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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화 흐름 속에 주체 변화 두드러져
2019년 정책·일반 분야 이슈 결산 좌담2019년 문화정책 영역에서는 지역이 화두였다. 문화도시 사업을 비롯해 중앙정부의 정책결정을 수행하는 단위를 넘어 실제 지역에 필요한 정책과 사업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모색이 부쩍 늘어난 해였다. 성평등 이슈를 비롯한 문화예술계 불공정 행위에 대해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현장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해이기도 했다. 지역분권부터 문화도시와 예술지원 정책, 문화예술계의 노동과 젠더 이슈, 생활문화에 이르기까지 올해 주요 동향들에 대해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일시/장소 : 2019. 12. 2.(월) / 모임공간 상연재
진행 : 안태호(웹진≪예술경영≫ 편집장)
참석 : 권순석(문화컨설팅 바라 대표)
변순영(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장, 웹진 편집위원)
임학순(가톨릭대학교 미디어기술콘텐츠학과 교수)
최준영(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
최혜자(문화디자인 자리 대표)
안태호 올해의 전반적인 경향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 보는 게 좋겠다. 2019년 가장 먼저 꼽을 만한 문화정책 분야의 이슈, 혹은 가장 눈에 띄는 정책 분야의 변화는 무엇일까.
임학순 지역 문화정책 현장을 다니면서 그동안 중앙에서 만들어진 정책들이 파편적으로 나뉘어 현장에 전달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는 현장의 본질적 욕망, 근본적인 부분들, 다양성을 왜곡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현장과 정책이 엇박자를 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역마다 경우의 수가 다양하기 때문에, 거꾸로 현장에서 정책들을 바라보고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구성주의 방식이 필요하다. 현장의 관점에서 총체성과 다양성을 갖춘 정책 패러다임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한 해였다.
최혜자 앞서 정책과 현장의 괴리 속에서 변화의 단초가 보였다고 이야기하셨는데, 저로서는 사람이 변한 것 같다. 어떤 현장이든 불화가 없는 현장은 없다. 불화가 있어야 대안이 나오고 대안이 나와야 변화가 생기는데 예술 현장에서 정책과 제도, 법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를 많이 듣게 된 한 해였다. 올해 특히 발견되는 것은 불만 간의 연대이다. 주체적인 연대를 통해 원하는 목적을 발견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술 지원에 대해 예술가의 생존과 복지 제도를 논했고, 여성 예술가들, 현장인들, 재단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분노, 대응 방안에 대한 전략을 아주 잘 해나가고 있다. 사람이 변하고 있고 변화된 사람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어디를 향해 이야기해야 하는지를 인지하게 된 것이 큰 변화였다.
최준영 올해는 성평등과 지역 문화가 주요 화두였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2018년 발표한 <문화비전2030>이 실행되는 면모에는 아쉬움이 많다. 전문가들의 많은 참여로 만들어진 비전은 그 자체로는 손색이 없다. 그러나 사업이나 예산이 크게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비전과 현장과의 괴리가 큰 것이 현실이다.
변순영 청년 예술, 청년 일자리 등 청년 중심 지원 사업들이 쏟아졌던 해이다. 청년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예산 확보가 수월하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정책에서 바라보는 청년과 실제 현장에 있는 청년과는 거리가 있다. 요즘의 청년은 소위 경쟁하며 자란 세대이다 보니 절차나 과정에 있어 공정성, 투명성에 대한 감수성이 이전 세대보다 민감하다. 비전과 가치를 위한 희생과 감수는 이 시대 청년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이런 면모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청년사업이 기존의 사업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권순석 개인적인 활동과 맞물려 두 가지, 문화도시와 지역문화진흥 기본계획 수립이 떠오른다. 문화도시의 경우 지역 현장에서 가장 핫이슈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이 펼쳐졌고 1기 법정문화도시 지정과 2기 예비도시 선정 속 치열한 경쟁(?)의 과정을 보낸 한 해였던 듯싶다. 이 부분은 이후 문화도시 이슈에서 조금 더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다.
또 지역문화진흥 기본계획은 지역문화진흥법을 근거로 5년마다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근거로 지역은 시행계획을 작성하게 된다. 지역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정책 이슈임에도 의외로 현장에서는 잘 모르고 있다는 점과 촉박하게 진행되는 계획 수립의 과정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안태호 지역분권은 문재인 정부가 가졌던 강력한 정책 지향 중 하나다. 올해 문화정책 영역에서 그 일부가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모양새다. 문화예술교육의 지역화 논의가 한창이고, 예술인 복지 사업 역시 지역과의 협력, 또는 이관이 논의 중이다.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균특회계)가 지역으로 이전되면 문화사업의 위축이 불가피할 거란 예측도 있다. 올해 진행되고 있는 문화 분권 논의와 양상들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
임학순 지역 자치분권 흐름에 대해 지역 현장에서는 불안과 우려, 기대가 공존한다. 두 가지 측면 때문인데, 첫째는 문화와 예술이 지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는 문화예술계 내의 상호 불신과 경쟁 때문이다. 먼저 사회적 합의에 대해서는 지방에 자율과 분권이 주어졌을 때 의사 결정자들의 인식 부족으로 인해 문화예술 정책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들을 갖고 있다. 실제 예산 과정이나 정책 과정에서 예술계의 중요성과 특성을 반영한 지역의 문화행정 체계가 마련될 것인가 하는 우려가 있다.
두 번째는 문화예술계 안에서 기초예술과 생활예술 간의 상호 불신과 경쟁이다. 기초예술이 발전해야 문화예술 정책의 포괄 영역으로서 사회적인 동기 부여나 지속성이 담보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초예술과 생활예술 현장에서는 서로 내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다. 이것이 정치 영역과 맞물리면서 특정 분야 쏠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 보려는 기대감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가치관이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 성공이나 경쟁, 부의 축적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일과 여가, 문화가 있는 삶, 행복 등으로 가치가 바뀌었다. 지역 주민들의 문화적 욕망이 형성되고 그것을 스스로 드러낸다. 앞으로 지역 정치도 주민들의 새롭게 형성된 욕망을 뿌리치기 힘들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역 각각에 맞는 정책을 수립할 역량이 있느냐는 거다. 우려를 넘어서고 기대를 충족시키는 방식을 합의하기 위해, 공론화 과정과 함께 조사하고 분석하고 해석해내는 연구 활동이 필요하다.
안태호 지역에 자치 권한을 넘기기에는 주체가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았고 토호 세력과 권력의 유착으로 인해 지역의 문화 판이 망가질 것이라는 시기상조론과 우려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지역 주체의 성장에 대한 불안 요소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최준영 지금까지 문화예술 관련 사업들이 중앙 정부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광역 문화재단을 통해 지역으로 내려오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 상황에서 분권이 이루어졌을 때 지역 내에서 도시, 마을의 문제를 인지하고 사업을 만들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고 본다. 지역이나 민간의 역량을 믿으면서 어떻게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연착륙시키는 방향으로 지역의 역량을 키울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변순영 광역 문화재단의 직원 수가 거의 1,500명 가까이 되고 기초 문화재단의 경우 4,000명에 좀 못 미친다. 문화재단을 통해 지역문화예술의 일선에서 일하는 인원이 5,000명을 뛰어넘는데, 과연 이 사람들이 전문 인력으로서 제대로 역할하고 있을까? 15년이 넘어가는 시점에 조직 시스템과 조직 구성원의 역량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아닌 것 같다. 인천문화재단의 경우 인천 시민사회와 지역 예술계의 강력한 요구로 출범했다. 순환 보직하는 공무원이 아닌 전문 인력이 현장에 있어야 하고, 시민의 세금이 적재적소에 잘 쓰여야 한다는 기대가 컸었다. 지금은 그것을 넘어서 시민들과 예술인들이 원하는 부분을 디테일하게 만들어나가야 한다. 실제 지역에서는 몇 년 전부터 주민 참여 예산제를 도입해 직접 사업 제안과 예산 수립을 하는, 진정한 의미의 지역문화 정책들을 구현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해 사실 문화재단에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듯하다. 지역에서 문화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영역을 계속 발굴, 개발, 제안해야 하는데 사업의 실행에만 주력한 것이다. 사업을 잘 기획하고 예산을 투명하게 쓰고,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게끔 실행력을 높이는 차원에서는 그동안 성과가 있었다. 이제 그 다음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실행력은 갖춰졌으니 이제는 적극적으로 지역 문화 정책을 개발하고 어떤 정책들이 입안되는지, 각종 조례와 충돌되는 지점은 없는지, 무엇이 제도화되고 현장으로 연결되는지 영민하게 파악해야 할 때이다.
임학순 정부도 지역 문화재단을 정책 생산자, 정책 발신자로 바라보도록 인식을 바꿔야 할 것 같다. 더불어 광역·기초 문화재단도 협력적 거버넌스 관점에서 서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최혜자 시기상조라는 이야기는 참여 정부 시절 때도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조금 이상하긴 하다. 일단 분권을 하려면 자치와 자치 역량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치 역량을 키우기 위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15년이 흘렀다. 지역의 여건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말은 결국, 지역에 똑같은 가상의 기준을 대면서 자율성을 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문화의 다양성을 이야기하면서 모든 지역의 평균치를 요구하는 잣대는 잘못된 것이다. 지역 현장에서 시기상조라는 말을 스스로 하면서 패배감을 갖게 된 데에는 아무 조건도 만들어주지 않은 쪽의 책임이 크다.
안태호 정책 영역에서 올해를 달군 화두는 역시 문화도시가 아니었나 싶다. 문화도시 사업을 필두로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을 비롯해 문화와 도시에 관련된 정책과 사업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인 것만큼은 틀림없어 보인다. 문화도시 사업은 200억이라는 파격적인 예산, 신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지자체의 절박감, 전반적인 문화 정책의 부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문화도시 사업이 변형된 개발주의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보이고 있고, 200억이라는 사업비 때문에 지자체 간 경쟁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보내기도 한다. 직간접적으로 문화도시 사업에 관여하거나 지켜보고 계실 텐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임학순 문화도시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예산 확보나 자치단체의 정치적인 효과 때문에 단기적으로 보여 주기식으로 진행된다는 염려가 많다. 문화도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과정에는 지속가능한 발전 측면에서 근본적인 질문, 문화도시가 무엇일지 분석하고, 의미를 추출하고, 그에 공감해가는 과정이 핵심적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문화 정책의 특성을 고려해서 문화도시 전략을 설계해야 한다. 최근 부천문화재단의 포럼에 참여했는데, 시민들과 문화도시 100년 구상에 대해 문화 정책의 원초적인 질문들을 나누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최준영 문화도시 사업에 대해 비관적이다. 이전의 도시재생사업이 거쳤던 부작용을 잘 해소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유형을 정해 놓은 공모 방식은 지역이 아닌 중앙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본다. 도시 문제가 무엇인지 스스로 이야기를 나누고 계획을 세우고 심사해 결정한다면 모르겠으나, 위에서 내려온 대로 신청하고 단기간에 예산을 투입하도록 할 때 일어날 부작용들이 그려진다. 문화도시라고 하면서 예술을 중심으로 고민하지만 각자 지역에서 실제 와 닿는 문제는 다른 것이다. 지역은 기후변화의 문제, 지방 소멸의 문제, 불평등이 심화되는 문제들을 맞닥뜨리고 있다. 언젠가 정기용 선생님이 문화도시를 정의할 때, 문화도시는 기본이 바로 선 도시라고 했다. 아주 정상적인 경로로 거버넌스가 이뤄지고, 상식이 통하는 도시, 기본이 바로 선 도시가 문화도시라고 했다. 문화도시 사업을 통해 밑에서부터 도시문제에 제대로 접근하고 이를 진단할 수 있는지 의심이 든다.
안태호 포항의 경우 재난 도시들의 네트워크를 사업의 주요 내용으로 삼아 운영 중이다. 활동가들의 비판적 인식과 제도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제도를 잘 활용하거나 견인하기 위해서라도 더 구체적인 비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최혜자 처음에는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문화도시 사업을 들여다보며 오히려 희망적인 요소를 많이 봤다. 대체로 하드웨어에 투입되는 예산이 제한되어 있고, 예산의 상당 부분을 사람에 관한 일에 쓰도록 설계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담론을 끌어내는 과정이 좋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문화도시를 해나가는 중심 주체가 되는 사람들과, 이들을 돕는 지역 전문가와 컨설팅 집단의 시점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양성의 측면으로 볼 것이지, 혼란으로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기본이 선 도시가 문화도시라는 것에 동의하나 그 기본이 무엇인가 하는 인문학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결국은 문화도시를 만드는 것보다는 문화를 인식하는 우리의 상상력과 공통 감각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것이 문화도시를 만드는 데 가치 있는 과정으로 여겨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권순석 문화도시 정책사업은 아무래도 시행 초기이다 보니 아직은 긍정과 부정의 이야기가 함께 나오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도시 담론으로서의 문화, 시민 주도의 일상 문화를 지역에서 공론화해 나가는 과정에 가장 큰 긍정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아무래도 지자체 간 경쟁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자칫 그간의 다른 사업들처럼 과정이 요식행위로 머무를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정책과 관련해서는 중장기적으로 문화도시를 행정권역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문화권에 대한 개념으로 확장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검토하거나, 공모와 선정 절차 과정 설계를 좀 더 세밀하게 검토해야 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보완점도 여전히 많지만 큰 틀에서는 문화와 도시를 이야기하는 지역 담론의 장이 마련됐다는 점에 긍정 역할을 부여하고 싶다. 자칫 좋은 의미가 왜곡되지 않도록 면밀한 검토와 정책이 숙성되기 위한 시간적 여유도 필요하다.
안태호 올해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본격적으로 도입 운영된 해인 동시에 표준계약서가 시행된 해이기도 하다. 문화예술계 내 갑질이나 불공정행위 역시 꾸준히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문화예술계 일자리와 근무 조건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야기를 부탁드린다.
변순영 문화재단에서 예술지원 사업을 할 때 보통은 선정된 단체들이 해당 사업의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다는 기조가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단체들이 지원사업 진행 중 일어나는 무대 사고나 관객 부상 등 발생할 수 있는 안전 조치 및 표준계약 이행 등 지원 조건을 함께 물색하고 지원하려는, 중간지원 조직에서 해야 될 역할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술계 일자리와 근무 조건에 대해서는 업무 외에 구성원 자신의 개인 사생활이나 일 외의 부분이 훨씬 명확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최준영 제도 개선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고 공공기관의 제도 역시 잘 마련되어 있으나, 늘 사각지대가 있다.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예술인을 케어하고 있고, 산업 분야 중에서도 영화계가 비교적 잘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웹툰과 같은 아직 주목받지 못하는 분야의 프리랜서까지는 미치지 못하다 보니 노동 조건이 무척 열악하다. 공공기관은 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 플랫폼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프리랜서에 대한 제도가 더 정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임학순 문화예술계 공공기관은 과다 노동의 현장이다. 일거리가 많고 사람은 적다. 창조 노동자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조직의 적정 인원에 관한 부분이 해결되어야 할 것 같다. 표준계약서가 제공되고, 공정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여전히 전문 문화예술가 및 활동가의 활동 현장은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공정한 노동 환경이 현장까지 안착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의 문화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최혜자 문화재단 같은 기관은 사실 주 52시간을 준수하면서 일하기 힘들다. 각자의 담당 업무 외에도 상위 기관의 요구 사항이나 감사 등 외적인 업무가 많다. 또 민간단체 역시 인건비 단가 문제와 맞물려 주 52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화예술교육 단체 등 공모 위주로 운영하는 곳들도 과피로 상태다. 아무리 좋아서 하는 예술 활동이라 하더라도,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변순영 인천문화재단은 정기 공모 형태로 지원 사업을 운영 중인데, 아티스트피를 지원금에서 편성 가능한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그 외에 지역별로 여러 조건 속에서 정산하지 않아도 되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 중이다.
주 52시간에 대해서는, 문화예술 현장에 맞는, 유연한 형태의 근무가 필요하다. 실제 문화재단 직원들 중 특히 공연시설 운영자들은 시즌에 따라 엄청나게 근무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표준화된 근무 시간을 적용할 경우 공연장을 대관하거나 전시하는 예술 단체와 충돌이 생길 수 있다.
최준영 갑질이나 불공정행위가 발생했을 때 문화예술계에서는 대부분 개인이 조직을 맞닥뜨린다. 서울시가 공익 변호사를 지정해서 분쟁 상황을 해결해주는데 이런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두 번째로는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본다. 몇몇 정책 전문가들이 정책을 짜서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현장을 잘 아는 사람들이 조직을 만들고 사용자, 정부, 지자체와 싸워서 쟁취할 부분이 있다. 문화예술계 기관, 재단 몇 군데에 노조가 있는데 앞서 하신 말씀들처럼 열악하고 문제가 있다면, 노동조합을 통해 자기 권리를 지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안태호 서울문화재단은 올해 지원사업 선정 지연과 관련해 현장의 큰 반발과 문제제기를 마주한 후, 예술가의 경력을 바탕으로 한 지원과 작업 계획 구상 과정을 위한 창작 준비 지원 등을 내놓았다. 다른 재단들에서도 예술 지원의 방식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많이 기울이고 있다. 예술가의 현실을 정확히 읽어내고 창작을 제대로 지원하려면 어떤 원칙과 방향성이 필요할까.
변순영 몇 년 전부터 각 지역의 문화재단에서 장르로 구분된 지원 사업 체계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인천의 경우 2년 전부터 예술가의 생애주기별로 지원 체계 트랙을 만들었다. 장르 중심 지원 사업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일정 부분 기존 방식을 유지하면서 예술가의 생애주기별 지원사업 트랙을 별도로 만들어 지원 체계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이 방식은 신진 예술가의 공공 지원사업 진입장벽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인천뿐만 아니라 부산, 대구, 제주 등에서 예술가 경력별로 진입의 체계를 구분하려 한다. 다만 예술가의 생애주기나 경력 단계를 어떻게 구분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토론이 필요하다. 장르별로 경쟁을 하면 중견 이상 또는 높은 경력과 스펙 좋은 예술가가 유리하다. 똑같은 선에서 경쟁한다는 것은 신진이나 새로운 실험들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불리하다. 서울도 생애주기별 트랙을 하고는 있었지만, 이번에 규모를 크게 키운 것 같다.
안태호 서울문화재단의 내년 지원사업 계획에서도 창작 준비 지원 사업이 눈에 띈다.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준비 단계나 리서치를 지원하는 것이 잘 보지 못한 것이긴 하다. 예술복지재단의 창작지원금이 있었지만 그것은 복지 차원이었다.
변순영 창작 준비 지원이야말로 예술가의 기획에 대한 부분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으로 현장에서 읽힌다. 다른 지역에서도 서울의 사례를 참고 하려고 한다.
임학순 예술가들은 처한 상황도, 창작 활동에 필요한 요소들도 다양하다. 예술가의 다양성, 창작 과정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선택의 여지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원의 요소들을 세분화와 통합하면서 예술가 쪽에 권한을 주는 쪽으로 가야 한다.
안태호 생활문화 정책이 전면화된 이후 곳곳에서 생활문화와 전문예술 경계의 모호함을 토로한다. 지원사업에서의 모호성도 문제가 됐지만, 서울문화재단이나 중구문화재단 같은 경우 조직 운영 차원에서도 전문예술 영역과 생활문화 영역의 혼란이 있었다는 지적들이 있었다. 사실, 이는 생활문화 자체의 모호성에서 오는 바도 적지 않다고 본다. 생활문화센터와 문화의집, 문화원, 각 지자체 문화재단들이 운영하고 있는 사업을 포함해 향후 생활문화 정책의 방향에 대해 어떻게들 진단하고 계시는가.
최혜자 생활문화가 공공지원의 영역인지부터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현대사회에서 생활문화는 사회적 돌봄이라든지 사회적 기업으로 확장되는 중요한 코드가 되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동의하지만 문제는 생활문화에 대한 경험이 적어서 기존의 경험을 통해 이를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생활문화를 이야기하는 분들의 상당수가 과거 문화의 집과 관련된 경험치를 가지고 있다. 또 다른 분들은 성남을 중심으로 한 동아리 사업을 통해 생활문화가 어떤 것인지 인식하고 관여되어 있는 분들이다. 크게 두 축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일상 행위조차 문화로 인식하는 그룹과 문화 속에서 제3섹터를 만들어서 적극적인 문화 활동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다른 축이 있다. 이런 경향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전문예술과 생활문화가 겹쳐지고 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겹칠 수가 없다. 생활예술로 좁히니 겹치는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한다. 생활예술이 활성화되면 예술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순환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데, 정책과 사업 차원에서 협소하게 풀어가는 과정에서 이 둘을 겹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생활문화는 문화정책이고 전문예술은 예술지원 정책이다. 매우 다른 영역이다.
변순영 문화예술 분야 활동가들이 생활문화 영역 기획자로 많이 참여하고 있다. 일단은 재단에서도 생활예술 예산이 갑자기 증액되었을 때는 이것을 모두 기획형 직접사업으로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에 동아리 지원이나 생활문화 쪽에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일부 해소했다. 동아리는 자발적으로 만들어지면서 성장해 나가고 자체의 동력으로 활동하는 것인데 되레 앞뒤 순서가 바뀌어 지원금을 동기로 동아리가 만들어진다. ‘생활문화’라면 문화 개념, ‘생활예술’이라면 일상생활 속의 예술이라고 인지했는데, 생활문화와 생활예술을 구분해서 사용할 때 개념상의 혼돈이 있어 보인다. 생활문화센터 운영사업과 문화예술교육 사업의 중첩 문제도 현장에서 발생하곤 한다.
안태호 각 영역별로 성평등 이슈가 비등하고 있다.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이 여전히 각종 현안과 의제를 품고 진행 중이고, 얼마 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선임 과정에서 젠더와 세대에 대한 문제제기로 선정 절차 자체가 중단되는 일도 있었다. 어떻게들 보고 계신가.
최혜자 성평등이나 젠더 감수성 이슈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영역이다. 미투(me, too)운동 이후에 예술계를 엎은 수많은 사건이 있다. 문체부 성평등 문화확산 네트워크 지원사업을 진행해보니 성평등 이슈와 관련해 세대별로, 위치별로, 우리가 우리 사이를 보는 렌즈가 다양하다는 것을 느낀다. 미투 운동 이후라도 인식이 크게 변화하진 못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두 가지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하나는 이 현실에 대해 정부가 빠르게 움직이려는 민감성을 지닌 것 같다. 두 번째는 미투 선언 지지층 중 젊은 남성이 많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문화예술계에 성평등 문화를 확산시키기 쉽지 않지만, 인식 개선과 적절한 조치를 신속하게 안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안태호 2020년에 가장 주목해야 할 정책 분야가 있다면 무엇일까.
임학순 두 가지로 본다. 생활형 SOC 정책이 추진되면서 생활권 내의 공간 운영 방안, 주민 참여 방식에 대한 논의가 내년부터 본격화될 것 같다. 그리고 2020년 문체부 사업의 지방 이양도 주목할 사안이다.
최준영 지역 분권과 관련한 이슈가 가장 주목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변순영 지역별 예술인 복지 관련 예산이 속속 세워지고 있다. 지역에 맞는 예술인 복지 이슈가 대두될 것이 다.
최혜자 사회 변화를 위해 문화 다양성 이슈나 성평등 이슈가 주목받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역화, 분권 이슈가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권순석 분권과 자치 영역을 주목한다. 문화 분야 분권이 본격화될 것이며 지역의 준비 여하에 따라 많은 지역 이슈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권순석
문화컨설팅 바라 대표이자 (사)한국문화의집 협회 상임이사, 생활문화센터 컨설턴트이다. 지역문화재단 문화기관 단체를 대상으로 연구, 교육,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으며 동시에 축제 기획 평가 컨설팅과 문화정책 자문에 응하고 있다.
변순영
인천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면서 지역 문화예술 공공지원의 영역에서 자기 역할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보다 넓은 시야를 확보하면서 성장하는 내일을 기대하고 있다.
임학순
가톨릭대학교 미디어기술콘텐츠학과 교수로 문화정책을 연구하고 있으며 문화비즈니스 연구소장과 문화예술교육지원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창의적 문화사회와 문화정책』, 『문화예술교육사업과 파트너십』이 있다.
최준영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문화연대에서 개개인의 삶을 자율적으로 꾸려나갈 수단과 조건이 갖추어진, 인간과 자연 사이에 착취-억압-파괴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문화사회를 꿈꾼다.
최혜자
문화디자인 자리 대표이자 성공회대학교 대우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현재 성평등지역포럼에 참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