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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미디어와 교차하는 공연예술의 확장
예술사 관점에서 본 코로나 시대의 예술②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협이 국내는 물론 전 세계 공연계의 존폐마저 위협하고 있는 2020년,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상황인 만큼 다시 공연장에서 관객과 마음껏 소통하는 순간을 언제 다시 맞게될지 쉽게 예측하기도 어렵다. 8개월 넘게 지속되는 글로벌 팬데믹 시대는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키고 있지만, 다른 어떤 문화예술 분야보다도 ‘지금, 이곳(here and now)’의 현장에서 완성되는 라이브 무대가 마주한 타격이 크다. 제한된 무대의 대안으로 발빠르게 선택한 미디어 플랫폼으로의 전이를 놓고 새로운 통로와 포맷에 대한 기대에 앞서 공연예술의 본질에 대한 우려와 막연한 두려움의 목소리가 높다. 낯섦에 대한 불편함을 헤아리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라이브 공연과 영상미디어의 조우의 역사가 결코 짧다고 볼 수는 없기에 이러한 교차에 지레 걱정부터 앞세울 필요는 없다. 오히려 미디어 기술의 발전 속에서 함께 연동하며 고유의 영역을 유지하고 확장해온 공연예술을 보다 큰 틀에서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코로나19 이후의 문화예술시장을 전망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예상한다.
공연을 인류 역사의 맥락에서 돌이켜봤을 때 영상미디어 출현 이전의 라이브 무대는 관객이 함께 즐기는 유일한 유흥이자 소통의 장이었다. 상류층이 발레와 음악회, 오페라, 연극 등을 관람했다면, 보드빌(vaudeville)1)과 레뷔(revue)2)는 중산층과 서민들의 오락거리였다. 퍼포머와 관객이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소통하는 현장 예술이라는 점에서 수용가능한 인원의 제한은 있었으나, 사라짐을 통해 존재론적 의미를 완성하는 공연예술은 희소성으로 그 가치를 더욱 견고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시대에 1895년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래프(cinematographe)로부터 시작된 영화의 발명은 대중오락에 있어 혁명과도 같은 분기점이 되었다. 공연의 물리적 제한이 고유의 가치인 동시에 관객의 문턱을 높이는 태생적 한계라는 점을 감안할 때,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편리하고 저렴하게 감상할 수 있는 영상의 출현은 바햐흐로 매스미디어의 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그 시대를 살지는 않았더라도 영화라는 신매체를 처음 마주한 관객들의 놀라움과 기대감은 가히 상상이 되는 지점이다. 반면, 공연계에서는 영화의 출현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관객을 모두 영화관에 뺏기는 것은 아닐까?”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 기술만으로 앞서간 초기 영화는 라이브 무대와 경쟁하기 보다는 공연의 기존 콘텐츠와 양식을 상당 부분 빌려와 비로소 새로운 영역을 채워갈 수 있었다.
예를 들면, 1900년대 프랑스의 ‘필름 다르(film d’art)’에서는 <카미유(Camille)>와 <엘리자베스 여왕(Queen Elizabeth)> 등 주요 연극 작품을 필름에 담아 선보였다. 이는 카메라를 통해 연극의 물리적인 제약을 극복했다기 보다는 연극 공연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 보여주는 ‘영화로 찍은 연극 (photographed theatre)’의 단순한 형식에 지나지 않았으나 공연장 이외의 공간에서 연극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는 있었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은 연극 작품을 스튜디오로 옮겨서 찍는 형태였으나, 이 또한 서로 다른 두 매체의 효과적 결합이라기 보다는 영화라는 그릇에 담기에 부족한 요리를 공연에서 빌려오는 양상에 불과했다. 코로나19 시대에 가속화되는 공연의 영상화가 다소 삐걱대며 최적의 접점을 쉽게 찾아내지 못하는 것 이상으로, 100여년 전 공연과 영상의 첫 만남은 새로운 시도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한편, 무성영화 시대에 제작된 단편 코미디 영화들은 슬랩스틱 코미디가 주된 내용을 차지하고 있던 보드빌의 극적 구조, 즉 서술적 연계성이 고려되지 않은 직렬적 구성에 영향을 받았다. 이것을 기회로 다수의 보드빌 배우들이 영화로 활동무대를 옮겨 활발하게 활동하기도 했다. 영화 산업이 성장함에따라 보드빌의 인기는 점차 하락했지만, 슬랩스틱의 전통이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 버스터 키튼(Buster Keaton)과 같은 배우들에 의해서 무성영화 속에서 명맥을 유지했던 배경이기도 하다. 공연과 초기영화의 긴밀한 관계는 이뿐이 아니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던 시절에는 뮤지컬의 역할이 주요했는데, 1927년 최초의 유성영화인 “재즈싱어”가 제작된 데 이어 뮤지컬영화는 1930-1950년대를 거치며 독자적인 장르를 구축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이렇듯 영화가 이야깃거리를 발굴하거나 무대 위 공연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기는 것에서부터 극적구조를 차용하는 것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연극을 활용했다면, 이후 발명된 TV는 재미와 오락을 위해 미디어를 소비하는 대중에게 또 다른 신선한 차원을 제공했다.
코로나19로 불이 꺼진 브로드웨이 공연장은 디즈니 플러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 플랫폼을 대안으로 선택했다. 지난 7월 브로드웨이 메가히트 뮤지컬 <해밀턴(Hamilton)>은 2016년 촬영했던 오리지널 캐스트 공연의 영상을 영화관 상영 대신 디즈니 플러스로 독점 공개했고, 2021년으로 개막이 미뤄진 신작 뮤지컬 <다이아나(Diana)>는 영상으로 선제작하여 넷플릭스를 통해 선보이기로 결정했다. 전통 미디어에 대항할 오리지널 콘텐츠를 찾는 OTT 플랫폼과 라이브 무대의 통로가 막힌 공연예술의 상호보완적인 전략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안방에서 즐기는 공연’의 역사는 초기 TV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 이후 발명된 생활 밀착형의 미디어이면서도 초기 TV에서 영화보다 공연과의 유사점이 더욱 눈에 띄는 지점은 3차원이 아닌 2차원의 공간을 담아낸 카메라의 위치때문이다. 마치 공연을 관람할 때 사용하는 오페라 글래스와 같이 가깝지만 시선의 한계가 명확했던 초기 TV의 화면은 정면에서만 이미지 생성이 가능했기에 프로시니엄 무대와 유사하게 기능했다. 따라서 시청자들은 가정에서 TV를 통해 더욱 가깝게 라이브 공연을 관람하는 것과 같은 경험을 만끽할 수 있었다. 최근 국내에서도 다양하게 시도되는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과 유사한 맥락이다. 1940년대부터는 무대를 TV로 옮긴 프로그램들이 본격적으로 제작되었는데, CBS의 “투나잇 온 브로드웨이(Tonight on Broadway, 1948~1950년)”, NBC의 “프로듀서스 쇼케이스(Producers’ Showcase, 1954~1957년)”, PBS의 “ ‘아메리칸 플레이하우스(American Playhouse, 1982~1994년)”, “그레이트 퍼포먼스즈(Great Performances, 1972년~현재)” 등의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1940~1960년대가 뮤지컬의 황금기였던 만큼 TV에서도 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한창 높았는데, 1955년 “프로듀서스 쇼케이스”의 7번째 에피소드로 방영되었던 뮤지컬 “피터팬(Peter Pan)” 이후 뮤지컬영화에 이어 TV 뮤지컬이 새로운 장르로 주목받기도 했다. 널리 알려진 작품인 리차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의 뮤지컬 “신데렐라(Cinderella, 1957년)”는 TV용으로 먼저 제작된 뒤 무대로 옮겨진 사례기도 하다.
이후 영화와TV는 진화하는 기술력을 발판으로 라이브 공연과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영역으로 발전을 거듭하며 산업을 확장해오고 있지만,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급격히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은 비단 라이브 양식을 고수하는 공연만이 아니라 전통 미디어로 간주되는 영화와 TV에도 새로운 시도를 감행 할 필요성을 고조시켰다. 그 결과, 시청률 하락으로 인해 생중계 프로그램 제작을 고심하던 지상파 TV는 다시 한번 뮤지컬로 눈을 돌렸다. 2013년 NBC는 뮤지컬의 고전 중 하나인 <사운드 오브 뮤직>을 <사운드 오브 뮤직 라이브(The Sound of Music Live!)>로 새롭게 제작해 방영한데 이어 “피터팬 라이브”와 “더 위즈 라이브(The Wiz Live!)”, “헤어스프레이 라이브(Hairspray Live!) 등을 제작했으며, Fox는 “그리스(Grease: Live)”와 “렌트(Rent:: Live)”를, ABC는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 Live!)”를 TV 뮤지컬로 제작해 방영한 바 있다. 주로 연말연시 시즌에 편성되어온 TV 뮤지컬은 라이브 무대의 물리적 공간의 제약을 확장하면서도 영화와 달리 방송 메커니즘에서만 가능한 생중계의 묘미를 살려낸 포맷으로 방영 때마다 큰 화제를 모았다.
라이브 무대를 잃은 공연예술의 막막함은 당연하다. 직접 관객을 만나지 못 하는 아쉬움을 영상화를 통해 달래보고자 하지만, 무대를 영상에 담아낸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국내 공연계에서는 이러한 시도조차 높은 벽으로 느껴질 뿐이다.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이 얼마나 힘이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코로나19로 갑작스레 맞닥드린 공연예술계의 위기는 분명 시장의 기반과 유통 환경의 변화를 촉발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때일수록 공연예술 안에서만 해답을 찾기 보다는 문화예술 전반을 관통하는 생산과 수용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보다 민첩하게 대응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처음 영화와 TV가 발명되었을 때에도 공연계는 무대가 받을 타격을 걱정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녹음기술과 오디오장비가 진화하고, 디지털 미디어로의 전환으로 볼거리, 즐길거리가 점차 다양해진 지난 100여년 간에도 라이브 공연은 꿋꿋히 자리를 지켰다. 물론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연동하며, 뮤지컬 영화나 TV 뮤지컬과 같은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기도 했고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가 무대로 옮겨지기도 했다. 발명 초기의 영화와 TV가 공연을 적극 활용하여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듯이 위기를 맞은 라이브 무대도 영상미디어와의 교차 속에서 보다 창의적인 확장으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코로나19 이후의 문화예술계를 섣불리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관객은 개별화된 경험에 더욱 익숙해질 것이고 소통의 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공연예술이 미디어 플랫폼 안에서 새로운 통로를 찾는 전략은 전통적인 라이브 무대를 단순히 영상으로 옮기는 단계를 넘어서 획기적 진화를 위한 더욱 적극적인 도전이어야 할 것이다.
1) 보드빌(vaudeville): 189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초까지 미국에서 유행했던 버라이어티쇼의 일종.
2) 레뷔(revue): 19세기 초 프랑스를 시작으로 영국과 미국 등에서 인기를 끌었던 버라이어티 쇼.
지혜원은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공연예술경영MBA주임교수이자 공연 칼럼니스트와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공연예술경영학으로 석사학위를, 연세대학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브로드웨이 브로드웨이: 뮤지컬 본고장에 살아 있는 예술경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