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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던 직업으로 10년 살기
.나 자신을 소개할 때 촌놈이라고 소개한다. 이름도 촌스러운 동수이고 흔하고 편한 이름의 대표 격이다.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동수가 유행어가 된 적도 있어 누구나 아는 이름이기도 하다. 태어난 고향도 그것과 마찬가지로 그리 특별하지 않은 시골 동네이다. 사과로 유명해 곳곳에 과수원이 있고 인근에 추사 김정희 고택이 있어 간간이 동네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있을 정도이다. 이곳은 서해를 통해 물산을 배로 수송하던 과거 명성이 이름으로만 남아 있다. 창고가 많아서 창소(倉所)란 행정 지명을 가지고 있고 서해를 지나기 위한 교통의 요지이자 국내 최대 방직회사가 자리했던 사실은 철 지난 명성을 지닌 장소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빠른 속도로 지나는 자동차를 제외하면 특별한 풍경도 특징도 찾아볼 수 없는 동네다. 내가 말을 하고 제 발로 넘어지지 않고 걸을 수 있을 무렵 신작로(*)에 부모님 손을 잡고 나갔다가 빠르게 지나는 차를 보고 무서워 가로수를 꽉 껴안았을 정도로 차가 드문 시골이었다.
부모님은 여전히 그 동네 골목 안쪽 이층집에서 거주하시는데 큰집이라 명절 때면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아침 식사 후 성묘를 떠난 남성들이 자리를 비우고 설거지를 마치면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어이~ 장남, 무슨 일하는지 좀 보여 줘봐” 하고 숙모가 요청했고 거실로 여성들이 모였다. 쑥스러운 마음에 노트북을 켜고 ‘메이크앤무브(MakenMove)’의 활동들을 프레젠테이션했다.
세종시 조치원 정수장의 마스터플랜, 동숭아트센터 예술청 동숭예술살롱, 동주민센터 공유공간 조성 사업, 시장경제 활성화, 청년 창업 생태계 활성화 방안 연구, 도시재생 해커톤, 문화예술교육 현황조사 및 정책제언 연구, 문화정책 개발을 위한 현장조사 및 연구, 지역문화네트워크 활성화 용역, 공공디자인 프로젝트, 동수상회, 유휴공간 재생 연구 등을 약 60분간 설명했다. 두 번째 숨을 쉴 시간이 지난 후 숙모는 “음... 장손이 큰일을 한다는 것은 알겠어. 그래서 돈은 어떻게 벌어?” 라고 다시 물었다.
동네와 이름만큼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만화책을 보고 베껴 그리기를 좋아했다. 자연스럽게 미대 입시를 목표로 미술학원에 등록해 디자인을 시작했으나, 한 달 만에 수채화로 과목을 바꾸었다. 반듯하게 선에 맞춰 해야 하는 색칠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미대에 진학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기는커녕 생계를 위해 일하거나 소주를 마시는 것으로 소일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자 시각예술가로 명성을 떨치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미술교사와 시각예술가 사이의 선택의 순간이었다. 학교에서보다 외부에서 시각예술가로서 가능성을 열어보려 했다.
내 작품을 보러 전시장에 관객이 오지 않는다면 작품을 가지고 밖으로 나간다는 원칙에 동의한 청년 예술가 21명이 참여한 ‘현시대미술발전모임(현미발모)’ 소속으로 부산대 앞 상설할인매장(‘02년), 안양 석수시장(’03년), 부산 소재 종합병원(‘04년) 등에서 전시를 했다. 전시 작품은 ‘소통’에 천착해 상인·환자 등을 찾아다니며 현재 소원을 물었고 문자로 작품화했다. 왕래가 잦은 주차장에 페인트로 그렸고 밟을 때마다 소망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기복 행위였다.
이렇게 시작한 ‘직접 묻기/듣기, 현장에 몸으로 적용하기’는 평생의 원칙이자 신념이다. 작년 1월 창업한 메이크앤무브도 몸을 쓰고 손으로 만들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자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서울시 공공미술 프로젝트 <도시갤러리 프로젝트(‘07년~’13년)>는 예술가와 행정, 시민 사이에서 통역자, 매개자로서 자질과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예술가는 작업실에서 홀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장소를 만드는 플레이스 메이커(Place maker)로서 자리매김하고, 행정가는 서류 작업하는 이가 아니라 도시를 함께 꿈꾸고 그리는 퍼블릭 큐레이터(Public curator)로서 역할하고, 시민은 향유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주체 퍼블릭 유저(Public user)로 전환하여 ‘도시가 작품이고 삶이 예술이 되는 서울’을 그렸던 프로젝트였다.
이때 예술 현장을 도시에 작동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해 관련 규정을 비롯하여 행정 용어를 익혔다. 문서 작성 능력도 습득했다. 기안서 등 공문서 작성 능력은 여전하다. 여담이지만 기획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문서 작성과 소통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믿고 있다.
그 외에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시민 참여를 위한 프로젝트를 함께하기도 했고, 건축가·디자이너·예술가 등과 함께 도심제조지역의 창의 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16년)나 유휴 공간 활용을 위한 프로젝트(’17년)도 진행했다. 중간자로서 통역자 혹은 매개자, 기획자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직접 만나기, 묻기/듣기’, ‘새로운 참여 과정 설계하기’ 등의 철칙은 모든 프로젝트의 기본 골자이자 핵심이었다.
예술가는 단적으로 표현하면 점을 찍는 사람이다. 최종 결과물은 예술가에 의해 탄생하고 종결한다. 그래서 점을 찍는 사람이다. 기획자(또는 중간지원조직)는 판을 만드는 사람이다. 완결이 아니라 가능성을 여는 것이 과업이다. 시각예술가로 시작했던 나는 기획자와의 활동 사이에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것은 사회 제도 내 직업으로서도 마찬가지였다.
문화기획자는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찾아보기 어려운 직업군이었다. 주성진 대표는 본 웹진의 ‘기획자노트’ 코너에서 문화기획자를 “도시의 (문화) 정책을 구상하는 사람, (공연장 같은) 건축물의 운영 방향을 결정하는 사람, 예술가들의 교류와 협업을 돕는 사람,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의사 결정을 돕는 사람, 축제를 만드는 사람, 파티를 디자인하는 사람도 문화기획자” 라고 했다.
정리하자면 ‘문화기획자’란 매개하는 직업이다. 시민과 행정(기업)가 사이에서 문화로 매개하고, 행정(기업) 언어를 문화 언어로 통역해 다양한 창의 자원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고, 반대로 문화 언어를 행정(기업) 언어로 번역해 활동의 근거를 만들어내는 역할이다. 따라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폭넓게 읽고 열린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 없던 직업이 탄생했다.
문화기획자는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잦은 직업이다. 이슈를 설명해야 하고 문제 해결 방향을 도출해내야 하며 그에 타당한 근거를 제시해 관계자를 설득해야 한다. 끊임없이 사람을 만난다. 집안에서 내 별명은 안방샌님이었다. 방안 활동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지금도 아닌 척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긴장한다.
귀가하지 못하고 외지에서 자는 경우도 많다. 이 글 역시 창밖에 전동성당과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나무가 보이는 전주에서 쓰게 되었다.
시각예술가로 활동을 시작해 몇 년 후 큐레이터로 직업을 전환했고, 큐레이터에서 다시 중간지원조직 구성원으로 직업을 전환했다. 현재 메이크앤무브와 쌀가게 동수상회의 대표이자 문화기획자이기도 하다. 10년 전에는 미술 분야 NGO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이후 민간 문화기획사로 또 공공기관으로 옮기는 등 다양한 이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이직의 기준은 한결같다. “그래서 그 일이 즐거운가?”이다.
항상 누군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말투까지 따라하고는 했다. 부족함이 많았고 지금도 부족하다. 안방샌님이 전국을 누비며 다니고 있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거의 매일 많은 사람들 앞에서 회의를 진행한다. 시간을 쪼개 써야 하고 기관에 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업무량을 소화하고 있다. 그래도 즐겁다. 즐거움은 시간 배분과 선택의 자율성에서 기인한다. 일의 시작과 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조직을 꿈꾸고 있다.
어차피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10년 계획을 세워본 적도 있지만, 그대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돈은 어떻게 버는데?’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보다는, 앞으로 ‘문화기획자’를 당당한 하나의 직업으로 만들기 위해 10년을 살 예정이다.
박동수는 목원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고 경희대학원에서 문화예술정책으로 석사를 취득했다.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큐레이터였으며, 서울디자인재단(DDP), 경기문화재단 등에서 일했으며 (사)미술인회의 사무처 활동가로 일하기도 했다. 현재는 ㈜메이크앤무브 대표이고, 동수상회 사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