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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마주하는 안무가, 예술가 그리고 수행자
김판선_가야댄스컴퍼니 대표‘예술가’는 신기한 단어다. 한 사람을 모호하게 만들고 아련하게 만드는 기이한 효과가 있다. 기획자-연구자로 살면서 예술가를 만날 일은 많다. 각종 콘퍼런스나 토론회에서 만난다. 사적인 모임에서도 만나고, 밥도 먹고, 차도 같이 마신다. 창작의 과정에 함께 있기도 한다. 이제는 친구 중에 예술가가 비예술가보다 더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예술을 위한 제도, 예술가를 위한 시스템에 대해 생각을 할 때면 갑자기 구체적인 ‘그’ 사람, ‘그’ 친구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 예술 ‘일반’에 대해, 예술가 ‘일반’에 대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개념적 전환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보편이 구체를 덮어버린 것이다.
개인으로서든 웹진 차원에서든, 숫자나 단어가 만드는 간명한 보편성 이상으로 예술가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술지원 사업의 효과성을 당해 연도를 대상으로 하는 설문과 연구로 할 것이 아니라, 그 기관이 지원한 예술가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아카이빙으로 제시하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예술가에 대해서도 일단은 만나고, 기록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심리상담을 ‘통해’ 바라본 예술가 너머에, 지금을 사는 예술가를 만나, 일에 대해, 생활에 대해 구체적으로 듣고자 했다.
때마침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가 열렸다. 무용 작품 중 가야댄스컴퍼니가 불가리아 프로덕션과 협력 작업한 <두려움에 갇혀(Caged)>가 있었다. 영화 <조커>를 본 직후의 우울감이 가시지 않은 상태라 또다시 무거운 주제의 작품을 보는 건 부담스런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작품 소개에 “두려움을 갖고 사는 한, 우리는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잊게 된다.”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희망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폭로나 정서의 혼란스러운 배설은 아니구나 싶은 정도의 예상을 가지고 공연을 보았다. 그리고 이틀 후 가야댄스컴퍼니의 대표이자 작품의 안무가인 김판선을 만났다.
작품 <두려움에 갇혀>에 대해 좀 얘기해 달라.
작품 내용은 간단하다. 두려움에는 물리적 현실의 측면도 있지만, 정신에서 오는 두려움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작품은 한 여성이 만든 가상적인 두려움을 표현한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 될지 망각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스스로가 만든 세계에 대한 독백 같은 이야기이다.
팀을 만들고 첫 작품의 주제로 ‘두려움’을 다룬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나의 현재와 가장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팀을 결성하고 출발점에 놓인 지금은 인생에서 아주 결정적인 시기이다. 이때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은 두려움이다. 사람들을 모으고, 작품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입장들을 조율하고, 자신의 능력에 대해 돌아보는 과정에서 항상 두려움을 느낀다. 행복감은 오히려 드물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그렇다.
내 인생에서 두려움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관객에게 무엇을 주겠다는 생각 이전에 내가 지나온 삶에서 두려움에 대해 생각해봤던 것, 나라면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들이 차츰 쌓이고 정리되면서 한번 표현해볼 만한 시기가 왔던 것 같다.
사실 두려움을 붙들고 계속 살아가는 것은 불행이다. 하지만 동시에 두려움과 마주하면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내가 정말 원해서 이러고 있는 것인지? 일종의 거울 같은 역할이랄까? 그런 작품이다.
두려움 이후에 다뤄보고 싶은 작품의 주제가 있나?
힘든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황, 행위, 모든 것들과 그 안에서 발견되는 미학을 표현하고 싶다. 싸우고, 물어뜯고, 터지고, 찢겨지고, 뿌려지고, 메시(messy)한 그 상황 속에서 발견되는 미학을 보고 싶다. ‘이게 사람이 사는 거구나’,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이 모습으로 행복해하기도 하는구나’ 이런 것들에 대해 다뤄보고 싶다. 난장판일 텐데, 그 안에서 아주 멋진 작품이 나올 수 있게 해보고 싶다.
음악을 흔히 보편 언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 다른 문화권 예술가와의 협업에서는 문화적 맥락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 몸도 하나의 언어인데, 불가리아 팀과의 협력 작업에서 문화적 차이에 대한 것을 어느 정도 느끼나?
내셔널리티(국적)의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적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창작의 측면에서 보자면 각 개인이 온전히 하나의 독립된 문화인 동시에 국가나 다름없다. 불가리아인이라서 다를 것은 없다고 본다. 나와의 소통 과정에서 자기 나름의 생각으로 어느 정도까지 나에게 다가오는가? 표현해주는가? 내가 문장, 이미지 등을 제시할 때, 그것을 어떻게 자기화해서 안무자에게 무슨 옵션을 제시해주는가? 그게 중요한 것 같다. 그 옵션들 안에서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작품으로 구체화해 보는 과정의 반복일 뿐이다. 불가리아인이라서, 다른 무엇이라서, 이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이 사람이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가졌는지, 어떤 정신세계를 가졌는지, 안무가 생각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자기화해서 나에게 제시해주고 설명하고 액션을 취할 수 있느냐가 문제이다.
그런 측면이라면 한국인과 작업하더라도 차이가 있을 이유는 없겠다.
그렇다. 동일하다. 어쨌든 이번 작업에서 만난 불가리아 출연진과 스태프는 훌륭했다. 작업 과정에서 자기 예술성이 센 사람은 본인이 제시한 것을 반영하라고 강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안무가이고, 따라서 최종 결정은 내가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대신 나의 요구에 기분이 나쁜 부분이 있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러한지, 왜 그러한지에 대해 명확히 소통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고집으로 인한 문제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나이스한 느낌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표현은 자기 정체성이 강한 사람들과의 작업에서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자기 고집을 부리는 예술가와의 작업은 긴장과 흥미로움이 동전의 양면처럼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떤 편을 더 선호하나?
새로운 것을 마주하는 상황을 더 선호하는 편이긴 하다. 내가 생각한 것과 똑같이, 나처럼 하라고 해도 어차피 할 수 없다. 나와 똑같은 무용수가 있을 수는 없다. 안무가로서 내가 생각하는 바에 대해서 최대한 명확히 전달해주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명확하게 생각을 전달하고 그것이 표현되는 것에 대해 지켜보고, 다시 소통하고, 그렇게 매일매일 조금씩 조각들을 모은다.
그림으로 비유하면 콜라주를 만들 듯 작업한다고 이해하면 될까?
정확하다. 그리고 화가의 작업에서도 명확하지 않은 순간들이 있을 수 있다. 그리다 멈칫하는 순간들이 있는 것이다. 지금의 붓질이 마른 후에는 또 느낌이 다를 수 있지 않을까? 내 작업에서도 마찬가지다. 방향을 정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그냥 마구잡이로 만들고 싶다면 방에서 혼자 놀면 된다. 하지만 작품은 내 앞에 있는 타인이 최소한의 이해는 할 수 있어야 한다. 딴에는 내 생각이 맞다고 하면서 작품을 만들지만, 마냥 그렇지도 않다. 내 생각을 멈추기도 하고, 수없는 생각들 속에서 다른 사람과 타협도 해야 한다.
작품을 만드는 것 자체가 두려움인 것 같다.
그렇다. 멤버들이 “갇혀 있는 것 같은데….”라는 농담을 자주 했었다.
인터뷰를 위해 기존 작업의 영상을 찾아보려 했는데, 찾기 어려웠다. 2005년 정도부터 작업을 시작했다고 알고 있는데, 십수 년의 시간 후에 팀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자기 세계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프로 데뷔 후부터 팀 결성 이전까지의 시간은 무엇이었다고 할 수 있나?
나를 찾아가는 시간, 나를 테스트해 보고, 내 정체성을 대면하고, 맛본 시간. 그래서 내가 이런 맛을 가지고 있고, 이런 맛은 싫어하고 증오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다른 이들과의 작업 속에서 이런저런 맛을 다 본 것인데, 그러다 보니 맛만 볼 것이 아니라 음식을 내놔야겠구나 싶어서 첫 번째 음식을 내놓은 것이다.
자기 정체성을 찾는 작업이 쉬운 일은 아니다. 또 대부분이 자기에게 맞는 옷을 찾고 싶어 하지만 잘 되는 것도 아니다. 본인은 어떤가?
음…. 입기 싫은 옷을 입을 수도 있다. 그걸 입어서 생기게 되는 내 감정, 그로 인해 타인이 달라 보이게 되는 것들, 그 영향력 등에 대해 관찰하고 깨닫게 되는 거다. 그렇게 한 번 입고 나서 다시 입지 않는다면 하나의 ‘기념품’이 되는 거다. 또는 하나의 ‘작품’? 2013년의 어느 날의 기록. 그런 식?
두려움을 생각보다 잘 다루는 것 같은데.
지금 하는 인터뷰도 두렵다. (웃음)
가야댄스컴퍼니는 프로젝트 팀인가?
그렇다. 이제 막 생긴 팀이고, 시행착오 과정에 있다. 처음이니까 일단 바라보고, 지켜주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본다. “내가 이만큼 하니까 너도 이만큼 해야 해.”는 아니다. 내가 느껴보고 싶어서 해볼 걸 다 해보는 거고, 거기에 대해 후회를 하지 않는 것. 그게 제일 깔끔하고 명확하다. 바라는 것 없이 해줄 수 있는 것, 그걸 확인하고 나면 불필요한 기대심리 없이 내 마음에서 내려놓을 수 있다. 이런 조건과 감정 안에서 다른 이들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본다. 그걸 보면서 괜찮다 싶으면 계속 유지하는 거다. 심플하다.
사람들은 종종 직접 경험보다는 타인의 기대나 이미 형성된 생각을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그런데 김판선 안무가는 마치 아이가 세상을 만져보며 알아가듯, 직접 터치하면서 받는 느낌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잡아가는 것 같다.
나는 그게 좋다. 왜냐하면, 주제 파악을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주제 파악을 잘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들뜨거나 하지 않는 그런 정도. 스스로가 아는 게 중요하다. ‘이런 부분에서 내가 그리 나쁘진 않더라.’ 혹은 ‘어떤 문제는 내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등등.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얕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도 매우 낮은 편이다. 어쨌든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지 않으면 주제 파악은 하고 사는 거라고 본다. 때때로 주변에서 왜 그렇게 부정적이냐고도 한다. 나도 나 자신이 허탈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스스로를 추스르지 못하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게 내 본질이다. ‘타고난 모습이 이렇고, 이게 나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거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얕은 수준, 그렇게 사는 것 같다.
계속해서 실제 자기와 대면하면서 살고자 하는 것 같은데, 그건 너무 힘든 일 아닌가?
엄청 힘들다. 하지만 그걸로 인해서 살아야겠구나, 해야겠구나, 행복해야겠구나,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더 즐기면서 살아야겠구나 하는 것을 더 느낄 수 있는 것도 같다. ‘내 수준을 생각할 때 이 부분을 더 해봐야겠다’는 느낌을 가지고 싶지, ‘나에게 걸맞은 대우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느낌을 갖고 싶진 않다.
마치 수행자 같다.
맞다. 수행자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측면에서 수행자와 다를 바 없다.
팀이 지속할 수 있기 위한 경제적 기반은 각자의 활동으로 알아서 해결하는 것인가?
그렇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명확히 논의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제시했고, 그게 받아들일 만하면 같이 하는 거고, 아니면 부담 없이 거절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각자의 삶이 있고, 그건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가와 줬다. 이유는 모르겠다. 비전이 보였는지, 흥미가 느껴졌는지, 다른 확고한 무언가가 있었는지? 어쨌든 그렇게 팀이 되었다. 받아들일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괜찮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한 번 제안은 해보고 싶어서 얘기했던 거다.
작업 파트너를 찾는 데 별다른 노하우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솔직하면 된다. 그리고 믿으면 된다. 명확하게 군더더기 없이 본인이 선택하고 책임져야 할 부분을 제시하면 된다. 상대의 영역에 내가 불필요하게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 딱 거기까지다.
매우 담백하고 좋은 방식이다. 그런데 그런 방식의 깔끔하고 솔직한 커뮤니케이션은 상대방도 자기 이해가 높아야 가능한 것 아닌가?
그렇다. 그게 안 맞으면 곤란하다. 그것까지 고려해서 이 사람은 함께할 수 있겠다 싶은 사람에게 팀 제안을 해본 거다. 아주 단순하다. 하지만 그 단순함이 어렵다. 온갖 유혹과 혼란, 아쉬움, 후회 등이 있는 가운데, 나의 제안에 대해 명확히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는 사람에게 제안했다. 상대도 내가 그렇게 바라봐 주면서 제안했다는 것을 느끼고 공감했다. 솔직한 소통은 작업에서도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느낌, 상대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바가 어긋나고, 얘기를 빙빙 돌려서 해야 하면 작업에 집중할 수 없다. 불필요한 오해들을 없애는 것을 통해 작업에만 명확히 집중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팀이 불가리아에 거점을 두고 있는데, 창작 환경이라는 차원에서 한국과 많이 다른가? 한편에서는 한국의 예술 정책, 환경이 이제 “후진적이다.”라고 단순 평가할 수는 없지 않냐는 말들도 있는데.
가능성의 측면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미 깔려 있는 문화적 토대가 너무 다르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경우 현대무용 공연장이 300개가 넘는데, 한국은? 문화생활을 자연스럽게 접하는 나이와 방식에서도 차이가 크고. 그렇게 보면 우리는 이제 시작인 수준이다.
숨 쉴 만큼의 산소가 당연히 있는 곳과 겨우 숨을 쉴 수 있는 곳의 차이 같은 느낌인가?
그렇다. 그렇게 힘겹게 숨 쉬며 살기 때문에 그 속에서 작업하는 아티스트도 다른 느낌을 받는다. 예를 들어 한국의 창작 환경에서 예술가가 받는 느낌은 상당히 물리적(physical)이다. 심한 경쟁 속에 살고,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지 않나? 자기 정체성에 대해 가끔 “아!” 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걸 갑작스럽게 느끼면 안 되지 않나? 깔려 있는 모든 것이 내 삶이어야 맞는 것 아닌가? 나의 국적, 문화, 정체성 등에 대해 숨 쉬듯 아는 것과 허겁지겁 사는 와중에 어쩌다 한 번 ‘나는 뭐지? 나 왜 이렇게 살지?’라는 차이. 그만큼의 차이가 있다. 나 역시 그런 측면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나도 몰아치는 듯한 한국의 문화 속에서 성장했다. 그걸 벗어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일과 휴식을 분리하기 위한 계획을 따로 짜서 연습할 정도였다. 그러다 휴식하기 위한 노력에 오히려 더 지치기도 했다.
창작자로서 기술의 변화는 어떻게 생각하나? 엔터테인먼트와 예술의 경계도 흐려지고,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스펙터클이 공연장의 판타지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4차 산업혁명 정책에 굳이 부응할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창작자로서 이런 변화에 영향을 받는가?
기술로 표현되는 것에 비해 사람이 표현하는 것은 30년, 50년의 시차가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사람이니까. 기술적으로는 착착착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몸으로 그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내 입장에서는 아티스트가 자기 정체성을 분명하게 가지고 기술과 어느 정도까지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 초현실, 비현실 수준의 기술이 아니라, 순수한 느낌의 몸과 인공적 기술이 만나서 협업하는 것을 안무가가 분명하게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코드를 찾는 것은, 천재가 아닌 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자본도 엄청나게 필요하고.
기술을 효과(effect)가 아닌 창작 파트너로 이해하는 방식이 신선하다. 마지막으로, 예술가로서 본인의 삶을 추동하고 자극하는 경험, 질문 같은 것이 있는가?
그냥 현재. 내가 사는 현재를 분명하게 보고 느끼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래야 다음 것도 보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의미 있게 함께 살아가려면 내가 ‘지금’ 왜 행복한지, 힘든지 알아야 하니까. 그러다 보면 그다음을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느낌이 생기게 된다. 작품과 매우 비슷한 것 같다. 내일은 이런 느낌으로 한번 가보고 싶다. 다음 일주일은 이런 식으로 해보고 싶다. 이런 정도의 계획만 있는 것 같다. 하루살이 같다.
김판선 안무가와의 대화 후 두 가지의 느낌이 분명하게 들었다. 하나는 ‘이 사람에게 사는 것과 작업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구나!’이다. 불분명한 것을 가능한 한 명확하게 하는 것, 한정된 정신이라는 힘을 꼭 써야 할 것에만 쓰는 것, 그러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지켜보는 것. 삶에 관한 대화와 작업에 관한 대화에서 주고받는 문장과 단어는 거의 같았다.
또 다른 한 가지는 ‘효율적으로 효과적으로 창작하기 위해 작업의 방식뿐 아니라 삶 자체를 ’최적화시키는구나’이다. 오해의 여지를 줄이기 위한 부단한 소통의 노력은 결국 힘을 집중해야 할 때 방해받지 않기 위한 전략이다. 다만 그것이 작업하는 그 순간에 애를 쓴다고 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삶 자체를 작업하듯 조직하고, 최적화할 수밖에.
다시금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그래서 나는 예술가를 아는가? 모르는가? 이 질문은 어느 쪽으로 답해도 욕을 먹게 되는 것이고, 질문과 답 사이의 간극을 책임 혹은 진정성이라는 자세로 채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오늘처럼 예술가를 기록하다 보면 조금 마음이 가벼워질지도.
설동준은 학부 때 원자핵공학을 전공한 후 아무 관련 없는 예술 분야에서 프리랜서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서른 살에 국악 단체에서 기획 및 단체경영 업무로 예술업에 발을 들였고, 예술, 과학기술, 신학 등의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교육공학을 전공하면서 사람의 변화와 성장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최근에는 생활문화, 인력양성, 문화예술교육 영역에 대한 연구 및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