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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의 호출에 응답하는 사람
성연주_문화사회학연구자혹자는 세대라는 유령이 한국을 떠돌고 있다고 진단했다. 늙으면 기성세대, 젊으면 청년세대라는 범주는 세대 간의 갈등과 대립, 책임 전가의 모습으로 불쑥 튀어나온다. 현재의 위기 진단은 미래에 대한 질문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단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 대한 처방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딱히 해답은 없는 예술의 위기, 예술의 미래에 대한 물음이다. 미래를 살아갈 당사자는 바로 청년세대이므로, 미래를 만들어갈 정책의 자리에 청년 당사자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존 예술 정책의 전환모델로서 청년예술정책을 연구하는 성연주 연구자를 만났다. 문화사회학 연구자이면서 현재 밀레니얼 세대 연구자들로 구성된 가칭 ‘문화정책젊은연구자모임’을 이끌고 있으며, 서울청년예술인회의 운영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청년 연구자라는 주체, ‘전환기’라는 작금의 시대가 요구하는 것을 성연주 연구자에게 물었다.
‘문화정책젊은연구자모임’에 대한 소개를 해 달라.
아직 모임 이름이 없다. 모임 시작은 2016년 문화연대 ‘문화정책 2020’의 자리에서 새로운 문화정책을 만들어나갈 젊은 연구자나 활동가가 신(scene)에 너무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주니어들끼리 모임을 해보자는 제안이 나왔고, 문화연대 활동가, 지역문화재단 직원 등 총 6명이 ‘문화예술진흥법 파헤치기’를 주제로 모였다. 연구 모임으로 출발했지만, 결과를 공유하는 행사 이후 하나둘 빠져나가면서 결국 지속되지 못했다. 2018년 초 문화연대로부터 당시 주니어 연구자 모임을 다시 제안받고, 문화활동가, 기획자, 연구자 등 5명이 모였다. 2017년 서울시에서 서울청년예술단 사업이 처음 시작되었는데, 이 지원사업은 청년 예술가에게 매월 활동비 70만 원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예술가의 활동비를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새로웠다. 여전히 많은 예술가들이 창작 활동을 하면서 커리어를 쌓기 위해 지원사업을 신청하는 상황에서 ‘청년예술’이란 용어가 새로 생겼지만, 정작 활동 내용은 같았기에 당시 현장에서는 ‘도대체 청년예술이 뭔데’라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청년예술을 연구 주제로 삼고, 당시 문화연대 정책 제안서에 청년예술 파트로 연구 결과를 실었다.
현재의 모임은 지난해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웹진 ‘문화정책리뷰’에 게재한 문화정책 연구에 대한 원고를 계기로 연구를 본업으로 하는 연구자 5명을 모아 문화정책 연구모임을 새로 시작하게 되었다. 현재는 문화콘텐츠학, 행정학, 문화사회학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진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젊은 연구자들이 매월 꾸준히 모여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연구 모임은 2030세대의 ‘젊은 연구자’ 모임이라는 정체성이 뚜렷하게 보이는데, 이는 문화정책을 연구함에 있어서 기성의 선배 문화연구자들에 대한 의식으로부터 비롯되는가? ‘젊은연구자모임’이라는 정체성이 어떻게 문화정책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지도 궁금하다.
사실 학교에서도 문화정책에 대한 학술 논의를 할 사람을 찾기 힘들다. 바꿔 말하면 문화정책에 관심 있는 또래들이 모일 플랫폼이 없다. 이 연구 모임에서 서로 공감대를 얻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이 서로에게 힘이 된다. 같은 청년세대이기도 하지만 연구자들끼리 모였을 때의 순기능이 있다. 사실 우리 모임 연구자들 중 기성 문화정책 연구자들과 깊게 네트워크 맺은 이들이 없다. 젊은 연구자로서 새로운 시선으로 정책을 바라보거나, 선입견이 없기 때문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면을 지적할 수 있다. 기성 연구자와 달리 오히려 맥락을 모르기 때문에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우리 모임의 구성원들은 학계에서 계속 연구자로 남길 바란다. 따로 단체나 사업자를 내고 활동하지 않는 이유이다. 연구자로 모여서 함께 논의하고, 질문하고, 연구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게 더 중요하다. 우리는 문화연구 전공자만의 모임이 아니다. 청년정책, 행정학, 사회학 등등 전공 연구 분야가 섞여 있다. 따라서 다른 사회과학 분야 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문화정책연구 신(scene)이 편협하고, 논리적이지 않다는 한계를 느끼고 있다. 문화와 예술이란 단어를 붙여 쓰는 게 맞는지, 문화정책과 예술정책이 어떻게 다른지, 이런 것에 대해서 치열하게 토론이 벌어져야 담론도 커지는데, 그런 작업이 미진하다. 이러다 보니 우리나라 문화정책 토대가 빈약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연구 모임은 이 부분에 대해 각자가 보완하며 현장과 이론이 잘 결합된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서로가 돕는 장이라 생각한다.
문화정책 연구에서 현재 가장 관심을 갖는 주제는 무엇인가?
청년예술과 생활문화에 관심 있다. 이 주제를 이론적 차원에서는 ‘예술계의 상징 구조’로 풀어보려 한다.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말한 ‘예술장(arts field)’ 안의 상징화된 위계 구조는 기성과 신진 예술가 사이의 권력 관계를 정당한 것으로 만들어 여러 번의 미투(#ME, TOO)를 낳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의 가치가 너무 ‘상징화’된 나머지 사회 일반의 언어로 해석하기 어려워 예술의 공공성을 더 위태롭게 만들며, 이는 곧 예술가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최근 문화정책 분야에서 예술의 공공성을 획득하기 위한 운동 차원에서 생활문화를 내세웠지만, 결국 생활문화 안에서도 기성 예술가와 생활예술인이 지위 투쟁을 하는 형국으로 흘러갔다. 초기 생활문화 정책이 엘리트주의를 배척하기 위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선언한 것이 상징화된 위계 구조를 깨부수기보다는 생활문화와 관련된 모호한 용어 사용과 자의적인 개념 활용과 결합하여 문화정책에 큰 혼란을 줬다고 생각한다. 생활문화 사업이 확대되면 될수록 기성 예술가는 더욱 공고히 자기만의 세계를 유지하려 하거나, 아니면 매개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정체성의 혼란에 빠진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우리 일상에서 문화 또는 예술이 더 저변을 확대했다고, 즉 ‘생활이 되었다고’ 체감하기 어렵다. 장르적 위계가 생활문화라면, 청년예술은 세대적 위계 때문에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사회와 예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예술가들이 어떤 정체성, 어떤 아비투스(habitus)를 가지게 되느냐에 대해, 도시의 사회경제적 조건이나 환경적 요소들과 결부되어 첨예하게 발현된 결과물이 바로 지역문화라는 생태계인 것 같다. 이런 부분에 관심이 있다.
문화정책을 연구하는 청년 연구자로서 현재 우리나라 문화정책 연구에서 새로운 관점을 가졌으리라 본다. 기성 연구와 다른 섹터를 발견했다면 어떤 부분이며, 그 섹터에서의 연구 필연성은 ‘청년’이라는 화두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하다.
기성과 다른 섹터라고 한다면 문화정책에서 ‘문화’라는 단어를 더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문화적’이라는 것은 공간 어메니티(amenity)나 내가 시간을 쓰는 방식 등 이 모든 것이 ‘나’라는 사람의 문화, 그 사람이 속한 지역의 문화를 만드는 모든 것을 포함하며, 매우 복합적이다. 문화정책 연구를 할 때, 기존 정책이 연결된 신(scene)만 고수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변화가 실제 이 정책과 어떤 점에서 연결되어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해답이 있어야 한다. 일례로 최근 문화정책 보고서 앞단에 ‘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가 많이 들어간다. 그런데 그냥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정도로만 보여주고, 정말 4차 산업혁명을 왜 얘기하는지, 이론적 차원에서 어떻게 다른 얘기이고, 다른 종류의 정책 제안인지에 대한 맥락 설명이 전혀 없다. 어떤 정책을 해야 한다고 제안하지만 그 정당성이 논리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다양하고 복합적 변화에서 문화정책의 위치를 찾는 것, 그런 변화가 문화정책과 연결되는 지점을 이론적이거나 학술적인 차원에서부터 실마리를 끄집어내는 것, 그 실마리들이 정책과 사업으로 바르게 자리할 수 있도록 연결 고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솔직히 말하면 ‘청년’으로 레이블링(labeling)되는 것에 대해서 약간의 불편함도 있다. 왜냐하면 ‘청년’이란 이름으로 쉽게 사업이 만들어지고, 청년 주체로서 거버넌스 활동도 하지만, 우리는 그냥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30 당사자일 뿐이다. 우리가 청년세대를 대표해야 한다거나, 청년의 지분을 넓히기 위해 요구하고 투쟁할 의도는 없다. 우리 연구 모임을 청년의 세력화로 보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한다. 청년으로서 우리 관점의 독특함을 굳이 이야기하자면, 몇몇 힘 있는 연구자들이 전국의 문화정책 담론을 쥐고 있는 상황에 대해 좀 숨 막힘이 있다. 그들이 특정 정책 언어를 새롭게 사용하면, 전국적으로 그 언어가 사용된다거나, 모든 보고서에서 그 담론이 반복된다. 주제는 달라졌는데 담론이 반복되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던져보고 싶었다.
우리나라 ‘문화정책 연구’가 제도화된 2005년부터 지난 15년간의 과정이 있었다. 현재 새로운 전환에 마주한 근대 이후인 오늘날, ‘문화정책의 새로운 방식’ 모색에서 ‘청년연구자’라는 선언적 담론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설명해 달라.
문화정책 분야에 진짜 연구자가 되고 싶은 또래 청년 연구자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학교 테두리 안에 있으면 내가 어디에 발을 딛고 활동하는지, 동료가 어디에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지난 15년간 다양한 지원기관과 정책이 폭발적으로 쏟아지면서 손꼽을 만한 소수의 연구자가 많은 정책과 연구의 기반을 닦았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세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환경이 주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이미 확고한 틀이 만들어졌고 많은 연구가 나왔으며, 현장에서 연구 용역을 하는 관련 단체도 많아졌다. 지금이야말로 로컬라이징이 가능해졌다. 지금은 다양한 연구자의 연구 역량을 축적하고 숙성시키고, 발굴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문화정책 연구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문화정책 연구자가 지녀야 할 ‘전문성’은 ‘더욱 로컬해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연구 전문성이 보다 로컬해질 때 연구자 네트워크가 강조되는 부분은 필연적 수순인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연구 모임의 전망을 스스로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가?
우리는 특정 사업을 제안하기보다 현장의 많은 예술가들이 참고할 만한 글을 쓰고 싶다. 사실 사업의 개선점에 대한 논문은 꾸준히 나온다. 그보다 문화정책 신(scene) 자체를 바라볼 수 있는 구조적 시각을 제시해서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체질 개선에 보탬이 되면 좋겠다. 개념 정립에서 시작해 현장에 대한 학술적 분석을 하고, 마지막에 제언을 붙여 앞으로의 전망을 하는 것까지가 연구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근본적인 면에서 연구와 정책설계, 사업설계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본다.
올해 우리 모임의 계획은 생활문화, 생활예술에 관해 각자 학술적 크리틱을 써보는 것이다. 이 작업 이후에 더 확장된 작업으로 책을 쓰거나 포럼 등 학술 행사를 할 수도 있겠다. 내년에는 가령 예술의 공공성이나 문화와 예술에 대한 개념적 논쟁 등 다른 주제를 정하고 연구 모임을 지속할 생각이다. 눈에 띄는 가시적인 결과가 얼마가 나올지 아직 모르겠다. 뭘 하겠다기보다는 멤버 개인의 역량 강화가 목표이고, 우리가 얘기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새로운 멤버 충원이나 내외부 행사를 회차별로 분리해 멤버십과 비멤버십 두 갈레로 운영하는 등의 네트워크 확장도 고민하고 있는데, 어떤 방식이 될지는 아직 미정이다.
문화정책에서 새로운 전환을 시도할 때 왜 청년예술정책이 중요한가? 소위 80~90년대생을 말하는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조명은 지금 시대의 불평등 담론을 부상시키고 있다고 본다. 지금 청년세대는 세대 내 이질성 또한 특징이며, 따라서 청년예술정책을 논함에 있어 세대론에 대한 관점을 간과할 수 없다고 보는데, 미래의 실제 당사자인 청년예술인을 세대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한 의견도 궁금하다.
서울청년예술인회의에서도 고민하는 내용인데, 청년예술이 대체 무엇이고, 청년예술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6개월 넘게 토론했지만 결론을 못 냈다. 흔히 청년을 세대로 접근할 때, 연령으로 치면 만 35세까지가 청년이라고 얘기한다. 일반적인 청년 담론에서는 청년을 N포 세대, 가난한 세대로 바라보는데, 예술계에서는 이에 대해 경제적 어려움은 예술인 전체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말해 세대적 특징을 추출하기 쉽지 않다. 이 논의는 청년을 막 넘은 사람들, 중년층에게도 지원해 달라거나, 예술가 생애주기를 데뷔 기준이나 작품 경력 등 생리적 나이가 아닌 다른 기준으로 봐야 한다는 두 가지 갈래로 발전한다. 그런데 나는 이 두 가지 모두 ‘청년예술’의 개념을 제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정책에서 청년예술이 의미하는 개념적 전환은 상징화된 예술계의 구조 때문에 예술가라는 직업의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기성세대의 논리를 타파하고, 예술가의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다수의 청년예술지원사업의 경우 청년은 혁신가니까, 열정이 많고, 기회가 없고, 가난하고, 그런 등등의 이유로 지역 사회를 변화시키고, 전통시장에 들어가 이를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자신을 증명해야만 했다. 왜 우리가 활동비나 우리 노동의 대가를 ‘청년예술’이라는 이름으로만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예술가의 정당한 지위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청년예술을 두고 청년들이 국회나 각종 위원회의 점유율을 획득하고, 이권 다툼의 수단으로 본다든가, 이 안에서 청년과 기성의 갈등 구조를 만드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예술계 내 기성이 가지고 있는 ‘내가 너희를 키워준다, 내 밑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위계적인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 그럼으로써 예술이 더 사회와 밀접하게 접촉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는 것이 청년예술 개념의 의의와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예술인에 대한 세대 프레임을 넘어선 논의의 필요성과 청년예술인 정책에서 ‘당사자성이 부재’하다는 진단도 있는데, 그렇다면 이러한 청년의 ‘당사자성’을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설명을 해준다면?
청년 의제를 가진 최초의 공공기관인 청년허브나 청년청에서 초기 추진했던 사업을 보면 전문가 그룹만이 아니라 이들 청년 단체가 사업 수립과 운영에 깊이 관여되거나 직접 주관하기도 한다. 청년예술인 당사자를 호출하는 방식에 대해서 예술지원 기관이나 문화정책 신(scene)이 그런 타 분야 청년 판을 못 따라가고 있다. 그냥 FGI(Focus Group Interview)가 필요할 때, 사업 결과보고회 때만 부르는 게 아니라 당사자인 사람들과 충분히 이야기하고 그들이 직접 발언하는 방식이 별로 시도되지 않은 것 같다.
현재 내가 운영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울청년예술인회의에서 최대한 다양한 상황에 놓인, 다양한 생각을 가진 예술인의 의견을 드러내는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청년들이 너무 바쁘다. 다들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생계유지 활동으로 시간에 쫓긴다. 예술가들도 다르지 않다. 지원기관에서 그런 사람들에게 모이라고 판을 깐다고 해서 모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의 공감대를 만들어내고, 다양한 목소리를 드러낼 수 있는 활동을 기획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들에게 정당한 활동비를 주고 자기 위치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동안 기회가 돌아가지 않았던 예술가들에게 자기 역량을 실험해볼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만들고, 그것이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는 방식일 때 그들이 연대의식을 갖게 되지 않을까? 동료가 있다고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
코로나19 이후에 대한 전망이 각계각층에서 쏟아지고 있다. 예술계 현장 또한 포스트 코로나19의 대전환을 전면적으로 맞닥뜨려야 한다. ‘청년예술인’이 당사자로서 만들어가야 할 변화와 전환의 현장으로서 어떻게 대응 혹은 실천해야 하는가?
먼저 예술대학의 커리큘럼이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예술대학이 아티스트로서의 수월성을 기르는 수업만 해왔다. 예술이 사회와 어떻게 만나는지, 어떤 가변적 상황에 놓일 수 있는지, 예술가로 이런 변화를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는지를 학습하지 못하고 졸업하는 게 현실이다. 청년 예술가가 이런 전환까지 오롯이 혼자 몫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 다른 분야와 활발히 교류하고, 새로운 모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예술계 내부에만 갇혀 있지 말고, 다양한 분야와 접점을 만들어야 한다. 개인이 아닌 집단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도 아직 미진하다. 문제의 시초는 결국 예술가라는 기존의 견고한 상징성에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는 예술만 하면 된다는 식의 ‘예술성’은 예술계 내에서만 통용되는 가치이며, 아이러니하게도 예술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몰인정을 가져오게 되었다. 거기에서 만들어진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청년예술이 문제를 해결해가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서울청년예술인회의 활동에 대한 소개를 해 달라.
서울청년예술인회의는 현재 8명의 운영단이 활동하고 있다. 작년에 공개 세미나를 한 번 했으며, 올해 하반기 제2회 서울청년예술인회의를 기획 중이다. 작년 세미나 이후에 우리가 대표성을 갖기보다 어떻게 당사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우리는 각자의 관심 분야와 역량에 맞는 역할 분담을 했다. 나는 학술 담론을 만드는 작업을 맡아, ‘청년예술을 파기하라’라는 주제로 연구 릴레이를 준비하고 있다. 이 작업에서 청년예술이 예술가가 어려운 존재라는 걸 부각시키는 게 아니라, 예술가가 사회에서 어떤 존재인지, 사회의 불평등을 드러내고 공공의 가치를 확산하는 역할을 해야 함을 주장하려 한다. 예술가가 자기 증명을 하면서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예술가의 지위는 당연히 누려야 될 권리이고, 그 권리를 공공이 대신 지지해주고 증명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는 하나의 직업이고, 노동 삼아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청년예술이 위계적인 상황에 놓여있거나, 착취당하거나 혹은 열정 페이를 강요당하거나, 아니면 ‘가난해야 예술가’라는 말에서 벗어나는 그 시작점에서 청년예술 또는 청년예술정책이 기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변순영은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하고, 미술교육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교육에 관심을 두고 문화기획을 실천해 왔으며, 인천문화재단에 입사한 후, 예술창작 레지던시 공간인 인천아트플랫폼 개관준비팀장을 거쳤다. 지역 문화예술 공공지원의 영역에서 자기 역할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보다 넓은 시야를 확보하면서 성장하는 내일을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