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진에 실린 글의 내용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TEL 02-708-2293 FAX 02-708-2209 E-mail : weekly@gokams.or.kr
공연 기획부터 렌털까지,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재)세종문화회관 박임서 무대기술팀장많은 이들이 문화예술 분야에서 주 52시간 노동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곳으로 공연장을 꼽는다. 무대 설치와 리허설, 메인 공연, 공연 후 무대 철수와 장비 분류 등 공연 전후의 일정을 맞추기 위해 장시간 근무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공연이 주로 주말에 열리다 보니 주말 근무도 피할 수 없다. 52시간 근무를 맞추기 위한 인력 보충 이슈는 공연장을 운영하는 사업장의 중요 협상 의제가 됐다. 『2018 공연예술실태조사』에 의하면, 2017년 말 기준 국내 공연장 수는 1,019개, 그 중 공공 공연장은 493개를 차지하고 있다. 공공 공연장은 종사자 수가 300인 미만이더라도 52시간 근무제가 바로 적용된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대표적인 공공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 무대기술팀의 박임서 팀장을 만나 세종문화회관의 주 52시간 근무제 대응 방안에 대해 들어 봤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지 9개월이 지났다. 특히 공연장에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다.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를 정리하는 과정은 근무 시간을 몰아서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나? 공연을 준비하는 것은 변수가 많은 일이다. 정해진 타임스케줄이 정확히 진행되었을 때는 괜찮은데, 예상하지 않은 일이 발생하면 일일이 대응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예정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경우가 많다. 무대 장치들의 메커니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 리허설을 진행하며 출연자나 연출자가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을 경우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꼭 발생한다. 무대 자체가 변수가 많고 계획대로 가기 힘든 공간이다. 여러 분야의 사람이 모여 공연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각자 잘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공연장 스태프가 그걸 백 퍼센트 컨트롤하긴 어렵다.
일반적인 타임스케줄은 어떻게 구성되나? 스태프 회의 한 번으로 무대 스태프가 정확한 타임스케줄을 예상하기는 어렵다. 공연 내용과 스케줄을 대관사 측 기획자나 스탭이 설명하면 완성도 높은 공연이 될 수 있도록 무대기술 측에서 그에 상응하는 의견을 주게 된다. 예를 들어 오후 대관일 경우 오후에 준비하고 저녁에 공연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실제 주어진 시간에 진행하는 게 무리거나 연습 시간이 부족하다 싶으면 오전 대관을 추가하도록 기획사 측에 제안한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그것이 합당해 추가 대관을 신청하게 되면 우리 측에서는 그만큼 근무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은 52시간 근무제 시행 전에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은데? 기존 근로기준법에도 정해진 시간이 있긴 했지만 연장, 휴일 근무가 별개였다.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원하는 대로 대응이 됐는데 현재는 휴일, 연장 합쳐서 52시간만 근무할 수 있다보니, 그 변화를 그 충격을 받아들이기 힘들긴 한데 법은 법이라 그에 맞춰갈 수밖에 없다.
주로 주말에 공연이 많지 않나? 주말 근무에 대한 부담이 있을 것 같다. 세종문화회관의 공연장은 원칙적으로 휴일이 없었다. 1년에 365일 대관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주 52시간 근무제에 맞춰 올해부터는 월요일 공연이 없다. 다만 공연 준비 및 철수 작업은 가능하다. 그래서 일주일 중 개별적으로 유지보수 및 공연관련 근무 일정이 없는 날에 쉬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밤샘 작업에 대한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실제로 많은 편인가? 예전엔 많았다. 공연이란 게 주어진 시간 안에 준비를 마무리해야 하니까. 기획사 쪽에서 시간을 잘못 계산해 예정된 대관 일정이 넘어가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지금은 사전 설명과 설득을 통해 조정한다. 심야 근무에 발생하는 문제 등을 설명하고 미리 계획을 정확히 세우고 그에 맞춰 불필요한 것을 줄인다. 공연장 대관 일정을 염두해 둔 사전 조율이 가능해졌다고 볼 수 있겠다. 연간 대관은 정기·일반 대관으로 나누어 지는데, 정기대관은 1년 전에 정해지고, 일반대관은 정기 대관 후 남아있는 일정에 대해 이루어진다. 미리 확정된 일정이 있기 때문에 앞뒤로 대관을 추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이유로 밤샘작업을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시스템이 합리화되는 과정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모든 변수에 대응할 수 없다면 공연을 준비하는 쪽에서 퀄리티상의 아쉬움을 표할 수도 있겠다. 그건 원래 기획사 쪽에서 시간 스케줄에 안전 및 공연완성도를 고려한 준비, 리허설, 공연퀄리티까지 자체 계산해서 포함한 것으로 봐야 한다. 공연장 쪽에서는 원활한 진행이 될수 있도록 지원과 조언을 해주지만 그것도 받아들일 때 가능하고 당초에 잘못된 계획에 의한 것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이전에는 심야 대관이란 수단이 있었는데, 공연장 안전도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1년 전부터 크게 무리가 없다면 기본 시간 내에서 대응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면서 적용하는 근무제도에는 무엇이 있나? 노사 간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올해부터 선택적 근로시간제(이하 선택 근로)를 운영하고 있다. 정산기간 평균 52시간 한도 내에서 소정근로시간과 연장근무 시간을 개인이 조정해 근무를 하는 것이다. 스태프로서 기본업무가 정해져 있고 그걸 본인이 스케줄에 맞춰 출퇴근하면 된다. 현재는 2주 단위로 운영하고 있다. 이번 주 업무량이 많으면 미리 몰아서 하고 나머지는 쉬는 식이다. 탄력 근무는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정산기간 평균 52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근로가 가능하고 1일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다른 기관들도 유연근무제 등을 선택해 활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선택 근로는 다른 부서에 해당되지 않고 무대기술팀만 선택할 수 있다.
선택 근로가 자리 잡기까지 과정이 쉽진 않았을 것 같다. 주 5일 근무제 시행 이후 팀 내 토론과 노사 간 대화와 협상 등 오랜 시간을 들여 정리하는 과정이 있었다. 3월까지는 선택 근로 도입을 실험한 것으로 봐야 한다. 논의 과정에서 탄력근무와 시차근무도 나왔지만 최종적으로는 선택 근로를 채택했다.
휴식 시간이 충분히 보장되는지도 관건이었겠다. 이를테면 심야 근무를 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나? 야간근로를 지양하니까 특수 사유가 없으면 심야 근무를 하지 않는다. 아주 큰 문제가 생겨 밤을 새워 해결해야 하는 경우는 판단에 의해 다음날 해결할지 심야에 해결할지를 결정한다. 대부분 서로 합리적으로 이야기를 통해 다음날 낮으로 조정된다. 스태프 회의에서 시간을 협의하는 것을 통해 휴게시간을 확보하고 있다.
도입 과정에서 의견의 충돌이나 흥미로운 사례가 있었다면? 그런 정도는 없고 인식의 차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무대 스태프들은 일반 샐러리맨들과는 좀 다르다. 야간이나 주말에 계속 일을 하게 되는 특성상, 공연장 스태프로서 근무한다는 건 보통의 사회생활이나 친인척 가족 관계를 일부 포기한다는 것을 뜻한다. 직업에 대한 자부심, 소명 의식, 목표가 있으니 이 일을 하는 거다. 완성도 높은 공연을 만들고 관객과 출연진, 스태프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물이 됐을 때 보람을 느낀다. 물론, 욕만 안 먹으면 다행이다 싶은 때도 있지만.
사실, 52시간 근무제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력 충원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다. 노동 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확충한다는 취지도 있다. 세종은 인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 주 52시간 근무제로 인해 일부 인력을 충원했다. 총 16명 충원을 요구했고 1차로 6명 승인이 났다. 안전관리자를 포함하면 7명을 뽑았다. 현재 무대기술팀 인원은 50명 정도다. 지금도 충원을 진행 중이다.
정원이나 예산 문제로 인해 충원이 쉽진 않았을 텐데 생각보다 수월했던 것처럼 들린다. 사실 충원이 답일 텐데 이야기한 대로 예산이나 정원 상의 문제가 있어 수월하진 않다. 정원이 늘어나야 그에 맞춰 예산이 배정되고 충원한다. 백 퍼센트 원하는 만큼 할 수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의 출연을 받아 운영되는 기관이라 충원을 위해서는 서울시의 승인이 필요하다. 경영진이 설득을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의 결과는 무대기술팀의 물리적인 문제를 이해하고 가능한 범주 내에서 최선을 다해 충원한 것이다. 마침 S씨어터 오픈과 맞물려서 필요 인력을 산정하고 추진한 측면도 있다. 나머지는 우리 내부에서 해결할 수 없다 보니 서울시와 협의해야 한다. 조직에서 사람은 항상 부족하고 아쉽지 인력이 남아도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나. 52시간 근무제로 인해 가장 난감한 건 무대기술팀이라 조직에서 안배해 준 것으로 생각한다.
무대기술팀의 인력배분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세종문화회관에는 대극장, M씨어터, 체임버홀, S씨어터 등 총 4개의 공연장이 있는데 각 공연장마다 분야별 인원수로 할당은 되어 있다. 그러나 공연 진행은 음향, 조명 등 각 파트에 따라 유동적으로 공연별 팀을 꾸린다. 공연장별로 작업할 경우, 공연장을 이동할 때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해진 스케줄 내에서 팀을 구성하는 것은 어렵진 않다.
감독들 간의 협회가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협회에서는 52시간 근무제와 관련해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나? 무대음향협회 이사장을 3년 맡았었다. 각자 공간이 흩어져 있고 지자체 직영, 재단, 민간 등 운영 주체도 다양하다 보니 이슈는 조금씩 다르다. 논의 자체는 활발하다. 해결 방안을 찾으려 노력하는데 직장과 협의해야 하는 문제니까 하나로 이야기하기에 곤란한 부분이 있다. 이전에는 스태프들이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별로 없었는데 앞으로는 활발해질 것으로 본다. 정서적인 면과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협회 자체가 유대 관계나 친목 정보 교류 선이었다면 지금은 직능단체로서의 힘을 모으기 위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여러모로 세종문화회관은 공공 공연장들의 모델로 기능하는 측면이 있다. 다른 공연장들의 상황은 어떤가. 전국적으로 보면 공연이 많은 지역과 적은 지역으로 나눠진다. 유연근무제를 선택하지 않으면 9 to 6가 지켜지기 어려우니 대관을 시간에 맞춰 제공하는 방식으로 조정하고 있더라. 지역에서는 주로 주말에 공연이 몰리니 토,일 근무하고 주중 대휴를 쓰도록 하는 경우도 많다. 지금 시점에서 뭐가 좋은 방안인지 답을 내리기 어렵다. 다양한 방법을 적용해 보는 시간이 좀 지나야 할 것 같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근무 시간이 줄어 실질소득이 줄어들다 보니 근무 시간 자체를 지키려는 입장들도 있다. 직원들에게 대휴 사용을 권해도 실제로는 쓰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공연 시간을 앞당기거나 하는 방안을 적용하나? 예술의전당은 공연 시간을 7시 30분으로 조정한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아직까지는 제도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지는 않다. 세종문화회관 산하 9개 서울시예술단은 고정 관객층도 있고 공연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7시 30분에 공연하지만, 대관 공연은 상황에 따라 운영하고 있다. 단지 공연 시간만의 문제는 아니다. 주 52시간 근무제에서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기획 단계에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고, 각종 장비와 인력수급 등 렌털 업체부터 시작해 모든 것이 맞물려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접근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
안태호는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한국문화정책연구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 민예총 활동가를 시작으로 웹진 ≪컬처뉴스≫ 편집장, 부천문화재단, 제주문화예술재단 팀장 등을 거쳤다. 함께 쓴 책으로 『나의 아름다운 철공소』, 『노년예술수업』 등이 있다. 스무 살 무렵 빼어난 재능들에 주눅 들어 창작에서 도망친 후, 예술 동네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문화 정책과 기획 관련 일을 해 왔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왕성한 문화 소비자가 꿈이며, 여전히 만화를 보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