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진에 실린 글의 내용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TEL 02-708-2293 FAX 02-708-2209 E-mail : weekly@gokams.or.kr
2020년, 예술경영은 어디에 있는가
예술경영에 던지는 몇 가지 질문한국에서 예술경영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 후반 정도이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도입되고 1기 민선 자치단체장이 선거를 통해 등장하면서 전국적으로 여러 문화 프로젝트들이 시작된다. 부산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등이 그 즈음 시작되었다. 1997년 광역정부로는 처음으로 경기문화재단이 출범하고, 기초문화재단으로는 부천문화재단이 2001년 첫 번째로 설립되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21세기는 ‘문화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고, 문화부 예산 1%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참여정부 제1호 문화공약인 예술 현장에 기초한 합의제 기구인 ‘문화예술위원회’가 2005년 출범하였다. 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시작도 그 즈음이다.
지방 곳곳 문예회관이 건립되었고 문화재단이 출범하였으며 전국단위의 축제 및 예술 프로젝트들이 활발히 추진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전문 인력들이 필요해졌고, 대학원, 민간교육기관 등을 통해 ‘예술경영’이라는 학제적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진입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예술경영은 출발 당시 ‘문화예술기관 및 단체의 효과적·효율적 운영’에 대한 전문적 지원에 주목하였다. 공공 문화예술기관 및 관련 프로젝트에 예술경영은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하였다. 독립된 비영리 문화예술조직의 기반이 취약한 한국의 현실에서 중앙 및 지방 정부의 필요와 의지에 의해 설립된 문화재단, 문예회관, 공공 문화공간 등이 예술경영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국내에서 초기 예술경영이 공공 문화예술기관 및 단체를 주목하며 성장한 반면, 전체 예술 생태계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문화예술계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짧은 지면에 논리의 비약이 있을 수 있지만 내가 경험한 사실과 직관으로 약술해 본다. 문화예술 생태계를 구성하는 핵심 개체인 ‘예술가와 예술단체’들은 밀레니엄, 문화의 세기를 다른 방식으로 맞이한다. 예술 지원기구이자 지원체계로 작동하는 국공립 문화예술기관 및 단체는 지원기관의 성격에서 집행기관의 성격으로 진화한다. 국가와 정부가 주도적으로 설계하는 문화예술정책 분야에도 정치와 행정의 의지가 중요하고, 투입 대비 산출의 논리는 냉철하게 작동된다. 이 과정을 통해 국가와 정부가 다루는 전체 문화예술 예산은 증가했지만 ‘예술가와 예술단체’는 풍요 속의 빈곤 상태에 놓이게 된다.
공공과 민간을 아우르는 전체 예술 시장이 자생적으로 성장할 기회와 토양을 갖기도 전에 예술 생태계 내 개체들은 정책과 행정의 예술지원 구조에 편입되었고 때로는 지원 구조의 안온함에 기대게 되었다. 정치와 정책은 주요 개체들 사이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스스로가 독립된 거대 개체로 등장하여 전체 예술 생태계의 흥망을 좌우할 정도의 포식자가 되었다. 이전 정부의 각종 문화융성 사업,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공공이 구축한 문화예술 지원의 구조를 사유화’하였기에 쉽게 작동될 수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예술 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핵심 주체이자 개체인 ‘예술가와 예술단체’는 존재에 대한 위기와 갈등, 상처를 겪었다. 이 시기 ‘예술경영’은 어디에 있었을까.
한국 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가장 먼저 ‘정책의 언어’가 반응한다는 점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예술유통의 활성화’, ‘예술기관의 경쟁력 강화’ 등을 목적으로 2006년 출발하였다. 서울아트마켓을 비롯하여 공연·시각예술실태조사,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과 같이 과학적 통계 기반을 만드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공연예술 기반에서 시작하여 이제는 시각예술 분야까지 아우르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현재 정책의 흐름을 반영하여 예술 관련 사회적 경제, 창업 등의 이슈도 다루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공시에 따르면 센터는 2019년 241억 원 규모의 예산을 운용했다. 2014년에 비해 1.7배 이상 예산이 증가했다. 그만큼 센터의 구성원들은 바쁘게 다양한 사업을 펼쳐왔고 노력과 성과에 비해 평가가 엇갈리는 경계적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전문적 공공서비스(Public Service)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특히, ‘예술가와 예술단체’에게 전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한다. 다수 국민에게 일반적인 혜택을 주는 공공서비스 기관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센터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가 ‘예술가와 예술단체’의 필요에 부응하고, ‘전문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현재 제공되고 있는 여러 ‘공공서비스는 왜 시작되었고’, ‘누구에게, 어떠한 혜택을 주고자 하는지’ 계속해서 되돌아보아야 한다.
특히, 2019년 6월 공연법 개정으로 본격화된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이 예술가와 예술단체, 지역기반 주체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구체적 수준으로 도약해야 한다. 2005년 시작된 서울아트마켓은 이제 15년째에 접어들었다. 그 동안 변화된 글로벌 예술 교류, 협력, 유통 환경에서 서울아트마켓의 전환 또는 성장에 대한 고민을 진전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예술경영과 관련한 인재를 키우는 방식, 예술단체에 대한 교육과 서비스의 내용과 방식이 지금 이 시기,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형태인지 질문하여야 한다.
예술경영은 본질적으로 ‘실재하는 세계’ 곧 ‘현장’에 기초한다. 현장이 없는 예술경영은 실존하지 않는다. 예술계의 현장이 전례 없는 위기라고 말한다. 특히, 창작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와 예술단체의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 위기는 무엇으로부터 오는지, 무엇 때문에 가속화되는지에 대해 현재의 예술경영은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지 못하다. 예술가 지원체계와 예술인 복지체계, 진보하는 기술과 매체 환경, 예술 소비자의 기호 변화 등 여러 문제와 현안이 제기되지만 예술가와 예술단체가 겪고 있는 위기의 진원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는 문화예술계 내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는 균열된 틈새로 새 기회를 창출하기 위해 정책과 사업은 작동하고 활용되며 왜곡되기도 한다. 전문예술과 생활예술이라는 ‘이상한’ 장벽이 피로감을 유발하기도 하고, 여느 지역에서는 중견 예술인과 청년 예술인, 예술가와 기획자 사이의 갈등 양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누군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AR, VR이 라이브 극장을 대신할 거라고 위협하고, 예술이 엔터테인먼트와의 경쟁에서 애초에 이길 수 없다고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 관객은 더 이상 어두운 극장의 판타지와 심각함을 거부할 수도 있다고도 말한다. 이처럼 ‘느리고 빠른’ 현실에서 여러 예측은 맞기도 하고 빗나가기도 한다.
1990년과 2000년대 사상 최고 입시 경쟁률을 갱신하던 예술대학 및 관련 학과가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현실 속에, 예술시장 주요 지표 중 하나인 공연단체 연간 매출액이 2008년 대비 2018년에 약 2배 성장하였으나(『2018공연예술실태조사』 참조) 공연단체는 끊임없이 존립에 위협받는 현장의 이유는 무엇일까. 『2019 공연계 주목해야 할 키워드 6』와 같은 리포트가 제시하는 주제어를 통해 예술가와 예술단체는 자신들의 성장 경로를 자각하고 나아갈 길을 발견할 수 있을까. 복잡하고 복합적인 사실 관계와 주의 주장을 넘어 예술가와 예술단체가 현재에도 겪고 있을 위기의 실체와 근본적 원인, 그리고 해답은 무엇일까. 예술경영은 그 답을 알고 있을까.
마지막으로, 질문하며 자문(自問)한다. 이 시대 ‘예술가는 누구이며, 누가 예술가로 호명되는가’. 이 시기 ‘예술가와 예술단체는 어떻게 탄생하며 성장하는가’. 이 두 가지 물음에 현재의 예술경영은 어떻게 인식하고 어떠한 답을 준비하고 있을까. 2020년 새해를 맞아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 덧붙여 이 원고를 쓰던 2019년 12월 31일, 현대 연극의 살아 있는 증인이자 큰 어른이신 구히서 선생님께서 영면하셨다. 1970년대 초부터 50년 가까이 연극계, 예술인의 곁에서 전문기자와 평론가로 활동하시고 예술 현장을 누구보다 사랑하신 선생님께 감사와 존경을 전하고자 한다. 돌이켜보면 선생님과 같이 연극을 볼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이 한없이 고맙고 행운이었다.
최도인은 예술경영을 전공하였으며 메타기획컨설팅 본부장으로 문화, 공간, 도시 등을 주제로 하는 실천적인 리서치, 컨설팅, 기획 등의 작업을 통해 도시의 문화적 공간과 환경, 지역의 고유성(독창성)과 문화적 성장, 창의성에 기초한 산업생태계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발전시키고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통영국제음악당 등의 컨설팅에 참여하였고, 아티스트 협력프로젝트인 유목창작여행(Nomadic Artists' Journey)을 기획하였다. 현재 서울시 세운협업지원센터 공동센터장을 겸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새문화정책준비단 위원으로 활동하였고, 최근 제주도 4차산업혁명위원회, 통영 폐조선소 도시재생 마스터플랜 등에 참여하고 있다. 찰스 랜드리의 저서 『크리에이티브 시티 메이킹』 한국어판을 기획·감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