하면 되고, 기회를 봐서, 혹은 다시 준비해서 제안하면 되는 일이지 자존심을 내세우며 그만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화예술인이 일반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과 가장 큰 차이는 ‘숫자를 모른다’가 아니라 ‘자존심’에서 시작되는 ‘두려움’이 아닐까? 나와 내 프로젝트를 분리해서 생각한다면, 분명 예술을 끝까지 해 봤던 그 끈기와 인내심, 독기가 장점이 되어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창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다혜는 (주)필더필 대표로, 예술가와 함께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소셜 벤처 문화기획사 대표이다. 예전에는 무대 위에서 무용을 하던 사람이었지만, 현재는 이를 그만두고 필더필에서 무대를 만드는 사람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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