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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비엔날레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코로나19 속 2020부산비엔날레 운영 현황“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많은 성원을 부탁드린다.”
김성연 부산비엔날레 조직위원장의 말처럼, 올해 2020부산비엔날레는 이전 비엔날레들이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가고 있다. 오프라인 행사를 전제로 오픈을 강행했으나, 결국 온라인으로 개막했다. 그리고 최근 전국 문화예술 기관들이 재개관함에 따라 관객을 받기 시작했다. 이번 원고에서는 비대면 원격 비엔날레 준비와 오픈 과정을 따라가며, 팬데믹 시대 시각예술 행사가 감내해야 하는 리스크와 해결책들을 살펴본다.
코로나19는 오프라인에서 직접 작품을 만나고, 느끼고, 경험함을 전제로 하는 비엔날레에 ‘치명타’를 날렸다. 일단 외국인 전시 감독이 국내에 들어올 수 없다. 해외 작가들도 커미션 작품이나 장소 특정적 혹은 지역 리서치 기반 작업이 어렵다. 제작 완료된 작품을 들여오려 해도 항공료를 비롯한 운송비가 폭등했고 이마저도 물량이 밀려 언제 받을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면초가 상황이 이어지자, 크고 작은 비엔날레들이 연기를 선언했다. 국제적으로 가장 규모가 큰 베니스비엔날레는 올해 예정이던 건축전을 내년으로 순연했다. 광주비엔날레도 내년 2월로,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도 내년 9월로 연기했다. 그러나 부산비엔날레는 꿋꿋이 오픈을 강행했다.
배경에는 예술감독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또한 상반기 문화예술 행사들이 봉쇄되고 아예 사라짐에 따라, 방역을 철저히 하면서 문화예술 활동을 재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도 나타났다. 김성연 조직위원장은 “어떤 것이 가능하고, 또 어떤 것이 불가능한지 부딪쳐 보고 시도해 보자는 공감대가 위원회와 감독 사이에 형성됐다.”며 “온라인 라이브 개막, 온라인 콘텐츠 구성 등을 준비하며 온-오프라인 동시 운영하는 비엔날레를 치르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다행인 것은 예술감독인 야콥 파브리시우스(Jacob Fabricius)가 지난해 그리고 올 초 이미 여러 차례 부산을 방문했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의 콘셉트인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시각예술 전시’를 위해 문필가 11명도 이미 올 2월 부산에서 리서치를 마친 뒤 작업에 돌입했다. 4월부터는 해외 작가들이 부산에 머물며 지역 리서치를 할 예정이었으나, 여의치 않자 조직위 직원들이 해외 작가들의 손발이 되어 작업을 진행했다.
예를 들면, 킴 고든 작가는 부산의 스태프들에게 디렉션을 주고, 이들이 촬영한 부산 곳곳의 영상을 결합해 작품으로 제작했다. 라세 크로그 묄레르 작가는 일상의 물건을 수집하고 아카이빙하는 작업을 주로 선보이는데, 마크 본 슐레겔의 소설 『분홍빛 부산』에 착안해 부산 거리에서 채집한 오브제, 사진, 텍스트로 아카이브 전시를 구성했다. 물론 채집은 스태프가 묄레르 작가와 영상통화를 하며 이뤄졌다. 로버트 자오 런휘는 자연과 도시환경이 만나는 지점에 천착하는 작가다. 이번엔 구글 검색으로 발견한 영도의 한 지역에서 몇 주 동안 식물이 자라나는 과정을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아 촬영했다. 모든 전시 준비가 비대면 원격으로 이뤄진 셈이다.
올해 부산비엔날레의 주제는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다. 그러나 이들 이야기의 주인공은 ‘부산’이다. ‘부산’비엔날레가 생긴 지 10회 만에 처음으로 ‘부산’을 이야기한다. 문필가들은 부산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을 써 내려가고, 시각예술가들은 이들 작품에 영향을 받아 혹은 이들 작품에 어울리는 작업을 선보인다. 여기에 음악가들이 소리를 입히고, 부산은 이 모든 것들이 펼쳐지는 장이자 커다란 콘텍스트로 작동한다. 비엔날레가 열리는 부산현대미술관, 영도, 원도심은 부산의 역사적 콘텐츠가 풍부한 곳이다. 파브리시우스 감독은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존 전시와 정반대의 접근 방식을 적용해 봤다. 통상 문필가는 전시가 만들어진 후 도록에 글을 쓰기 위해 초청하는데, 이번엔 순서를 바꿔 문필가가 작가들의 작품 제작을 위한 토대를 잡는 역할을 하도록 했다.”1)라고 밝혔다. 전시엔 67명의 예술가, 사운드 아티스트 11명이 만든 작품이 나왔다.
비엔날레가 개막하기 전, 가장 먼저 비엔날레의 시작을 알린 건 바로 출판물이었다. 주제와 같은 제목의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가 먼저 출간됐다. 기획 의도대로라면 먼저 책을 읽고 작품과 만나야 한다. 그러나 꼭 그 순서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파브리시우스는 “문필가의 글과 시각예술가의 작품, 뮤지션의 사운드가 모두 공명하며 부산을 더 풍성하게 그린다.”며 “탐정이나 아이들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도시를 즐기고, 전시를 보고, 이전에 걸어 보지 못했던 곳을 걸어 보시기 바란다.”라고 동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준비에도 불구하고 부산비엔날레는 결국 온라인으로 개막했다. 전시장 문을 열어보지도 못한 채 개막이 진행된 것. 아쉬운 대로 유튜브 개막식과, 홈페이지에서 오디오북, 비디오 가이드, 3D 웹 전시 서비스가 진행됐으나 그 결과가 신통치는 못했다. 개막식 영상은 동시 접속 300명, 조회수 4,000회를 넘길 만큼 큰 관심을 받았으나 나머지 콘텐츠들은 조용하다. 통신사 뉴스핌의 보도에 따르면, 대체적인 영상 조회수가 2자릿수에 불과했다.2) 하루 한두 명이 찾아본 셈이다.
이른바 ‘비대면 시대의 비엔날레’와 ‘온라인 전시’의 한계다. 관객으로 전시장을 찾아 비엔날레를 소비하는 관객들의 니즈를 온라인이 충족하기란 쉽지 않다. 3D입체영상, 가상현실(VR) 등 최신 IT기술을 동원하더라도 사람이 직접 공간에서 작품을 만났을 때 겪는 입체적 · 공감각적 경험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 비엔날레의 ‘꽃’인 담론 형성도 온라인에서는 구현하기 쉽지 않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기명 칼럼3)에서 “비엔날레가 열리면 세계 각국의 작가들과 비평가, 기획자, 미술관·갤러리 관계자들, 미술 행정가들이 방문하고, 그들은 미술작품을 매개로 현대미술 생태계를 포함한 당대 거론해야 할 예술적 문제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다. 전시장을 오가던 중 우연히 또는 각종 학술 무대에서 가장 핫한 정보를 나누거나 동시대 예술에 대한 열띤 토론도 벌인다”며 “온라인에선 좀처럼 구현될 수 없는 장면”이라고 했다. 시각예술 전시의 온라인화를 위한 고민이 더 필요한 지점이다.
그리고 지난달 30일부터 오프라인 전시장을 다시 개방했다. 부산현대미술관, 원도심 일대, 영도구 등 3곳 전시장 모두 100% 사전 예매로 방문할 수 있으며, 시간별 인원을 제한하여 운영한다. 1인당 최대 4매까지만 입장권을 구매할 수 있으며, 소규모 단체 관람도 허용되지 않는다.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른 QR코드 출입 명부 등록, 발열 체크, 간격 두며 줄 서기, 손 소독, 마스크 착용 등은 기본이다. 조직위 측은 “장기화된 코로나19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국민을 위해 정부의 개방 요청에 따라 진행하는 만큼 무엇보다 안전한 전시가 되도록 방역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했다. 개막 강행–온라인 개막–오프라인 개막 등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현장 관람이 가능해졌다. 개막을 하고도 25일 만이다.
비엔날레 자체에 대한 평가를 약간 미뤄 놓고 본다면, 이번 부산비엔날레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개최한 최초의 행사가 됐다. 빡빡한 예산 운영 속에서 행사 성격을 바꿔가면서 치러 낸 건 거의 ‘곡예’에 가깝다. 특히, 운용의 묘를 거의 발휘할 수 없는 정부 예산 계획 아래에서는 더욱 그렇다. 앞으로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열려야 하는 시각예술 행사들이 겪어야 하는 상황을 가장 먼저 겪었고, 일종의 모델을 제시한 상황이다. 참여자와 관계자 모두를 100% 만족시키는 정답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뉴노멀 시대, 새로운 전시, 새로운 비엔날레의 상을 설립하기 위한 첫발은 뗐다. 그 시도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느껴보고 싶다면, 부산으로 가자. 11월 8일까지다.
1) 부산일보, “부산비엔날레, 기존 전시와 정반대 접근 방식”, 2020.9.28.
2) 뉴스핌, 야심차게 개막한 온라인 비엔날레 '흥행 참패'...조회수 겨우 하루 1건, 2020.9.29.
3) 메트로신문, 비대면 시대의 비엔날레, 2020.9.22.
이한빛은 헤럴드경제 신문에서 시각예술 분야 담당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거의 매일 해당 분야 기사를 생산하고 있지만, 엄연히 미술계 머글(비전공자)이다. 일반인의 눈으로 미술계 소식을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학부에선 언론정보학을 전공했으며 뒤늦게 MBA과정을 밟고 있다. 시장을 맹신해서도 안 되지만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긍정적 시장주의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