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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극장의 위기부터 왕성한 대안 활동까지
2019년 공연예술 분야 이슈 결산 좌담올 한해 공연예술계의 이슈들을 검토하며 전문가들은 올해 공연예술 경향에 대해 대형 공연이나 페스티벌보다 적정규모의 활동들이 두드러졌고, 그 연장선상에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과 대안공간의 활동이 눈에 띄었다는 진단을 내렸다. 미투(me, too) 운동은 공연예술계의 자체 규약을 논의하기에 이르렀고, 배리어 프리 역시 기본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창작의 방법론으로까지 연결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공공극장의 위기에서부터 클래식 공연의 동향,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의 도입, 과정형 지원의 성과에 이르기까지 2019년의 공연예술계 주요 이슈들을 하나하나 짚어보았다.
일시/장소 : 2019. 11. 25.(금) / 다락방구구
진행 : 안태호(웹진≪예술경영≫ 편집장)
참석 : 김서령_독립프로듀서, 이오공감 공동대표
김효상_플레이티켓(티위스컴퍼니) 대표
안상욱_플랑크톤뮤직 대표
류태형_음악 칼럼니스트
정지선_게토얼라이브 대표
설동준_(사)DMZ피스트레인뮤직페스티벌 사무국장, 웹진 편집위원
조인선_㈜모던.한 대표, 웹진 편집위원
안태호 올해 본인이 속한 장르나 공연계 전체에서 큰 이슈나 두드러지는 현상은 무엇이었나?
김효상 연극계는 낭독극처럼 다소 힘을 뺀 제작 형태가 돋보였다. 더불어 민간 주도, 소극장 중심의 페스티벌들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 고무적인 현상이다. 작품의 내용도 과거의 명작을 재연하기보다 자신들만의 메시지가 담긴 새로운 창작 공연들이 주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장르적으로는 다큐멘터리 연극의 약진, 이머시브 연극의 기류가 감지되었다. 지난 9월 공연됐던 극단 북새통의 래러미 프로젝트 같은 경우 프로시니엄 무대의 틀을 깨버리면서 다큐멘터리적 연극임과 동시에 이머시브 형태를 취하는 공연이었다. 이런 새로운 장르의 개척은 배우들의 연기 방법론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대 제작 전반에는 힘을 뺀 것 같지만 공간 활용에 대한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던 것이 눈에 띄었다.
정지선 제가 운영하는 공간에서는 즉흥 재즈를 기반으로 국악, 전자음악, 영상 등 다른 장르와 접목을 추구한 작품들이 공연되고 있는데, 음악 자체보다도 공간과 멀티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가 눈에 띈다. 특히 유튜브 채널용 영상 기획과 편집부터 마케팅까지 뮤지션들이 전문화되는 것 같다.
안상욱 대중음악이나 전통음악 분야도 유사하다. 굵직한 페스티벌이 사라지면서 소규모 페스티벌이 성장한 느낌이다. 서울인기 같은 축제의 성장이 인상적이다. 예산 규모는 적지만 이전 페스티벌에 비하면 사람들에게 더 많이 어필하게 된 것이 최근의 경향인 것 같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과거 축제 현장에서 스태프로 일했던 이들이 최근 중요한 기획자나 연출가로 성장한 경우를 보는데 그러한 프로듀서들의 성장과 취향이 맞물린 결과라고 본다. 특히 대중음악과 전통음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러한 경향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또 프로덕션의 규모는 작아졌지만 시각적 홍보는 매우 중요해졌다. 보도 자료나 대행사를 통한 대규모 홍보 방식보다 짧고 가벼운 영상을 비롯한 이미지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방향을 많이 발견한다.
류태형 클래식 음악계는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의 자장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진 아티스트들이 주로 무대에 서고, 중견들이 설 자리가 현격히 적어졌다. 조성진을 비롯한 젊은 연주자에게 관객들의 소비 경향이 지나치게 편중됐다. 브랜드를 구축한 아티스트와 그렇지 못한 아티스트 사이에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오페라 공연 중에는 창작오페라 <1945>가 호평받았다. 그 당시의 유행하던 음악들, 클래식 음악뿐만 아니라 컨템퍼러리, 해방 직후 가요들까지 청각적 이미지를 극대화했다. 오페라가 청각적으로 유용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줬다. 그리고 홍콩 민주화 시위로 인한 중국 이슈도 있었다. 홍콩과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는 이유로 예정된 중국에서의 공연이 취소되는 경우가 있었다.
김서령 꾸준히 언급되는 이야기지만 장르 간의 경계가 무너졌다. 정책이나 지원 사업을 장르를 기준으로 경계를 나누는 것이 유의미한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경계가 무너지면서 예술가들 간의 교류도 활발해져 적극적으로 공동작업, 협업이 이뤄졌다. 기획 초기 단계부터 공동 창작이나 협업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 이 작업들이 공공극장이나 소극장, 대안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공간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대안공간들이 주목받고 있다.
청년 지원이 많아지면서 청년 예술가들의 활동이 눈에 띄었다. 그 기반에는 이전부터 이뤄졌던 청년 예술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30대들이 굉장히 중추적인 활동을 하고 있고, 그런 영향하에서 20대들에 대한 지원이 많아지며 풀이 넓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40-50대 원로, 위 세대들의 자리가 좁아지고 지원에서도 소외, 배제되고 있다.
서울문화재단이 창작 경력을 근거로 하는 생애주기별 지원, 다년간 지원과 같이 지원 사업의 설계에 변화를 주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또 남북 문화 교류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국공립 단체부터 시작해 리서치나 포럼 같은 것들을 열었는데 지금은 민간 단위에도 활발하게 실질적인 교류가 눈에 띈다. 그런 활동들이 해외 아티스트와의 협업과 연결되고 있다.
지역 문화재단이 자리를 잡고, 지역 문예회관과 극장들이 전문적인 기획 인력을 두고 일하면서 지역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가 증가했다. 서울 지역과 비교했을 때, 훨씬 좋은 지원 체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야기들 들어보면 적극적이고 혁신적인 지원 체계나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한다. 지역에 눈을 돌려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발 빠르게 활동 중인 예술가가 있고 문화도시, 재생사업 또한 이런 경향에 힘을 실어줄 듯하다.
안태호 공연예술의 일반적인 규모변화나 민간 영역의 확장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이런 경향과 연관해서 공공 역할의 조정이 요구되는 것이 있을까? 남산예술센터나 충무아트센터에서 나왔던 문제들과 연동해서 이야기해볼 지점이 있을 것 같다. 이 두 곳은 공공성을 가진 공연장으로서 존립 위기에 처하거나, 입지에 대한 고민에 부딪쳤다. 현장에서 이 사안들에 대한 논의와 평가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김효상 무엇이 극장의 공공성인지 공통의 정의를 내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관객의 입장에서 공공성이란 극장이 양질의 다양한 작품을 보여주는 것일 테고, 예술가가 느끼는 공공성이란 창작을 지원하거나 다양한 예술가들이 공연할 수 있도록 극장이 문턱을 낮추는 점이다. 서울시에서 역사성이나 공공성 회복 차원에서 여러 극장들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특히 남산예술센터는 창작극장의 좋은 모델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한 이후에는 자체 기획만 하다 보니 오히려 선택된 예술가들만 극장을 이용한다는 아쉬운 목소리도 있다. 극장이 어려워서 폐관을 할 때도 어디까지 공공성 회복의 차원으로 보존해야 하는지 기준을 잘 모르겠다. 삼일로 창고극장이나 세실극장 같은 경우는 역사성을 보존해야 하는 차원이었다면 얼마 전 폐관 발표를 한 설치극장 정미소 같은 경우는 어떠한가? 이곳 역시 공공기관이 인수해야 하는가?
김서령 남산예술극장이나 충무아트센터는 가볍게 다룰 문제는 아니다. 관객의 입장과 예술가의 입장이 다름을 이해하지만,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제작극장의 역할에 무게를 두고 싶다. 명동예술극장은 국가에서, 남산예술극장은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유일한 제작극장이다. 한국에서 제작극장 시스템을 가진 곳은 이 두 곳이 유일하기에 공연예술계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남산예술극장과 삼일로 창고극장의 역할이 매우 다름에도 두 극장이 지닌 역사성이나 상징적인 의미 에 관한 논의들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충무아트센터는 올해 뮤지컬 전용극장에서 생활예술을 위한 극장으로 변모하는 경향에 대한 논란들이 있었다. 이 논의는 전체적인 정책 체계 안에서 생활예술을 바라보는 시각과도 관련 있기 때문에 더 중요한 이슈이다.
류태형 오페라를 예를 들어 보자면, 오페라 역시 극장 중심으로 끌어가야 한다. 국립오페라단이 예술의전당을 건건이 대관해 사용하고 있는 반면,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시립오페라단이 자유롭게 공간을 사용할 수 있고, 정기적인 기획이 가능한 편이다. 그래서 올해 열린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서 베를린 도이체오페라극장의 오리지널 프로덕션으로 공연한 <라 론디네>의 경우 10억 원에 달하는 무대를 그대로 들여와 공연할 수 있었다. 오페라를 하려면 최소한 공간에 대한 개념을 먼저 세운 다음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김효상 공공성에 대한 예술가들의 요구는 극장이 대관 시스템에만 안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현장과 함께 호흡하고 창작을 지원해 달라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로 우리나라는 극장이라는 하드웨어는 충분히 늘어났지만 소극적으로 운영하거나 기본 인력만 배치한 뒤 더 이상의 발전 방안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고 본다. 예술가들로서는 다음 단계의 요구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우선 극장이 창작을 지원할 수 있는 제작 예산이 확보돼야 한다.
안태호 신촌극장이나 게토 얼라이브 등 대안공간 성향의 공연장들이 조금씩 눈에 띄는 것 같다. 다른 활동의 가능성이라는 측면을 생각할 때 공연예술계에서는 이런 흐름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이야기해 달라.
설동준 문예회관급 극장이 많이 생겼지만 예술가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공간일 수 있다. 공공극장은 크기는 크지만, 가동력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작품 완성 전 테스트를 해보고 싶은, 인큐베이팅이 필요한 젊은 창작자, 젊은 프로듀서들이 전통적인 공연장이 아닌 실험적 대안공간을 찾는 경향이 생겼다. 공공에 전적으로 기대는 방식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자는 제작 경향들이 특정 공간으로 모이는 느낌이 든다.
정지선 대안공간들이 많아지고 있고, 그 공간들은 상대적으로 창작자가 창작 작품을 초연하고 보완하는 등의 실험성을 부담 없이 공연하기에 적합한 곳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실험적이라는 것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각각의 대안공간만의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게토 얼라이브는 정식 공연장 등록이 되어있고 음악 공연의 전문성 위에 창작자 작품의 제한성 없는 다양한 표현들을 공간 안에서 만들어지게 포용했다. 여러 가지 방향성 중에서 지속, 독립, 전통, 자율성 등의 고민들과 영향력 있는 실행력에 연결된 결과들이 예술가들과 조화롭게 연계되어 발전되는 것을 염두에 둔 대안 공간에서의 새로운 예술적 실험의 도전들이 앞으로의 대안공간의 자리에서 문화예술발전에 작은 토대가 되는 역할을 감당하지 않을까 싶다.
류태형 아무래도 클래식계는 상징적인 공간에 입성한다는 개념이 중요한 것 같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같은 상징적 공간에 선다는 개념이다. 예전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것이 주요했다면, 지금은 예당에 집중되어 있다. 2016년 롯데 콘서트홀이 생기면서 강남 지역의 두 공연장이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다. 최근의 추세로는 살롱 콘서트가 많이 늘어났다. 예전 쇼팽 시절의 살롱문화가 당대 문인들이나 여러 장르의 사람들이 모여 교류하는 장이었다면, 한국은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연주자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늘렸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조인선 전통성이 가미된 공간이 뜨고 있고, 이것이 국악과 잘 어울렸다. 공연장을 떠나 익선동이나 북촌 공간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 국악인들에게 하나의 트렌드가 된 것 같다.
안태호 상반기 결산 좌담에서 가장 처음 손에 꼽힌 의제들은 공연예술계에 확산된 젠더프리, 배리어프리 경향이었다. 이 부분은 사회 전체적인 영역으로 확대되는 지점들이고, 갈 길이 멀다고 본다. 올해 이 이슈들은 어떻게 드러나고 있고, 주목할 만한 점은 어떠한 것인가?
김서령 배리어 프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기는 시점인 것 같다. 그러나 실제 작품에서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제작 예산과 전문 인력이 필요하고, 기획과 연출 단계부터 고민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공공극장 조차 이것들을 커버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작품 안에서 미학적으로 연동해서 풀어내야 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문제이다. 수화 통역을 예로 든다면 통역가가 무대 어디에 위치할지부터 시작해 통역가가 무대 위에서 수화 통역자일뿐인지 또는 한 명의 퍼포머인지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고 공공의 지원이 적극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설동준 과거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극장에서 공연을 볼 수 있는 여건이 되는가 정도가 이슈였다. 지금은 장애인이 가지는 감각의 특수성이 창작과 미학의 원천이 되도록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와 같은 창작적 차원에 대해서도 논의가 전개되는 것 같다. 즉, 관람에 대한 복지적 시각에서 감각의 다양성으로 이슈가 조금은 달라진 느낌이다.
김효상 미학적인 고민을 통해 공연에 잘 녹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공연장 시설 면에서 배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도 휠체어석이 20여 석에 불과하고 대부분 2층이나 제일 뒷자리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좋은 좌석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는 불만을 들은 적이 있다. 대학로 소극장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음센터를 제외하면 스무 대 이상의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극장이 전무하다. 이런 것들부터 개선해야 하며 공공극장이 먼저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안태호 미투 운동은 올해도 계속되는 흐름이었다. 최초의 발화 이후 1년을 훌쩍 넘긴 지금은 자체적인 규약을 만드는 움직임까지 이르렀다. 미투 운동을 통해 달라진 것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김효상 CTS(시카고 연극 스탠더드)를 만들었던 배우 로라 피셔도 초청했고, KTS(Korean Theater Standards, 한국 공연예술 자치규약)를 만들고자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성폭력의 문제도 전반적으로 위계폭력, 예술계의 권력 구조 차원에서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올해도 연극협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던 교수가 자기 학생들에게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폭력을 행한 사례가 밝혀졌고 공연예술고 학생들의 폭로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피해자들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 아직 방법을 찾지 못했다.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다.
설동준 이런 일들이 창작 환경과도 맞물려 있는지 궁금하다. 미투 운동 이후에 공동체 생활의 동인 방식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고 들었다. 예술단체의 조직문화나 운영 구조는 창작의 방법론적 측면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데, 미투 이후 낡은 공동체주의에 어느 정도 기대고 있던 창작의 방법론도 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이 미학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김효상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연출가가 배우들에게 얼마나 혹독하게 대해야 하는가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사제 간이나 선후배 같은 관계가 형성되던 과거에는 배우가 자신의 발전을 명분으로 연출자에게 맡기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은 그러지 말자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뀐 것 같다. 과정이 좋아야 작품의 결과도 좋다고 여기고 있으며, 이런 변화가 고무적이다. 작가나 연출가 중심의 창작에만 머물던 것도 배우들이 같이 토론하고 자료를 찾고 직접 답사도 하며 창작의 주체가 되는 쪽으로 작업 방식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조인선 전통 영역에서는 수련을 위해 산으로 들어가기도 하지 않나. 사실은 그런 일이 발생해도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운 환경이다. 연극에서 이 문제가 먼저 터지면서 국악, 클래식에 그 영향이 이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밝힌 사람 자체가 소수라고 봐야 한다.
김서령 연극, 미술, 문학, 무용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재판을 진행 중이며 선고를 기다리는 사건들이 있다. 연극계를 통해 보았듯 위계폭력이 오랫동안 폐쇄적으로 공고하게 진행되어 왔다. 무엇이 폭력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사건이 밖으로 노출됐을 때 현장에서는 오히려 가해자를 두둔하거나 피해자가 약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힘없는 사람이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건이 무마되거나, 가해자를 두둔하는 등 2차 가해가 이뤄지는 경우도 아주 많다. KTS 같은 자체 규약이나 단체 스스로 규약을 만드는 흐름이 보인다. 이것에 자극을 받아서 성폭력 관련된 교육과정을 이수하거나 그 방면의 전문가로 전환하는 예술가도 나오고 있다. 30대 젊은 친구들이 변화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흐름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
안상욱 미투 운동으로 시작된 성폭력 사건들에 대한 판결이 나오고 있는데 그 이후에 더 중요한 쟁점들이 많아질 거라고 본다. 미투 운동에서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는 것 중에 하나가 젠더관계 자체가 위계적 관계인가 하는 부분이다. 미투 사건에서는 연출가와 단원처럼 위계관계가 눈에 보이는 사례들이 가시화되었고 일반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 많은 사건들에서 가해자들은 ‘나는 권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신입 단원 사이에서, 인디 음악가 사이에서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을 때 가해자가 스스로를 권력이 없는 일개 예술가라고 여기면서 사건을 성별 권력의 문제가 아닌 개인 간의 문제로 보는 것이다. 젠더 권력관계를 어떻게 사회적 문제로 확대해야 하는가에 대해 남녀에 따른 공감대 차이가 커지고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한 부분들이 젠더 간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성폭력 사건의 공론화 혹은 판결 이후의 과정이다. 공연 주최 측이나 지자체들은 혐의를 가진 출연진들은 우선 배제하곤 했는데 나중에 법적으로 무혐의가 난 경우도 있고 무고로 역고소를 하기도 한다. 무혐의가 곧 실제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뜻은 아니지만 미투 운동의 공론화가 재판과 판결 위주로 나아가면 계속 논쟁적인 부분이 생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실제 가해자로 드러난 사람은 다시 예술계로 복귀할 수 없는가 하는 문제도 생겨날 것이다. 미투 운동은 애초에 성폭력적 문화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포함하고 있어서 모든 형태의 가해자를 영원히 격리하는 방식의 해결은 불가능하다. 어떤 방식으로 성찰하고 변화시켜 다시 공동체가 포용할 수 있을까에 대한 모델도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김서령 희망연대에서 위드유 분과를 냈던 이유도 다뤄야 할 사안들이 너무 많아서였다. 안상욱 대표가 앞서 언급한 ‘가해자는 언제 다시 복귀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하지만 영원히 추방해야 하는가는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이다. 다만 그 전에 잘못이 있는 사람들을 제대로 처벌할 수 있는 법적인 제도가 먼저라고 본다.
안태호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이하 통전망)은 2017년까지 국내 대형 예매처 6곳과 연계했으나, 임의 동의한 제작사만의 정보를 취합하는 방식이라 데이터 포괄율이 38%에 불과했다. 지난 6월 공연법이 개정, 시행되면서 티켓 예매처, 기획사, 제작사, 공연장 등은 티켓 관련 정보를 의무적으로 제공한다. 티켓 판매처만 200곳이 넘어, 꾸준히 시스템 연계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장에서는 통전망에 대해 어떤 입장들을 가지고 있나?
김효상 티켓 정보 의무 제공 법제화에 대해서 처음에는 대형 기획사들의 반발을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작은 공연단체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았다. 내부 사정을 드러내는 게 부끄러운 듯했다. 개인적으로는 통전망이 안착되는 것에 적극 찬성하지만 갑자기 강요하기보다는 연착륙에 대한 방법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통전망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 입장권 통합전산망을 모델로 한 것이다. 하지만 영화계는 소위 3대 극장들 정보만 모아도 포괄률이 99%에 달한다. 티켓을 전적으로 극장에서 판매하고 관리하는 방식이라 정보 집계가 쉽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상업적인 성취를 궁극의 목표로 삼고 있으며 흥행의 성공이 작품의 완성도와도 어느 정도 정비례한다. 그러나 공연예술은 장르도 다양하고 창작자들의 목표와 욕구도 딱 한 가지로 대변할 수 없다. 연극을 예로 들면 제작의 컨디션에 따라 다섯 가지의 층으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우선 첫째 국공립극장의 제작 작품, 둘째 지원금을 받는 민간 극단의 작품, 셋째 지원금 없이 제작하는 극단 기획공연인데 사실 이 세 가지는 시장의 상황을 고려하기보다는 창작 의지로 제작하는 프로덕션이다. 반면 기획사 시스템(프로덕션)에 의한 작품이나 상설공연은 절대적으로 시장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이 작품들이 공연티켓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연말 공연계를 돌아보는 기사나 칼럼에서 ‘사회적 악재나 시장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작품들이 선보였다’는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평가는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분석이다. 공연계의 상황에 따른 다양한 층위들을 고려하여 차별화된 분석이 필요하다. 현장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서 통전망에 대한 안착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예경에서 진행하는 공연예술실태조사와도 연계하여 공연시장의 유의미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고민도 필요하다.
설동준 상식적으로는 시스템은 장르별로 보는 것이 맞다. 그러나 제작 방식에서의 차이가 반영되지 않으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김효상 지원금을 받지 않은 극단에서 단지 창작의 열정만으로 손해를 무릅쓰고 제작하기도 한다. 여기에 관객이나 티켓 수과 같이 상업적인 기준으로만 평가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 영화관은 100-200석 사이로 좌석수가 비슷하지만 공연장은 아무리 작품이 좋다고 평가받아도 소극장인 경우엔 티켓 판매에 한계가 있다. 공연장 규모에 따른 다양성도 반영되면 좋겠지만 통전망이 여기까지 접근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김서령 사실상 그러한 데이터를 관리, 정리할 인력이 없는 공연 단체들이 많다. 현장을 설득하는 과정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단체 입장에서 통전망 시행이 내게 어떤 득이 되는지, 어떤 좋은 이점이 있는지를 체감할 수 없으니 거부감이 먼저 생길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단체가 월급도 주기 힘들고 세금을 내기도 힘든 상황에서 매출을 투명하게 이야기해 달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안태호 공연예술 창작산실 ‘과정과 공유’를 비롯해 지원사업 분야에 ‘과정’ 및 ‘리서치’ 지원, 즉 준비 단계 지원이 확대되는 경향을 보인다. 현장에서 이러한 지원 기조에 따른 변화가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가? 창작 활동에 미친 영향 같은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설동준 아르코에서 ‘창작산실 - 과정과 공유‘라는 이름으로 리서치 지원사업을 본격화한 것이 2-3년 정도가 됐다. 그보다 오래된 것으로는 서울문화재단의 최초예술지원이 있다. 그리고 이제는 작품의 완성이 아닌 작품 구상 과정, 리서치 자체를 지원하겠다는 것에 꽤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 덕에 과거보다 다양한 시도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김효상 문예위에서 주최하고 한양대학교산학협력단에서 주관한 ‘융복합무대기술지원사업’을 올 초에 수행했다. 무대 기술을 시연해보고 평가를 듣는 사업이었다. 리서치라고 하긴 어렵지만 공연예술의 기술 개발 차원에서는 이런 사업들이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김서령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에 생긴 실험파트를 운영했다. 타이틀을 ‘과정과 공유’라고 했다. 이제 지원 사업의 한 형태로 안착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안공간과도 연동이 된다. 새로운 대안공간을 찾는 이유 중 하나가 과정에 대해 공유할 수 있는 작고 실험적인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촌문화발전소, 문화비축기지와 같은 공간들이 공연을 완성하는 과정을 공유하면서 관객과 만나기 용이한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디어나 기술과의 결합, 미디어 발달을 통한 예술의 확장이 향후에는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젊은 세대가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으로도 보인다. 미디어 아트나 사운드 아트 같이 결합된 예술을 선보이기 위해서도 대안적인 공간을 찾게 되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리서치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달라졌다. 이전에 리서치를 준비 과정 정도로 봤다면 이제는 작업의 과정으로, 작업을 발표하는 다른 형식으로 개념이 변화하고 있다. 우란문화재단의 경우도 처음에는 뮤지컬 창작과 제작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창작자 인큐베이팅에 집중하면서 해외 지원을 해주기도 한다. 그런 지원들이 좋은 피드백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류태형 클래식은 기존 작곡가들의 작품을 해석하는 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저명한 작곡가나 그동안 쌓아온 것이 많은 사람들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들이 적다. 사실 지원금 받아서 발표하는 곳에 가보면 너무 말도 안 되는 작품도 많고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작품도 많다.
안태호 2020년 경향 무대화 예정인 작품들의 경향과 그 외 주목해야 할 이슈나 동향이 있다면?
김서령 신진 예술가 지원, 생활예술 지원이 많아지면서 취미로 활동하는 분들이 예술가로 변신하거나, 혹은 스스로를 예술인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술 활동 또는 예술가의 경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생활예술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설 무대가 많아지기도 하고, 연극을 업으로 삼은 전문 예술가들보다 수입이 더 많은 경우도 생겼다. 예술 지원사업이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양상이 생겨나고 있다.
김효상 지역 문화재단에서 생활예술을 중요하게 다루면서 주민들이 지자체 무대에 선다. 마포문화재단의 경우 이미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뮤지컬전용극장으로 인식되어온 충무아트홀도 지역민들과 호흡하기 위해 운영 방침을 개편하겠다고 했다. 생활예술 영역이 확대되면서 지역의 극장들이 다목적화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예술적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 공연장의 양적인 증가와 다양한 활용도 중요하지만 어떤 특정 장르에 적합한 전문화된 목적극장이 필요하다. 지자체 극장의 방향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딜레마에 놓인 것 같다.
조인선 내후년쯤 창동에 ‘서울 아레나’가 생긴다. 그런 대형 극장, 콘서트홀이 생기면서 예술계, 공연계의 판도가 바뀔 것 같다. 이런 변화를 미리 준비해야 하는 기획자나 예술가의 동향이나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류태형 2020년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라 관련 공연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내년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개최되는데, 조성진 이후 어떤 우승자가 나올지 기대된다.
김서령
무용, 축제 분야에서 시작해 현재 독립 프로듀서로 다양한 장르와 컬래버 작업을 하고 있다. 남산컨템포러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교육, 컨설팅 분야에서도 활동 중이다.
김효상
국립극장 공연기획팀에서 근무하다 지금은 플티(주)의 대표로 공연예매 사이트 ‘플레이 티켓’을 운영 중이다. 마포FM에서 ‘플레이투스테이지’라는 공연 전문 방송을 진행하며 매주 공연계 인물들과 만나고 있다.
설동준
(사)DMZ피스트레인뮤직페스티벌 사무국장이자 프리랜서 기획자이다. 최근 생활문화, 인력양성, 문화예술교육 영역에 대한 연구 및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 예술경영웹진 편집위원으로 참여 중이다.
안상욱
국악 기획사 플랑크톤 뮤직의 대표를 맡고 있다. 소속 뮤지션인 가야금 연주자 박경소, 신박서클, 고래야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으며 고래야에서는 연주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아티스트와 가까운 위치에서 함께 성장하며 나아갈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 중이다.
류태형
류태형은 음악 칼럼니스트로 월간 《객석》 기자 및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인의 열정으로 세계를 지휘하라』를 집필하고, 『클래식 튠』, 『당신과 하루키와 음악』을 공동 집필했다.
정지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음악 감독으로, 성수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게토 얼라이브를 운영 중이다.
조인선
전통예술플랫폼 모던.한을 운영하며 한국의 전통예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글로벌 시장으로 확신시키고 있다. 현재 예술경영웹진 편집위원으로 참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