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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연극과 새로운 표준
코로나 이후의 공연예술-이제 어떻게 연극하지? ③
7월 기획특집은 (재)국립극단과의 협력으로, 코로나19 이후의 연극계를 조망하는 기사를 구성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기존 공연예술의 방식을 재점검하고, 미래 연극의 새로운 표준을 고민하기 위해 (재)국립극단에서는 ‘코로나 이후의 공연예술-이제 어떻게 연극하지?’라는 주제로 3회차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웹진에서는 현장 취재와 사례소개, 연극의 뉴노멀을 종합한 기고 등으로 프로그램의 내용을 선별하여 싣습니다. 연극의 미래에 관심 있는 많은 독자분들이 즐겁게 읽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
국립극단의 '코로나 이후의 공연예술-이제 어떻게 연극하지?'는 3회에 걸친 강연과 토론으로 구성되었다. 철학자 장태순, 이찬웅과 경제학자 홍기빈의 강연은 우선, 코로나19로 비롯된 현재의 상태를 이해하기 위한 기획이었다. 연극계 밖에서는 현재의 상태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으며, 또한 그들이 비록 연극 전문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연극과 관련된 밖의, 그러므로 낯선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이 위기 속에서 방향을 모색하는 연극계에 사유의 단초를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들은 현재의 상황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며, 차라리 우리의 결정과 실천이 미래를 만드는 것임을 이야기했다.
연극계 안에서 볼 때 코로나19로 인한 현재의 상황이 장기화된다면, 우리는 이제 어떤 방식으로 다시 연극을 해야 할까? 6월 말, 우리는 외신을 통해 캐나다의 ‘태양의 서커스’가 파산보호신청을 하고 직원의 90% 이상을 해고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태양의 서커스는 문화산업계에서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철 지난 옛 향수에 불과하다는 서커스에 예술적 색채를 가미하여 새로운 시대의 문화 상품으로 탈바꿈시킨 이들에게 미래는 약속된 듯했다. 하지만, 코로나는 이들을 단숨에 과거의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코로나와 함께 생태적 변화가 도래했다. 마치 세상을 지배하던 공룡이 빙하기를 겪으며 더 이상 생존할 수 없었던 것처럼, 세계화된 환경을 산업적 기반으로 삼던 국제적 문화기업들은 코로나로 급격하게 변화된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협받게 되었다. 공룡으로서의 문화기업은 공연계에서는 국제 관광객을 관객으로 삼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뮤지컬, 혹은 라스베이거스의 비언어 퍼포먼스들이 대표적이다. 밀폐, 밀집, 밀접이라는 ‘코로나 3밀’이 현재의 팬데믹 상황에서 시민들이 가장 피해야 할 생활양식이라면, 밀폐된 장소에 최대한의 관객을 동원하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는 공연산업이 당착한 현실은 절망적이다. 이제 공룡이 아니라 오리너구리로 변신하여서라도 문화산업기업은 새로운 생태적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우리 공연 산업계는 몇몇 비언어 퍼포먼스를 제외하면 국제 관광객 관객에 대한 의존도가 그리 높지 않다. 이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선 관객에게 극장이 안전한 공간임을 인식시키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철저한 방역은 물론 관객 간 거리두기가 가능한 좌석 배치를 시행해야 한다. 최근 캐나다에서는 관객 간 간격을 2m로 제시하며 극장의 재오픈을 허용했다고 하는데, 실상 관객 간 거리 2m를 지키면서 공연을 하는 것은 채산성의 관점에서 보면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정부는 방역의 측면만을 고려해 안을 제시하는 것이고, 공연산업 종사자들이 보건적 측면과 경제적 측면을 모두 고려해서 무엇보다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거리를 확보한 후 극장은 30% 이상의 관객을 잃게 된다. 제작비의 절감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뒤따를 것이지만, 온라인 공연은 이처럼 공연산업에서 예상되는 손실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검토 가능하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절정으로 치달아서 모든 공연의 가능성이 막혔을 때 온라인 공연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였으며, 이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였다. 그러나 공연이 전면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라면, 상업성이 온라인 공연에 절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공연의 본질로서 ‘대면’이라는 개념에 대한 성찰을 심화하면서, 연극적 본질을 찾는 시도로서 다양한 기술적 시도를 시행하는 것이 권장되며, 온라인 방식은 그 다양한 기술적 시도의 일부일 것이다. 반면 상업공연의 경우,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연장까지 굳이 오지 않더라도, 해당 공연을 즐기고자 하는 관객의 수요를 창출하는 새로운 마케팅의 방식으로서 온라인 공연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이때 온라인은 오프라인을 대체하는 개념이 아니라 보충하는 개념이다.
문화산업 영역에서 공연기업이 공룡이라면,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비영리 예술단체로서 ‘극단’은 포유류-아마도 포유류 중에서도 가장 미약하지만 생명력이 강한 설치류(?)-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들에게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지고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해도 실상 좋았던 옛날이 존재하지 않는다. 코로나로 생태계의 변화가 오기 전까지 이들에게는 포유류임에도 불구하고 파충류 공룡의 환경이 강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은 많은 관객이 찾는다는 문화산업적 논리를 예술 영역에 그대로 적용하려 한 것이다. 때문에 예술 창조 단위로서의 극단이 자신의 작품을 제작하고 배포하는 역할을 모두 수행하며, 공공은 그들이 경쟁력을 갖게 하기 위해서 선별된 대상에게 제작비 일부를 지원해왔다. 문제는 정부지원금의 전체 규모가 결코 작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비영리 예술단체가 예술 활동을 지속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생태계를 이제껏 조성하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사실 코로나 이후 공연이 전면 중단된 시기를 제외한다면, 극단 단위에서 배우와 연출의 수입이 코로나 이전과 큰 폭으로 바뀐 것은 없다. 그렇다고 그것이 자조적 위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 이후 연극 어떻게 하지?’라는 물음에 우리는 ‘연극하는 생태계를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라고 대답하고자 한다. 이제껏 적절한 규범 없이 비정상적인 조건 속에서 연극 활동을 해왔다면, 이제 코로나 이후는 제대로 된 새로운 규범, ‘뉴노멀’을 만들어야 한다. 배우가, 극단이, 그리고 작품 창작에 관여하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창작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직업적’인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새로운 규범이다. 코로나 이후 예술인 고용보험을 도입하기 위한 구체적 과정의 시작은 공연예술인을 포함한 예술인이 사회에서 직업인으로 인정받는 진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영리 예술단체로서의 극단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제작과 배포를 위한 공공의 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공공극장의 증설에 관한 이야기를 코로나 이전에 했다면, 문화 관료들은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적 견해라 일축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생태적 변화를 겪으면서, 이전의 현실주의적 입장들이 오히려 비현실성을 드러내는 전도가 일어난다. 현재는 사설극장과 구분하여 더욱 엄격하게 방역적 조치를 강제하기 때문에 공공극장은 거의 폐쇄 상태에 놓여있고, 이 때문에 많은 연극인들은 위기 상황에서 공공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갖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시장 상황이 악화될 때,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것은 공공 시스템이다. 시장의 기능을 갖지 않는 비상업적 영역에서는 공공 시스템만이 장기적으로 안정되게 생태계를 형성시킬 수 있으며 이를 통해서 문화 서비스에 대한 시민의 요구에 부합할 수 있다.
코로나 이후 관객은 극장이 상대적으로 다른 밀집 시설에 비해 안전할 수 있다고 인지한다 하더라도 극장에 가는 행위는 일정 부분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극장에 오는 관객들이 있기에 공연의 사회적 가치는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처럼 공연의 가치가 상승하기 위해서는 공연이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 연극은 이제 감동을 주는 작품보다는 콘셉트가 강한 작품들이 주를 이룰 것이다. 작품의 규모가 작아지면서 다수의 관객을 동원하기보다는 소규모의 관객에게 강한 영향을 주는 작품으로 경향이 이동할 것이다. 공간과 매체적 실험, 대면과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에 대한 실험이 강화될 것이다. 극장에 온다는 것이 일정 정도 밀집된 환경 속에 타인과 함께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결국 극장을 선택한다는 것은 타인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관크’ 논쟁이 보여주듯 방해받지 않고 개별적으로 극을 소비하려는 관객 문화가 코로나 이전에 모습을 드러냈다면, 코로나 이후에는 반대로 극장이라는 공동체 내에서 타인과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겪을 것이다. 또한 국제적인 공연마켓이나 페스티벌 혹은 작품의 국제적 이동이 줄어들면서, 지역성이 더욱 강조될 것이다. 국제적으로도 유럽이나 북미 등과의 교류보다는 보다 가까운 지역과의 협력이 강조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우리의 보건, 의료 시스템의 우수성을 자각하며 스스로 놀라고 있다. 코로나는 우리의 문화 서비스의 체계를 새롭게 정비할 수 있는 예기치 않았던 기회가 될 수 있다. 사회 위기 속에서 문화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공연예술이, 연극이 이에 효과적으로 답할 때, 새로운 환경 속에서 연극은 우리 사회 내에서 그 존재 이유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3회에 걸친 포럼 '코로나 이후의 공연예술-이제 어떻게 연극하지?>는 비대면으로 개최되었다. 극장이 관객을 맞이할 수 없는 상황과 마찬가지로 극장에서 개최된 토론 또한 비대면으로 치루어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대면은 또 다른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보다 폭넓은 관객의 참여가 가능하였으며, 대면 상황 못지 않게 깊고 넓은 대화가 가능하였다.
조만수는 충북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이자 연극평론가로 글을 쓰며, 드라마터그로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함께 만들고 있다. 남산예술센터 극장 드라마터그, 국립극단 희곡우체국장 등의 직책을 수행했으며, <과부들>, <햇빛샤워>, <단테의 신곡>, <1945>, <에어콘 없는 방>, <오슬로> 등 다수의 작품에 드라마터그로 참여하였다.
참고링크
국립극단 ‘코로나 이후의 공연예술-이제 어떻게 연극하지?’
3회차 강연 거리두기의 세 가지 모양: 박쥐, 줌, 연극
3회차 발제 새로운 조건과 다시 연극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