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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에 담겨진 이야기를 복원하는 남자
김겸_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 대표
올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타계한 지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르네상스인의 표본으로 일컬어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과학과 예술을 결합하는 천재적인 능력의 상징이기에 김겸 대표를 만나고 난 뒤 다빈치가 떠오른 것은 어쩌면 단순한 연상이라고 너그럽게 넘겨주면 좋겠다.
작년 고(故)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복원 뉴스로 인해 여러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미술품 보존복원 전문가로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의 김겸 대표를 만나 보았다. 예술학과 미술사를 전공하고, 남대문 카메라 수입상가 사장님들도 그에게 종종 자문할 정도로 카메라와 각종 기계 장치의 메커니즘을 간파하고 직접 수리까지 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 심지어 화학박사로서 대학 강단에서 화학을 가르치고 있는 그의 진짜 직업은 미술품 보존복원 전문가이다.
대표님의 이력을 보면, 광화문 이순신 동상, 서울 청계천 광장 앞 클라스 올든버그의 ‘스프링’ 등 공공미술 작품에서 로댕, 마르셀 뒤샹, 살바도르 달리, 헨리 무어, 백남준, 권진규, 이성자 등 국내외 근현대 유명 미술 작품뿐만 아니라 고(故)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복원 작업까지 근현대 미술품과 유물 복원 경력이 화려하다. 복원가, 미술품 보존 전문가란 아직 생소하고 특별한 직업으로 보인다. 미술품 보존 전문가라는 직업을 소개해 달라. ‘작품을 치료하는 의사’로 소개할 수 있다. 주로 근현대에 만들어진 유물이나 작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작품의 어떤 곳이 떨어져 나가거나 색이 바랜 경우, 외형상으로 아프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증상이 있는가 하면, 전문가가 아니면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상처들도 있다. 외관상 온전한 유물로 보이지만 검사를 진행했을 때 내부 손상이 있는 근원적 문제가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전문학교에서 생리학부터 여러 공부를 하는 것처럼 작품 보존가에게 있어 작품이나 재료, 물질의 특성과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학문이 바로 화학이다. 현재 나는 대학에서 화학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건강 체크’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전문 미술관 조직이 아닌 기업, 기관 등 다수의 미술품을 소장하는 경우 사람처럼 정기 건강검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미술품 보존 관리에서 주기적인 ‘건강 체크’의 사례를 말해 달라.
꾸준한 작품 관리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국립현대미술관 재직 시절부터 노력해 왔다. 미술품이 어떻게 관리 받고 어떻게 나아질 수 있는지를 대중에게 보여 주기 위한 하나의 예로 이순신 동상 복원 과정을 공개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해당 내용은 네이버캐스트 ‘미술품 복원·위작 에피소드’로 2009년에 연재되었다). 미술 작품 또한 하나의 물질이며 가만히 두어도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향하며 안 좋아지는 게 자연의 섭리다. 작품 보존이란 어쩌면 물질의 자연스러운 섭리에 반하는 자연스럽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흐나 피카소, 뒤샹의 작품처럼 외국에서 소위 100년 이상 된 유명 작품들은 상태가 굉장히 좋다. 작품을 수장고에 잘 보관해서 보존도 잘됐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짧게는 5년 주기로 끊임없이 관리를 받고 새로 바니시를 칠하고 액자도 교체한다. 문화 선진국에서 작품 보존은 ‘치료’가 아닌 ‘돌봄’에서 시작한다. 꾸준히 돌보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이중섭 등 대표 작가의 작품들은 주기적으로 꺼내서 보고 치료하고 있으며,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도 주기적으로 표면을 벗겨 내고 바니시를 새로 바르고 있다. 작품 보존을 위해 외부와 격리시키는 게 아니라 생각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손을 대고 있다.
국내 문화재 보존복원 분야는 역사도 있고 전공 학교도, 배출되는 학생도 많다. 그런데 미술품 보존복원 분야에서는 관련 전공 학과가 대학원 과정을 포함해서 1~2개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다. 문화재 보존 분야와 미술품 보존 분야는 각각 어떤 전문성의 차이가 있으며, 미술품 보존 분야가 다루는 전문 영역은 무엇인가?
문화재 복원과 미술품 복원은 병원의 내과, 외과가 다르듯 완전히 다른 분야이다. 다루는 재료 자체가 다르다. 고(故) 이한열 열사 운동화를 복원하게 된 사례를 들겠다. 처음 이한열 기념관에서 뒷굽이 절반 이상 부스러져 떨어져 나간 상태의 운동화 복원을 문화재보존연구소 너댓 군데에 문의했다고 한다. 운동화 밑창 재질은 폴리에스터, 우레탄이라는 고분자 물질이 흔히 사용되는데, 이러한 합성 재질은 문화재에서 생소한 재료이다. 문화재의 재료는 금속, 청동, 목재, 석재, 지류 등으로 한정되어 있다. 합성수지 플라스틱과 같은 재질을 다룰 수 있는 복원가를 수소문하다 공통적으로 미술품 보존 전문가인 저를 추천받아 연결이 되었다.
문화재와 미술품 복원의 목적도 다르다. 문화재는 물질이 가지는 역사성,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살리는 게 목적이라면, 조형예술 작품은 외형이나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이 가치이다. 간혹 손상된 미술 작품에 손을 대면 작품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의문들을 가진다. 그러나 훼손된 작품은 팔 수도 걸 수도 없다. 그럼에도 그걸 복원하는 데 드는 비용을 고민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작품보존수복팀 총괄팀장으로 계셨으니 한국 미술계에서 선망하는 직업을 가졌던 셈이다. 미술관을 스스로 그만두고 대안학교 미술교사 일을 하고, 일종의 이탈 행보다. 미술품 보존복원 직업군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을 당시에 직접 연구소를 만들고,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계신다. 없는 길을 만들면서 보존복원가의 행보, 길을 닦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미술계의 직업이 매우 협소함에도 불구, 그 일을 하고 싶은 청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국립현대미술관을 그만두고 무작정 대안학교를 찾아가 미술 수업을 맡겠다고 자원했다. 연구소 사업자를 내기도 전이다. 거의 야생마(?)와 같은 열네 살 중등 아이들의 수업을 하려다 보니 일종의 쇼를 동원해야겠다는 생각에 피아노 건반을 연주하며 미술 수업을 했다. 미술교육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흥미를 끌어야 한다. 대안학교 지척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있었다.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모두 보지 말고, 쑤욱 지나치다 나를 끄는 작품이 있으면 하나나 두 개만 보고 와서 왜 그랬는지 이야기해 보자고 했다. 봇물 터지듯 펼쳐 놓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놀라웠다. 사회 문제와 삶에 대한 이야기, 엄마와 가족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미술 작품에 투영하며 이야기하더라. 화려한 이론으로 무장한 미술 비평보다 정말 멋진 감상평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오히려 내가 성장했던 시간이었다.
불안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예술을 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무엇보다 자유로워야 하는 직업인데, 사람들에게 ‘이렇게 사는 게 잘 사는 거야’라고 규정짓고 있기 때문이다. ‘잘 산다는 것’이 모두 경제활동과 연결되어 있고. 흔히 말하는 안정된 직장에서 월급을 받고 정해진 삶을 사는 것, 일정 나이가 되면 집과 차를 소유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가지는 그런 삶을 모두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사실은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는 창작을 할 수 없다. 연구소는 올해로 11년 차가 됐다. 그간 거쳐 간 학생들의 이야기도 차이가 난다. ‘어디에 취직하지’라는 고민들, 미술 학원을 개원하는 정도면 잘된 거라는 웃지 못할, 서글퍼지는 고민을 미술대학교 학생들이 하고 있다. 진로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함부로 할 수 없다. 왜냐면 진로는 자신들이 찾아야 한다. 이 무기를 가지고 어떤 걸 만들고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는 스스로 개척하고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도 제시해 줄 수 없다.
해외 미술관 소장 작품들을 비롯한 대규모 기획 전시가 준비될 때 ‘쿠리에’ 등 다양한 미술 관련 직업군이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안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데이비드 호크니>전에서 미술관 측의 상태 점검을 맡았다고 들었다. 미술 보조 전문가로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인가?
‘쿠리에(courier)’는 작품과 함께 가는 사람을 말하며, 나는 서울시립미술관 측의 보존전문가인 콘서베이터(conservator)로서 호크니 전시 상태 점검을 담당했다. 해외 교류전이 있을 때 우리 측의 상태 점검은 굉장히 중요하다. 작품 운송 상자인 크레이트(crate)를 푸는 순간부터 쿠리에와 콘서베이터가 모두 동석하여 확인한다. 상태 점검 시 만일 작품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이것에 대한 책임 소재를 비롯해 여러 가지를 따지게 된다. 관련 보험 문제를 해결하고, 행정적·재정적인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장거리 운송되는 작품들은 미술관에 도착했을 때 완전무결한 경우는 거의 없다. 도착했을 당시 사소한 흠집까지 다 찾아내고, 철저하게 모두 기록해야 한다. 상대측 쿠리에보다 더 꼼꼼하게 보고 모두 파악해야 한다. 전시가 끝난 후에는 문제없는 상태에서 되도록 좋게 좋게 빨리 돌려보내는 게 좋다.
국가와 국가 간의 해외 교류전의 경우 보존전문가가 쿠리에와 이 작업을 진행하는 절차가 없으면, 상대측에서 우리를 문화적으로 얕잡아 보거나 전시 진행에 대한 신뢰감도 떨어뜨리게 된다. 교류의 첫 단추부터 어긋나는 것이다. 미술관 교류 전시도 국가와 국가의 만남이다. 1차적으로 큐레이터를 비롯해서 모든 스태프들도 전문성을 가지고 대응해야 한다.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는 상태 점검만 6일간 했다. 전시 작품은 각각 3개국 5곳의 서로 다른 소장처에서 들어왔기에 각 소장처의 쿠리에와 상태 점검에 들어갔다. 나흘째 되는 날은 호주, 영국 테이트, 일본 측의 쿠리에가 한꺼번에 오는 바람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쉼 없이 작업했다. 너무 힘들어 중간에 병원에서 링거를 맞으며 상태 점검을 마쳤다. 철저한 상태 점검 과정을 거치며 이 전시의 전반적인 상호 신뢰를 쌓는 데 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미술품 복원이 아직은 특수한 분야이고 직업으로서도 일반적이지 않다. 작년에 쓰신 책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가 재판되었는데, 미술품 보존 분야에 대한 호기심 이상의 동인이 궁금하다.
책에서 직접적으로 보존복원을 해야 한다고 말하긴 싫었고, 왜 과거의 물건에 대해 가치 있다고 느끼고 보존을 하려 하는지, 왜 우리 인간은 보존복원을 하고 싶어 하는가를 풀어 나가는 데 방점을 두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은 무엇인가, 무엇으로 사는가까지 접근하게 되더라.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 문명을 이루고 문화생활을 이루는 인간으로서의 삶의 가치나 원동력은 결국 ‘의미’인 것 같다. 반면 유물이란 것은 그냥 물건이다. 그것 자체로는 아무 가치가 없다. 이중섭, 박수근, 다빈치의 작품이 잔뜩 쌓여 있다고 해도 그곳이 인간이 살지 않는 별이라면 사실 아무런 가치가 없다. 사람이 있고 나서야 소위 소중하다,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가치는 물건이 만드는 게 아니고 물건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의미 부여를 하는 거다. 물건을 복원하지만 물건만을 복원하는 건 그래서 의미가 없다. 결국 복원한다는 것은 물건에 담겨진 이야기를 복원하는 거다. 이야기는 끊임없이 변하고 덧붙여진다. 복원이란 그 물건의 새로운 이야기를 얹는 또 하나의 과정이기도 하다. 시간이란 과거이고 과거의 이야기들, 이 물건을 두고 사람들이 생각해 왔던 것들이다.
미술품 보존복원에 대한 진로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준비 사항이나 실용적 측면에서 조언을 해 줄 수 있나?
책을 쓴 이유기이도 하다. 꾸준히 보존복원가 진로 고민 상담이 들어온다. 전공 이수를 고민하는 경우 “유학가지 마세요”라고 얘기한다. 우리 사회가 스펙을 중요시하다 보니 학위가 있어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유학을 고려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국내에 유학을 다녀오지 않고도 복원 일을 하는 전문가가 현재 열 분이 넘는다. 우리 연구소 연구원 두 명도 보존복원 전공자가 아니다. 실제로 보고, 작품을 만져봐야 비로소 복원가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 누구보다 풍부한 임상 경험을 거쳤다고 자부하지만, 여전히 계속해서 연구하고 복원작업을 한다. INCCA(현대미술보존학회, International Network for the Conservation of Contemporary Art)에 업로드되는 자료들을 참고하고, 나 역시 보존복원에 관한 논문을 게재하려고 신청 중이다(인터뷰 후 며칠 뒤, INCCA 논문 심사가 통과되어 게재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새로운 기법이나 재료들이 주어지면 먼저 테스트 작업을 하는 등 연습을 쉬지 않는다.
미술품이란 결국 오리지널리티가 중요하고, 작품을 감상하는 개인의 경험들이 작품의 유일성과 만날 때 그 시대와 감상의 순간들이 예술에 대한 가치를 구성한다고 생각한다. 대표님의 책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 제목에서 예술 작품을 ‘시간’으로 함축시킨 것에 동감한다. 미술품 관리에 대한 일상적인 문화가 자리 잡기까지 역할이 많으실 것 같다. 연구소의 앞으로의 비전은 무엇인가?
한국은 자동차 관리가 일상화되어 있고, 외형 복원이나 자동차 광택 작업 가게도 동네마다 있다. 이는 사람들이 자동차에 대한 애착이 크다는 것이며, 잘 관리된 자동차의 가치를 높이 사는 거다. 결국은 억지로 인식 전환이나 제도를 바꾸는 것보다 미술품의 가치를 이해하는 애호의 문화가 중요한 것 같다.
연구소는 미술품의 병원이니까 우선 그 역할을 꾸준히 할 거다. 조형물 복원은 육체노동을 하는 굉장히 고된 작업이다. 현재 몸이 많이 상해서 이 일을 오래 하지 못할 것 같다. 젊은 후배들에게 빨리 제 역할을 하도록 가르쳐서 떠넘겨야 할 것 같다, 하하. 나는 앞으로 예술교육을 통해 보존을 넘어서서 예술문화, 예술을 하고 싶어 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변순영은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하고, 미술교육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교육에 관심을 두고 문화기획을 실천해 왔으며, 인천문화재단에 입사한 후, 예술창작 레지던시공간인 인천아트플랫폼 개관준비팀장을 거쳐 인천문화재단 브랜드 사업인 ‘인천왈츠’, 재단의 모금사업 ‘아트레인’을 런칭했다. 현재는 예술지원팀장을 맡아 지역문화진흥을 위한 예술지원사업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