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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정규직화, 어떻게 볼 것인가
-국립현대미술관이 10년간 끌어오던 독립법인화를 전면 백지화하고 국립기관으로 선회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018년 6월 법인화 검토를 중단하고 이를 행정안전부에 통보했다. 법인화 논의로 미술관이 지난 10년 동안 제대로 발전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기에 국가가 지원해야 하는 부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 법인화 중단의 근거로 작용했다.
이후 미술관은 국립기관으로 전환하기 위해 일련의 조직 개편을 단행했고, 최근엔 지난 2013년 서울관을 개관하며 채용한 40명의 전문임기제 공무원 중 39명의 보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미술관 측은 "전문임기제 정원화로 인력 운영 및 미술관 중장기 사업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기대했다.
오는 6월까지 지속적으로 채용이 진행되며 수많은 미술인들이 지원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정규직화만이 미술관 내실을 다지는 해법인지에 대한 의문이 미술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관료주의에 빠진 학예실과 그에 따른 기계적 전시, 학연을 위시한 파벌 싸움이 10년 전 국립기관이었던 국립현대미술관에 늘 지적되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해외 유수 미술관과 박물관은 어떠한 직제와 고용 형태를 가지고 있을까. 따라 베끼기 위한 비교가 아니라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비교는 필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조직 및 인력운영방안 연구」라는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프라임전략연구원으로부터 해당 보고서를 제출받았다. 이 용역은 독립법인화를 추진할 당시, 이를 위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보고서의 목적이 분명히 있다는 점을 감안하고서 살펴보더라도, 이곳에서 조사한 해외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세계 유수 미술관즉 테이트, 퐁피두센터,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등-과 조직에선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조직 구성을 들여다보면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미술관은 대부분 전시를 책임지는 큐레이터로 구성된 학예 조직, 관람객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 조직, 소장품을 관리하는 조직, 시설 운영 홍보 등 지원 조직으로 이뤄져 있다. 각 미술관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가 조금 더 커지거나 강조되는 형태다.
특히 학예 조직은 장르별 담당자가 존재한다. 테이트모던의 경우 수석큐레이터 아래 현대미술, 설치미술, 퍼포먼스, 영화, 근현대미술 등으로 나뉘고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아프리카·오세아니아·아메리카 미술, 미국 미술, 고대 중동 미술, 의상, 아시아 미술, 이집트 미술 등 권역별로 나뉜다. 미술관마다 나누는 기준은 다르지만 큐레이터들의 전문성에 기대는 구조다. 채용을 할 때도 ‘아시아 현대미술 큐레이터 채용’으로 공고하는 등 그 업무가 명확하다. 학예실 구조만 보아도 미술관이 지향하는 바가 명확하다.
반면 국립현대미술관은 행정지원 조직인 기획운영단과 전시를 책임지는 학예연구실로 구성된다. 기획운영단에는 행정시설관리과, 기획총괄과, 작품보존미술은행관리과, 홍보고객지원과, 미술품수장센터관리팀으로 구성돼 있다. 학예연구실은 전시1과, 전시2과, 소장품자료관리과, 교육문화과, 미술품수장센터운영과, 연구기획출판과, 전시3팀으로 나뉘는데 전시1,2과의 경우 그 위치가 각각 과천과 서울이다. 과천관과 서울관의 전시기획을 담당하는 것일까 싶지만 조직업무 정보를 살펴보면 1과는 전시총괄, 2과는 국제현대미술전시 기획 실행 등이다.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학예사 개개인의 담당 업무를 살펴보아도 전문성이 보인다기보다 자신들이 최근 맡은 전시와 각종 사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지, 근현대미술에 강점이 있는지, 디자인을 잘 아는지, 근대 회화를 잘 아는지 담당 업무에선 알 길이 없다. 오히려 소장품 수집 제안, 소장품 대여 협력, 주요 인사 명단 관리 등 미술관 사업에 대한 구분은 명확하다. 관객 입장에서는 미술관 사업보다 어떤 전문성을 가진 학예사가 있는지 궁금하건만, 이에 대한 설명은 찾아보기 힘들다.
해외 유수 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을 직접 비교하는 것이 어렵다는 근거로 자주 제시되는 것이 바로 ‘재단’ 구조다. 이사회를 의결기구로 하는 재단이 있기에, 기관의 연속성이 담보된다는 측면에서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관장의 임기다. 테이트의 경우 이전 관장인 니콜라스 세로타 경은 1988년부터 2017년까지 29년 동안 미술관을 이끌었다.
그렇다면 고용의 형태가 한국 미술관과 어떻게 다를까. 관장도 30년 가까이 근무했다면, 그 아래 직원들은 모두 정규직인 것일까. 영국 빅토리아앤앨버트 뮤지엄에서 근무한 한 큐레이터는 "법무팀이나 행정직 등은 업무 지원 조직은 정규직이지만 큐레이터들은 절반 정도만 정규직"이라며 "소장품을 위주로 다루는 큐레이터나 전시 조직은 정규직 채용이 많고, 특별전이나 기획전 등 프로젝트 전시를 담당하는 큐레이터의 경우는 프로젝트 기간인 3~5년으로 계약한다"라고 말했다. 담당 업무에 따라 고용 형태를 달리 가져가는 것이다. 임금의 경우도 프로젝트 담당 큐레이터들이 높은 편이라고 했다. 대부분 미술관들이 국가의 지원을 받거나 재단 지원을 받지만, 전시에 따라 펀딩에도 나서기 때문이다. 큐레이터들은 전시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하며, 펀딩에도 관여한다.
실제로 미국 뉴욕의 MoMA(모마, Museum of Modern Art)는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기업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관장과 담당 디렉터가 전 세계를 다녔다. 글렌 로리 모마 관장과 세라 스즈키 모마 확장 재개관 프로젝트 디렉터는 달라진 모마의 청사진을 소개하기 위해 지난해 4월 한국에도 왔다. 또 지난해 한국을 찾은 LACMA(LA카운티 뮤지엄)의 마이클 고반 관장도 “나의 가장 큰 업무 중 하나가 바로 펀딩”이라고 말했다. 모든 해외 미술관에 일반화하여 적용할 순 없겠지만, 고용 안정화와 미술관 내실화가 ‘정의 관계’로 단정 짓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확실히 해외 유수 미술관들보다는 예산에선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 테이트의 경우 매년 회계를 보고하는데, ‘The Board of Trustees of the Tate Gallery Annual Accounts 2018-2019(테이트 이사회 연차 결산보고서 2018-2019)’에 따르면 전체 수입의 약 29%가 영국 DCMS(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부, Department for Digital, Culture, Media and Sport)에서 나온다. 수입 1억 2023만 8000 파운드(한화 약 1855억 원) 중 3512만 6000파운드(542억 원)를 DCMS에서 지원해주고, 나머지는 모두 펀딩을 받거나 벌어들인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 예산은 633억 원이다. 2019년 632억 원과 비슷하지만 작년의 50주년 기념사업비 10억 원과 덕수궁미술관 리모델링 사업비 10억 원이 빠진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21억 원(3.5%) 증액된 규모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규모지만, 100% 국가에서 지원하는 점이 엄청난 메리트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명확해진다. 나라의 돈(세금)으로 살림하는 미술관이라면 10원이 100원의 효과를 내도록 해야 한다. 정규직화로 미술관의 조직의 안정을 도모했다면, 안정적인 가운데서 나오는 전시가 세계 최고 수준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운영의 묘를 발휘하는 것이 국립현대미술관이 당면한 과제다.
보고서는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인 퐁피두센터는 전시장, 도서관, 자료실, 카페, 레스토랑, 우체국을 갖춘 복합 문화교육공간으로 면모를 지니고 있다. 테이트모던은 전시 해석과 교육 프로그램에 중점적 투자를 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특히 "미술관 자체 브랜드화와 전시기획 단계부터 전략적 홍보 마케팅을 도입하고 이를 다시 전시 및 서비스의 질적·양적 증대에 사용하는 선순환구조를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해당 보고서는 8년 전에 발간됐다.
이한빛은 헤럴드경제 신문에서 시각예술 분야 담당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거의 매일 해당 분야 기사를 생산하고 있지만, 엄연히 미술계 머글(비전공자)이다. 일반인의 눈으로 미술계 소식을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학부에선 언론정보학을 전공했으며 뒤늦게 MBA과정을 밟고 있다. 시장을 맹신해서도 안 되지만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긍정적 시장주의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