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진에 실린 글의 내용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TEL 02-708-2293 FAX 02-708-2209 E-mail : weekly@gokams.or.kr
공정성과 직무능력 중심의 공공기관 채용제도 변화
문화예술 공공기관 채용제도(1)일찍이 한국 기업은 인재상으로 다양하고 복잡한 조직 내부의 고유 업무와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다기능 중심의 제네럴리스트(범인형 혹은 보통형 인재)를 암묵적으로 추구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재를 채용하기 위한 지표로 학력, 전공, 학점과 같은 인지능력이 주요한 도구로 사용되자 구직자들은 종합적인 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스펙 쌓기’에 몰두하게 되었다. 과도한 스펙 쌓기는 구직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직무능력과 차이를 보이는 사회적 문제를 낳게 되었다.
이에 정부 차원에서는 제도적 차원에서 여러 제도를 도입하였는데, 2007년도에 고용노동부에서 스펙을 중시하는 관행을 줄이기 위하여 성별, 출신지역, 출신학교명 등을 제외하고 교육, 직업훈련, 경력 등을 기재하는 표준이력서를 개발하여 공공부문과 1,000인 이상 대기업에 보급한 바 있다. 당시에는 편견 요소를 제거한 표준이력서 도입이 권고 수준에 머물러 있었는데, 현재의 블라인드 채용은 이 권고 수준을 의무 수준으로 강화한 조치이다.
또한 2014년에는 NCS(국가직무능력표준, National Competency Standard) 채용을 통해 산업현장에서 직무수행에 요구되는 지식, 기술, 소양(태도) 등의 표준을 정하고 이에 근거하여 인재를 채용하고 구직자들이 취업을 준비하도록 하여 불필요한 교육이나 스펙의 낭비를 최소화하고 실제 기업이 원하는 실무 역량을 배양할 수 있도록 하였다.
2017년 하반기부터는 모든 공공기관에서 블라인드 채용 제도 도입이 의무화되면서, 민간기업에서도 블라인드 채용이 점차 확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나이, 성별, 학벌, 지연, 외모, 스펙 등을 중시하는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고 조직적합성이나 직무적합성을 핵심 기준으로 채용하는 관행을 확산하려면,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제도 도입의 실태를 면밀하게 조사하고 성과를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블라인드 채용은 NCS 채용과 마찬가지로 직무중심주의 혹은 능력중심주의를 지향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편견을 유발하는 정보를 제거한 제도이다. 프랑스, 미국, 독일, 영국 등의 국가에서도 채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편견을 없애기 위하여 익명이력서(anonymous resume)를 활용하고 있다. 익명이력서를 통하여 배제하려는 차별적 요소들은 국가마다 다른데, 이민자들이 많은 프랑스의 경우에는 프랑스 토박이 지원자와 이민자 출신 간의 차별, 외국인 기술자들의 유입을 허용하는 독일은 외국인에 대한 차별, 종교 갈등이 심한 북아일랜드는 종교에 대한 편견, 미국은 백인과 흑인 간에 차별 등을 초점에 두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에 따른 성과를 측정하기 위해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는 2018년 『편견없는 채용·블라인드 채용 실태조사 및 성과분석』 연구를 진행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2017년 하반기 혹은 2018년 상반기에 블라인드 채용으로 대졸 수준의 정규직 공개경쟁 채용을 진행한 260개 공공기관들의 채용담당자들을 대상으로 3년 동안의 채용제도의 특성과 신규채용 입사자들의 출신학교, 성별, 연령, 조기퇴직 여부 등에 관해 조사를 진행했다. 또한 공공기관 팀장급 직원 196명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채용으로 입사한 신입사원의 직무역량과 조직적응도에 관한 인식을 조사하였다. 조사 대상 기관들은 사회간접자본, 고용보건복지, 금융, 농림수산환경, 문화예술외교법무, 산업진흥정보화, 에너지, 연구교육, 의료(대학병원) 등 9개 분야로 구분하여 해당 기관의 특성과 블라인드 채용의 주요 성과를 측정하여 분석하였다. 성과를 측정을 위해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 이전(2015년부터 2017년 상반기까지)과 이후(2017년 하반기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로 시기를 구분하여 주요 성과 지표들의 차이를 측정하였다. 본고에서는 전체 기관들을 대상으로 한 주요 분석의 결과와 함께 ‘문화예술외교법무’ 분야에 해당하는 50개 기관들(전체의 19.2%)의 주요 차이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다만 조사 대상군은 ‘문화예술외교법무’ 분야로, ‘문화예술’ 분야에만 한정짓지 못하였고 지역문화재단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한 조사와 분석이 부족한 상황에서 본 분석의 결과는 제한적이지만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정성 높이기 위한 면접관 교육시간 증대
채용 시에 면접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면접관 교육시간이 전체 기관의 경우 2015년 평균 55.5분에서 2018년 상반기 109시간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문화예술외교법무의 경우에 2015년 평균은 32분에서 2018년 상반기에 44.6분으로 다소 증가한 수준을 보였다.
면접 유형의 강화
면접의 유형은 전반적으로 선발하고자 하는 직무능력이 필요한 과거의 경험을 질문하는 경험면접과, 특정 상황을 제시하고 지원자의 행동을 관찰하고 평가함으로써 실제 상황의 행동을 예상하는 상황면접이 증가하였다. 2015년에 경험면접과 상황면접의 1인당 전체 평균은 각각 5분과 5.06분에서 2018년 상반기 7.85분과 6.86분으로 증가하였고, 문화예술외교법무는 2015년 6.07분과 0.57분에서 2018년 상반기 8.59분과 1.89분으로 늘어났다. 특정 주제와 관련된 지원자의 발표와 질의 및 응답을 통해 지원자의 역량을 평가하는 발표면접은 2015년 전체 평균 6.23분에서 2018년 상반기 5.89분으로 감소하였는데, 문화예술외교법무의 경우에 2015년 0.40분에서 2018년 상반기 2.73분으로 크게 늘어났다. 제시한 토의과제에 대한 의견수렴 과정에서 지원의 역량은 물론 상호작용 능력을 평가하는 토론면접은 2015년 전체 평균 4.86분에서 2018년 상반기 4.42분으로 다소 감소하였지만, 문화예술외교법무 분야는 2015년 2.14분에서 2018년 2.57분으로 증가하였다. 지원자의 인성, 가치관, 태도가 조직의 인재상이나 핵심가치에 부합하는 지를 평가하는 인성면접은 전체 기관에서 2015년 6.86분에서 2018년 상반기 6.33분으로 감소하였지만, 문화예술외교법무 분야에서는 2015년 5.57분에서 2018년 상반기 6.75분으로 늘어났다. 이는 전체적으로 직무경험이나 구체적 실무경험을 중시하는 경향에서 인성면접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지만, 문화예술외교법무 분야에서는 전반적으로 모든 유형의 면접을 강화하는 추세를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응시율의 변화
채용의 공정성 개선 인식이 높아지면 응시자 수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는데, 이러한 추론에 기초하여 채용인원 대비 응시인원의 비율은 응시율의 변화를 측정하였다. 그 결과에 따르면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 이전 시기에 응시율의 전체 평균값은 72.9에서 이후 시기에 89.0으로 상승하였다. 문화예술외교법무의 경우에 응시율은 이전 시기 74.3에서 이후 시기 90.8로 전체 평균보다 높은 수준을 나타냈고 이전 시기에 비해 이후 시기에 응시율이 늘어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대졸여성 비율은 증가, 명문대 출신 비율은 감소
전체 기관들을 대상으로 다양성 강화의 주요 지표인 대졸여성 비율은 이전 시기 39.8%에서 이후 시기 43.1%로 증가하였고, 그중 문화예술외교법무 분야의 대졸여성 비율은 이전 시기에 51.3%에서 이후 시기에 53.8%로 증가하였다. 다양성 강화의 또 다른 지표인 소위 명문대라고 칭하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출신자들의 비율은 전체 기관에서 이전 시기에 15.3%에서 이후 시기 10.5%로 유의미하게 감소하였고, 문화예술외교법무 분야에서는 이전 시기에 11.8%에서 이후 시기 8.1%로 감소하였다.
직무역량과 조직적응도
채용의 효율성을 측정할 수 있는 성과 지표로 260개 기관의 팀장 196명에게 “기존 채용으로 입사한 사원들에 비해 블라인드 채용으로 입사한 신입사원들의 직무역량과 조직적응도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5점 척도(1점: 많이 낮아졌다, 3점 똑같다, 5점 많이 높아졌다)로 평가하도록 하였다. 이 질문에 응답한 174명의 평균값은 직무역량 3.31점, 조직적응도 3.30으로 모두 ‘3점 똑같다’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보였다. 문화예술외교법무 소속 기관들의 경우에 직무역량은 3.40으로 전체 평균보다 높았지만, 조직적응도는 3.20으로 전체 평균보다 낮았다.
조기퇴사율의 감소-직무기술서 사전 공개와 명문대 비율
채용의 효율성을 측정하는 또다른 성과로 전체 입사자 중 채용 후 3개월 이내에 조기퇴사하는 직원들의 비율을 들 수 있는데, 블라인드 채용이 의무화된 이후 시기에 조기퇴사비율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 요인들은 직무기술서 사전 공개와 명문대 비율이었다. 이러한 결과로 볼 때에 직무기술서를 채용 이전에 공개하여 직무에 관해 지원자들에게 상세한 정보를 제공한 기관들이나 근로조건이 상대적으로 우수하여 지원자들이 몰리면서 우수 인력의 입사 비율이 높아지면 조기퇴직자는 줄어드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에 문화예술외교법무 분야와 그 이외 분야 간에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문화예술 분야를 포함하여 한국의 조직들은 일하는 방식에 급격한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1960년대에 시작하여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한국 경제는 추격전략(catch-up strategy) 혹은 모방전략을 통하여 선진국의 경영 방식을 학습하고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2011년 이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을 밑돌면서 본격적인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추격전략은 선진국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음으로써 압축 성장을 가능하도록 하였는데, 이를 위하여 조직은 다양한 구성원들이 긴박하게 발생하는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일하는 방식을 발전시켰다. 그에 따라 조직구성원에겐 특정한 분야에 전문성을 갖추기보다는 다양한 분야를 두루 섭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것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21세기 이후 저성장 국면에서 한국의 기업들은 점차 추격전략으로 선진국의 관행을 모방하여 국제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고유의 특유한 차별성과 창의성을 갖출 것을 요구받게 되었다.
이러한 차별화 전략 혹은 창의성 추구 전략을 추구하려면, 다방면에 관하여 얇게 두루 알고 있는 인재로는 수행하기 어렵고 대신에 특정한 분야에 창의적 열정과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들이 협업을 해야 했다. 이렇게 추격전략이 차별화 전략으로, 모방전략이 창조전략으로 바뀌면서 일하는 방식은 사람 중심에서 직무 중심으로 바뀌게 되었고, 요구되는 업무수행능력도 일반적인 관리 능력에서 특정한 분야의 전문성과 창의적 역량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과거에 사람 중심의 일하는 방식에서는 학벌이나 토익과 같은 소위 스펙이 전반적인 일처리 능력을 판가름하는 채용의 주요 기준으로 작용하였다면, 최근에 직무 중심의 일하는 방식에서는 특정 분야의 직무 경험과 창의성 혹은 열정을 더욱 중시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직무 중심의 채용 필요성이 높아졌지만, 노동시장은 여전히 과거의 스펙 중심의 관행이 지배적이어서 새로운 채용 패러다임이 쉽게 자리를 잡지 못하였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 채용제도의 변화를 매개체로 하여 새로운 채용 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한 정부의 노력과 민간업체들의 선도적인 노력이 정당성과 효율성을 얻고 있다.
이상민은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독일 퀼른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노동연구원과 충북대학교를 거쳐 현재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사조직연구>, <인사관리연구>, <산업관계연구>, <산업노동연구> 등 국내 학술지에 논문들을 발표한 바 있으며, 2005년도에 한국노사관계학회 학회지 <산업관계연구>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기업 수준의 노사협약’이란 논문으로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