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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가 이끄는 공연예술 유통의 다변화
코로나19 이후 예술과 시장의 변화 ②코로나19로 인해 무대와 객석의 거리는 벌어졌고 공연예술의 온라인 시대는 성큼 다가왔다. 전 세계 많은 공연장이 언제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막연한 지금, 공연의 미래를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공연예술 뉴노멀의 시작을 영상화에 기반한 유통의 다변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미디어와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도 공연예술은 퍼포머와 관객이 ‘라이브’로 소통하는 현장 예술이라는 점에서 영상매체와 구분되어 왔다. ‘지금, 이곳(Here and Now)’에서만 존재하는 일회적이고 일시적인 경험이라는 공연예술의 본질적 특성은 아우라(aura)와 희소성의 가치를 보존하는 동시에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지 않는 ‘비용질병(cost disease)’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물리적 제약이 불가피한 공연 무대를 영상으로 옮겨 유통함으로써 공연의 시·공간적 한계를 완화하고자 했던 시도는 20세기 초기 영화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이전에는 대부분의 영상이 사전 녹화되어 편집된 형태로 상영되거나 비디오테이프 또는 DVD 등으로 유통되는 형태를 띠었다. 하지만 2006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시즌 공연을 영화관에서 실시간으로 상영하는 ‘더 멧 라이브 인 HD(The Met: Live in HD, 이하 Live in HD)’ 시리즈를 론칭하면서 공연예술의 영상화는 라이브 브로드캐스트라는 새로운 포맷으로 진화하는 분기점에 접어들었다. 뒤이어 2009년 론칭한 영국 국립극장의 ‘엔티 라이브(NT Live)’로 영화관 또는 공연장에서의 실시간 상영을 전제한 영상화는 연극과 뮤지컬 장르로도 확장되었다. 이 외에도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볼쇼이 발레단 등 전 세계 많은 공연단체가 영화관에서 실시간 또는 지연 상영으로 영상화된 공연을 제공함으로써 더 많은 관객과 만나고 있다. 한편, 2008년 론칭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디지털 콘서트 홀(Digital Concert Hall)’이나 2014년부터 HD 콘텐츠를 제공 중인 오스트리아의 빈 국립 오페라극장과 같이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을 구축해 시즌 프로그램을 유료 서비스하는 단체들도 있다. 이처럼 관객들이 실제 공연이 진행되는 무대와 객석 공간의 물리적 환경을 넘어서 가까운 지역의 상영관 또는 개인 컴퓨터나 TV, 모바일 기기 등을 통해 고품질의 영상화된 공연을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는 통로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전 세계의 공연예술 단체에서 영상화 사업에 박차를 가하면서 공연의 영상을 전문적으로 제작하거나 유통하는 회사들도 점차 증가해왔다. 공연 영상화 사업을 성공적으로 지속하고 있는 Live in HD와 NT Live, 볼쇼이 발레단 등의 공연은 전문 배급사인 바이 익스피어리언스(By Experience)에 의해 전 세계로 유통되고 있다. 바이 익스피어리언스는 2003년부터 250개가 넘는 작품을 75개국 이상에 공급하고 있는 글로벌 배급사다. 한편, 스마트 기기의 보급과 함께 등장한 OTT 기반의 서비스로는 2009년부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디지털 시어터(Digital Theatre)가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로열 오페라 하우스, 올드 빅 시어터, 영 빅 시어터 등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으며, 2013년부터 녹화된 공연을 제공하고 있는 브로드웨이HD는 연극, 뮤지컬, 무용, 콘서트, 공연 관련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콘텐츠를 유료 서비스하고 있다. 또한 지난 5월 론칭한 브로드웨이 온 디맨드(Broadway On Demand)는 공연 작품 이외에도 아티스트의 콘서트, 토크쇼, 교육 프로그램 등 팬들만이 아니라 공연 종사자들을 겨냥한 다양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해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영역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아직까지 국내에는 2013년부터 예술의전당에서 운영하는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을 제외하고는 공연의 영상화 사업이 전문화된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세계 공연계의 흐름에 발맞추어 점차 국내 종사자들과 공연 팬들의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지난겨울 이후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협으로 형성된 비대면 문화를 기반으로 더욱 빠르게 촉진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2월 23일 코로나19 대응 단계가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격상된 이후 다수의 공연이 중단되거나 취소되었다. 생활방역으로 방역체계가 전환된 5월 이후 조심스레 운영을 재개했으나 계속되는 집단감염의 우려 속에 국공립 공연장을 주축으로 한 공연시장의 안정적인 운영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해외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3월 12일 모든 공연을 전면 중단한 브로드웨이는 최소한 9월 6일까지는 현 상태를 유지할 것을 결정했으며, 런던의 웨스트엔드도 오는 8월 2일까지 공연장 폐쇄 기간을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외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페스티벌은 물론, 다수의 투어 공연도 잠정적으로 연기되거나 취소되었다. 게다가 해외에서는 올해 안에 공연계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전 세계 공연시장의 위축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이다. 갑작스럽게 닥친 위기 속에서 공연장을 찾지 못하는 관객들을 위해 공연계가 가장 먼저 선택한 대안은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의 개방이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Live in HD 시리즈를 ‘나이틀리 오페라 스트림스(Nightly Opera Streams)’라는 타이틀로 무료 공개했으며, 베를린 필 또한 유료로 운영하던 ‘디지털 콘서트홀’을 한 달간 무료로 공개해 관객들의 아쉬움을 달랬다. NT Live와 앤드루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의 주요 작품들은 유튜브를 통해 제공되어 전 세계 공연 팬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국내에서도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 국립극장, 국립국악원, 국립극단, 서울시립교향악단, 남산예술센터, 경기도문화의전당, 서울예술단 등의 공공 공연장과 단체들이 이전 작품들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거나 무관중 공연을 중계하며 랜선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추세가 확대되었다. 또한 LG아트센터는 지난 5월 8일 LG유플러스와 손잡고 디지털 스테이지 ‘컴온(CoM On)’을 론칭해 기획공연 시리즈를 LG아트센터 네이버 TV와 LG유플러스 U+tv, U+tv모바일 등에서 스트리밍 서비스하고 있다.
코로나19 시대는 공연예술의 온라인 유통 시대를 재촉했고, 더 많은 관객들이 공연장 대신 화면 속에서 무대를 만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대부분의 영상이 무료로 제공되고 있으며 영상화된 공연이 유료 관객을 기반으로 유통되는 산업적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영상 퀄리티의 보강과 유통 기반의 확충이 필요한 상황이다.
클래식이나 무용, 전통공연, 연극, 뮤지컬 등의 장르가 아직까지 영상화 사업의 초기 단계인 반면, 수년 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영상기술과의 접목을 시도해 온 K-Pop 공연은 영상화를 통한 유통시장의 확대와 수입 창출의 기반을 한층 탄탄하게 마련해왔다. 이미 수년 전부터 빅뱅, BTS 등 아이돌 가수들의 콘서트는 홀로그램이나 AR 등의 기술을 활용한 무대를 3D 또는 스크린X 버전으로 제작해왔고, 탄탄한 팬덤을 바탕으로 유료 상영함으로써 큰 호응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온라인 공연 플랫폼은 지난 4월 SM엔터테인먼트와 네이버가 함께 론칭한 ‘비욘드 라이브(Beyond Live)’가 처음이다. 아직은 시작 단계이지만, 아티스트의 퍼포먼스에 더욱 풍성해진 3D그래픽, AR 등 다양한 영상기술을 접목한 화려한 무대를 선사하는 것은 물론 실시간 화상채팅을 이용해 랜선 관객과의 인터랙티브 소통을 즐길 수 있어 전 세계 K-Pop 팬들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비욘드 라이브’의 첫 주자였던 수퍼M은 약 7회분의 라이브 공연 관객 수에 맞먹는 7만여 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가장 많은 관객 수를 동원한 슈퍼주니어의 콘서트는 총 12만 3천 명이 관람함으로써 온라인 콘서트만으로 약 40억 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집계되었다. 또한 전 세계적인 팬덤을 자랑하는 BTS도 6월 중 유료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을 앞두고 있어 대중음악의 스트리밍 콘서트 시장은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공연의 영상화 또는 공연과 영상기술의 접목은 미디어 시대의 발전에 따른 필연적인 행보일 것이다. 코로나19 시대가 그 흐름을 다소 앞당긴 것은 사실이지만, 언젠가는 향할 방향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이 향후 공연 산업에 유의미한 창구로 기능할 수 있을지를 논하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할 단계별 과제들을 풀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해외의 유명 공연단체나 K-Pop 가수들과 같이 이미 브랜드가 형성되어 있거나 고정 관객층이 두껍지 않은 공연 작품이라면 단기간에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영상으로 매개하는 공연이 유료화를 기반으로 수익 창출에 목표를 둔다면 무엇보다 영상 자체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 단순히 영상 기술과의 접목만이 아니라 라이브 공연과는 구별되는 매력과 재미를 갖춘 새로운 미디어로서의 가치를 창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 있어서는 공연예술의 세부 장르나 규모, 형식 등에 따라 차별화된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가령, K-Pop 콘서트가 미디어 기술을 대폭 활용하여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고 관객과의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으로 현장감을 더한다면, 오페라나 연극, 뮤지컬 등과 같이 관객의 직접적인 개입이 어려운 극 장르는 공연장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거나 스페셜 영상을 삽입하는 등 영상 콘텐츠만의 재미를 더할 수 있다. 상영과 수용 양식의 다변화를 통해 라이브 공연의 현장감(liveness)을 대신할 수 있는 관객 소통의 통로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BTS나 슈퍼주니어의 콘서트를 온라인으로 시청하는 관객들이 응원 봉을 연동해 인터랙션한다면, 오프라인 상영관에 함께 모인 뮤지컬의 관객들은 싱어롱 관람이나 특별한 이벤트를 통해 또 다른 즐거움을 만끽할 수도 있다.
공연과 영상의 경계가 낮아지고 있는 만큼, 사고의 확장도 필요하다. 단순히 무대를 영상에 담아내는 방식만이 아니라 유통과 수용 환경의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여 공연과 영상기술의 접점에서 미디어 시대 관객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새로운 콘텐츠를 더 적극적으로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직까지 국내에는 공연 영상화를 전문적으로 기획, 제작, 유통하는 업체가 미비한 상황이다. 따라서 퀄리티 높은 영상으로 매개된 공연이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그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갖춘 스태프를 중심으로 각 장르의 특성과 시장성을 반영해 체계적인 전략을 세워나가는 일이 가장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지혜원은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주임교수이자 공연 칼럼니스트이자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공연예술경영학으로 석사학위를, 연세대학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논문으로 공연과 영상의 상호매체적 관계를 연구한 논문 「공연의 확장과 매개된 라이브니스: Livecast Cinema Theatre 사례를 중심으로」와 책『브로드웨이 브로드웨이: 뮤지컬 본고장에 살아 있는 예술경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