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기획특집은 (재)국립극단과의 협력으로, 코로나19 이후의 연극계를 조망하는 기사를 구성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기존 공연예술의 방식을 재점검하고, 미래 연극의 새로운 표준을 고민하기 위해 (재)국립극단에서는 ‘코로나 이후의 공연예술-이제 어떻게 연극하지?’라는 주제로 3회차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웹진에서는 현장취재와 사례소개, 연극의 뉴노멀을 종합한 기고 등으로 프로그램의 내용을 선별하여 싣습니다. 연극의 미래에 관심 있는 많은 독자분들이 즐겁게 읽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코로나 이후의 공연예술-이제 어떻게 연극하지?>
기획특집 ① 예고된 변화의 접근법, 어쩌면 담대하고 본질적인 그것으로부터
기획특집 ② 청소년극 <영지>, 온라인 공연제작의 가능성을 묻다
기획특집 ③ 코로나 시대의 연극과 새로운 표준

“코로나19 이후,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를 주제로 진행된 1회차 강연에서는 철학과 정치경제학적 관점을 통해 조망할 수 있는 각각의 담론을 통해 공연예술계의 대응책과 변화 양상을 가늠하고자 하는 취지를 담고 있다. 장태순 철학자와 홍기빈 경제학자는 각 분야의 시선에서 코로나19로 촉발된 다양한 현상과 분석 내용을 소개하면서도 지금의 상황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공연예술의 위기라는 측면에서 일종의 생존 전략을 강구하면서도 세계의 대변화가 예고된 지금, 어쩌면 담대하고 본질적인 질문을 통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앞으로도 인간이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를 완전히 차단하기란 불가능해 보이며, 이러한 바이러스가 얼마나 자주 찾아올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다만 팬데믹 전염병의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 시기를 체험한 후 인류는 정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변곡점을 맞이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카오스모스(Chaosmos, 혼돈 속의 질서)적 접근법에 의한 인식 변환을 통해 세계를 다시 구축해온 셈이다. 코로나19 이후, 과연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새로운 것은 없으나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먼저 장태순 철학자는 코로나19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과 현상을 놓고 “새로운 것은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라는 강연 제목으로 요약했다. 이는 현재 코로나19를 다루는 매체의 접근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지금의 상황을 통해 새롭게 도출된 이론이나 진단은 사실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워낙 크고 복합적인 상황이다 보니 누구든 어떤 원인을 지적해도 아무도 반박하기 힘들다는 것. 즉, 사태의 원인이나 현상들이 이전부터 있었지만,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다가 코로나19를 통해 지금에서야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령 그가 제시한 키워드들 가운데 공연예술의 위기, 공교육의 변화, 원격의료, 도시화의 위기, 초연결 사회, 언택트 문화, 생태적 사고, 인간화된 자본주의, 인종차별 등 다양한 주장, 진단과 현상이 모두 섞여 있는 이러한 담론들은 이미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존재했다. 그렇지만 그는 이러한 담론이 새롭지는 않더라도 이전과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이는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에서 다루고 있는 철학적 전제와 연결된다. 이 세상에 똑같은 반복은 없고, 반복 속에서 반드시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을 이번 사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선상에서 그는 코로나 사태 이후의 핵심적인 화두를 ‘비접촉’ 혹은 ‘비대면’으로 상정해 코로나 이후 예고된 변화 속에서 공연예술의 대응책 또는 생각해봐야 할 지점을 소개했다.

브로드웨이 온 디맨드 홈페이지 화면(출처: 장태순_철학자, 덕성여자대학교 교수) 포스트 코로나 현상과 담론
(출처: 장태순_철학자, 덕성여자대학교 교수)

그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근본 원리가 인간과 인간의 접촉을 막자는 것이며, 비접촉이 사물과의 접촉을 피하겠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인간이 아무런 접촉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강조하면서 이와 관련해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을 소개했다. 1970년대 일군의 인류학자가 만들어낸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속한 사회는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간만큼이나 중요한 사물이 우리의 행동과 관계를 결정하는 존재라는 것을 상기시킨다고 한다. 예를 들어 신호등의 경우 인간 사회의 교통체계를 이어나가는 데 중요한 행위자 네트워크 역할을 맡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오늘날의 스마트폰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강렬한 행위자 네트워크로써의 기능을 담당하며 급기야 인간의 신체 일부로 일종의 외장 뇌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는 언급을 했다. 그는 과학기술을 이용해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성질과 능력을 개선하려는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에 의한 인간 강화를 떠올리게 되면서 강연 제목의 부제로 부친 “그리고 연극은 계속될 것이다”라는 의미가 바로 연극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비대면, 비접촉 연극의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임을 역설했다.
또한 그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극작가인 알랭 바디우의 저서 『비미학』 중 「연극에 관한 테제들」에서 “연극의 구성 요소들은 공연이라는 한 사건 속에서 한데 모이며 공연은 매일 저녁 반복되지만 그럼에도 각각의 공연은 하나의 사건이고 독특하다.”라는 부분을 인용하면서, 바디우의 주장처럼 연극을 녹화해 동영상 형태로 상영될 때는 그것이 연극이라고 부르기는 힘들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물론 영상을 통해 현장에서만큼은 아니지만 연극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으며, 영국의 < ntlive >와 같은 시스템이 국내에서도 도입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이야말로 무엇이 진짜 연극인지를 생각해봐야 할 시기며, 녹화된 연극이나 일종의 영상물이 아니라 진짜 비대면·비접촉 연극을 탐색해야 함을 강조했다. 또한 비대면 연극이라 하더라도 관객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라도 일종의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 관객이 연극에 참여하는 것은 티켓을 구매하는 순간부터이다. 비대면 연극 역시 유료가 아니더라도 티케팅 절차와 같은 중간 단계가 필요하다고 보는 셈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배우들이 관객의 반응을 받아들이게 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관객이 없는 무대에서 공연하더라도 관객들이 반응하는 것을 감지해야 한다. 예를 들어, 관객들에게 스마트 워치와 같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채우고, 심장 박동 수나 체온의 상승을 통해 연극 내용에 몰입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데이터를 배우가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예를 들어 무대 주위에 현장에 있지 않은 관객의 반응 정도에 따른 변화가 어떤 경로로 배우에게 전달되고, 그에 따라 배우가 다시 반응하는 것을 관객이 느낀다면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연극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건을 만들 수 있으리라고 그는 기대했다.

모더레이터 조만수 연극평론가(좌)와 철학자 장태순 교수(우)’ 모더레이터 조만수 연극평론가(좌)와 철학자 장태순 교수(우)

강연을 마친 후 질의응답 시간에 사회자인 조만수 연극평론가는 장태순 철학자에게 실시간 온라인 중계를 통한 접속자의 반응을 소개했다. 덧붙여 유럽 문명사의 변곡점으로 작용한 흑사병을 통해 중세사회가 지배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을 환기하면서 지금의 철학적 담론이 어떤 변화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지를 물었다. 장태순 철학자는 지금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자본이 작동하는 방식에는 반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나은 사회로의 진입을 비관적으로 보는 것은 어쨌든 지금 많은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은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가만히 있다고 해서 무언가가 찾아오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움직여야 하고, 창조해야 하든가 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배 이데올로기로 인해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 혹은 그동안 지배 이데올로기 자체를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걸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본질을 생각해야 할 때이자 새로운 상황을 통해 이 본질을 어떻게 드러낼지를 고민하고, 새로운 것을 발명해내는 게 유일한 방법이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 정치경제학적 관점

홍기빈 경제학자는 사회과학자로서 조망하는 사회변동을 소개하면서 이러한 설명의 요지는 현재는 예측이 안 되는 상황이니 예측이 아닌 창조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먼저 그는 지금의 상황을 구조변동으로 설명했다. 비유하자면 지금은 지붕에서 비가 새는 집이 아닌, 지진을 맞이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지붕을 포함한 기둥, 서까래 등 어느 부분이 남아 있을지 또는 어떤 게 무너질 지라는 예측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유는 1990년대 즈음에 시작되어 30년 정도 지속된 지구적 자본주의의 지난 과정을 대입하기 위한 것으로 그는 간략한 그림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라는 주문을 했다. 기둥 두 개가 있고, 그 기둥 위에 벽돌로 된 4층짜리 구조물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우선 두 개의 기둥은 각각 인간과 자연의 관계로 치환할 수 있는데, 이는 인류가 1만 년 전 정착 생활을 시작한 이후에 해당하는 모든 사회와 문명에서 성립된 사회의 기본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30년 동안 진행된 전 세계의 지구적 자본주의는 전대미문의 팽창을 통해 이전까지 접하지 못한 양상을 만들었고 두 개의 기둥을 놓고 다음과 같은 네 개의 층위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층위인 지구화는 인간의 산업 활동이 전 지구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도시화는 몇 개의 거대도시가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전 세계의 문화적 문명을 이끌고 있다는 것, 그리고 거대도시의 경제적 가치인 문화자본이 생기면서 인류의 동선이 거대도시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인간 사회에서의 모든 경제활동을 조직하고 배치하는 기본 물리로서 금융화를 언급하면서 사람을 포함한 그 무엇도 금융화로 배치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한 의회 민주주의가 초래한 심각성은 소위 '찐따'가 되어버린 정부의 무능으로 요약했다. 모든 것이 금융시스템의 규칙이나 지구적으로 합의된 규칙으로 굴러가다 보니 국가가 실제로 나서서 해결하려고 하면 부정적인 반응이 계속되면서 급기야 국가를 이끄는 선출직 정치인들이 연예인과 비슷해졌다는 해석이다. 각 나라의 지도자가 실제 위기 상황에서 얼마만큼의 문제해결 능력이 있는지를 지금처럼 여실히 보여주는 상황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그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으킨 변화는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지금과 같은 구조변동기에서 사회과학이 줄 수 있는 조언의 첫 번째는 ‘행동할 준비를 해라’, ‘실천적 자세를 갖춰라’라는 것이며, 두 번째로는 ‘가치’라는 것을 강조했다. 즉, 지금 놓쳐서는 안 될, 마지막 순간에도 절대로 놓아서는 안 될 궁극적 가치에 대해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홍기빈 소장 ⓒ 김신중(출처: 국립극단) 경제학자 홍기빈 소장 ⓒ 김신중
(출처: 국립극단)

한편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을 틈타서 생기는 일 중의 하나가 예측 비즈니스가 창궐한다는 것이다.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기에 오히려 사람들이 가장 듣고자 하는 게 ‘코로나 이후에 어떻게 될 건지’에 관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 이후 어떻게 될 것이다’라는 예측이 사방에 차고 넘치는데, 이를 사회과학적으로 접근한다면 사회가 이렇게 될 것이라는 예언과 예측을 하는 사회담론 자체가 사회를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칼 포퍼의 ‘오이디푸스 효과’처럼 자기실현적 예언을 통해 지금 아무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의 예측이 미래를 이렇게 만들겠다는 설계도가 된다는 것이다. 즉, 시선의 방향이 ‘사회과학적으로 어떤 예측이 가능한가’라는 게 중요하기보다는 어떤 예측과 맞물려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져 나가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예측이 안 되고 구조가 바뀌는 상황에서 미래를 선취하기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지금 나오고 있는 ‘미래가 이렇게 저렇게 될 것이다’라는 얘기들 모두가 사실은 ‘미래를 내 뜻대로 만들겠다’는 권력의 의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는 예측해서 적용할 것이 아니라 어떤 식의 무대를 만들고 관객들 간의 현장성이라는 문제와 관객과의 관계를 어떤 다른 형태로 만들어볼 것인가를 고민하고 새롭게 만들어나가야 하는 상황임을 강조했다.

한편 지금 공연예술인이 고민하는 삶의 지속성과 정체성에 관한 부분은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에 공감하면서도 그는 ‘문화인’이라는 고정된 상이나 정체성을 버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가령 지금의 지식인이 일종의 카스트가 되면서 사회 울타리에서 수행해야 하는 기능이 생기자 그 외의 방법으로는 먹고살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지 못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지도 못한 채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사회에 종속되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문화예술인 역시 비슷한 상황에 부닥쳤다고 판단했다. 지금은 회생의 방법론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기,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 행동해야 할 상황에서 고정된 정체성이나 고정관념에서 스스로 벗어나야 함을 강조했다.

  • 염혜원
  • 필자소개

    염혜원은 연극을 공부했고 현재 자유기고가와 드라마터그 등으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는 『나오시마 삼인삼색』(웅진리빙하우스)이 있다.
    이메일

참고링크
국립극단 ‘코로나 이후의 공연예술-이제 어떻게 연극하지?’
1회차 강연 ① 새로운 것은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1회차 강연 ② 코로나 이후의 세상: 정치경제학적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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