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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좋은 날’이 되기 위해서
국내외 미술주간 비교9월 25일부터 10월 9일까지 ‘2019 미술주간’이 열렸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한 이 행사는 ‘미술로 좋은 날’이라는 표어 아래 전국 258개 기관이 참여해, 많은 사람들이 시각미술을 더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개최됐다. 이번 현장읽기 코너에서는 이른바 ‘아트위크(미술주간)’로 불리며 전 세계 미술인은 물론 지역 축제로 거듭나고 있는 해외 사례들을 통해 ‘미술주간’의 방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프리즈 런던(Frieze London)의 진정한 매력이 무엇인 줄 아세요? 이 아트페어가 특이한 이유는 런던시 전체가 ‘미술’로 물들어서예요. 미술관, 갤러리 할 것 없이 블록버스터급 전시로 가득 찹니다. 오프닝 일정을 이때로 다 맞추니까요.”
스위스 ‘아트바젤’, 프랑스 ‘피악(Fiac)’과 더불어 세계 3대 아트페어로 꼽히는 ‘프리즈 런던’이 지난 3일부터 6일까지 영국 런던 리젠트파크에서 열렸다. 매출 규모는 아트바젤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프리즈는 세계 현대미술계를 이끄는 주요 아트페어로 꼽힌다. 독특한 개성을 자랑하는 영국 갤러리들과 매년 신진 작가 작품을 구매하는 테이트 갤러리 기금(Outset Contemporary Art Fund) 덕택에 빠르게 성장했던 건 사실이다. 더불어 페어장 밖의 대형 미술 전시들도 프리즈 런던의 또 다른 경쟁력이다.
올해 ‘프리즈 위크’ 기간에는 <카라 워커:현대 터바인 커미션>(테이트 모던), <안나 마리나 마이올리노>(화이트채플 갤러리), <앤소니 곰리>(로열 아카데미 오브 아츠), <단보>(사우스 런던 갤러리), <토니 코크>(골드스미스 현대미술 센터), <엘리자베스 페이튼>(국립초상갤러리), <램브란트의 빛>(둘위치사진갤러리), <고갱 초상화>(내셔널갤러리) 등의 전시가 개막했다. 무엇 하나 놓치기 어려운 세기의 전시들이다. 관객들은 아트페어와 미술관 개막식을 바쁘게 오가며 ‘런던’의 위력을 자연스레 체험한다. 전 세계를 호령했던 대영제국은 몰락했을지는 모르나, 런던이 여전히 세계 문화 예술의 중심 도시 중 하나라는 건 변함이 없다. 프리즈를 찾은 관람객들 사이 “(브렉시트가 암울하지만) 역시, 런던이니까”라는 평가가 나오는 건 단지 아트페어에 비싼 작품이 나와서만은 아니리라.
전시들 간의 연합만이 전부가 아니다. 숙박과 다이닝까지 프리즈 기간 정점을 찍는다. 곳곳에 배치된 리플릿에선 프리즈에 후원하는 식음료 브랜드와 지정 레스토랑을 리스트로 제공한다. ‘미식’을 모르는 곳이라는 악평을 받는 런던이기에, 관객들은 레스토랑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해한다. 런던시에서는 ‘아트 패스포트’를 발간, 200개 갤러리와 미술관의 전시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이렇듯 굳이 ‘아트위크’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아도 프리즈 런던 기간은 아트로 물든다. 그리고 그 ‘아트위크’를 채우는 건 단순히 ‘아트’만이 아니다. 예술을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것, 식사하는 시간, 휴식을 취하는 시간 등 모든 순간순간이 다 ‘아트위크’에 포함돼 있다.
런던처럼 자발적인 케이스는 아니지만 ‘상하이 아트위크’도 눈여겨볼 만하다. 매년 11월이면 상하이 웨스트번드에서는 ‘웨스트번드 아트 앤 디자인 페어’(이하 웨스트번드 아트페어)가 열린다. 올해가 6번째 행사이나, 신생 페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폭발적 성장세를 자랑한다. 주최 측인 ‘상하이 웨스트번드 개발 그룹 공사’의 초청으로만 참여가 가능한 ‘부티크 페어’로, 세계 유수 갤러리들만이 부스를 낸다. 첫해 30여 개 갤러리가 참여한 페어는 지난해 전 세계 43개 도시에서 110개 갤러리를 초청하며, 그 규모를 3배 가까이 키웠다. 화이트큐브, 가고시안, 페로탱, 페이스, 하우저앤워스, 데이비드즈위너 등 아트바젤 홍콩을 방불케 하는 거물급 갤러리가 대거 참여하며 중국 큰손들을 대상으로 피 튀기는 마케팅을 펼친다.
웨스트번드 아트페어가 열리는 기간, ‘상하이 아트위크’를 채우는 또 다른 즐거움은 웨스트번드에 자리한 세계 정상급 미술관들이다. 웨스트번드 아트페어 기간에 맞춰 메가톤급 전시가 개막한다. 유즈미술관, 롱미술관을 비롯 퐁피두 상하이도 개관을 앞두고 있다. 올해 롱미술관은 상하이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Building the Motherland: for the 70th Anniversary of the Founding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를 개최한다. 1949년 이후 작들을 위주로 당시의 건축을 집중 조명할 예정이다.
상하이시에서는 아트페어 기간 VIP로 초청된 관객들에게 미술관 입장료를 파격 할인하거나 무료로 입장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모두 VIP카드에 기재된 바코드만 있으면 가능하다. 중앙집권적인 중국이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나, 관람객 입장에서는 ‘파격적’인 혜택이다.
베를린 아트위크는 ‘아트페어’가 중심이 되는 두 도시의 ‘아트위크’와는 조금 결을 달리한다. 지난 2012년 시작한 ‘베를린 아트위크’는 박람회, 현대 미술관, 갤러리, 작가, 컬렉터, 프로젝트 공간의 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물론 지난 2017년 시작한 ‘베를린 아트페어’가 있지만 페어를 중심으로 다른 기관으로 확장한다기보다 다른 기관들의 행사와 함께 페어를 즐기는 형태다.
올해 베를린 아트위크는 9월 11일부터 15일까지 열렸다. 4일간의 행사 기간 동안 회담, 스튜디오 방문, 전시장 감상이 이루어졌다. 아트위크 중간(12일)에 글라이스다리렉 역(Gleisdreieck Station)에서 개막한 베를린 아트페어가 ‘아트위크’의 정점임은 분명하다.
베를린 아트위크는 유럽과 문화의 상원 부서(Senate Department of Culture and Europe), 경제 상원 부서(the Senate Department for Economics), 공기업과 에너지(Energy and Public Enterprises), 그리고 G ASAG AG의 지원을 받는다. 주최 기관인 컬쳐프로젝트 베를린(Kulturprojekte Berlin)은 코디네이션과 의사소통을 담당한다.
앞서 살펴본 ‘아트위크’들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의 도시에서 이뤄진다는 점, 그리고 아트페어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이다. ‘UK 아트위크’, ‘차이나 아트위크’, ‘저먼 아트위크’가 아닌 이유는 시각예술의 특성에 있다. 작품의 이동과 전시가 가능하기에 한 도시로 모여든다. 그리고 집객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서 한 개 도시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트페어가 중심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다. 베를린의 경우는 그 집중도나 중요성이 약간 다르긴 하나, 그 시간대에 그 장소에서만 일어나는 거래를 위해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이 같은 아트위크도 만들어질 수 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 전시, 살 수 있는 예술 작품이라면 집객의 동력이 아무래도 떨어진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의 ‘미술주간’은 그 성장의 방향이 세계 유수 아트위크들과는 다르다. 올해 전국 258개 미술관과 기관이 참여하며 국내 최대 규모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올해로 5회 차를 맞은 미술주간은 그간 전문 미술인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다, 지난해부터 대국민 프로그램으로 전환, 시각예술의 대중화를 추구하고 있다. 해외의 컬렉터나 관객을 끌어모으기보다 ‘내수용’ 행사에 방점이 찍혀 있다.
국내에서 열리는 비엔날레와 아트페어를 한 번에 돌아볼 수 있는 ‘미술주간 통합이용권(미술주간 통합패스)’과 철도 이용권인 ‘미로랑’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는 하나 마찬가지로 내수용이다. 길어야 3박 4일, 짧으면 2박 3일 일정으로 방문하는 해외 관객들에게 이 같은 제도는 딱히 혜택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영문 안내가 부족하고, 미로랑을 끊기 위해서 역사를 직접 방문해야 한다는 건 열외로 치더라도, 이 모든 것을 다 둘러볼 시간적 여유가 없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장 반응이 좋았던 것이 ‘미술여행 프로그램’이었다. 지역의 유명한 갤러리나 미술관을 묶어 도보 혹은 버스로 다녀오는 것인데, 서울, 대구, 경기(양주, 광주), 광주, 대구, 대전, 청주 등 8개 지역에서 총 70회 진행됐다. 지난해 28회라는 운영 횟수보다 두 배 넘게 확장된 이유는 전국 시각예술협회, 지역자치단체, 관광공사의 협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문 해설사가 함께 동행하여 전시를 설명해주기 때문에 참가자들이 쉽게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할 수 있으며, 접근성이 어려운 지역 미술관의 경우 버스 여행을 이용하면 한 번에 여러 미술관을 방문할 수 있다는 장점도 충분히 어필했다. 그러나 결국, 이 미술 여행 프로그램도 하루짜리다. 무한대의 확장보다 압축의 묘미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한빛은 헤럴드경제 신문에서 시각예술 분야 담당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거의 매일 해당 분야 기사를 생산하고 있지만, 엄연히 미술계 머글(비전공자)이다. 일반인의 눈으로 미술계 소식을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학부에선 언론정보학을 전공했으며 뒤늦게 MBA과정을 밟고 있다. 시장을 맹신해서도 안 되지만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긍정적 시장주의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